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신> 내재율이란 무엇인가 / 임보 (시인)
로메다 님, 그 동안 준비해 온 수능시험은 잘 치렀는지 궁금하군요. 혹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못 거둔다 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작은 성취에 자만(自慢)한 사람은 큰 성취를 거두기 어렵고 작은 실패에 자성(自省)한 사람은 큰 성취를 거둘 수 있다.' 라는 말씀으로 조언을 드리고 싶군요.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입니다. 마음을 돈독히 지닌 사람의 앞길은 언젠가는 열리기 마련입니다.
로메다 님, 다시 우리가 해 오던 시의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울격과 압운, 시의 운율에 대한 얘기를 했었지요? 그 얘기들이 적잖이 딱딱하고 또한 재미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시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운율'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 관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친김에 오늘도 운율의 세 번째 관문인 '내재율'에 관해서 얘기하고자 합니다.
로메다 님, 리듬 곧 율동은 청각적인 현상만은 아닙니다. 시각적인 리듬도 있습니다. 밤하늘에 일정한 간격으로 명멸하는 탐조등의 불빛에서 리듬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광야에 펼쳐지는 보리밭의 고랑과 이랑들이 반복되는 이어짐이라든지, 칠색의 무지개 빛깔이라든지, 색동저고리의 찬란한 무늬 등 이 세상에는 시각적인 리듬을 유발하는 현상들도 적지 않습니다. 활자로 인쇄된 시에서도 시각적인 리듬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크고 작은 활자들을 적절히 교체해서 배치한다든지 시행들을 들죽날죽 변화롭게 배열한다든지 혹은 활자 인쇄를 다양한 색채들을 이용하여 했을 경우 등을 생각해 봅시다. 분명히 시각적인 리듬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청각에 의해 감지된 리듬은 청각률이고 시각에 의해 감지된 리듬은 시각률이 됩니다. 이밖에도 만일 촉각에 의해 감지된 리듬이 있다면 촉각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로메다 님, 그동안 시의 운율이라고 하면 율격과 압운 곧 청각률만 문제삼았습니다. 그런데 청각률이나 시각률 같은 감각에 의해 감지된 리듬만이 아니라 심리, 곧 내면에서도 느껴지는 율동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것은 시어의 의미라든지, 이미지라든지, 정서라든지 또는 문장의 구문구조라든지 이러한 것들에 의해 빚어지는 심리적인 리듬인데 이를 나는 내재율이라고 부릅니다. 『엄살의 시학』에 수록되어 있는 '내재율'에 관한 설명을 우선 읽어보도록 합시다.
내재율(內在律)
내재율이라는 용어는 현대시의 운율을 논하는 자리에 자주 오르내리곤 한다. 밖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시 속에 담겨 있는 운율쯤으로 해석들을 하고 있다. 내재율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니까 구체적으로 그 운율의 형태를 지적해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재율이라는 용어는 어떤 구체적인 운율의 구조를 설명하는 자리에 사용된다기보다는 현대시의 운율을 설명하기 곤란할 때 그 회피의 수단으로 끌어다 쓰는 도깨비방망이가 되고 말았다. 내재율은 정말 구체적으로 지적될 수 없는 그런 성질의 운율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내재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느껴질 것이고, 느껴진다면 그 전체를 다 털어내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그 대략의 맥락을 붙잡아 내지 못할 것도 없으리라. 나는 내재율의 상대 개념으로 외형률(外形律)을 상정한다. 외형률은 겉으로 드러난 운율이다. 곧 우리의 감각에 의해 인식되는 객관적인 리듬이다. 나는 이를 다시청각률(聽覺律)과 시각률(視覺律)로 구분한다. 그동안 시의 대표적인 운율로 지적되어 온 율격(律格)과 압운(押韻)은 청각률의 범주에 든다. 한편 시를 활자 매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활자의 대소(大小) 배치, 행의 장단(長短) 배열, 다양한 색채 인쇄 등이 빚어 낸 시각적인 리듬의 구조도 예상이 된다. 이를 시각률이라 이르는데 이는 다시 형태율(形態律)과 색채율(色彩律)로 양분할 수 있다. 이처럼 청각이나 시각과 같은 감각에 의해 포착되는 외형률과는 달리 우리의 내면 세계 곧 심리에 파문을 일으키는 운율 구조를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이를내재율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내재율은 의미, 이미지, 정서, 구문 구조 등이 만들어 내는 심리적인 리듬이다.
