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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몇 걸음의 발자욱에 몇 방울의 눈물을 흘렸나.
꿈을 꿨었다. 마치 사고가 났던 그 날처럼, 나는 당신을 위한 꽃다발과 케익을 주문했다. 그리고 주광색의 눈부신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주얼리 샵의 디스플레이 위에서, 나는 당신의 햐앟고 가는 손에 어울릴 반지를 찾기 위해 그 반짝이는 것들로 두 눈동자를 채우며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긴 고민을 필요없었을테지, 처음부터 눈에 띄었던 로즈골드빛의 반지 하나가 마치 당신만을 위해 디자인된 것마냥 그 눈부신 조명보다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마치 매듭을 이은듯한 디자인의 그 반지가 당신 손에서 반짝인다면, 당신과 나 사이에 운명의 고리가 이어질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 이 반지로 하죠.
미소지으며 내뱉았던 그 대사도. 찬바람이 스치었던 그 날의 날씨도. 그리고 하얀 입김을 만들던 차가운 숨까지도. 모든 것이 그 날과 같았다, 다만 한가지. 6시 14분. 그 시간, 인주에게 가지 않았다는 것.
나는 당신보다 일찍 레스토랑 피란체에 도착했고.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당신은 환히 미소지으며 날 향해 다가오고. 우린 멋진 저녁 식사를 하고. 케익 위의 촛불은 영롱히 아른거리고. 당신 품 속의 보랏빛 장미꽃은 당신의 맑은 얼굴을 해사히 밝히고. 몇 번이고 연습했던 나의 청혼과 함께 건넨 로즈골드빛의 작은 반지는 당신의 하얀 손 위에서 반짝이고. 당신은 여느때보다 행복한 미소로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달콤한 그 꿈 속의 장면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점점 멀어지며 땅 속으로 꺼지듯 내 주위는 어두워졌고. 천천히 꿈에서 깨어났을 때, 흐릿한 내 시야를 채운 건 하얀 천장이었다. 삐 삐 삐, 심전도측정기의 규칙적인 기계음. 더운 숨이 채운 산소 마스크. 머리를 아프게 하는 알코올 냄새. 그리고 온 몸이 부서지는듯한 잔인한 고통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콤하기만 했던 그 꿈과 달리 잔혹한 현실 속에서 당신은,
- 제운 씨, 나 안 보고 말 할 거야? 얼굴 좀 보여줘, 응?
더 이상 그 꿈 속의 행복한 미소를 짓지 못했고,
-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건지. 대단하네요, 이 꼴이 보고 싶었나.
- …….
상처받고,
- 이제 그만하죠, 우리.
그 생채기 난 마음에 다시 또 상처를 받고,
- 진심 아니라는 거 알아. 모진말 하면서도 네가 더 아파할거 알아. 힘들단 것도 알아. 하지만 내가 네 옆을 떠나선 안된다는 것도 잘 알아.
투명한 눈물이 고여버린 눈동자로 애원하듯 다짐하고,
- 말 귀를 못 알아듣네.
- …….
내 모진 말들을 견디며 돌아서던 그 날,
- 목숨까지 구해줬으면 됐잖아. 그러니까 꺼져, 이 승현.
당신은 몇 걸음의 발자욱에 몇 방울의 눈물을 흘렸나. 힘없는 발걸음으로. 분명 눈물을 떨구며 되돌아갔을 당신을 향해 몇 번이고 달려가 내 두 손으로, 당신을 붙잡는 상상을 했다. 몇 번이나 울고 있는 당신을 힘껏 내 품에 안는 상상을 했다, 결국 그 엉망진창인 몸으론 절대 이루지 못 할.
" 무슨 생각 하세요? "
형석이 메마른 눈동자로 창 밖을 바라보는 제운을 향해 물었다.
" 글쎄요…. "
제운이 대답을 피하며 두 눈을 감았다. 그러면 그 두 눈 앞으로 승현의 얼굴이 드리우는것만 같았다.
