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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민소통운동본부(CCCC) 원문보기 글쓴이: 평택 소통 김평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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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졸저<원저 편저자 (1973년도 초판)> 평택 소통 김평탁입니다.
1973년 초판 이래 조선일보를 비롯 각 신문들과 각방송국 특히 ytn 을 비롯하여 컴퓨터 인터넷.......오늘까지도 각 방송들과 신문 인터넷의 덕택으로 원저자의 보람을 온 국민들과 함께 만끽하며 감사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소생은 하나님의 말씀<성경>과 개인<일기>를 60여년 동안 지금까지 쓰고 보존해 오면서,
오늘의 국민 소통 운동과 우리 한민족 한가족 소통 운동을 제창하게 되었으며 다행히도 박근혜정부<한민족미래창조과학기술부>의 탄생을 한없는 기쁨과 소원<소망>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국민 여러분 !
그리고
국내외 동포<가족> 여러분 !
어서빨리 동서남북 우리나라 남북 평화 통일을 이루십시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샬롬 !
2013년 08월 13일 광복절을 앞두고
CCCC C-man 평택 소통 김 평 탁 올림
(국민소통운동본부.017-727-3863,(031)692-3650
평택건강생명사랑상담소<교회> 본교회는 상담 대화 토론 소통 중심의 교회입니다.
소통이란 말<용어>부터 살펴봅니다.
영통 0통 1통 2통 3통 4통 5통 6통 7통 8통 9통 10통 100통 1.000통 10.000통………….
소통은 바로 영통부터 시작됩니다.
소통=영통
소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한 말이고, 영통은 사람과 하나님과 관계된 말로서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통한다는 말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람 곧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는 절대관계 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 이며, 하나님은 창조주<조물주>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상대관계입니다.
절대관계 절대 !
상대관계 상대 !
우리 국가<민족>동포의 지도자<영도자>는 <영통>부터 시작하여(영통령)<소통령><중통령><고통령><대통령>(원통령)이어야 하겠습니다.
(국민소통운동본부.CCCC 017-727-3863,(031)692-3650 ,1588-9191)
9월 10일
오늘의 말씀
① 시편 10장 전문
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22:1, 시35:22
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3.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치지 못하오며 저는 그 모든 대적을 멸시하며
시2:4
6.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8.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9.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시59:3, 미7:2
10.
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11.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시73:11, 겔9:9, 욥22:13
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시9:12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시10:3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사29:20
② 잠언 10장 전문
1.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2.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의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5.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6.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거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7.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8.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리라
9.
바른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10.
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느니라
잠6:13, 시35:19
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13.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14.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잠9:9
15.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니라
잠19:7
16.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17.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18.
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거짓의 입술을 가진 자요 참소하는 자는 미련한 자니라
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20.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21.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23.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
24.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26.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년세는 짧아지느니라
28.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29.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30.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잠2:22
31.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32.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약3:8, 전12:10
○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 여호와의 경외와 생명의 연장
오늘의 역사
① 동국 통감(東國通鑑) 간행(1485) : 신라 초부터 고려 말까지 이르는 1,400년간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엮은 역사책.
삼국사기, 고려사 등이 바탕이 된 책으로 서거정․정효향 등이 조선9대 성종의 명령을 받고 지은 것이다.
활자본이며 56권 2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권근의 '동국사략'으로 대표되는 기왕의 고대사 서술이 탈락된 것이 많아 이를 보완하려는 세종의 의지에 따라 1458년(세조4) 편찬작업이 시작되어 고대사 부분이 1476년(성종 7)에 '삼국사절요'로 간행되었으며 1484년에 '동국통감'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사론(史論)을 보충하여 1485년 56권의 '신편동국통감'이 간행되었다.
편년체이며 단군조선에서 삼한까지를 외기(外紀), 삼국의 건국으로부터 신라 문무왕9년(669)까지를 삼국기, 669년에서 고려 태조 18년(935)까지를 신라기, 935년부터 고려말까지를 고려기로 나누어 편찬하였는데 이러한 시대구분은 정통사상에 입각한 것이다.
신화와 전설적인 것이 배제되고 역사적 사료들을 발췌하여 서술하였으며, 고려기에서 세가(世家)와 열전 부분이 강화된 것은 정치의 주체로서 국왕과 신하를 중시하였음을 말해준다.
② 장기(將棋)의 날 : 한국 장기의 총본산인「한국장기원」에서
1969.9.10을 ‘장기의 날‘ 로 정했다.
그것은 장기판의 세로줄이 9, 가로줄이 10이라는데 착안하여 제정했다 한다.
그후 장기의 불문율을 4가지로 정했는데
1) 상수는 홍색, 하수는 청색을 가지고 먼저둔다.