우리가 시를 읽어 가는 동안 어떤 특정한 의미가 계속 되풀이된다든지, 유사한 사물이나 정황들이 계속 열거된다든지, 대조적인 정서가 교체 반복된다든지 할 경우 우리의 심리는 율동감에 젖게 된다.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 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 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寶石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김현승(金顯承)의 「가을」이라는 작품이다. 작품 전체가 봄에 대한 진술과 가을에 대한 진술이 섞바뀌면서 대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지훈(趙芝薰)의 「앵음설법(鶯吟說法)」(첨부자료 참고)은 서경과 서정의 교체 반복이고, 서정주(徐廷柱)의 「화사(花蛇)」(첨부자료 참고)는 뱀에 해한 화자의 애(愛)와 증(憎)의 상반된 정조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교체 반복이 율동감을 자아낸다.
이밖에도 연쇄(連鎖), 점층(漸層), 순환(循環), 순차(順次) 등의 구조들도 리듬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의미나 이미지 혹은 정서 등에 의해 빚어진 심리적 리듬을 의미율(意味律)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한편 구문 구조가 율동감을 생산해 내기도 한다. 흔히 문장을 이루고 있는 성분들을 크게 주성분과 부속성분으로 구분한다. 뼈대를 이루고 있는 주어, 목적어, 서술어 등은 주성분이고 수식이나 한정의 직분을 지닌 관형어나 부사어는 부속성분에 속한다. 비교적 주성분은 강하게 부속성분은 약하게 우리의 심리에 와 닿는다고 할 수 있다.
'소년이 그림을 그린다'는 주성분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이다.(주어+목적어+서술어) '작은 소년이 예쁜 그림을 열심히 그린다'는 부속성분과 주성분들이 어우러진 문장이다. (수식어+주어)+(수식어+목적어)+(수식어+서술어) 전자의 구조는 '강강강'의 단순 구조라면 후자는 '약강 약강 약강'의 변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즉 전자보다는 후자가 보다 리드미컬하다. 나는 이를구문율(構文律)이라 부른다.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의 「승무(僧舞)」 앞 부분이다. 각 연의 구문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연 관형어+관형어+관형어+주어 / 부사어+부사어+서술어 제2연 ( ? )+부사어+관형어+목적어/ 관형어+부사어+서술어 제3연 관형어+부사어+관형어+주어 / 부사어+부사어+서술어
각 연의 구문 구조가 유사하다. 즉 각 연의 제1행은 세 개의 부속성분 다음에 주성분이 오고, 제2행은 두 개의 부속성분 다음에 주성분이 온다. '약약약강 약약강'이 하나의 패턴이 되어 되풀이되고 있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예외는 제2연의 제1행에 수식어가 하나 부족한 것인데, 이는 '파르라니'라는 한 어절이 제1연의 '얇은 紗'나 제3연의 '두 볼에' 등의 짧은 두 어절을 능가하는 4음절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박목월의 「가볍게 열리는 문」(첨부자료 참고)은 행 단위로 동일한 구문 구조가 되풀이되는 구문율을 지니고 있다.
내재율은 의미율과 구문율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본다. 그것은 숨어 있지만 붙들어낼 수 있는 것이고, 고정된 틀로 굳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작품마다에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는 창조적인 운율이라고 할 수 있다. ― 『엄살의 시학』 pp.81-84
로메다 님, 내재율의 이론도 역시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진가요? 내재율의 여러 경우를 들어 설명하자면 방대한 분량의 지면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을 그야말로 주마간산격으로 간략하게 변죽만 울리는 데 그쳤으니 설령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너무 속상해 할 것 없습니다. 내재율은, 시가 우리의 심리 곧 마음 속에 불러일으키는 리듬인데 그것은 시어의 의미나 이미지나 정서― 이러한 것들의 구성에 의해 빚어진다는 것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작품 속에 효율적인 내재율을 실현시키는 문제는 차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합시다.
작품을 많이 쓰다가 보면 의도적으로 시도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몸이 스스로 알아서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내재율을 실현시키기도 합니다.
시중에 떠도는 어떤 시이론서들 가운데는 내재율을 불규칙적인 율격쯤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것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문운을 빕니다.
- 임보 시창작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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