나는 여전히 병상 위에 있다. 감은 두 눈 앞의 당신은 애써 미소 짓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마치 이틀 전처럼 냉정히도 내 눈맞춤을 피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꿈 속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는 당신의 얼굴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나는 오늘도 당신을 향해 달려가 당신을 두 손으로 꽈악 붙잡지 못하고, 당신이 떠나버린 그 초라한 병상 위에 홀로 앉아있다.
흘긋, 백미러로 그런 제운을 바라보는 형석은 대체 제운이 무슨 생각인건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어쩌면 무슨 생각 하세요가 아닌, 무슨 생각이세요.라는 물음을 하고 싶었을지도. 오늘 그의 상사는 화려한 꽃다발 주문을 부탁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약혼자에게 건넬 반지를 사러 가는 차 안이다.
정말 그 결혼을 하시겠다는건지.
분명 지금 그의 온 생각과 마음을 차지한 사람은 그의 약혼자가 아닌 승현일테다. 하지만 그녀와의 사랑 역시도 맘껏 응원 할 수 없지않나. 형석은 지금, 제운을 말릴수도 부추길수도 없어 초조한 마음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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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화점. 명품 주얼리 매장 정중앙의 디스플레이에는 주얼리 마스터들의 섬세한 손길로 완성되었을 수십 가지의 반지들이 은은한 조명을 받아 우아한 광채를 뽐내고 있었다.
" 연인분께 선물하세요? "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눈빛으로 디스플레이를 훑는 제운을 향해 이 매장의 직원인 수영이 물었다.
" 네, 추천해 주시겠어요. "
오래된 연인일까.
수영은 꽤 오래 이 매장의 직원으로 일하면서 손님들의 표정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깊은 사랑에 빠져 있는지 눈치채곤 했다. 연인을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구입하러 온 사람이라기엔, 피곤한듯 무심한 표정. 설레임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 떨림없는 낮은 목소리.
사랑이 식어버렸거나, 애초에 사랑하지 않았거나,
" 저희 매장의 베스트 셀러부터 추천해드릴게요, 나폴레옹의 피앙세로 알려진 조세핀 왕후에게 영감을 받아 제작된 제품으로 마치 왕관을 떠올리는 수려한 라인과 세 겹으로 둘러싼 화려한 다이아몬드 장식이 특징적인 제품이에요. "
" 네, 예쁘네요. "
기계적인 대답만 내놓는 이 눈 앞의 남자는, 이 화려한 반지가 연인의 손에서 반짝이는 상상을 하기나 할까.
" 다음으로 추천드릴 제품은 연결 고리의 디자인이 특징적인 제품이에요. 이 연결 고리는 두 사람의 소중한 인연을 상징하기 때문에 청혼용 반지로 많이 구입하세요, 그래서인지 이 라인의 제품들은 매년 꾸준히 리뉴얼 되어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여드리고 있어요. "
두 사람의 소중한 인연. 마치 매듭이 얽힌듯한 그 로즈골드빛 익숙한 디자인의 반지를 바라보는 제운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꾹 깨무는 입술로 그의 온 마음을 차치한 누군가를 떨쳐내려 애쓰는 제운이었다. 반면, 건조하기만 했던 제운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놓칠리 없는 수영이다. 수영이 같은 라인의 반지들을 서너개 디스플레이 위로 올려 놓으며 조근조근 제품의 특징을 설명했지만,
" 죄송한데, 다른 디자인으로 보여주시겠어요. "
두 눈을 감으며 지친 목소리로 말하는 제운이었고,
흔들리는 눈빛을 본 것 같았는데, 잘 못 짚었나.
수영은 조금 민망한듯 미소지었다. 그리고 수영이 디스플레이 아래 반짝이는 반지들을 보며 고민하는듯 하더니 이내, 제운에게 물었다.