2) 행마(行馬)한 것은 불퇴(不退)한다.
3) 장기판에 손을 올려 놓고 척도함을 금한다.
4) 대국시에 자리를 뜨거나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등이다.
* 장기의 유래 : 장기는 서민들이 즐기는 오락물의 하나이다.
여름의 밤거리나 천변가를 거닐면 여기저기서 장군 멍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장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못할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불승들이 만들었다 하는데 한편「버마」에서는 자기네의 「타링」왕비가 고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쨋든 중국 주나라의 무제때로 내다 보는 것이 정석(正釋이) 아닐까?
이렇게 많은 기원설을 가진 장기는 고려시대에 우리 나라에 들어와 일본으로 건너가자 일본사람들은「중장기」․「대장기」로 변모시켜 놓고 자기네의 것(장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③ 천호대교(千戶大橋) 기공(1974): 서울 성동구 광장동과 강동구 풍납동을 연결.
남쪽은 영동(永東)고속도로, 북쪽은 동부간선도로(영동교-답십리-도봉동)중간지점과 연결돼 의정부․ 창동에서 도심을 거치지 않고 여주․ 이천․성남시로 갈수있어 시간과 거리가 크게 단축된다.
④ 대한청년단 해체(1953) : 1953년 9월 10일 이승만의 명령으로 대한청년단의 해산이 선포되었다.
대한청년단은 1949년 12월 19일 이승만이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결성한 우익청년단체이다.
이승만이 총재직을 맡은 대한청년단은 광범위한 조직망을 이용해 200만 명에 이르는 단원을 확보함으로써 유일무이한 청년단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명목상 청년단체였을 뿐 주로 이승만을 지원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대한청년단을 청년방위대로 개편해 향토방위에 투입시켰으며, 1․4후퇴 때에는 다시 국민방위군으로 재편해 국민방위군을 조직․이동․훈련시키는 임무를 맡겼다.
군사실무경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과중한 임무가 맡겨지자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 일부 간부들이 국민방위군에 편성된 정부예산을 횡령해 수많은 청년들을 굶어 죽게 만든 '국민방위군사건'이 일어났다.
그 책임을 지고 5명의 주요 간부가 처형되면서 대한청년단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1953년 9월 이승만은 향토방위를 목적으로 한 민병대의 창설과 전국의 청년들을 민병대에 규합한다는 내용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대한청년단은 해산되었다.
⑤ 미국 제2사단 한국에서 철수(1954) : 1954년 오늘 !
미군 제 2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하기에 앞서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이에앞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협정이 조인된 지 5개월 뒤인 1953년 12월 주한미육군을 2개사단만 남기고 철수한다고발표했습니다.
미국은 한국군 증강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주한미군은 서서히 철수시키는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주한미군은 55년초까지 2개사단만 남게됩니다.
⑥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화성(현재의 수원) 완공(1796) : 정조18년~20년에 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行宮)을 건립했다.
정조가 화성에 도착해 머물렀던 행궁.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화성(현재의 수원)이 2년 반 동안의 공사끝에 1796년(정조 20년) 9월 10일 완공됐다.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화성은 우리나라 성곽의 백미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당대의 모든 과학 기술과 역량이 동원된 이 성은 다산 정약용이 기중기를 이용해 축성의 모든 과정을 계획하고 감독했다.
성의 총길이는 4600보(5743m)로 서양식 축성법을 채용했고, 재료도 대형벽돌을 사용했다.
정조가 화성을 건설한 이유에 대해 벽파세력의 압박을 피해 화성으로 천도하려 했다는 ‘화성 천도설’이 있긴 하지만, 당쟁에 휘말려 비운에 간 아버지 세도세자를 추모하고 국왕으로 추존하려는 자신의 비원을 실현할 목적으로 건설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정조는 화성 건설과 함께 지금의 서울시립대 뒷산인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로 옮겼고, 통일신라 때 창건된 갈양사를 용주사로 바꿔 사도세사의 능사(陵寺)로 삼아 아버지의 넋을 위로했다.
정조는 신도시의 번영을 위해 한성부내의 재력있는 시전도매, 기타 부호들과 개성, 평양, 의주, 동래의 거상들로부터 이주신청을 받았는가 하면, 장사에 능하고 근면성실한 자 20인을 골라 계를 짜게 하고 이 계원들에게 관모와 가삼의 국내매매와 대중국 무역을 독점하게 했다.
정조의 강력한 의지는 인가라야 불과 5~6호 밖에 지나지 않던 삭막했던 들판을 1900년에는 약 2000호의 큰 읍으로 발전시켰고, 이 신도시는 2004년 현재 인구 100만여 명인 대도시로 성장했다.
