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2시간짜리 영환데 30분 밖에 안 지난 거 같아요!"
하는 민아 말대로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본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괴팍 작렬인 오베 아저씨가 계속 떠오릅니다.
오베 아저씨는 영화 초반부터 계속해서 자살 시도를 합니다.
"우리한테 자살 방법을 소개하는 줄 알았어요."
민아가 이렇게 말할 정도입니다.
이런 오베 아저씨의 자살 시도는 이웃들에 의해 번번히 실패합니다.
죽으려고만 하면 이웃들이 오베 아저씨의 심기를 건들여 아저씨가 집에서 뛰쳐나오게 합니다.
오베 아저씨에게는 그야말로 죽는 게 사는 것보다 힘듭니다.
오베 아저씨를 다시 살아가게끔 하는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저씨의 불평, 불만, 분노에서 나옵니다.
오베 아저씨를 보며 불평, 불만, 분노, 저항 따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단어들을 떠올렸을 때 생각난 복지현장은 요양시설이었습니다.
꼬장꼬장한 어르신들, 불평 불만 많은 어르신들을
어떤 요양시설에서는 문제로 여깁니다.
요양시설의 평화를 망치는 존재, 안전을 해치는 존재로 여겨
저항하는 어르신들의 손발을 묶고 안정제를 놓습니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저항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저항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양시설에서는 여태껏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야 하니
불평, 불만, 분노가 나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순응해버리는 순간, 육체적 죽음보다 인격적 죽음을 먼저 맞이할 지도 모릅니다.
분노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현장에 나가 불평, 불만, 분노, 저항하는 당사자를 만난다면
얼굴 찌푸리지 않고 그 분 이야기를 잘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께서 아주 잘 살아계심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첫댓글
저항한다는 것은 삶을 살아간다는 증거가 아닐지 생각해 봐요.. 좋은 영화와 기록..
경화 학생 고마워요 ^^
차에서 선생님께서 들어주신 덕에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베는 아내가 떠난 후 자신의 연속된 불행을, 사람들의 실수나 법준수를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탓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오베의 아내가 참 사랑스럽고 감사했습니다.
사회복지사가 이와 같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그만큼 다정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잘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문 밖을 나가기만 해도, 혼자일 순 없습니다. 그러니 정다운 이웃이 있어야하며, 정다운 이웃이여야 합니다. 오베의 죽음에서 편안함을 봅니다. 마을에서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편히 잠들었습니다.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