" 혹시 연인분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세요? 연인분께 잘 어울릴 반지를 추천 해 드릴게요. "
사랑에 관한 수 많은 의미를 지닌 반지들이 디스플레이 아래서 영롱히 빛나고 있다. 연인을 위한 반지를 찾는 이들이 어떤 대답을 내놓더라도 수영은 그 대답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반지를 추천 할 자신이 있었다. 수영이 제운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 글쎄요, 그냥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
사랑스러운 사람이예요, 고마운 사람이예요, 참 예쁜 사람이예요, 아름다운 사람이예요. 지금까지 들었던 수 많았던 대답대신, 미안한 생각이 드는 사람. 결코 흔하진 않은 대답이었다.
미안함, 미안함이라. 과연 그의 연인도 그에게 자신이 미안함으로 떠오르길 기대할까. 미안함보단….
잠시, 두 눈을 깜빡이던 수영이 디스플레이 아래서 반지 하나를 꺼내 올려 놓았다.
" 이 반지는 어떠세요? 붉은 루비와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진 장미모양의 디자인이 결국엔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어요. 이 반지의 이름은 Love above all, ' 그 무엇보다도 사랑 ' 입니다. 아마 모든 여자들이 자신의 연인에겐 미안함보단 사랑스러움으로 기억되길 원할거예요, 이 반지로 고객님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분명 연인분께서 마음에 들어하실 거예요. "
" 그럼, 이 반지로 포장 해 주시죠. "
수영이 빙긋 미소지으며 제운이 찾는 호수의 반지를 포장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다시 정돈된 제 자리를 찾아 디스플레이 한 켠에 자리한 그가 선택했던 붉은 루비 반지. 제운의 눈길이 화려한 다이아몬드 꽃잎으로 장식된 그 붉은 루비 반지를 향했다.
미안함보단 사랑스러움. 이 반지를 너에게 전하며 나는, 미안함 대신 그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만은 자신없어 힘없는 손짓으로 제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제운이었다.
곧, 수영이 단정히 포장된 작은 종이 가방을 제운에게 건넸고 살짝, 허리를 숙이며 건네는 그녀의 인사를 받으며 제운은 뒤돌아섰다. 왠지 행복하지만은 않아 보이는 제운의 뒷모습을 보며,
미안함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의 연인. 그녀는 그에게 그 반짝이는 링을 받고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수영은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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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
H스튜디오 대기실. 노크와 함께 승현이 살짝 문을 열며,
" 안녕하세요. "
인사하자. 왠지 익숙한 그 목소리에 메이크업을 받던 인주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3년 만에 만나는 승현을 바라보는 인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그 표정이 조금 화난듯도 보였고 어딘가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제운도 그녀를 다시 만났을까.
두 사람이 다시 만날수도 있단걸 예상했으면서도, 그 만남을 상상하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조차도 그에게 승현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곧, 승현이 인주의 스타일리스트와 얘기를 나누며 화보 촬영에 필요한 의상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그리고 그 확인이 끝날무렵 인주의 메이크업도 마무리 되었고. 승현이 인주에게 다가왔다.
" 인주씨,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예상했다는듯이 하, 낮은 한 숨을 뱉은 인주가 스탭들에게 눈짓하고. 탁, 닫히는 문 소리와 함께 스탭들이 나가자 대기실엔 인주와 승현 둘만이 남았다. 고양이 같은 인주의 눈매가 조금은 매섭게 승현을 향했고 조심스럽게, 먼저 입술을 떼는 건 승현이었다.
" 3년 전에, 그 사람이 떠났던 날. 나한테 전화 해 줘서 고마웠어요, 그 말 하고 싶었는데 이후론 연락 할 방법이 없었어요. "
승현이 조금 미소지으며 인주에게 말했다. 하지만 빤히, 승현을 바라만보는 인주라서 승현이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살짝, 고개를 숙이자 사락, 짧아진 승현의 머리칼이 그녀의 턱 끝을 스쳤다. 그런 승현을 바라보기만 하던 인주가 꾹, 입술을 깨물고 승현에게 물었다.