⑦ 생보시장 개방 : 1987년 9월10일, 워싱턴. 한국과 미국이 생명보험 시장 개방에 합의했다.
합작투자 형태로 미국계 보험사의 국내 진출을 허용한 것.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에게도 굳게 닫혀 있던 생명보험업에 신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이로써 열렸다.
시장개방에 응하지 않을 경우 바로 ‘슈퍼 301조’를 발동하겠다는 미국 측의 으름장으로 시작된 협상 막바지의 최대 난제는 진입기준. 사사건건 간섭하는 미국에 한국은 ‘슈퍼 301조가 아니라 3001조가 발동되더라도 기준은 우리가 정한다’고 맞섰다.
연말께 시장진입 기준이 알려졌을 때 기존 생보사들이 들고 나섰다.
합작사는 물론 내국사(전국 영업권), 지방사, 순수 외국사 설립까지 허용했기 때문이다.
반발하는 기존 생보사들을 금융당국은 이렇게 설득했다고 전해진다.
‘주변에 음식점이 많이 생기면 시장규모가 커져 오래된 음식점의 매출은 더 오르는 법이다.
외국계 몇 개만 들어오면 순식간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는 반면 신설사를 수십 개로 늘리면 외국계에 돌아갈 몫이 적어진다.’ 결국 6개였던 생보사는 합작사에 내국사ㆍ지방사ㆍ외국사를 합쳐 33개로 늘어났다.
금융당국이 생각했던 ‘물타기’와 ‘원조집 이론’이 주효했는지 1987년 12조원을 약간 웃돌던 생보업계의 총자산이 300조원대를 넘어선 오늘날 국내 대형사의 시장지배력은 여전하다.
문제는 부실화.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한 신설사들의 퇴출과 합병으로 생보사 수는 22개로 줄어들었다.
공적자금도 적지않게 들어갔다.
요즘은 외국계의 약진도 눈에 띈다.
생보시장 개방 21년. 사공일 당시 재무부 장관과 강만수 보험국장이 주도한 개방정책에 대한 평가는 극히 엇갈린다.
‘훈장감’이라는 극찬의 반대편에 거품과 손실을 키웠다는 지적이 상존한다.
(권홍우 편집위원.2008.서경.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⑧ 스웨덴-러시아 간 니슈타트 조약 체결(1721) : 9월 10일 니슈타트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제2차 북방전쟁 중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이 종결되었다.
제2차 북방전쟁은 16, 17세기에 스웨덴이 발트 해 연안에서 영토를 늘려나가자 이웃한 러시아, 덴마크-노르웨이, 작센-폴란드 등이 이에 반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기회를 엿보던 각국은 1697년 스웨덴의 카를 11세가 죽고 당시 14세에 불과했던 카를 12세가 왕위에 오르자 반(反)스웨덴 동맹을 결성해 스웨덴에 맞섰다.
그러나 카를 12세의 연이은 승리로 반스웨덴 동맹의 위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1709년 7월 8일 전력을 재정비한 러시아 군대가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군을 무찌르자 이를 계기로 반스웨덴 동맹이 다시 형성되었다.
전세는 역전되어 동맹세력은 1709년 가을 발트 해 연안의 스웨덴 점유지들을 빼앗기 시작했다.
카를 12세는 재기의 기회를 노렸지만 1718년 11월 프레데릭스할트 전투에서 전사했다.
후손이 없었던 카를 1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프레드리크 1세는 1719~21년 여러 차례의 평화협상을 추진했다.
니슈타트 조약도 이 평화협상들 중 하나였으며, 이 조약에 따라 스웨덴은 잉그리아․에스토니아․리보니아 및 핀란드령 카렐리아의 일부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했다.
그 결과 발트 해 지역에서 스웨덴의 영향력이 약화되었으며, 러시아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⑨ 유엔 핵실험금지조약 채택(1996) : 유엔 총회는 1996년 오늘 일체의 핵실험 금지를 규정하는 CTBT,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안을 채택합니다.
기권 5표를채택합니다.
이로써 CTBT 채택을 둘러싼 제네바 군축회의가 1994년 1월 시작된 이래 2년 8월개월만에 세계 모든 국가들이 핵실험 금지를 위한 근거를 마련합니다.
CTBT안 통과는 그동안 탐지가 어려웠던 수중실험에 대한 검증체제를 도입하고 지하핵실험 등 장소와 형태를 불문한 모든 핵실험 금지를 명문화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날 표결에 불참했습니다.
⑩ 노르웨이 나치협력자 사형선고(1945) :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노르웨이의 비드컨 퀴슬링 !
노르웨이 육군 장교 출신인 퀴슬링은 제2차 세계대전중에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독일 점령하에 노르웨이의 총리가 된 퀴슬링은 천여명의 노르웨이 유대인을 집단 수용소로 보냅니다.
