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신> 우리 시의 압운에 관하여 / 임보 (시인)
로메다 님, 지난번에는 운율의 한 유형인 율격에 관하여 소개했습니다. 내 설명이 미급했던 것 같아서 다시 간략하게 덧붙입니다. 율격은 강약·고저·장단 등 '소리의 성질'이 빚어내는 율동현상입니다. 언어의 특성에 따라 율격 형태가 결정됩니다. 강약의 어세를 중요시하는 영어로 쓰인 영시(英詩)는 강약률을 지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시의 한 행이 '강약약 강약약 강약약…'의 어세를 지닐 경우 '강약약'이 하나의 단위가 되어 반복되면서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고저를 중요시하는 한시(漢詩)인 경우는 고저율을 갖게 되고,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시는 장단율이 지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시에서의 율격은 그러한 소리의 성질(강약,고저,장단)에 의해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소리의 양'의 반복으로 파악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우리 시의 율격 명칭을 붙이자면 '음량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의 율격형태를 4·4조라든지, 7·5조라든지 하는 말로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낭독할 때의 시간적인 등장성(等長性)을 고려하여 2음보, 3음보, 4음보와 같은 음보의 개념으로 파악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압운(押韻)에 관해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압운은 같은 소리나 혹은 유사한 소리들의 반복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소리의 어울림입니다. 압운에 관한 다음의 글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시의 압운(押韻)
압운은 율격과 함께 운율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장치 중의 하나다. 압운은 동일한 소리의 반복이 빚어낸 해조(諧調) 현상인데, 이는 한시의 절구(絶句)나 율시(律詩)라든지 서구의 sonnet와 같은 정형시에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이다. 즉 이러한 정형시에서는 규정된 압운법이 있어서 그러한 압운법을 지키지 않는 글은 시가 되지 못한다. 말하자면 압운은 정형시를 이루는 한 형식―지켜야만 되는 규칙인 것이다.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어인 일로 푸른 산속에 사는가 그 내가 묻는다면) 笑而不答心自閒(소이부답심자한) (대답이 무슨 소용, 그저 웃고만 있으리) 桃花流水杳然去(도화류수묘연거) (복사꽃 떨어진 시냇물 아득히 흘러가는 곳)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속세와는 먼 특별한 이 세상을 어찌 모르시는가) - 李白(이백) 山中問答(산중문답)
「산중문답」에서는 1, 2, 4행의 끝이 동일한 소리('ㄴ')로 압운되어 있고. 「Pippa's Song」에서는 ①행과 ⑤행, ②행과 ⑥행, ③행과 ⑦행 그리고 ④행과 ⑧행의 끝이 서로 호응하여 동일한 소리들을 매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즐거운 해조야말로 절제의 미학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시조(時調)와 같은 정형시에서도 압운의 규제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시에서는 압운법이 발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 시가 운율의 취약성을 지니게 된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시인들이 압운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만 한다면 우리의 현대시에서도 압운적 효과를 성공적으로 실현시키지 못할 것도 없다.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하며 마치 천리 만리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여 볼까. 한줄기 쏜살같이 뻗은 이 길로 줄곧 치달아 올라가면 불붙는 산의, 불붙는 산의 연기는 한두 줄기 피어올라라. - 김소월 / 천리만리
일자리 잃고 집에서 지내네
아내는 안에서 한숨이 한이 없고 나는 난감하여 낯빛이 납빛이네
돈은 돌고 돈다는데 돈에 돌아야 도는 걸까 ― 채희문 「우울한 日誌(일지)·15」 부분
목화밭 청무우 시린 다복솔 옥양목 달에 젖은 부신 저고리 시오리 가리맛길 잠든 산마을 시루봉 머리 위에 걸린 달무리 - 임보 『달밤』