" 현 제운, 다시 만났어요? "
" …네, 다시. 만났었어요. "
" 그럼 그 애한테 들었겠네요, 우리 결혼 준비하고 있단 얘기. "
" ……. "
놀라지 않는 승현의 얼굴. 그 무언의 긍정을 보며 인주는 실소가 나왔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날 보면서 처음한단 말이 고작 고마웠단 말이라니.
" 지금은 아닌가보죠, 현 제운을 사랑했던 그 마음은. "
불안했던 그 표정대신 인주의 얼굴에 마치 안심하는듯 옅은 미소가 드리웠다. 하지만,
- 사랑해요, 여전히.
승현에겐 다시 한 번, 애절했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것만 같았다.
나는 지금 당신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녀 앞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 나 역시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단 대답으로 그녀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어야 하나. 그리고 그녀를 붙잡고 다시 한 번만 더 나를 도와달라고. 이기적이게도 울며불며 매달려야하나, 당신과 그녀를 모두 아프게 만들더라도.
꾹, 승현이 두 눈을 감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고. 결국 승현이 어렵게도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인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기다리는 대답대신,
" 촬영 잘 하길 바래요. "
그 말만을 끝으로 돌아서는 승현이었지만 인주는 쿵,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져 내리는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애써 미소지으며 말하는 승현의 투명한 눈빛. 그 눈빛만 보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그녀에게도 그는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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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좋아요. 다시 한 번. "
화보 촬영이 시작되었다. 승현과 인제를 포함한 스튜디오의 스탭들. 그리고 인주를 촬영하기 위해 몰려와 인터뷰를 기다리는 방송국 스탭들까지. 수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인 화보촬영의 정중앙에는 눈부신 조명을 받아 빛나는 인주가 있다. 화려한 메이크업.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붉은빛 원피스. 카메라의 셔터 소리에 맞춰 자연스럽게 포즈를 바꾸는 인주의 그 모습이 마치 한 떨기 붉은 장미처럼 아름다웠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내가 될 사람.
카메라 앞에서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인주를 보며 승현은 사실, 부럽단 생각을 했던것 같다.
" 아름답지? "
" 응? 아, 응. 인주씨, 정말 이쁘네. "
속삭이듯 묻는 인제의 질문에 애써, 손에 든 촬영 콘티로 눈을 돌리며 대답하는 승현이었다.
" 아니, 원피스. "
" 응? "
" 내 작품이잖냐, 저 드레스에 박힌 비즈 한땀한땀이 내 피땀눈물~♪ "
노래 가사처럼 흥얼거리며 말하는 인제라서 그래, 참 아름답다. 승현이 대답하며 웃기도 했다. 그러던 그 순간 탁, 소리와 함께 스튜디오의 모든 조명이 꺼져버렸다. 삽시간에 깜깜해져버린 스튜디오. 그 스튜디오를 채운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당황스러움이 섞여 있는듯 했다.
" 갑자기 왜, "
승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때, 다시 탁 탁 탁,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맞춰 입구부터 차례대로 불을 밝히는 스튜디오의 조명. 제운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화려함을 뽐내는 붉은 장미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스튜디오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뚜벅뚜벅, 그의 발걸음에 모든 사람이 숨죽였고. 그리고 그 걸음의 끝에는 인주가 있었다.
제운이 인주 앞에 서자 팟, 마지막 조명이 켜졌다. 놀란듯한 인주의 표정. 그런 인주를 바라보던 제운이 본인 역시도, 이 프로포즈가 민망한듯 조금 웃었고 그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빙, 촬영장의 수 많은 사람들을 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 끝으로, 그 촬영장의 수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승현이었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타악, 인주가 그런 제운의 옷깃을 두 손으로 붙잡아 그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다시금 제운의 눈길이 인주를 향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머물렀던 곳이. 그의 눈빛을 흔들리게 만들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리 없는 인주였다.
