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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장모를 위해 (막3-7)
2024년 5월21일(화요일)
찬양 : 슬픈 마음있는 사람
본문 : 막1장29-34절
☞ https://youtu.be/CXVpBG7SG14?si=6P20ftQ2EOzgEqG5
어제 충주에 다녀왔다. 소중한 마음을 품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귀한 사역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내어 함께한 시간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지를 고민했다. 9월 시작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 준비를 한다. 다만 사역의 편리성을 위해 사역을 함께 공유하되 라마나욧선교회의 지부가 아닌 독립적 기관으로 <충주 라마나욧>으로 해서 출발하기로 했다. 모든 과정에 주님의 인도하심과 축복하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은 서울 북부에 있는 한 교회를 심방한다. 암 투병을 하시고 다시 회복되어 사역을 감당하시는 목사님이시다. 신실한 주님의 종을 심방하며 주님이 어떻게 일하셨을지 궁금하고 주님의 방문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은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며 그 온 동네의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는 장면이다. 30-31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마태복음의 기록으로는 8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마가는 1장에 등장시키며 빠른 전개를 통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 제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누가의 고백으로 보면 중한 열병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주님은 베드로의 장모에게 가서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그러자 열병이 떠났다고 한다. <베드로의 장모>는 사위가 얼마나 미웠을까? 젊은 어부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을 따른다고 아무런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일에 헌신했을 때 ~
이런 제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그 장모를 일으켜 주시고 장모가 주님을 위해 <수종드니라> 이때 베드로는 얼마나 기뻐했을까?
마태는 <만지시니>라는 표현을 썼다. 누가는 <꾸짖으시니>라고 했다. 그런데 마가는 오늘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라고 말하며 예수님께서 열병으로 고통하는 베드로의 장모에게 아주 강력하게 개입하여 치료하셨음을 말씀한다.
오늘 네로 황제의 핍박으로 인해 고통하는 교회들을 향해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이 얼마나 강력하게 우리의 일에 개입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아멘.
저물어 해 질 때에 사람들이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데리고 온다. 32-33절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문 앞에 모였더라’
<그문 앞에>라는 표현이 울림을 준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베드로 장모에게 분명하게 각인시키며 사위 베드로가 가는 길이 멋진 길임을 확인케 하시는 장면이다.
아마 네로 황제의 핍박이 시작되었을 때 <베드로 장모>처럼 예수 믿는 일을 미덥지 않게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지만,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에 빠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마가는 <베드로 장모>와 같은 이들에게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분명하게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온 동네가> 그문 앞에 모였다. 그들은 그 문에 들어가 치료받으려고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베드로 장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 베드로에게 힘을 실어주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34절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베드로 장모의 집에서 주님은 그야말로 온 동네를 치료하셨다. 베드로 장모의 집은 순식간에 온 동네에 가장 중요한 집이 되어 버렸다. 특히 이곳에서는 귀신이 말하지도 못하게 하시며 이들을 치료하셨다. 주님의 권세가 얼마나 놀라운지 귀신을 말 한마디도 못하게 하셨다. 할렐루야 ~
해질 때에 밀려온 사람들을 그렇게 치료하시며 주님은 얼마나 오랜 시간 사역을 이루셨을까? 베드로 장모는 그 모든 일을 수종들면서 얼마나 기뻐했을까? 그리고 사위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세상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월급을 준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세상처럼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일에 때로는 베드로처럼 장모의 얼굴을 보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주님은 베드로와 그 가족을 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진실로 그들을 살리시고 복되게 하시는 주님이심을 찬양한다. 세상은 속담이 있다.
<토사구팽> 이 말은 토끼를 잡기 위해 개를 고용한 주인이 토끼가 죽으면 개를 잡는다는 뜻이다. 즉 필요해서 쓰고는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 세상 이치를 보여주는 속담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원은 한계가 있으니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주님은 아니시다. 그분은 우리를 이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시기에 그분은 어떤 경우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와 함께하신다. 바울의 고백이 생각난다. 롬8:37-39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아멘. 아멘.
제자 베드로가 어찌할 수 없는 <베드로의 장모>의 아픔 마음과 육체까지 모두를 치료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그 집을 그 동네의 가장 중요한 처소로 삼으시며 놀라운 일을 행하신 주님 ~ 그렇게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의 가장 연약한 부분까지 만져주시며 격려하시며 이끄시는 우리의 주인되신 주님을 찬양한다.
나도 이 길을 걸으며 그렇게 수없이 좌절했고, 부끄러웠고, 죄송했다. 장모님이 아내의 고생하는 모습에 눈물을 훔칠 때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몰라 힘들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초대교회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을 고생시키고 그렇게 미움의 털이 박혔던 사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니 오늘도 그렇게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전함으로 자기의 자리를 지키느라 세상의 미움을 당하는 베드로들이 얼마나 많을까?
주님은 그들을 위해 그문 앞에서 이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다. 아멘.
오늘 암투병을 하신 목사님 교회를 심방하면서 이 말씀을 주신다. 주님, 진실로 주님이 이렇게 그 목사님의 심령과 가정을 책임져 주심을 믿습니다. 찬양합니다. 주님이 행하시옵소서. 주님이 행하신 일을 듣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1. <웨이브리즈> 플랫폼에 적합한 사람을 보내주사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3.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4.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6. 땡스기브가 세운 틴케이스 공간이 소중히 쓰임받게 하소서.
7.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8. 라마나욧선교회 충주지회가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