1945년 오늘 퀴슬링은 노르웨이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⑪ 미 나치주의자 록웰 체포(1966) : 미국에서 백인 지상주의를 주창해온 미국 나치당 당수 링컨 록웰 !
1966년 오늘 미국 시카고에서 시위를 하던 중 경찰에 체포됩니다.
록웰은 인종분열을 부추긴 혐의로 기소되지만 곧 풀려납니다.
해군장교 출신인 록웰은 아돌프 히틀러를 자신의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흑백 갈등이 미국 전역에서 절정에 달하던 1960년대 중반 !
록웰은 자신이 유대인과 흑인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선언합니다.
일년뒤인 1967년 8월 록웰은 버지니아 알링톤에서 익명의 암살범에게 저격당합니다.
범인은 그해 초 당내 분열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축출된 록웰의 보좌관패트러인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⑫ 미군 태국에서 철수 시작(1973) : 1973년 오늘 !
태국의 북부 남퐁 공군기지에서 미군이 철수를 시작합니다.
1965년 베트남전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이웃나라들의 공산화를 막기위해 태국에 병력을 주둔시켰습니다.
1973년까지 4백여대의 전투기와 공군병력 3만 5천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가운데 보름전에 합의된 미군 병력의 단계적 철수계획에 따라 오늘 일차적으로 백여대의 전투기와 3천 5백여명의 미군이 철수합니다.
⑬ 이탈리아 자동차 경주대회(1978) : 1978년 오늘 이탈리아 몬자 경기장 !
세계에서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자동차들이 경주에 참가해 이제 막 출발하고있습니다.
자동차들이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벌입니다.
열대의 자동차가 연쇄적으로 충돌해 순식간에 자동차들이 화염에 휩싸입니다.
이 사고로 스웨덴의 로니 피터슨 선수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다시 시작된 경기에서 피터슨의 팀동료 마리오 안드레티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⑭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이 베니스영화제서 대상(1951) :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 1951년 9월 10일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일본영화 혹은 동양영화가 세계에 처음으로 널리 알렸졌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더불어 1950년대 일본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이다.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졸업 후 화가를 지망하여 18세 때 니카전에서 입선하고, 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에 참여하여 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한다.
그러나 1932년 궁핍한 생활과 피로 때문에 동맹에서 탈퇴하고, 동시에 좌익 사상에 대한 열정도 식어버리고 만다. 1936년에는 자립을 하기 위해 도호의 전신인 P.C.L. 영화제작사에 조감독으로 입사하는데, 주로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 밑에서 조수로 일하며 극본 쓰는 법도 배운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도호에서 '스가타 산시로(姿三四郞)'로 감독 데뷔를 해, 1950년 중세를 배경으로 한 '라쇼몽(羅生門)'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하나의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범인, 피해 자, 목격자 등이 자신에게 유리한 각기 다른 4가지의 진술을 한다는 이야기로 인간의 에고이즘이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후 그는 '이키루(生きる)'(52) '칠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54), '거미 집의 성(蜘蛛巢城)'(57), '요진보(用心棒)'(61), '붉은 수염(赤ひげ)'(65) 등의 작품을 남겼다.
⑮ 최초의 음주운전 : 1897년 9월10일, 런던. 도로를 갈지(之)자로 달리던 택시 한 대가 건물을 들이받았다.
운전자 조지 스미스(25)는 현장에서 체포돼 즉결심판대에 올랐다. 맥주 두세 잔을 마신 뒤 운전대를 잡은 스미스에게 법원은 1872년 제정된 ‘면허법’에 근거해 벌금형을 내렸다.
벌금 액수는 불명확하다.
20실링과 25실링, 1파운드였다는 세 가지 서로 다른 기록이 전해진다.
분명한 것은 세계 최초의 음주운전 적발사례라는 점이다.
맥주 몇 잔에 취할까 싶겠지만 당시 맥주의 알코올도수는 요즘보다 두 배가량 높았고 맥주잔은 1.14리터짜리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다.
스미스가 몰았던 택시가 엔진출력 3마력에 최고 시속 14.5㎞인 전기자동차여서 인도로 뛰어드는 차량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기에서 의문이 들 법하다.
‘전기자동차’라고?
요즘도 실용화하기에는 문제가 적지않은 전기차를 19세기에 택시로 운행했다니. 의외로 그랬다.
전기자동차는 자동차용 가솔린 내연기관이 발명된 1886년보다 훨씬 전인 1873년부터 선보였다.
전지(배터리)의 출력이 떨어지고 자주 갈아야 한다는 단점에도 영국에서 전기자동차는 인기를 끌었다.