" 시작해, 내게 하고 싶은 말. "
인주의 목소리가 불안한듯 떨렸다. 제운이 여전히 그의 옷깃을 붙잡은 그녀의 손목을 살짝, 끌어내렸다. 그리고 다시금, 인주가 아닌 다른 이를 향하는 제운의 시선. 제운과 승현의 눈동자가 마주했다. 1초. 2초. 3초.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웅성거림 역시도 잦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눈맞춤을 먼저 피한 건, 이번엔 제운이었다.
툭 -
그의 손에서 떨어지는 꽃다발. 그리고 살며시 인주의 허리를 감싸안는 제운의 손길. 제운의 두 눈이 인주를 마주했다. 인주의 두 눈이 흔들렸고 그녀가 놀랄틈도 없이, 제운이 그녀에게 입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인주의 붉은 입술 위로 부드럽게 맞닿는 그 순간, 천천히 두 눈을 감는 인주였다.
툭, 그 모습을 지켜보는 승현의 손에 들려있던 촬영 콘티가 힘없이 떨구어졌다.
짝 짝짝, 누군가로 인해 시작된 박수 소리. 스튜디오를 채운 사람들은 마치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감상하는 사람들처럼 큰 소리로 박수를 치고 휘익,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두 사람을 향한 플래쉬 세례가 번쩍거렸다. 그 축제와도 같은 현장 속에서. 승현만이 눈물을 참듯 몸을 떨었고, 인제만이 그런 승현의 눈치를 보며 떨어진 콘티를 착착, 두 손으로 주워 챙겼다.
" 나가자. "
인제가 승현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지만 탁,
" 나 안 나가, 안 나갈거야. "
그의 손길을 뿌리치는 승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주했던 그의 눈동자가. 냉정히 피해버린 그의 눈길이. 더 이상 당신따윈 아랑곳없이 아니, 오히려 당신이 보란듯이 그 프로포즈를 하겠노라고.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승현에겐 1분 1초가 천년만같은 시간이 흘러서야 그들이 맞닿았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인주를 내려다보며 예쁜 곡선을 그리는 그의 미소에 승현은 심장이 찢어지는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왜, 그가 지금 바라보는 사람이 내가 아닐까. 왜, 그의 입맞춤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여야 하는걸까.
분하고 화나고 억울하고, 결국엔 슬픈 마음이 들어 두 눈에 고여버리는 눈물이 싫어 두 손으로 눈을 가리는 승현이었다. 그 순간에도,
"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은 없지만, 평생 네 곁에 있어 줄 자신은 있어. 그래도 괜찮다면 나랑 결혼해 줄래? "
제운의 그 목소리가 승현의 귓가를 울렸다. 제운이 무릎을 꿇고 준비했던 꽃다발을 인주에게 건넸다.
찰칵찰칵, 그 순간에도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다는듯사진 작가의 셔터소리와 함께 두 사람을 비추는 플래쉬가 쉴새없이 번쩍거렸다. 잠시, 인주의 표정이 알 수 없이 굳어졌다가도. 이내, 행복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화려한 장미 꽃다발이 인주의 품 안에 가
득 안겼고, 다시 그녀를 마주 본 제운이 주머니에서 꺼낸 반지를 인주의 얇고 긴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Love above all. 붉은 루비 반지가 인주의 손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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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 제운의 뺨을 스치고 툭, 떨어지는 장미 꽃다발. 그 포장지의 날카로움에 긁혀 제운의 얼굴에 붉은 생채기를 남기기도 했다. Yours 본부장실. 화보 촬영이 끝나자마자 제운을 향해 달려 온 인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에게서 받은 그 아름다운 꽃다발으로 그의 뺨을 때린 것이다. 붉게 상기된 인주의 얼굴을 보며 제운이 두 눈을 감았다.
