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광주 국밥집
- 안오일
깔끔한 제복에 허리 굽혀 절하는
안내원은 없지만
허릿살 푸짐한 아낙 하나 살붙이처럼 앵겨드는
남광주 국밥집에는요
찌긋한 문틈 새로 풀려나오는 순대국밥 뜨건 열기
도로변까지 점거해버리는 그 집 앞에선
살얼음 낀 세상의 한파도 슬쩍 비켜선다는데요
제 아무리 俗을 벗은 스님이라도
싸륵싸륵 남의 살이 동하는지
후끈한 방안에 곱창처럼 섞이기도 한다는데요
굼벵이 같은 버스는 당최 오지 않고
주머니에 두 주먹만 가득 채운 사내 몇
곱사등이로 동동거리다가 기어코
국밥 한 그릇에 쇠주 한 병 벌컥대고 나면
속계와 선계가 한통속이라
걸쭉한 육두문자도 거침없이 헉헉 삼켜댄다는데요
붕어빵 이천 원 어치에 환호성을 지르는
어린 것들 앞에서 짐짓 목에 힘주는
못난 아빠들의 순대속 같은 하루가
푹푹 고아지고 있는
거기에 無名의 思想을 팔고 있는 아낙 있지요. 아니, 무명의 사상이 이루어지는 집이 있지요. 속(俗)을 불러 선정(禪定)을 이루는, "순대국밥 뜨건 열기"로 풀려 나와 속(俗)을 이루고, 다시 "못난 아빠들의 순대속 같은 하루"를 불러들여 "푹푹 고아지고 있는" 거기, "허릿살 푸짐한 아낙 하나 살붙이처럼 앵겨드는" 거기, "살얼음 낀 세상의 한파도 슬쩍 비켜선다는" 사상이 살고 있지요. 俗을 잊게 하고 선(仙)도 없애버리는, 그런 논리를 훌쩍 뛰어넘은 배부른 밥세상이 있지요. "곱사등이로 동동거리다가 기어코" "걸쭉한 육두문자도 거침없이 헉헉 삼켜댄다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남광주 국밥집, "속계와 선계가 한통속"을 이뤄내는 곳! 거기가 "곱창처럼 섞이기도 한다는" 곱창인가요 순대 국밥집인가요 아님, '앵겨드는 사상'과 '싸륵싸륵 동하게 사상'의 거처인가요.
멀리에서, 혹은 멀리로 나가서 찾지 않아도 '살리는' 사상은 있지요.
시간보다 뒤늦게("굼벵이 같은 버스는 당최 오지 않고"), 그러나 앞서 당도한 그런 세상이 우리 삶 속에는 늘 있지요.
혜시가 한 말입니다.
"今日適越, 而昔來."
(금일적월, 이석래)
오늘 월나라로 갔는데, 예전에 도착했다.
새로운 사상의 거처 남광주 국밥집으로 가는 길은 오늘 떠났지만 이미 마음으로는 도착한 곳일 겝니다.
첫댓글 오늘처럼 비오는 날 남광주 국박집에서 푸짐한 아짐의 남도가락 들으며 술추렴하고 잡네 버스가 오지않음 어떠리 그 핑계로 밍그적대보는게지 안그래요 오일씨~~
언제든 광주에 오세요. 같이 가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