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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_ 문제의 해답은 항상 문제 안에 있다
푸른 들판이 보인다.
나는 또 예의 풀밭에 누워있었다.
'또인가....'
나는 일어섰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앞에 보이는 언덕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거기엔 이번에도 금발의 소녀가 등을 돌리고 서있었다.
'너는 누구야? 왜 계속 내 꿈에 나타나는거지?'
그 소녀는 천천히 몸을 돌린다.
이번에는 꼭 대답을 듣고말리라.
소녀가 뭔가 말한다. 하지만 역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입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기...... 억...... 해줘...
뭘... 기억해달라고? 나는 한번 더 물어보려고 소녀에게 말을 걸려했지만 그 소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나는 멍하니 푸른 들판을 바라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원래 일반적으로 꿈이라는 것은 꾸고 있을때는 생생하지만 막상 잠에서 깨어나고 보면 무슨 꿈을 꾸었었는지 생각해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꿈은 꿀때에도 생생하고 일어나서도 무슨 내용이었는지 생생하게 다 떠오른다.
대체 그 소녀는 뭐지. 한두번이면 그러려니 하려는데 이 꿈은 거의 매일 밤 나타나니 이것은 뭔가가 개입되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뭔가를 기억해달라고 하던 것 같은데... 사고 때문에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의 단편인가?
뭐, 지금 생각해도 어쩔 수 없나.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어제 그 수수께끼의 비밀요원이 건네주고 간 편지에 쓰인 번호로 전화를 걸어봐야한다.
그녀석은 언제라도 상관 없다고 했지만 내 비밀을 들킨 이상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다.
난 일단 편지에 쓰여있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달칵.
"안녕하십니까, 언제나 고객님의 편의를 생각하는 24시간 OO고객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 잘못걸었나? 아니, 번호는 이게 맞는데. 설마 그녀석이 다른 번호를 잘못 알려줬을리도 없고.
"아, 저기, 에릭이라고 합니다만. 그쪽의 마스터분은 계신가요?"
혹시 몰라 마스터라는 표현을 썼다. 아마 일반 기업 고객센터라면 사장으로 알아듣겠지.
"에릭 님이시군요. 알겠습니다. 곧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뚜루루루.
다시 신호가 간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달칵.
"호오, 상당히 빨랐는데?"
전화기 너머로 음성 변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가 나한테 그 귀찮은 여자... 아니 비밀요원을 보낸거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어, 그래. 맞아. 편지는 잘 받았나?"
"물론 잘 받아서 막 화장실 휴지 대신 쓰고 나오던 참이지."
"호오, 그건 상당히 상처받는데. 그 글씨는 내가 특별히 자필로 쓴거거든. 한글자 한글자 정성이 마구 느껴지지 않든?"
"안타깝게도 그런 건 잘 몰라서. 그래서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흥, 뭐 됬어. 그쪽으로 널 데려올 차를 한대 보냈으니까 5분있다가 집 앞으로 나와."
어? 나 집이라는 말 한마디라도 했던가?
"미안하지만, 지금은 잠깐 외출중이어서. 아무래도 5분안에는 무리일 것 같은데. 좀만 더 기다려줄 순 없을까?"
"큭큭, 어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순간 믿을 뻔 했잖아. 거짓말하면 천벌받는다고 부모님께 배우지 않은거냐?"
"공교롭게 부모님은 어릴 때 돌아가셔서 말이지. 배울 틈이 없었다고 할까."
"호오, 그건 참 안쓰러운 일이군."
"... 통화 추적중인거냐."
"후후. 눈치가 빠른데. 칭찬해주지."
"이런 짓이 범죄라는 건 알고 있는건가?"
"범죄? 그게 뭐지? 난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경찰 동의 없이 무단으로 추적하는 행위는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 어떨까 싶다만."
"풉, 푸하하! 너 지금 나한테 법을 들이대는 거냐?"
"핸드폰 위치추적은 추적당하는 전화의 전파가 수신되고있는 가장 가까운 기지국을 기준으로 추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지국 데이터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을터.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아는거냐?"
"후후. 훌륭해. 자세하게 알고있군. 집전화라면 고유회선을 사용하기 때문에 추적하면 오차가 수 미터 이내로까지 나오지만 핸드폰은 아무래도 무선이다 보니까 추적하려면 시간도 오래걸리고 오차범위도 운이나쁘면 킬로미터 단위로까지 나오거든. 그래서, 나를 신고하시겠다?"
"내가 못할줄이라도?"
"아무래도 너에게는 너가 처한 입장을 다시 한번 알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군. 지금 당장 컴퓨터를 켜고 내가 보내는 메일을 확인해봐."
메일주소를 어떻게 알았냐....라는건 물어도 쓸데 없겠지.
"내가 평소에 쓰던 주소로 들어가면 되는거냐."