" 내가 왜 이러는지는 알지? "
" ……. "
"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거 알아, 고작 여동생쯤으로 생각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근데 이건 아니지. "
다시 인주가 떨어진 그 꽃다발을 다시 주워 제운의 가슴팍을 탁, 내리쳤다. 후두둑, 떨어지는 붉은 장미꽃잎. 만신창이가 된 꽃다발이 바닥을 내뒹굴었다.
" 날 위한 프로포즈를 해달라고 했잖아, 오직 나를 위한! "
" 하, 인주야. "
울부짖는 목소리로. 두 주먹으로 제운의 가슴팍을 치며 말하는 인주라서 제운이 그녀를 말리려고 붙잡았지만,
" 이 승현! "
인주가 외친 그 이름에 어떤 말로도 인주를 말릴 수 없어 꾹 잇새만 깨무는 제운이었다. 인주가 두 손으로 제운의 옷깃을 붙잡았다. 눈물섞인 그녀의 눈동자가 제운을 향했다.
" 이 승현 보란듯이 입 맞추고, 이 승현 보란듯이 날 보며 웃고, 이 승현 보란듯이! 내게 청혼하고. 그러진 말았어야지, 이 나쁜 새끼야.
나한테 키스하면서도! 날 안아주면서도! 네 마음 속엔 온통 그 여자 밖에 없었잖아. 한 순간도, 한 순간도 내가 없었잖아. "
투두둑, 눈물을 떨구며 꽈악 그의 옷깃을 더욱 움켜쥐는 인주였다. 하지만 아무 대답없이 그 모든걸 받아내기만 하는 제운이라서 인주는 더 분한 마음만 든다.
" 아니라고. 아니라고 변명이라도 해 봐. "
" ……. "
" 거짓말이라도 해 봐! "
하지만 그 거짓말 대신 스윽,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엄지 손가락을 닦아주며,
" 어떡하지, 앞으로도 나는 미안하단 말밖에 너한텐 해 줄수가 없는데. "
달래듯 말하는 그 목소리가 기다렸던 거짓말이 아니여도 그녀를 안심하게 만들어서. 그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안심되는 그 바보같은 마음을 들키기가 싫어서 인주가 툭,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슥, 인주가 제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하아, 진정하려는듯 깊은 숨을 내뱉은 그녀가 제운을 바라보았다.
" 너 오늘 정말 최악이었어, 나한테도 이 승현한테도. 그러니까 넌 이제 이 승현한테 절대 못 돌아가, 절대로. "
" 알고 있어. "
" 난 절대 안 멈춰, "
네가 멈추지 않는한.
그 말만은 속으로 삼키는 인주였다.
" 나는 오늘처럼,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행복한 사람처럼 웃을 수 있어. 그러니까 너도 절대 멈추지마. "
선언하듯 말해버리고는. 휙, 뒤돌아서 나가는 인주가 쾅.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붉은 꽃잎으로 얼룩진 사무실. 홀로 남은 제운이 힘없이 쓰러지듯 털썩, 소파 위로 기대앉았다.
- 나는 오늘처럼,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행복한 사람처럼 웃을 수 있어. 그러니까 너도 절대 멈추지마.
인주의 마지막 한 마디. 그리고,
- 단지 나에겐 여러 번의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녀를 버렸을 때도, 그녀와 마지막의 그 날에도, 너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도.
- 그 모든 순간 나의 선택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내 아내도, 그녀의 아들들도, 네 생모도. 그리고 너와 나 마저도.
머리 속을 맴도는 재화의 목소리. 하아, 제운이 깊은 한숨을 내뱉았다. 비겁하고 치졸하고 최악이기만 했던 오늘의 선택이, 결국엔 승현과 인주마저도. 불행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부정 할 수가 없어 마치 마음 속에 무거운 돌덩이를 올려놓은듯한 무게감이 제운을 짓누르는듯 했다. 그러나,
" 절대 멈출 수 없어, 이젠. "
아마 자신의 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었나. 힘없이 혼잣말 하는 제운의 목소리가 사무실의 공허한 공기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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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긋. 백미러로 눈물을 훌쩍이는 인주를 보며 덕현은 조용히 곽티슈를 뒷자리에 있던 인주에게 건넸다. 탁, 건네받으며 왈칵, 눈물을 쏟는 인주여서 덕현은 짠, 한 마음만 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세상 부러울것 없는 프로포즈를 받은 그녀가 왜 이렇게 울기만 하는지.