어차피 적기법(시속 6.4㎞ 이내로 속도를 제한한 법) 때문에 빨리 달릴 수 없는 마당에 전기차는 조용하고 승차감도 좋았기 때문이다. 친환경 미래형 자동차로 전기차가 각광 받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최초의 음주운전 적발로부터 190년이 지난 오늘날, 음주운전은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지만 한국만은 예외다.
대대적인 예방 캠페인에도 음주운전으로 사람이 하루 3명꼴로 죽어나간다.
한국인의 음주운전은 세계에서도 알아준다.
런던의 택시 안에 ‘음주운전 금지’라는 한글 안내판이 붙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권홍우 편집위원.서경.2007)
⑯ 중립국 스위스, 유엔 가입(2002) : 동서대립의 완충지 역할을 하며 영세중립국을 표방해 오던 스위스가 2002년 오늘 유엔에 190번째 정회원국으로 가입한다.
이로써 스위스 정부는 냉전시대에 평화협상 장소를 제공했던 중립국 지위를 벗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새롭게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스위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국제적 군사동맹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⑰ 이집트 반정부인사 숙청(1981) : 1981년 오늘 !
이집트 정부는 반정부인사 검거조치를 발표합니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회교 과격파를 비롯한 정치인과 언론인등 천5백여명이검거 숙청됩니다.
다음날 99.4%의 국민이 이번 조치에 찬성했다는 정부의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됩니다.
그러나 회교 과격파세력은 사다트 대통령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사다트대통령은 10월 6일 대 이스라엘 승전기념 8주년기념식에서 현역 포병중위 할리드와 회교극단주의 단체의 조직원 3명에게 총격을 받고 암살됩니다.
⑱ 美버밍햄 백인학교에 흑인 등교(1963) : 소녀는 꿈이 많았다. 그러나 그에겐 금지된 일이 너무나 많았다.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 식사도, 호텔에서의 하룻밤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허락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피부색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다행히 소녀는 좌절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러시아 전문가로 진로를 바꾼 뒤 스탠퍼드대 부총장과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거쳐 미국 국무장관이 됐다.
콘돌리자 라이스. 그는 “나를 강하게 만든 건 인종차별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홀로 일군 기적은 아니었다.
라이스가 백인들만 다니던 고교에서 공부하며 명문대에 진학하기까지는 교내 ‘흑백분리’에 저항했던 수많은 이의 헌신이 있었다.
라이스가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낸 미국 앨라배마 주 버밍햄은 ‘남부의 심장’으로 인종차별이 특히 심한 도시였다.
1963년 9월 10일 그곳에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흑인 학생 20명이 백인학교에 등교하게 된 것.
9년 전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는 위헌”이라는 ‘브라운 판결’이 나왔지만 남부는 인종통합의 사각지대였다.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리스는 백인학교 입학이 허가된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기 위해 경찰력까지 동원했다.
존 F 케네디 정부가 주(州) 병력을 연방에 흡수시키는 극약처방을 내린 끝에 흑인 학생들은 학교 문턱을 넘어갈 수 있었다.
백인들은 맹렬히 저항했다.
10일 아침 흑인 여학생을 태운 차가 학교 정문에 들어서자 학생들은 “우리는 케네디와 검둥이를 증오한다.
우린 월리스를 원한다”고 외쳤다.
또 학생들의 등교 거부로 일부 학교 출석률은 30%대까지 떨어졌다.
우여곡절을 거쳐 1988년 무렵엔 남부 흑인 학생 중 43%가 백인학교에 다니게 됐다.
그러나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991년 대법원이 인종분리를 막기 위해 버스 통학을 강제하던 정책을 포기하고 집 근처 학교에 다니도록 허가하면서 새로운 인종분리가 시작됐다.
빈곤층이 밀집한 도심의 공립학교는 흑인학교로, 부유층이 사는 교외 사립학교는 백인학교로 굳어진 것이다.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흑인 학생 셋 중 한 명은 유색인종이 90%를 차지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2005년 모교인 버밍햄의 브루네타 힐 초등학교를 찾아가 흑인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학교에 다니던 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여러분은 대통령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좀처럼 백인 짝꿍을 만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제2의 라이스’는 여전히 멀기만 한 꿈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2007)
⑲ 사우디 석유 무기화 선언(1977) : 세계 최초의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 !
1977년 오늘 하루 생산 원유량을 8백 50만 배럴로 제한한다고 선언합니다.
이번 선언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빼앗은 시나이반도, 가자지구등의 아랍영토를 반환하도록 국제사회가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것입니다.
1년 3개월 뒤인 1978년 OPEC회의는 석유가격을 단계적으로 14.5% 인상한다고 결정합니다.