"그래. 아마 재미있는 게 도착해있을거야. 크크"
내가 평소에 이용하는 사이트까지 알고있는건가.
나는 컴퓨터를 켜고 평소에 이용하던 포털사이트에 로그인했더니 새 메일이 한통 도착해있었다.
나는 메일을 열어보았다.
".....!"
거기에는 내가 해킹했던 날짜와 해킹로그등이 상세하게 다 적혀있었다. 물론 접속 아이피는 내 본래 IP로.
"어때? 대단하지? 그거, 경찰이 알면 매우 좋아할 것 같지 않아?"
"누구냐, 너..."
"알고싶지? 알고싶으면 지금 너희 집 앞에 있는 차를 타고 날 찾아오면 돼."
.....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갔다. 이 개자식, 나를 뭘로 보고있는거야.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겠군.
"아... 에릭.."
나는 현관으로 가는 복도에서 남희와 마주쳤다.
.... 그러고보니 어제 그런 일이 있었지.
"오늘 볼일이 있어서 조금 나갔다올게. 언제 들어올 지 모르니까 밥은 알아서 챙겨먹어."
"응, 알았어."
남희는 그대로 자기방으로 올라갔다.
-철컥.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검은색 승용차가 집앞에 세워져있었다.
앞자리에서 어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리더니 뒷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말없이 뒷좌석에 탔다.
승용차는 약 30분정도 어디론가 달리더니, 어떤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평범한 회사 건물같은데. 자세히 보지못해서 잘 모르겠다.
차는 지하주차장에 있는 건물출입구 앞에 멈췄다.
거기에는 또다시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같은 사람이 두명 서 있었다.
"마중나왔습니다, 에릭님."
"이건 대우가 너무 좋은거 아닌가요. 저같은 사람한테."
"저희 마스터께서 귀한 분이시라고 잘 모셔오라는 분부를 받아서요."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두사람이 안내하는대로 따라갔다.
복도 끝으로 가서 어떤 엘리베이터를 타게됬는데,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층을 나타내는 숫자표시는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끝없이 내려갔다.
-덜컹!
마침내 도착한 것 같았다.
앨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긴 복도가 보였다.
나는 두명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복도에는 5미터정도 간격으로 양쪽으로 문이 하나씩 있었는데 철문이었기 때문에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나는 복도 끝에 있는 어떤 방으로 안내되었다.
"저희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안쪽에서 마스터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고마워요."
아무리 그래도 이사람들은 나쁘지 않겠지. 나는 감사인사를 전했다.
-끼이익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거기엔 각종 전선들이 바닥에 널브러져있고, 커다란 화면이 8개정도 붙어있는 컴퓨터와 그 앞에 의자하나가 등을 돌리고 있었다.
"왔나."
의자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어딘가에 앉으라고. 보는 내가 더 불편하니까."
-타다닥.
방 안에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그렇게 말해도 이 방, 앉을곳이 하나도 없다고. 전선다발과 책들이 쌓여있어서 앉을 자리는 커녕 설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근처에는 컵라면같은 즉석식품 쓰레기도 널려있었다.
"날 여기로 부른 목적이 뭐지?"
"성급하긴.. 널 여기에 부른 목적? 그딴건 없어. 그냥 재밌어보여서 그런거야."
"재미라고 단언하기에는 너무 치밀한 것 같은데. 내 뒷조사에 위치추적까지 해가며 말이야. 뭔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하긴, 그런가."
의자가 나를 향해 돌았다. 거기엔 나와 별로 나이차이가 나지않아 보이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머리는 언제 잘랐는지 되는대로 길러서 부스스한 꼴을 하고 있었고 목이 다 늘어난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다리를 접어올려 의자위에 말고있었다. 눈은 퀭해서 다크서클이 져 있었고 목을 앞으로 쭉 빼고 날 쳐다봤다. 뭐 굳이 설명하자면 히키코모리 같달까... 얼굴은 잘생긴 것 같은데 왜 저러고 있을까.
".... 넌 누구냐."
"누구냐고? 철학적으로 묻는거냐? 아니면 생물학적으로써?"
"왜 내게 이런 짓을 하는거지?"
"글쎄. 왜일까."
"이자식...."
나는 그 녀석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어라? 에릭아니에요?"
"우와악!"
갑자기 뒤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분명 들어올 때 안에는 아무도 안보였고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린 나지 않았는데!?
돌아보니 내 앞에있는 자칭 비밀요원이 서 있었다. 무슨일이지.. 이건...
이녀석은 언제봐도 활기가 넘쳐 흘렀다.
반면에 저쪽에 앉아있는 쪽은 만사가 귀찮아서 짜증이 난다는것 같은 험악한 표정이었다.
"다래, 너 내가 그렇게 능력 막 쓰지 말라고 했잖아."
