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움출판사 2023년 10월 22일
꽃피는 여수바다(1966년) / 이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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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의 사연을 취재했던 한국일보 이문희 기자로 인해
‘모정의 뱃길 3만4천리'는 전국 방방곡곡에 알려지며 우리 모녀는 한국일보와 인연을 맺게 됐다.
1962년 2월14일자로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그때 받은 격려 편지는 국내외에서 하루200여통 이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정의 뱃길’이란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졌고
어머니를 소재로 한 노래(필자 주,이미자의꽃피는 여수바다)도 불려졌다.
라디오 연속극까지 만들어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여수에 내려와 어머니와 나를 격려하며 장학금을 주던 일을 잊을 수 없다.
사진 왼쪽위는 1962년 노를 젓는 어머니와 어린 딸. 왼쪽아래는 모녀를 만난 박정희 의장.
오른쪽은 40년후의 박승이, 정숙현 모녀. 당시와 그후의 기사들을 다 모아놓고 가끔 함께 읽곤 한다고.
위의 박정희 의장과 모녀의 사진은 사나운 풍파도 막지 못한 강한 모정, 섬마을 소녀의 가슴 푸른 꿈과,
그리고 가난을 딛고 일어서고자 하는 지도자의 의지가 함께 만남을 보여주는 듯 하다.
* 보릿고개 넘던 시절, 찢어지는 오천년 가난,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미만,또는 전후로 세계 최빈국 반열에 든 나라였다.(1인당 국민소득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육영수 여사의 편지 내용은 알 길이 없으나,
어머니의 지극정성에 감사를 전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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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40년 후 한국일보는 딸 정숙현씨의 글을 게재하면서 모녀의 뒷소식을 전해 다시 한번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다음은 2004년 7월8일자 한국일보에 게재된 정숙현씨의 글이다.
모정의 뱃길’ 주인공 정숙현씨
나는 모른다,
물결 위에 일렁이는 그림자를
몇 억겁이 지난 후의 이 파도 위에도
한 오라기 주름살이 굽이칠까.
살을 에이는 어머니의 뱃길 따라
왜 오고 갔는지를 나는 모른다.
깊고 또 깊은 곳에 남아 있거라.
물보라가 그리는 한 장의 초상화
아, 나의 어머니 모정의 뱃길.
굳이 거창하게 시(詩)라고 말하지 않아도 좋다.
단지 물길처럼 마음 또한 이렇게 흐르는 것을.
내가 한석봉이나 이율곡이나 맹자처럼 훌륭하지 못한 탓으로
내 어머니가 그들의 어머니처럼 길이길이 기억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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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반도 육지로부터 동남단으로 약 900m 떨어진 가쟁이섬 가장도.
모정의 뱃길 뉴스 이후
새싹회에서는 국민성금을 모아 사랑의 나룻배를 새싹호라 이름지어 박승이 여사께 선물하기로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황소 한마리로 대체하였다 한다. . 딸 정숙현양이 여수여중에 진학하자 여수시내 충무동에 25,000원짜리 전세방을 구하고 딸의 밥을 지어주기 위해 다시 아침 저녁으로 노젖는 뱃길은 12년간 이어진다.
어머니의 노질로 1968년 여수여고를 졸업한 정숙현양은
서울의 풍원실업 정광진 사장의 도움으로 주경야독, 성균관 대학을 마친후 엄마의 뜻에 따라 교사가 되었고 세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섬이다.
정숙현 선생은 35년 교직을 퇴임한 후 노인들을 돌보는 등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단다.
엄마의 사랑,그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지금 가쟁이 섬-가장도는 무인도가 되었으나
모정의 뱃길 삼만 사천리 전설을 외로이 간직하고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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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의 뱃길을 노래한 음반이 몇가지 있는데...
이미자-꽃피는여수바다
(모정의 뱃길 영화주제가 1966년 지구 레코드 LM 120112)
.작사 : 천 봉 .작곡 : 백영호
황금심 백설희 -사랑의 뱃길 삼만리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모정은 파도넘어 34,000리 / 동방성애
1963
천지엽 작사 / 최녹영 작곡
1
첫댓글 보통의 어머니 아니 어버지도 감히 해 낼 수 없는 어려운 환경에서 따님을 기르신 어머니의 남다른 모성애와 교육열!
우리 세대 땐 가난이 보편적인 수준이었지예.
우리 시골에선 초등학교도 못 다닌 아웃 친구들~
우리 명문 여고 동기들 중 대학에 진학한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던 시절...
정숙현씨는 그 어려운 시기에 서울의 4년제 대학 졸업과 반듯한 직업 가졌으니 고생 끝에 온 낙이지만 행운녀라 해야겠죠. 받은 혜택 봉사로 사회에 환원할만도~
오랜 세월의 결과지만 육영수 여사님 그 소중하고 귀한 편지의 행방이 아쉬운 부분이군요.
가난이 성공의 위대한 동기요 힘이었나 봅니다.
그 한 맺힌 설움을 벗어나려는 소원하나!
헝그리 정신
배고픈 자가 이기는 이치인지도 모를 일이지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그 허망한 구호에 희망을 걸고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 정신...
세월따라 세상은
배가 너무 부른 탓일까요.
이상한 풍조가 독버섯처럼...
그리운 시절은 아름다우나 봅니다.
와~~
짠
정숙현
드디어 별고을님이
찾아다 주셨네요
장한 어머니의 힘으로
아름다운 섬소녀
성공 이야기입니다.
가장도는 무인도가 되었다고.. ㅠ
해피엔딩이~....
애태우는 시청자들
벌떡 일어나 박수로....
강한 집념의 어머니 정신을
이어받은 딸인지라
받은 사랑을 갚고 사는 참된 인생여로이군요.
외롭고 쓸쓸한 섬의 운명인가.
가장도의 파도소리...
자료 찾기 왕은 바로 별고을 님 이시네요.
드디어 정현숙의 최근 소식을 물고 오셨네요.
억척같은 어머니의 성품을 닮아 열심히
공부해 교직에 몸 담그시고 퇴직 후
봉사활동 하시고 계시는군요. 그런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니 성장의 길이
반둣할 수 밖에요.
별고을 님 좋은 소식에 기쁨이 만감하나이다 !
고맙습네다 !
자료 찾아
끝마실 님들 즐겁게 해 드리려고...
찾기 머슴 ㅎㅎㅎ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지극정성이면
하늘이 감응하는 이치...
즐겨주신 바람온냐
존경하고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정숙현씨
대단합니다
역시나
육영수여사가
잘 보셨군요
맞아요
몇년전에
황금연못에 나왔답니다
좋은 날 되소서 ~^^
서민의 애환을
애정으로 지켜보고 살펴주는
영부인의 온화한 자태와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요즘 것들
지 ㄸㅇ폼이나 잡고
옷자랑질에 여행바게쓰질이나...ㅉㅉㅉ
저도 자료를 찾아 봤는데
정말 눈물겨운 모정 입디다.
당시 대통령 까지 관심을 보였다는데
차라리 육지로 이주할 여건을 만들어 줬더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싶었어요.
제 단순한 생각인지 몰라도..
눈물 철철...어쩌나요.
시부모 있지
병든 남편에
온 식구를 육지로 옮기면
한 살림 차려 주어야 하는데..
너나 없이 가난한 시절에
격려와 성원만 해도 큰 힘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나마 신문을 보고 가난한 서민의 애환을 돌보는
영부인의 자상한 보살핌이 있었으니
여러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적잖이 받았으리라...
왜 해소리님 생각이 단순합니까.
정이 세심하시고 여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