이번 원유가 인상으로 세계 경제는 1973년 1차 석유파동에 이어 두번째 석유파동에 휩쓸리게 됩니다.
⑳ 헝가리 동독난민 서독행 허용(1989) : 1989년 9월 10일 밤 독일 브레멘의 기민당 전당대회장 앞으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극심한 갈등 속에 있던 헬무트 콜 총리와 하이너 가이슬러 사무총장 간에 벌어질 흥미진진한 논쟁을 지켜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밤 자정부터 헝가리에 있는 동독 난민들은 본인이 원하는 나라로 이주할 수 있습니다.”
콜 총리는 의기양양하게 발표했다.
기자들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간 헝가리에서 줄러 호른 외교장관이 “헝가리가 더는 난민캠프가 될 수 없다”며 8000명에 가까운 동독인의 서독행을 허용할 것이라고 선언하자 상황은 분명해졌다.
당시 서독으로 가기 위해 국경 넘어 헝가리에 몰려간 동독인 난민들의 처리 문제는 탈냉전 기류에 휩싸여 있던 유럽의 최대 현안이었다. 동독인들은 헝가리 도착과 함께 수용소로 보내졌지만 헝가리 정부로서도 수천 명으로 불어난 난민들을 마냥 붙잡아둘 수만은 없었다.
이 문제의 해결은 기민당 내 쿠데타 위기까지 직면해 있던 콜 총리가 향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준비해 온 회심의 승부수였다.
당면한 민족문제의 해결 소식에 기민당 내분이 무슨 뉴스거리가 되겠는가.
그는 이미 8월 말 헝가리의 미클로시 네메트 총리와 호른 외교장관을 초청해 비밀회담을 벌였다.
민주화 바람이 불던 헝가리로서는 동독 난민 문제로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서독의 경제적 지원도 필요했지만 바르샤바조약기구 동맹국인 동독을 저버리기도 어려웠다.
결국 헝가리로부터 동독 난민의 서독행 허용 약속을 받아낸 콜 총리는 여러 차례 어떤 대가를 바라는지 물었다.
하지만 네메트 총리는 “우리는 사람을 팔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콜 총리는 “당신의 이 결정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회담 후 콜 총리는 5억 마르크의 대헝가리 차관을 승인했다.
다만 이 차관은 헝가리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야 제공됐다.
콜 총리에게 정치는 철저하게 주고받는 것이었다.
(귀도 크놉의 ‘통일을 이룬 독일 총리들’)
어쨌든 이렇게 물꼬가 트인 동독인의 탈출 행렬은 헝가리뿐만 아니라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로, 급기야 11월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졌다.
탈냉전이라는 흐름 속에 철저한 손익계산으로 과감한 결단을 해낸 콜 총리의 실용주의 리더십이 엮어낸 작품이자 행운이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2008)
㉑ 대 이란 경제봉쇄 : 1951년 9월10일, 영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봉쇄령을 내렸다.
상품수출과 원유수입을 금지하고 금융거래도 동결시켰다.
민족주의자 모사데그가 총리에 선출된 직후인 1951년 5월 단행한 석유 국유화에 대한 보복으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영국은 경제봉쇄 이전에 이란에 대한 즉각적인 군사작전을 모색했으나 미국에 막혔다.
한국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중동산 원유의 40%를 생산하던 이란이 싸움터로 변할 경우를 두려워한 미국은 영국의 군사행동을 말렸다.
이란은 영국이 떠나도 순익의 25% 지급과 고용승계, 원유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했지만 영국은 어느 것 하나 받아들이지 않고 2차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함대를 보냈다.
이란은 봉쇄로 고통을 겪었다.
하루 66만배럴에 이르던 원유생산이 경제봉쇄 이후 2만배럴로 떨어져 경제난에 시달렸다.
이란은 왜 국유화에 나섰을까.
영국의 폭리 탓이다.
영국이 원유 판매순익의 70%를 챙기는 구조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터.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계 석유회사와 이익을 절반씩 나누는 이익반분협정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영국에 같은 협정을 요구했으나 '허튼 소리'라는 반응을 받고는 국유화에 매달렸다.
영국의 대응은 용공혐의 조작. 총리직에 복귀한 처칠은 첫 임기를 맞는 미국의 아이젠하워와 손발을 맞춰 1953년 '아직스 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이란군부 쿠데타를 사주해 모사데그 총리를 쫓아냈다.
석유도 되찾아 미국과 영국이 각각 40%, 나머지는 프랑스와 네덜란드계 석유회사가 나눠먹었다.
경제봉쇄는 옛날 얘기가 아니다.
영국이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와 다른 점도 있다.
끝까지 버티겠다는 이란의 태도가 그렇다.
