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아동복지사업은 현재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 위치해 있는 해성 보육원에서 시작됐다. 해성 보육원은 1894년 프랑스인 마키클레멘스 수녀와 엠마누엘 수녀, 한국인 박 사베리오 수녀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다.
이 보육원은 당시 이들 수녀가 성바오로 소녀회 인천 본원에서 4살과 12살난 여자아이 등 5명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한 방에서 아이들을 보호했으나 점차 부모없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1896년 천주교회 인천본당에 120평 규모의 원사를 새로 지어 직접 아이들을 보호했다.
이후 1926년 5월 조선총독부 구호령에 따라 집을 얻은 보육원은 서울에 위치한 보육원과 함께 프랑스나 사이공 성영회에서 보낸 돈과 국내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꾸려졌다.
해성 보육원은 으제니오신부(한국명 전학준)가 용현동과 영종도, 충남 당진 등지의 농지 20만평을 사들여 기증하면서 본당 건립은 물론 수녀원과 고아원, 병원, 학교,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었다.
보육원은 6·25전쟁 중에도 200여명의 아이들을 돌봤다고 전해진다.
송도로, 덕적도로 피란을 다녔고 전쟁 후인 1958년 분원을 확장해 3개동의 원사를 신축했다. 1962년에는 '인천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으로 편입됐다. 초대 이사장은 맥노튼주교가 맡았다.
1973년 '천주교샌뽈수도원유지재단'으로 명의가 바뀐 보육원은 1975년 답동의 영아원을 용현동으로 옮겼다. 당시 용현동은 중국인들이 채마밭을 일구던 흔적이 남이 있던 곳. 보육원에는 부식용 마차가 오가곤 했다고 전해진다.
1985년 용현동 본당에 분원이 설립되면서 용현동분원은 지금의 이름인 해성보육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87년에는 인천에서 발생하는 기아나 미아,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을 일정기간 보호, 양육하는 영아일시보호소로도 지정·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