
이때 용단이 나서서
“이게 어디 참나무 야요. 북나무지.”
“이게 참나무지 북나무 입니까?”
“길가는 사람 다 불러다 물어 봐요 이게 참나무 인가?”
“울퉁불퉁한 게 어디가 북나무요.”
“간난엄마 이리 와 봐요 이게 북나무요. 참나무요.”
“북나무가 맞아요.”
이미 옥녀는 제석의 아이 경석을 낳아서 업고, 서성이다 말다툼 소리에 와보니 용단이 물어서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니 산림감수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갓밝이 무렵에 재덕은 잠자는 수동이를 깨워서 배낭위에 얹고 선복이 이불 보퉁이를 지고 슬러니고개를 넘어 방하리 까지 저다 주었다.
정순이 인사를 하고 선복은 잘 살라고 손을 흔들며 보내고 고개를 넘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비록 귀가 먹어 살림의 모든 것을 용단이 처리 했지만 못 마땅했다.
이 그 철부지 뭐가 모자라 새끼까지 있는 남의 서방을 빼앗아 동내에서 얼굴을 못 들고 살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평에서 점심을 먹고 역에서 기차를 타고 마석에 내린 재덕은 박하사탕 한 봉지와 껌을 샀다.
그리고 물골안으로 들어가는 기차 굴다리에서 비금이 산판으로 나무를 실러 들어가는 GMC 트럭을 세워서 타고 동내 입구에 도착해서 내려서 조수에게 삼십 환을 조수가
“아니 오십 환은 줘야지 이게 뭡니까?”
“이거면 됐지 없어요.”
하고 가려는데 운전석에서 운전수가 돈을 받아서 던지자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서 이십 환을 더 찾아서 운전수에게 건넸다.
트럭에서 내려 눈 덮인 길을 걸어서 가는데, 수동이는 살짝 언 눈 위를 살살 걸어가다 눈이 푹 꺼지면 깔깔 웃었다.
몇 발자국 또 걷다가 눈이 푹 깨지면 재미있어서 또 웃는다.
양묵의 집 대문을 들어서서 보니 양묵이 작두에 여물을 먹이고 동생 재순이 작두를 디디며 여물을 썰고 있었다.
재덕이 얼른 이불 보퉁이를 내려놓고 재순이 대신 작두를 디뎌서 여물을 썰었다.
여물 썰기가 끝나고 재덕과 정순 수동이는 양묵내외에게 절을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인 명자와 그의 친구 영순이가 안방에서 놀고 있어서 재덕은 사가지고 간 껌과 박하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양묵은 밖으로 나가 소죽을 쑤고 재덕과 정순은 짐정리를 하고 재순과 순례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방에 남은 명자와 영순이는 껌을 씹다가 길게 고무줄처럼 늘이며 놀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재덕과 정순 수동이는 사랑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랫집 마당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들려서 수동이가 내려가 보니 수동이 또래의 아이 둘 그리고 큰 여자 아이 둘이 놀고 있었다.
수동이 또래의 아이 중 조금 큰애가 수동이를 때리려 하자
“천동아 친척이야 때리지 말고 같이 놀아.”
“아줌마 애가 누구야.”
“응 작은 할아버지 댁에 와서 살게 된 수동이야 친척이니까 잘 지내야 한다.”
천동이는 재근의 아들로 수동이보다 2달 먼저 태어난 아이였고. 말리던 아줌마로 불리던 아이는 재근의 계모 미랑이 낳은 이복동생으로 금순이었다.
미랑은 황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서 구정이와 구철이 형제를 두었으나 남편이 죽고 15년 전에 형묵과 재혼을 하여 방꼴에서 큰아들 재천 부부와 손자 경동 부부 까지 에 대 식구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1년 뒤 딸 금순을 낳아서 살고 있었으나, 식구들과 마음이 잘 맞지를 않아서 형묵과 함께 꽃재에 집을 사서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맞는 재근과 같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성하여 아들까지 둔 경동할머니 보다는 천동할머니라고 불렀다.
그리고 수동이 또래의 작은 아이는 창복이라는 아이로 바로 밑에 집 아이였고 또 하나의 여자 아이는 그 아이의 누나로 경순이라는 금순이의 동갑 친구였다.
그리고 그 집에는 황골 공회당에 살던 진호가 재천이가 살던 방꼴 집으로 식구들을 데리고 이사를 왔다.
그 집은 형묵의 아버지 영훈이 지은 집으로 20칸이나 되어서 방꼴에서 제일 큰 집이었다.
비워두면 망가진다고 집이 팔릴 때 까지 관리를 해줄 사람을 구하던 중 재덕이 주선을 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수동이가 아침을 먹은 것이 채했는지 울면서 배가 아프다고 우니 재순이 업고 꽃재 정묵의 집에 가서 사관을 맞았다.
신기하게도 울던 녀석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설이 다가올 무렵 정순은 무거운 몸에도 불구하고 색동저고리에 남색 바지 그리고 연두색 조끼까지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섣달 말이 되자 순례는 정순에게 수수 한말을 내놓으며 물을 풍겨서 대끼라고 했다.
