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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지혜로 삶을 바꾸는 관•혜(觀•慧)개관]
현재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대상으로 있는 그대로 보며 본질을 통찰하여 분명히 아는 위빠사나(vipassana)는 비빠사나라고도 하며 팔리어 위(Vi)와 빠사나(Passana)의 복합어다. 위(Vi)는 ‘뛰어난’혹은 ‘다양성’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빠사나(Passana)는 ‘본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뛰어난 관찰, 통찰을 말한다.
위빠사나는 확립된 사띠와 함께 편견이나 왜곡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如如, yath ta )'를 분명하게 안다는 '분명한 앎(正知, sampajana)'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간다. 사띠와 삼빠자나는 위빠사나의 두 기둥이다. 사띠와 사마타로는 止와 定이 성취 되지만 觀과 慧가 결여 되어 있으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 실제의 삶이 변화되는 전식득지(轉識得智 : 오염된 식(識)을 바꾸어서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묘관찰지(妙觀察智)·성소작지(成所作智)를 성취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와 세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삶이 바뀌는 전식득지를 위해 관찰과 삼빠자나가 실행 되는 위빠사나가 필요하다. 지혜의 눈을 뜨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삶 속에서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한테도 도움이 되는 직접적인 방법이 위빠사나다.
위빠사나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몸과 마음의 이완이 충분히 달성되고 더불어 알아차림(念, sati)으로 다른데로 달아났던 마음을 순간순간 현재로 되돌려 일정한 상태로 집중의 유지 지속이 선행 되어야한다. 이어 관찰을 통해 분명한 앎(正知, sampajana)으로 나아간다. 분명한 앎(正知)이란 편견이나 왜곡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如如, yath ta )'를 분명하게 안다는 의미이다.
사띠가 확립되고 집중이 강화되어 기억이나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흔들림 없이 고요하고 맑은 상태에서 관찰 해야만 있는 그대로 어떤 평가나 편견 없이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띠가 확립된 상태에서 관찰하고 삼빠자나를 작동시켜 분명한 앎이 성취되도록 해야 한다.
사띠의 알아차림은 언제나 현재의 시점이며 직접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이런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사물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 분명한 앎이 생겨난다. 현상학적으로 보면 이런 분명한 앎은 대상에 대한 사띠로 에포케가 이루어져야만 의식의 환원 방식으로 가능해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성질을 꿰뚫어 알 수 있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의 통찰지혜를 증득하는 길이다.
이렇게 순간순간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재의 대상에 대해 사띠하여 고요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관찰하고 쌈빠자나를 한다.
사띠와 사마타에서는 한가지 대상에 초점을 맞춰 밀착해서 알아차리지만 위파사나에서는 다양한 대상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통찰한다. 거리를 두고 본다는 것은 건성건성 보는 것이 아니라 세밀히 보면서도 대상에 밀착되어 동일시가 되지 않도록 객관화 한다는 의미다.
사띠가 숨을 알아차리고 집중해서 탐진치 삼독이 마음에 달라붙지 않도록 차단한다면 위파사나는 확실한 앎을 통해 인지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사띠가 있더라도 삼빠자나가 없으면 사마타가 지속 되는 것이며 삼빠자나가 있어야 위파사나로 나아가는 것이다.
위빠사나의 종류는 앉아서 하는 위빠사나(坐禪), 걸으면서 하는 위빠사나(行禪), 일상생활에서 하는 위빠사나(生活禪)으로 구분된다. 앉아서 하는 위빠사나는 특정한 장소에서 일정시간과 시기를 정해 아래에 제시하는 대상을 관찰하고 삼빠자나 하는 것이다. 걸으면서 하는 위빠사나는 산책로 등 걷기에 편하고 안전한 장소를 정해 걸으며 발바닥 부터 무릎사이를 대상으로 관찰하고 삼빠자나 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하는 위빠사나는 일상에서 하는 일이나 동작을 하며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대상으로 관찰하고 삼빠자나하는 것이다. 위빠사나의 관찰은 지혜에 의해 본다는 말(pannaya passati)인데 지혜의 빛에 비추어 보지 않으면 눈을 감고 보려 하는 것과 같다. 사띠의 확립으로 의식 속에 지혜의 빛인 순수의식의 불이 켜진 것이다.
이 후에 종류별로 대상과 절차 및 방법을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위빠사나는 실제현상을 직접적(direct)으로 고찰하는 방식과 귀납적 추론을 통해 고찰하는 추론적(inferential) 위빠사나 방식이 있다.
직접적(direct) 위빠사나는
현실적 위빠사나(practical insight meditation)로 대상의 개별적 특성을 통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분명히 앎으로써 지혜를 얻는 방식이다.
추론적 위빠사나(Inferential insight)는 귀납적 추론의 지혜(anvaya ñāṇa)로 관찰하고 삼빠자나 하기 때문에 빨리어로 아누마나 위빠사나 (anumāna vipassanā)라고도 부른다. 추론적 위빠사나는 반드시 직접적 위빠사나로 부터 귀납적 추론의 지혜(anvaya ñāṇa)로 추론하여 분명히 안다.
즉 추론에 앞서 직접 경험하는 수관(anupassanā, 隨觀)을 진행하는 현실적 위빠사나 이후에만 가능하다.
아누마나위빠사나라고 해서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대상으로 추론하는 比量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여 분명히 알아낸 내용을 대상으로 추론하는 現量이다.
위빠사나를 통해 얻어지는 통찰지혜는 대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보는 (anupassanā, 隨觀) 지혜(ñāṇa)로, 현상을 바라볼 때 그 현상이 강하게 경험되는 상태에서 증득 된다.
위빠사나의 대상에 따라 사념처(四念處)에 대해 몸을 따라 관찰하고 몸에 머무는 신수관(身隨觀), 느낌따라 관찰하고 머무는 수수관(受隨觀), 마음을 따라 관찰하고 머무는 심수관(心隨觀), 법을 따라 관찰하고 머무는 법수관(法隨觀)을 행한다. 이와더불어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을 대상으로 각각
대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고찰한다. 사념처와 오온(五蘊)에 대한 통찰을 토대로한 추론적 위빠사나의 대상은 자성(自性), 무자성(無自性), 연기(緣起), 공성(空性), 무아(無我), 무상(無常), 고(苦)
등의 실재 모습이다.
위빠사나로 부터 얻어지는 좋은 점은 다음과 같다.
• 마음이 청결해진다.
• 경험을 통해 자신이 나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현상에 대한 직접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
• 사물의 참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 나와 세상에 대한 인식구조가 달라지는 의식전환으로
대원경지(大圓鏡智)·평등성지(平等性智)·묘관찰지(妙觀察智)·성소작지(成所作智)
를 증득한다.
• 탐진치 삼독에 물들지 않는다.
• 평정심이 오래 유지 된다.
• 몸과 마음의 고통을 저감한다.
• 인간의 실존적 한계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 내 고집과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살지 않는다.
• 모든 관계가 좋아진다.
• 사무량심이 깊고 넓어진다.
첫댓글 비파사나의 깊은 인식과 방식, 효과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좋은글입니다.
장로님의 깊은 명상과 기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