미국과의 대립구도에는 1953년에 당했다는 학습효과가 깔려 있다.
(인터넷한국일보.2009)
㉒ 기타 오늘의 역사㉓ ⑳㉔㉕㉖㉗
1813 올리버 페리가 이끄는 미국해군대. 이리호 전투서 영국군 격 퇴
1823 스페인으로부터의 남미독립투쟁을 주도한 시몬 볼리바르 페 루 대통령에 지명됨
1846 엘리아스 호웨, 재봉틀 발명특허 획득
1885 스크랜톤(Dr.W.B.Scranton)선교사(의사)는 감리교 선교사 정 동에있는 자기집에서 정동감리교병원 개원
1909 예수힝적공부 발행.저자 스왈른.발행처 조선예수교서회 내용 은 예수의 탄생,승천하실 때까지 행적.
1913 회쟝의 본분 발행.저자 드망쥬 주교.대구교구의 회장 지도서 로서 회장들이 본분을 온전히 실행할 수 있도록 회장의 본분 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917 중국 광동군정부 수립. 대원수(大元帥)에 손문
1918 헨더슨 내한.미국 북장로회선교사,교육자.한국명 현거선.경북 대구 계성학교 제4대 교장으로 취임.
1919 상해임시정부, 임시헌법 제정공포. 대통령제 채택
1919 상제르망 강화조약 체결
1919 사이토(齋藤)총독 문화정치 공표
1919 피아블로한인감리교미순 설립.미국의 한인 감리교회.피아블로 지방에 거류하던 한국인들이 감리교미순을 설립함.
1919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해체
1921 총회.경북노회.경안노회 분립.경북노회는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제10회 총회에서 경안노회 분립.노회처소는 경북노회를 대구 로.경안노회는 안동으로 함
1934 만주희년전도회 기념.한국선교 50주년을 기념해 조직된 장로 교 만주전도회.평양숭실학교에서 희년기념예배로 거행함.
1938 한국장로교총회 신사참배 결의
1940 나치 독일기, 영국 버킹검궁을 폭격
1943 독일군 로마점령
1946 부산일보 창간
1946 맥아더 원수, 일본 관리방침 성명
1946 영국-소련 통상협정 런던서 조인
1951 인도, 대일(對日)전쟁 종결 선언
1952 서독, 대(對) 이스라엘 배상협정 조인
1953 북괴군 포로들을 비무장지대로 이송 시작
1953 주한미군, 송환거부하는 14,000여명의 중공군과 84명의 북괴 군 포로들을 비무장지대로 이송 시작
1955 프랑스-모로코 자치협정 조인
1956 한국기독교학사회 창립.기독교연합단체.기독교인 학사간에 영 적 교제를 두텁게 하고 개인의 인격 완성을 도모하는 목적.
1957 헝가리문제 유엔특별총회 열어 대소(對蘇)비난 37개안 결의
1960 일본 NHK 등 8개 방송국서 컬러TV방송 개시
1960 아베베, 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
1960 김종필 중령 등 육사 8기생 11명 현석호 국방장관에게 정군 (整軍)을 건의
1962 조두형 유괴사건 발생
1963 케네디 미국대통령, 앨러배마 주병(注兵)을 연방군에 편입
1963 미국 흑인, 버밍햄 백인학교에 첫 입학 표시된 상세내용을 조 회할 경우 1건당 50원의 요금이 부과됩니다.
1970 상공부,우리나라 처음으로 불량상품전시회(406개 업체 1,539 점)
1974 기니비사우,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1976 英-유고 여객기 공중 충돌, 탑승자 176명 전원 사망
1977 사우디, 석유무기화 재선언
1980 미국, 중공에 군사장비 판매를 허가
1980 시리아, 리비아 통합을 공식선언
1980 울진 원자력발전소 1호기 준공, 용량 95만kw
1981 폴란드 노조, 자유비밀총선 촉구
1982 소련, 국제전화 폐쇄
1983 후세인 요르단 국왕 내한
1986 한강종합개발사업 4년 만에 준공
1987 보험회사 전면개방
1994 참여 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참여연대) 창립
1994 인천 송도 해상 신도시 기공
1996 배타적경제수역(EEZ)법 발효
1996 유엔총회,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채택
1998 김우중 대우그룹회장, 제24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 대
1999 일본 대중문화 2차 개방 발표
2001 골프선수 박희정, 미LPGA 윌리엄스챔피언십 골프대회에서 우승
오늘의 인물
① 김 억(金億 ; 1893 - 1950.9.10납북) : 평북 곽산 출생의 시인.
호는 안서.