절구에 세 번에 걸쳐서 대껴내자 시루에 넣고 지에밥을 지으라고 하는데 두 번을 쪄냈다.
술을 커다란 독 두개를 담그면서
“정월 초이렛날이 네 시아버지 육순이 아니냐. 그래서 아주 그때 까지 쓸 것까지 담그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사흘 후 또 수수 한말을 절구에 대끼고 맷돌에 타개서 또 시루에 쪄내고 길금 가루를 넣고 삭혀서 조청을 고아서 조청과 엿을 만들었다.
막달의 정순은 몸이 무거워 죽을 맛이었으나 이틀 후에는 절구에 쌀을 찧어 도드미에 처서 시루에 안치고 쪄내고 재덕과 병묵이 암반에 떡메로 처서 내 놓으면 손으로 길게 가래떡을 만들었다.
드디어 섣달 그믐날 저녁 재덕은 꽃재 큰아버지 정묵 큰어머니 미랑에게 묵은세배를 하고 와서 수동이와 함께 양묵과 순례에게 묵은세배를 했다.
설날 아침 일찍 재덕은 수동이를 데리고 꽃재 정묵의 집에서 영훈 할아버지 양위분의 차례를 지냈는데 재천과 경동은 서울서 내려오지 않았고, 재근의 식구들마저 서울 형 재천의 집으로 설을 쇠러 올라갔다.
재덕은 아니 자식들이 아무리 계모가 마음에 안 들어도 설에도 안 내려오다니 심사가 뒤틀렸다.
정묵도 마음이 언짢기는 마찬가지 미랑이 떠 주는 떡국들을 먹는 동안에도 묵묵히 떡국들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수동이가 떡국을 먹다가 엎고 말았다.
“이 노무 자식이 조심성이 없이.”
재덕은 그 말과 함께 수동이를 번쩍 들고나가 닥치는 대로 팼다.
형묵과 미랑이가
“어린 것이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말렸으나 자제 하지를 못하고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하면서 수동이의 볼기를 무지막지 하게 때렸다.
졸지에 수동이는 설날 아침부터 재덕의 화풀이 대상이 되고 말았다.
병묵도 올해는 계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차례를 지내고 아내의 눈치를 봐가며 전처의 메를 한 그릇 떠 놓고 명자에게 절을 하라고 했으나 영란의 마음은 불편했다.
그리고 바로 내려와 양모의 차례를 지내고 양묵과 양 계모 순례에게 세배를 했다.
그리고 수동이를 데리고 방꼴 완묵의 집 안마산 지묵과 충묵의 집 그리고 홀로되어 손자 소동이와 손녀 옥희를 데리고 사는 경묵의 처 삼례의 집에까지 들려서 세배를 하고 돌아오다 진우네 집에 들러서 저녁을 먹었다.
이미 수동이는 지처서 잠이 들어 있었다.
재덕은 술이 얼간하게 취한 몸으로 어두워진 밤길을 수동이를 업고 비틀거리며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재덕은 도림개로 놀러 갔다.
도림개 가양초교아래에 있는 마을로 양주군에 위치하며 개울을 건너면 가평군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게와 술집이 둬 군데 있는 곳으로 논다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랫말에 양묵의 양자가 왔다는 소문은 들은 바이었는데, 주막 앞을 기웃거리자
“어이 거기 술 한 잔 하게,”
보니 재덕 보다 십여 살을 더 먹어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기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들어섰다.
댓돌이 있고 마루가 있는데, 마루 위에는 재덕보다 십여 살은 더 먹어 보이는 두 사람이 술상 앞에 술을 마시면서 재덕을 맞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아랫말 김자 양자 묵자 되시는 분의 양자로 온 재 덕입니다.”
“그래 그럼 내술 한잔 받게.”
초면에 하게를 쓰는 게 재덕의 기분을 매우 떨떠름하게 했다.
그리고 상대는 재덕의 덩치에 거의 두 배에 가까워 보였고, 상대는 두 사람 재덕을 얕보고 처음부터 기를 죽이려는 심사였다.
재덕이 한 잔 받아 마시고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하며 한잔 씩 술을 따랐고, 다른 한 사람이 주전자를 받아서 재덕의 잔을 채워주었다.
술을 마시면서 재덕은 영 심사가 뒤틀렸다.
아무리 타관이라고 해도 꼬박 꼬박 하게를 쓰는 게 밸이 꼬일 데로 꼬여 있는데.
“자내 내가 하게 해서 기분 나쁜가.”
하면서 일어나는 상대를 마루 끝에 앉은 상태에서 멱살을 잡아 상대의 힘을 이용해 댓돌아래 마당으로 업어치기를 했다.
상대는 벌떡 일어나더니
“네가 나를 감히. ”
하면서 웃으며 올라오는 것이었다.
첫댓글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름만큼 시적이고 고운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들려 주세요.
그나 저나 가사 도우미로 있으면서 수동을 그리워 하는 모습은 그려 내지 못하는 것이 아쉽네요.
어느덧 배경이 옮겨져 있는 것 같아서 희상은 멀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박집사님의 마음을 헤아릴 날이 있겠요.
변함없는 사랑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