의자에 앉아있는 쪽이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아하하, 미안, 그래도 이렇게 사람 놀래키는게 재밌다고 할까 뭐랄까..."
이녀석, 평소에도 이런건가. 것보다 능력이라고 한 것 같은데?
"능력이라는건 뭐지?"
"너도 가지고 있잖아? 신체 강화 능력."
..... 그것까지 알고있는거냐. 대체 뭐지, 이 녀석.
"확실히.. 나도 순간이동은 아니지만 특이한 능력을 하나 가지고 있긴 한데. 그걸 어떻게 안거지?"
"글쎄. 왜 일까. 스스로 생각해보는 건 어때."
"도저히 모르겠다고...."
"멍청한 놈, 그러니까 너가 해킹한 것도 다 나한테 걸리는거야."
".... 대체 어떻게 그걸 다 찾아낸거지? 난 흔적같은 건 남기지도 않았고 내 컴퓨터가 누구한테 해킹당한 것 같은 흔적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는데."
"크큭, 아무래도 정말 짐작가는데가 없는 모양이군. 힌트를 하나 줄까? 너, '등잔밑이 어둡다' 라는 말, 들어본 적 있지?"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라는 건가."
"그래. 내가 해킹을 한 것도 아니고 네 방에 감시카메라같은 것을 설치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너에 대한 걸 이리도 자세히 알고있을까?"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아. 젠장, 어디서 꼬리를 밟힌거지?
.....! 아니, 잠깐만. 설마..
"스토킹.... 이냐?"
"...... 뭐?"
히키코모리가 갑자기 얼빠진 얼굴을 했다.
"아니, 그도 그럴게 해킹도 아니고 몰래카메라도 아닌데 나에대해 그렇게 자세히 알고있다니, 스토킹밖에 생각할 수가 없잖아. 남자를 스토킹하다니 너 혹시 그런쪽 취미냐? 설마 내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내 집에 침입한다음 컴퓨터를 마음대로 만지고 내 속옷냄새를...."
"뭔 개소리야?! 내가 너같은 남자를 뭐가 좋다고 스토킹을하냐!"
"우와- 기분나빠...."
내 뒤에서 다래라는 자칭 비밀요원이 한심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녀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 이렇게 멍청한 건 다래 저녀석 이래로 오랜만이군."
그녀석은 얼굴을 찌푸리며 머리를 감싸안았다.
"뭐? 나 안 멍청하거든?!"
"참내, 나한테 뭐 하나 이겨본 적도 없으면서 안멍청하긴."
"시.. 시끄러! 그건 마루가 너무 잘나서 그런거야!"
이녀석, 마루라고 하는 군. 뭐, 이름이 어떻든 상관없긴 한데.
그럼 이것들이 다 아니라면... 한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 퍼지넷이냐?"
"빙고. 이제서야 그걸 깨닫다니. 너도 상당히 바보구나. 그나마 똑똑한 줄 알았더니."
"너도 퍼지넷의 회원인가.. 그런데 퍼지넷은 네트워크 자체가 일반네트워크하고 독립되어 있는데다가 자체보안 프로그램때문에 사이트 내부에서 뭘 하는 건 아마 안될텐데... 대체 무슨 수를 쓴거냐."
"큭큭큭, 재밌는 소릴 하는구만. 퍼지넷에서 뭔가를 하는 건 안될거라고?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헛소리를 하는거지?"
"....뭐라고?"
"퍼지넷에 접속할 때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채지 않았나?"
"분명 난 아이피 우회를 하고 퍼지넷의 보안 프로그램을 깔고..."
"그럼 그 보안프로그램은 어디사는 누가만든걸까?"
"그거야 퍼지넷에서 .....아...!"
"큭큭, 그러니까 네가 바보라는거야. 해킹을 할 때는 아이피를 삼중으로 우회할 정도로 신중을 기하는 놈이, 어디사는 누가 만든지도 모르는 수상한 사이트에서 요구하는 보안프로그램을 아무 의심없이 설치하다니. "
"아니, 잠깐만. 그래, 내가 그 보안프로그램을 네 말대로 설치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게 너가 내 정보를 캐낸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설마 그 보안프로그램을 해킹하기라도 했다는 거냐?"
물론 내가 부주의하게 정체모를 보안프로그램을 깐 것은 맞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부주의했더라도 보안프로그램에 대한 검증은 해봤었다. 그건 절대 다른 해킹처럼 우회하는 방법으로 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마치 철옹성처럼 빈 틈이 없었다.
"해킹? 아니, 난 그런거 하지 않았어. 그 보안프로그램은 내가 만든거거든."
".....뭐?"
"잘 못들은 것 같은데 한번 더 말해줄까? 퍼지넷의 보안 프로그램은 내가 만들었다고."
"아니, 하지만... 그럼 너는 설마..."
"그래, 내가 바로 퍼지넷의 운영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