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선후기 풍자적인 인물인 이 사람 얘기의 골자는, 평양출신 재사 김선달(본명 김인홍. 자호는 낭사)이 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권세 있는 양반, 부유한 상인, 위선적인 종교인들을 기지로써 골탕 먹이는 것이다. 자신의 경륜을 펼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서북인 차별정책과 낮은 문벌 때문에 뜻을 얻지 못한 울분의 표출이었다. 나는 봉이 김선달의 얘기를 읽으면서 그 순발력에 놀라워했고, 위선에 대한 조롱을 통렬해했다. 또 한편으로는 저 재치가 사회에 일반화했을 때 미치는 악영향도 적지 않으리라는 걱정도 동시에 했었다.
봉이 김선달이 실제의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개성 이북의 서도지방에 널리 분포하여 있던 건달이야기가 현재는 여러 야담집을 통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김선달 얘기의 문헌 정착은 1906년 <황성신문>에 연재된 한문현토소설인 <신단공안>의 네 번째 이야기 ‘인홍변서봉 낭사승면관’이 그 최초의 예이다. 이로 본다면, 아마도 그 이전인 19세기에 널리 유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전설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그의 건달행각의 배경을 당대의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풍자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여, 김선달의 비범성을 부각하고 있다.
봉이 김선달에 대한 수많은 얘기 중 압권은 역시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얘기일 것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선달이 대동강가 나루터에서 사대부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물장수를 만났을 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물장수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얼큰하게 한잔을 사면서, 물을 지고 갈 때마다 내게 한 닢씩 던져주게나, 하면서 동전 몇 닢씩을 물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 의관을 정제하고 평양성 동문을 지나는 길목에 의젓하게 앉아 물장수들이 던져주는 엽전을 헛기침을 하면서 점잖게 받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모든 사람들이 소곤대며 살피고 있었다. 이 때 엽전을 내지 못한 물장수가 선달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를 본 한양인들은 대동강물이 선달의 것인데 물장수들이 물값을 내지 못하게 되자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여, 내일부터는 밀린 물값까지 다 지불하여야 한다고 엽전 준비에 야단이었다. 이를 참다못한 한양인들은 어수룩한 노인네 하나 다루지 못할 것인가, 하면서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꼬득여 주막으로 김선달을 모시게 된다. 술잔이 오가고 물의 흥정이 시작되었다. 선달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것이므로 조상님께 면목이 없어 못 팔겠다고 버텼다. 물려줄 자식이 없다는 한탄까지 곁들였다. 한양인들은 집요하게 흥정을 했다. 거래금액은 처음에는 1천냥이었다. 2천냥, 3천냥으로 올라가더니 결국 4천냥에 낙찰되었다. 당시 황소 60마리 값이었다. 매매계약서는 다음과 같다.
품명:대동강 소유자:봉이 김선달 상기한 대동강을 소유자와의 정식 합의하에 금년 5월 16일자를 기해 인수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천하에 밝히는 바이다.
인수자:한양 허풍선 인수금액:일금4천냥 인도자:김선달
이것이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한양상인들에게 팔아먹은 전모이다. 그럼에도 김선달은 평생 재산을 모으지 못했다고 한다. 워낙 풍류와 시를 좋아했거니와, 양반, 상인, 종교인들을 골탕 먹이고 뺏은 돈을 서민들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란다.(오픈사전 참조)
관람료 징수는 대동강물 팔아먹기인가
밭을 갈다가 왜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물 팔아먹은 얘기가 퍼뜩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대한불교조계종 모스님의 봉원사땅 팔아먹은 얘기가 생각나서일까, 아니면 사찰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데 대하여 인터넷 댓글에 “이는 김선달의 대동강 물 팔아먹기와 같다”는 주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봉이 김선달은 그 받은 돈을 서민들에 나눠 주었다는데, 우리 스님들은 봉이 김선달보다 더 좋은 일을 하시려고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우리 스님들 일반의 현상이 그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요즘 시민단체나 정치권에서 사찰문화재 관람료에 대한 언급이 잦다. 사찰이 문화재이고, 사찰의 땅이 국립공원을 끼고 있어 관람료에 대한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립공원에 가는데 왜 사찰문화재 관람료까지 내야 하는가,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것이 시민들의 볼멘 주장이다. 반면, ‘국가지정 문화재의 소유자 또는 관리단체는 그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 관람자로부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는 문화재보호법 제39조를 준수하는 합법이라는 사찰측의 항변은 평행선을 달려왔다.
하지만 시민들은, 문화재보호법을 확대해석하는 것이고, 공원입장료와 관람료를 통합 징수하는 것은 교묘한 수법이라 주장하며 시민운동으로 통합 징수 철폐를 관철할 태세이다. 이에 대해 사찰측은 국립공원의 땅도 대부분 절의 땅을 밟아야 하니 산문도 닫을 각오로 임하고 있다. 이러한 딱한 사정을 눈여겨보았던 정치권 일각에선, 차라리 사찰문화재 관람료를 세금으로 충당하겠다는 발상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승가의 전향적 입장 개진할 때
조계종 산하 65개 사찰이 국립공원 및 도립공원 등의 입장료와 함께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다. 관람료 징수는 문화재보호법에 의하면 옳은 일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주장에 산문폐쇄로까지 간다는 것은 좀 오버액션으로 비추어진다. 사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수행공간으로서의 기능이다. 산문폐쇄라는 극단의 주장보다는 사찰이 수행공간이므로 차라리 문화재 지정을 철회한다든가, 아니면 문화재 관리사를 두어 정부에서 관람료 관리와 수리, 보수 등을 전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승가로서의 올바른 판단이 아닐까 한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관람료를 받겠다는 굳은 서원 너머에는 혹시 다른 속사정은 없는 것일까?
잊을만하면 터지는 사찰 주지스님의 교묘한 문화재보수비 횡령 사건은 시민들의 의혹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횡령한 분이 그 돈을 봉이 김선달처럼 좋은데 쓰실 것으로 충분히 짐작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지만, 사찰문화재 관람료 문제가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 물 팔아먹기식이라는 시민들의 비난을 받는 것은 승가의 위의와 관련된 문제이다. 큰 실리를 얻었다한들 위의를 잃는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이 나서기 전에 사찰문화재 관람료에 대한 승가의 전향적이고 여법한 입장을 개진할 때이다.
첫댓글 작년 4월에 올려진 글인데 제가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