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11월 1일) 졸업한지 40년만에 처음으로 시골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다녀왔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초등학교는 내가 살고 있는 수원에서 불과 30km 거리밖에 되지 않지만
살다보니 40년 동안 소식 두절하고 지내 온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동창회를 찾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작년 5월, 아내와 함께 서해바다에 있는 선유도(仙遊島)로 여행 간적이 있었다.
여행 중 배안에서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는데, 50대 초반 나이로 보이는 남녀 20여명의 일행이
서로 이름을 부르며 야, 너..하며 아이들처럼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스스럼없고 그렇게 정다워 보일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경기도 안성에 있는
시골 초등학교 동창들로, 동창들이 함께 모여 선유도로 야유회 온 것이었다.
그 일을 기화로 나도 40년 넘도록 소식을 두절한 채 지내온 내 초등학교 동창 찾기에 나섰다.
하여 드디어 몇 달 전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연락이 닿았고, 엊그제 그 첫 만남이 있었다.
며칠 전 아내에게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간다는 말을 하자 아내는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 했다.
요즈음 학교, 특히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동창생 남녀들 끼리 만나 바람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나이 먹어서 무슨 바람이냐고 애써 시치미를 뗏지만 혹시 초등학교 때 예쁘고 공부 잘했던
S 또는 J를 만나 뒤늦게 바람 날(?)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로맨틱한 행운일까 하는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집에서 아침 07:30분경 나와 시내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시골 학교옆 만남장소에 도착했다.
40년 동안 변했을 친구들의 모습과 그동안 친구들은 어떻게 살아 왔는지에 가슴 설레어 가벼운 긴
장감 마저 돌았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 좀 서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역시 40년만에 만난 친구들의 모습은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다.
참가자 남자 24명, 여자 4명 합 28명중 기억을 떠올려 얼굴을 연결시킬 수 있는 친구는 불과 2명
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생면부지 같은 사람들 이었다. 초등학교 4~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조차 얼굴이 생소했다.
남자 동창들도 많이 늙었지만 여자 동창들의 경우는 더 많이 늙어 거의 할머니 수준이었다.
시골 사람들이라서 이렇게 늙었나, 아님 고생스런 세월을 살면서 영욕이 이토록 진했나 의아할 뿐
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잠시 1~2달 어디 좀 갔다 온 것 같은 느낌이건만 세월은 어느듯 이렇
게 흘러 동안의 소년 소녀는 사라지고 초로의 남녀들만 서 있었다.
동창들은 처음엔 모두 생소했지만 불과 2~3분도 지나지 않아 4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로 되돌아갔다. 초등학교 동창이란 관계가 이토록 반갑고 스스럼 없을 수 있을까?
할머니 같은 여자들에게도 곧 순자야, 영순아~~ 가 튀어 나왔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야, 수호야, 너는 ....
대절한 버스 뒷부분엔 회의용 테이블이 설치돼 있었다. 그곳에서 10여명 둘러 앉아 있다가 버스가
출발하자 더 이상은 못 참고 곧 술과 안주를 꺼내 술파티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준비를 이다지도 많이 했을까...
안주로 생선회와 굴, 쭈꾸미, 멍게...가 질펀하게 나왔고 개고기 수육도 여러 팩 나왔다.
생선회 종류는 수원 농수산물시장에서 해산물 도매상을 하는 친구가 약 20만원 상당을 협찬했고,
고추와 상추는 여동창인 순자가 아침에 밭에서 갓 따온 거라고 했다.
소주와 청하 각 1박스는 참석 못한 동창이 보내주었고 영순이는 과일주, 와인, 양주를 다양하게
준비해서 나왔다.
주거나 받거니 옛날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역시 잊지못할 일은 담임선생님에게 매맞던 이야기다. 우리반 담임 임(林)선생님은 때와 장소를
가지리지 않고 아이들을 잘 때렸는데, 우리 반 뿐만 아니라 이웃 반 아이들도 임선생님한테 매 맞
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다.
유일하게도 같은 반 친구 광수만은 임선생님에게 매를 맞지 않았다. 광수는 생김새도 깔끔하게 잘
생겼지만 공부도 항상 반에서 1등이었다. 게다가 그는 임선생님 옆집에서 살았고 또 예쁜 누나가
둘이나 있었다.
