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용 멜빵 기구에 아기를 업은 젊은 아빠가 단지 내 놀이터에서 모래 장난 하는 이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새로운 풍속도라고나 할까, 거리에서나 슈퍼마켓 같은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업거나 안고 아이를 돌보는 젊은 남자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현대판 지게를 진 젊은 남자의 모습에서 어렸을 적 지게를 진 어른들 모습을 떠올린다. 산마을 우리 동네는 나무땔감 많기로 널리 알려졌다. 겨울이면 솔잎을 쌓아올린 나뭇짐을 팔려고 십 리도 넘는 새벽길을 걷는 아버지들의 지게꾼 행렬을 보곤 했다. 어느 여름날 노랗고 단내 나는 참외만 골라 담아놓은 지게 받침대를 쓰러뜨려 지게꾼장수에게 된통 혼난 적도 있다. 그 대가로 할아버지에게 야단맞았음은 물론 추석 날 사주기로 했던 다홍치마며 색동저고리 꽃고무신이 날라 갔다. 열 살쯤 되었던 늦봄의 이른 아침에 보았던 광경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동네 아저씨가 가마니를 둘둘 말아 지게에 짊어지고 우리 집 마당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다 싶어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쯧쯧 불쌍해서 어찌 할꼬!” 하시면서 폐병을 앓다가 죽은 아이를 누가 보지 않도록 일찍 산에 묻으러 가는 것이라고 했다. 동네에서 누가 죽으면 꽃상여에 싣고 간다. 그런데 그 아이는 죽어서 꽃상여도 못 타고 아버지 지게에 얹혀 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나였지만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고통과 힘들었던 짧은 삶을 마치고 정든 길을 떠나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아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얹은 지게를 멘 아버지의 발걸음은 쇠고랑을 찬 느낌이었을 것 같다. 늦봄의 꽃들은 화려한 자태로 활짝 웃고 있고, 초목들도 힘차게 기운이 치솟고 있지만, 피어 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 간 가엾은 것을 깊은 산에 묻으러 가는 아버지의 뼈아픈 상심. 동지섣달에 얼어붙은 살을 칼로 도려낸다 해도 어찌 이 아픔에 비할 수 있을까. 장날 풍경도 생각난다. 닷새 만에 오는 시골 장날은 모두가 들뜨게 마련이다. 집집마다 어른들은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장으로 이고 지고 갔다. 저녁 무렵이면 아이들은 눈이 빠져라 신작로 모퉁이를 바라보았다. 멀리서도 용케 식구들을 알아보고 행여 눈깔사탕이라도 있을까 달려가 보지만, 끼니조차 어려운 판에 주전부리가 있을 턱이 없다. 그래도 아이들은 서운해 하지 않고 떼도 쓰지 않았다. 지게 위에 놓인 짚 꾸러미에서 비릿한 맛살을 째 먹기도 하고, 아예 아버지의 빈 지게에 올라타고 신나서 자랑할 때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60년대 초 마포에 있는 서울 고모 집에서 일 년 간 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다. 서울에도 등짐 지게를 진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다 고모를 따라 시장에 가보면 어른들이 새벽부터 산더미처럼 쌓은 짐을 져 날랐다. 마포경찰서 쪽으로 난 언덕 고샅길을 연탄을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채 곡예를 하듯 지게로 나르는 어른들도 보았다. 어린 마음에도 연탄들이 쏟아질까봐 손에 땀을 뒤며 지켜보았다. 농촌은 농촌대로 도회지는 도회지대로 아버지들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묵묵히 살아왔다. 지게를 벗어 놓은 아버지의 어깨는 살이 부르트고 벗겨져 부어 있었고, 다시 진 무거운 등짐에 등은 굽어갔으리라. 밤마다 끙끙 앓는 소리에 엄마들은 애가 타들어 갔지만 김치 한 접시에 콩나물국 한 그릇, 반주로 막걸리 한 사발로 기운을 차리는 집안의 가장들이었다. 그래도 저녁때 지친 몸으로 돌아오면 마누라와 자식들이 아버지를 반겼다. 아버지의 피곤한 몸을 온 식구가 둘러앉아 이리 주무르고 저리 두드렸다. 많이 힘들어도 사랑스런 가족들에게 존경과 권위가 있었다. 아버지 말 한마디에 식구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순종했으며 고생을 보상받았던 옛 아버지들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시회 분위기와 통념이 바뀌고 아버지들의 권위 또한 사위어 갔다. 지게를 많이 쓰다 보면 부분들이 다 닳고 삭아서 다리도, 작대기도, 멜빵도, 다른 곳도 낡고 헐어서 지탱하기에 어려워진다. 자연히 헛간에 방치하고 버리게 되듯 뒷전으로 몰린다. 삐거덕 거리는 지게와 동무라도 된 듯 옛 아버지들의 육신도 버려진 지게처럼 힘도 빠졌다.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며 스스로 지탱하기에 힘들게 되면서 크고 작은 일에 내쳐지고 버려지며 외면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변화막측하고 생존경쟁이 심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요즈음 젊은 아버지들의 모습은 어떤가? 남존여비 낡은 시대환경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옛 시절 아버지들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고달프기 그지없는 이 시대를 사는 젊은 아버지들. 거의가 본인의 마음보다는 식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가족의 충성된 일꾼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자녀들과의 대화도 기회가 많지 않고 함께할 시간도 적은 것 같다. 어려운 경제 속에서 점점 힘을 잃고 움츠러진 초라한 모양새의 아버지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어디를 가도 여성들의 주장이 강하고 파워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런 사회 풍조와 현상은 갈수록 더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치 지게의 몰락처럼 가장의 몰락을 보는 듯도 하다. 휴일이면 등짐에 아이를 짊어진 채 어디서든 영락없이 출현하는 젊은 아버지들. 요즈음의 멜빵 지게든 ‘A’자를 닮은 옛날 지게든, 짊어진 크고 작은 내용물의 크기와 무게는 변하지 않았다. 옛날이든 지금이든 아버지들이 짊어져야 할 힘겹고 외로운 짐들. 농주 한 사발을 들이키고 육자배기 흥얼거리며 갈지자로 발길을 옮기는 옛 시대의 아버지들. 온 종일 직장에서 스트레스와 피로로 파김치가 되어 기진맥진 귀가하는 현대의 아버지들. 총총걸음으로 집을 향하여 과연 얼마만큼의 환영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오늘의 젊은 아버지들의 모습과 그 옛날 아버지들의 위상이 서로 겹치며 눈에 밟힌다.
(안명자 님의 수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