소월의 작품에서는 'ㅁ'이 의도적으로 반복되면서 부드러운 율동감을 빚고 있다. 채희문의 작품에서는 행 단위로 동일한 음절들이 되풀이되면서 아이러니컬한 음조를 형성하고 있다. 졸시 「달밤」은 1, 2행과 3, 4행의 첫머리를 각각 동일한 소리로 배치했고 1, 3행과 2, 4행의 끝에 각각 동일한 소리를 달았다. 균제(均齊)의 구성미를 추구해 본 것인데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 닿는지 궁금하다. 압운되는 소리가 단순히 율동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그 소리의 음색(音色)[음성상징]이 작품의 정조(情調)[시의 내용]와 잘 어울려 상승 작용을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학계에서는 압운의 범주를 문제삼기도 한다. 우리 시에서의 압운의 한계 즉 되풀이되는 소리의 단위를 어떻게 한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압운의 범주를 단음의 반복만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는데 이는 영시(英詩)나 한시(漢詩)의 압운법에 근거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은 영어나 중국어와는 달리 의미를 나타내는 실사(實辭) 뒤에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허사(虛辭)[조사,어미 등]가 질서정연하게 부착되어 이루어진 교착어다. 그런데 어절의 끝에 부착된 허사 즉 조사나 어미는 대개 한 음절 이상의 것들이어서 압운의 범주를 단음만으로 한정할 경우 우리 시에서의 압운의 실현은 거의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 구조가 다른 우리 시가 굳이 한시나 서구시의 압운법에 예속될 필요는 없다. 우리 시는 우리 언어 구조에 맞는 압운법을 설정하면 되는 것이다. 되풀이되는 소리의 단위가 단음을 넘어서서 음절이나 어절 단위가 되더라도 해조적 리듬감을 생산해 낸다면 압운의 범주로 다루지 못할 것도 없다. 문제는 되풀이되는 소리의 단위가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소리가 효율적인 해조를 만들어 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졸저 『엄살의 시학』 pp.77-80
로메다 님, 압운의 이론도 까다롭지요? 압운되는 위치에 따라 행내운(行內韻)과 행간운(行間韻)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행내운은 앞에 인용한 채희문의 「우울한 일지·15」에서처럼 동일한 행 속에서 같은 소리가 반복되는 구조이고, 행간운은 앞의 졸시 「달밤」에서처럼 행과 행들의 유사한 위치에 동일한 소리가 놓이면서 만들어집니다. 이는 다시 행의 앞에 놓인 행두운(行頭韻)과 행의 끝에 놓인 행말운(行末韻)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모밀꽃 보고 무얼 생각누
머언 산허리 멈춘 낙조에
목동의 피리 머흘 머흘이
멍든 가슴을 만저만 주는
모색 하늘은 물든 장미빛 - 장호 『모밀꽃 보고』 부분
저 산벚꽃 핀 등성이에 지친 몸을 쉴까 두고 온 고향 생각에 고개 젖는다
도피안사에 무리지던 연분홍빛 꽃너울 먹어도 허기지던 삼춘 한나절
벨에 역겨운 가구가락 물냄새 구국구국 울어대는 멧비둘기 소리
산벚꽃 진 등성이에 뼈를 묻을까 소태같이 쓴 입술에 풀잎 씹힌다 - 민영 『용인 가는 길』
장호의 작품은 행두운을 의도적으로 실현시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겠지요? 각 행의 첫 소리가 'ㅁ'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민영의 작품에서는 각 연의 행말에 유사한 소리가 오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제1연의 1행과 3행의 끝이 '에'로 2행과 4행의 끝이 'ㅏ'로 제2연의 1행과 3행의 끝이 '던'으로 2행과 4행의 끝이 'ㄹ'로 제3연의 1행과 3행의 끝이 'ㄴ'으로 2행과 4행의 끝이 'ㅣ'로 제4연의 1행과 3행의 끝이 '에'로 2행과 4행의 끝이 'ㅏ'로 압운되어 있습니다. 로메다 님, 작품 전체에 걸쳐 지나치게 의도적인 압운 설정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합니다만 부분적으로 적절한 압운을 실현시킬 수 있다면 한결 부드러운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시에서 압운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시를 쓰는 사람들은 우리 시의 압운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역시 우리 시를 풍요롭게 하는 한 방법이 될 터이니까요. 시의 율격과 압운에 관해서 좀더 깊이 있는 이해를 원하신다면 졸저 『현대시 운율 구조론』(태학사,1999)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 임보 교수 시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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