광수는 지금에 와서 밝히는 이야기라며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선생님집에 수시로 찹쌀이며 팥이며
고구마 감자... 등을 많이 갖다드렸다며 정작 매맞지 않은 비결은 따로 있었다며 웃었다.
나는 여러 종류의 술을 짬뽕해서 마시기가 부담스러웠지만 40년만에 만난 동창은 내가 처음이라며
여러 동창들이 내게 술을 많이 권했다.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며 웃다보니 순
자가 오늘 행사 회비를 걷는다.
회비는 1인당 5만원이었다.
나는 동창모임에 처음 참석한 관계로 10만원을 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5만원 내는 친구는 불과 몇 명 안되고 대부분이 10만원씩 냈고 더러는 20만원 내는 친구도
있었다.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초등학교 동창들은 모두 어릴 적 순박한 마음에서 돈 아까
운 줄 모르고 능력껏 돈을 냈다.
모임에 참석을 못했는데도 돈을 보낸 동창들도 몇 명 있었다.
참석한 동창들이 모두 생활이 넉넉한 것은 아니겠지만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은 이토록 순수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그간 여러 차례 느낀 바이지만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한 사람이 나중에 사회에서도 그만큼 성공해서 잘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사실은 고등
학교 동창 및 대학교 동창들에게서도 많이 느꼈지만 여기서도 그 점을 또 느꼈다.
나의 경우 중학교 동창회는 아직도 그 존재조차 모른다.
내가 졸업한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몇 번째 손꼽히는 학교이고 내가 총동창회 임원으로 있지만
총동창회는 물론 학부(과) 동창회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다.
대학 동창회 모임은 그 조직이 방대하고 체계적이지만 그곳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소수의 동창만이
참석하는 곳으로 난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중산층은 그 격에 맞지 않아 함께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나는 고등학교 동창회 모임에는 가끔 참석한다. 고등학교 동창회는 너무 어린 시절도 아
니고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10대 후반에 학교생활을 함께 한 친구들이기 때문에 동창회 중 가장
응집력이 강하다.
버스가 출발한지 1시간 좀 지나 예산 수덕사에 도착했다. 수덕사에서는 절 구경을 하고 수덕사 뒷
산(덕숭산, 德崇山) 산행을 한 다음, 안면도가 바라보이는 서해안 홍성 바닷가로 이동하여 점심먹
고 놀기로 했다.
수덕사는 가장 최근에는 7~8년 전에 아내와 함께 여행 온 적이 있다. 수덕사는 예전과는 많이 달
라져 있었다.
절 입구와 절 경내가 조경이 잘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세련돼 보였다.
일요일이라서 가족단위로 관광 온 사람이 많았다.
절 구경을 간단히 한 다음 우리 동창 일행 몇 명은 덕숭산 산행에 나섰다.
만추의 산에 붉게 물든 단풍과 무수히 떨어져 있는 낙엽이 취중에 보아도 참 아름다웠다.
정상까지는 왕복 2.5~3.0km 쯤 되어 보였는데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산행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하루에 20~30km의 백두대간 산길을 오르내리며 다져온 몸인데 술에 취해
도 이 정도야 올라가야지...
덕숭산 정상에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니 사방이 모두 고산 준봉이다.
강원도 산속도 아닌 충청도 예산 땅도 사방이 이렇게 첩첩 산이었다.
우리 나라가는 산악국가이고, 유명한 사찰은 모두 경치좋은 산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
꼈다.
하산하여 주차장에 내려오니 다른 친구들은 근처 술집에서 막걸리 마시다 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장시간은 아니지만 땀 흘려 덕숭산 산행한 것이 반 본전은 찾은 것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서해안 안면도가 바라보이는 홍성 해변가로 이동했다.
경치 좋은 해변에서 좀 쉬었다가 사진도 찍고 하다가 목적지 바닷가 횟집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강원도에서 각설이 공연을 하는 동창이 그 아내와 함께 미리 와서 각설이 악단을 설치
하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친구는 4~6학년 3년간 나와 같은 반이었고, 아버지가 학교앞에서 이발관을 했다는데
나도 이 친구가 생면부지이고 그도 내가 생면부지였다.