" 인주야, 좋은 날 왜 울어. "
인주는 대답도 없이 티슈를 두 손에 움켜쥐며 제 손에 반짝이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투둑,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인주의 손등 위를 적셨다.
Love above all. 너는 내가 이 반지의 모델이었단걸 알고나 있을까.
이미 이 손 위의 반지와 똑같은 반지가 그녀의 악세사리장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 사랑. 나는 너와 기쁨도, 아픔도, 슬픔도 나누었는데. 왜, 그 무엇보다 사랑. 사랑은 나눌 수 없을까.
훌쩍이며 울기만 하던 인주가 그 울음을 참아내겠다는듯이 고갤 흔들고 거울을 보며 얼룩진 눈물자욱을 티슈로 닦아내기도 했다.
퉁퉁 부어버린 두 눈이.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참 싫다.
" 인주야, 좀 괜찮아? 잠시 내려서 시원한 것 좀 사올까? "
덕현이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 덕현 오빠, 나 머리 단발로 자를까? "
갑자기 눈물만 쏟더니 알 수 없는 물음만 던지는 인주라서 덕현은 그녀의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인주는 살짝, 고개를 숙이던 승현이. 그녀의 턱끝을 스치었던 그녀의 머리칼 마저도. 한없이 부러운 마음이 들어 다시 또 눈물이 고일것만 같았다. 결국 손에든 거울을 던지듯 내려놓으며 두 손에 얼굴을 묻는 인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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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편을 빨리 올리고 싶었는데
한회에 담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늦어졌어요, 죄송합니다!
현제운 얼마나 후회하려고 저러는거죠? ㅠㅠㅠ
말씀드렸듯이 60회쯤 완결을 생각하고 있어요.
혹시 내하나에 대한 의견이나 궁금한점 있으시면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완결 내기 전에 꼭 소설 속에 독자님의 의견을 반영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심심해요, 심심하신분 있으시면 저랑 댓글로 내하나 얘기하면서 놀아요ㅋㅋ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12.21 20:2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12.21 22:21
첫댓글 너무 애절해요
댓감사합니다! 다음편에선 제운 승현 사이에 썸띵이 있을 예정이니ㅎ 많이 기대해주세요!
작가님이랑 바로 소통할 수 있다는게 새삼 신기해요! ㅋㅋ 글 너무 잘써주셔서 정주행 중인데 몇번을 우는건지.. 저렇게까지 모질게 구는데도 직진하는 승현이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몰입해서 읽고있어요😊
우와와 51편까지 오셨네요 쭉쭉 ♡정주행♡해주셨군요 으갸갸님 애정합니다! 모자란글인데ㅜㅜ 칭찬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더 재밌고 열심히! 써야겠단 생각이듭니다♡♡
@복세편살 내하나 후기작도 기대할게요♡ 꾸준히 글써주세요!
저도 시험준비중인데ㅠ 수험생끼리 힘내봅시다!
@으갸갸 와 우리의연결고리!ㅎㅎ 현제운네는 삼형제예요ㅋㅋㅋ대충이지만 두개의 새로운 이야기 구상하고 있어요 제운승현도 깜짝등장시키고요ㅋㅋ 기대해주세요 우리 퐈이팅해서 꼭 합격합시다♡ 그럼 으갸갸님 굿밤하세요
@복세편살 앗..! 후속작에서 다른형제분들 얘기도 다루면 재밌을 것 같아요 ㅎㅅㅎ 약간 오예은작가님 소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