식당에서 대하(큰새우) 소금구이에 생선회 등 해물이 다양하게 많이 나왔다.
하지만 모두 술에 취하고 배가 불러 그대로 테이블위에 남았다.
나중에 내가 집에 와서 한숨자고 새벽에 잠 깨어 제일 먼저 생각 난 것이 소금구이 대하와 생선회
였다. 아, 그 아까운 것을 그대로 두고 왔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놀다가 어스름 무렵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데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휴게소에 들렸다.
여자 동창 한사람이 와인 한 병과 안주를 가져와 또 술을 따라 준다.
아마 남편이라도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못하겠다 싶었다.
시골 초등학교 부근에 와서 버스에 내려 일부는 또 술 한잔 더 한다며 갔지만 나는 분당에 사는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수원으로 올라왔다.
40년만의 만남, 참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다.
한국은 지연, 학연이 끊어 질수 없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학교 동창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끈끈한 정을 갖고 있으니 지연 학연이 끊길 수가 있겠는가.
벌써 올 연말에 있을 송년회가 기다려 진다.
그 땐 이번에 참석 못한 내 친구 수만이와 공부 잘하고 예뻤던 선숙이도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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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본인)
첫댓글 그동안 적게 보인다 했었는데 수호천사님 참 좋은 일을 하셨네요.구수하고 정들게 읽었습니다. 나의 동창들을 생각했거든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참부러운 만남이였네요...... 저도 한번쯤은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참가해으면 하는 맘입니다..ㅎㅎ
구수하게 엮은 멋진 동창모임글에 머물다 갑니다. 많이들 모였군요. 여기서는 십여명만 찾아도 많이 찾는걸요. 한국이고 일본이고 미국이고 다가고 몇명 안남았어요. 그리운 동창생...그리고 그리운 그시절...
좋은만남이였네요 좋은글 잘 보고갑니다 ...
재밋게 엮은 이야기에서 그날의 즐거움을 함께 하는 기분이였습니다.앞으로도 종종 모임을 가지면서 즐거운추억들을 많이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내내 건강하시고 즐거운기분 되세요
실감나게 잘 쓰신 초등학교 동참모임글 재미나게 잘 보았습니다.. 40년이란 세월 강산이 네번 변해 버렸겠네요 ㅎㅎ 그러니 동창들도 알아 못보게 변했나 봅니다...
40년전의 동창들 모임은 40년전 잃어버린 수호천사님을 찾아가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동창모임을 상세하게 글로 적어줘서 감사합니다 . 동창모임에 한번도 참가못해본 저로써는 동창모임이란거 궁금하기 그지없습니다 .
40년만에 잊지못할 동창모임 즐거운기분이셨네요.잘보았어요
고운인연 오래오래 이어가세요~~
너무나 오랜세월 그리운 벗들이 만나서 너무나 즐거운 한때였겠네요. 다들 변하여 잘못 알아볼수도 있었을 것입니다.그래도 어려서의 희미한 기억은 떠올랏을 것입니다. 참 즐거운 죽마고우 동창모임 좋은 만남에 님의 소중한 추억들이 아름답습니다.좋은 동창모임 앞으로 지속 되시길 바랍니다.울님 행복 하세요~~ 영혼.
어느새 이야기에 끌려 다 읽어버렷습니다. 참으로 감회가 새로운 느낌이였습니다. 살다보면 수십년동안 동창회에가지 못하는 때도 더러 있습니다. 지나고 보면 서러웠던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추억으로 되는 것입니다. 잘 봤습니다.
실감 나는 님의글에서 저의동창 만회 첫회가 떠오르네요~~너무 재미있게 엮었습니다~아주 즐거운 만남 잊지못항 추억이였을 거겠죠~~ 인제 모두 석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여도 모두들 행복해 보이시네요~~~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기쁜 시간 되세요
구수하게 역은 초등하교 동창회 모임 넘 재미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저두 인젠 40대인데..

초등학교때 동창회 참가할수있을련지... 연락되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부럽네요, ..
즐거운 초둥학교 동창회 모임이셨네요 ..재미게 엮은 글 잘보고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