저서는 우리 나라 최초의 번역시집으로 1921년 발간된 <오뇌의 무도>, 타고르의 번역시집 <기탄자리>, 창작 시집 <해파리의 노래><봄의 노래><금모래><지새는 밤><먼동이 틀 때> 등이 있다.
⇨12월 24일.
⇨9월 7일.
② 신기질(辛棄疾 ; 1140 - 1207.9.10) : 중국 남송(南宋) 때의 시인.
자는 유안(幼安).
호는 가헌거사(稼軒居士).
시문의 명수로 처음 금에 살았으나 뒤에 남송을 섬겼다.
금나라에 대해 주전론을 폈으며, 호북․ 호남 방면의 군사(軍事)에서 활약하였다.
호방한 성격을 반영하여, 시사(時事)를 깊이 한탄하는 격렬한 시풍으로 일파를 이루었다.
작품에 사집(詞集) <가헌장단구(稼軒長短句)>등이 있다.
③ 황 현(黃玹 ; 1855.12.11 - 1910.9.10(음8.7)) : [요약] 조선 후기의 우국지사(憂國之士)인 학자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피탈이 되자 국치(國恥)를 통분하며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하였다.
《매천야록(梅泉野錄)》은 한국 최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
본관 장수(長水)
호 매천(梅泉)
별칭 자 운경(雲卿)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전남 광양(光陽)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62)
주요저서 《매천야록(梅泉野錄)》,《동비기략(東匪紀略)》
↑ 황현선생 흑백사진 / 전남 구례군 광의면 매천사.
[본문] 본관 장수(長水).
자 운경(雲卿).
호 매천(梅泉).
전라남도 광양(光陽) 출생이다.
시문에 능하여 1885년(고종 22) 생원진사시에 장원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 향리에 은거하였다.
1910년(융희 4) 일제에 의해 국권피탈이 되자 국치(國恥)를 통분하며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하였다.
이듬해 영·호남 선비들의 성금으로 《매천집(梅泉集)》이 출간되고, 한말 풍운사(風雲史)를 담은 《매천야록(梅泉野錄)》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총서(史料叢書) 제1권으로 발간되어 한국 최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그 밖의 저서에 《동비기략(東匪紀略)》이 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두산백과사전)
⇨12월 11일.
⇨ 2월 29일.
④ 박순천(朴順天 ; 1898.9.10 ~ 1983.1.9) : ⇨1월 9일.
여류정치가.
본관 밀양(密陽).
본명 명련(命連).
경상남도 동래(東萊) 출생.
1917년 동래의 일신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마산의 의신여학교 교사로 있을 때 3·1운동에 참가하여 지도적 활동을 하다가 수배되어 일본으로 피신, 그 곳 요시오카[吉岡]여자의학전문에 편입하였으나 1년 후 수배인물임이 탄로나 체포되었다.
마산으로 압송되어 1년간 복역하고 1921년 8월 출감하였으며, 이 무렵 남편 변희용(卞熙鎔)을 알게 되었다.
출감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26년 니혼여대[日本女大] 사회사업과를 졸업한 후 28세에 결혼하였다.
경상북도 고령(高靈)의 시댁에서 농사를 돕다가 1939년 상경하여 이우(李禑)공의 소유 건물인 벽돌집을 매수하여 경성가정여숙(京城家政女塾)을 설립하고 교육사업에 열중하다가 8·15광복을 맞이하였다.
1945년 중앙여중 부교장이 되었고, 1947년부터 독립촉성애국부인회 회장을 겸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감찰위원에 임명되었으며, 1950년까지 《부인신문》 사장, 대한부인회 회장, 대한여자청년단 단장 등을 역임하고 1950년부터 2·4·5·6·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한국 여성정치인의 제1인자가 되었다.
20년 가까운 정치인 생활에서 민주당 총재, 민중당 최고위원, 신민당 고문 등 시종 야당지도자로서 일관하였다.
1969년 통일원 고문, 1972년 근명학원(槿明學園) 이사장, 중앙여고 이사 등에 취임하였고, 1976년에는 육영수여사추모사업회 이사장이 되고, 1980년 국정자문위원에 임명되었다.
⑤ 두브노프(Simon M(arkovich) Dubnow ; 1860.9.10 - 1941.
12. ? ) : 두브노프는 동유럽 유대인의 역사연구에 사회학적 관점을 도입한 유대인 역사가이다.
러시아 미스티슬라블(지금의 벨로루시)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에 이미 유대교 의식을 그만두었다.
유대교 신자가 아닌 그가 유대 역사가가 된 것은 조상의 신앙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두브노프는 하시디즘을 최초로 체계적․객관적으로 연구했다.
<하시디즘의 역사 Geschichte des Chassidismus>(1931)는 이러한 연구의 성과물이다.
<유대민족의 세계사 Die Weltgeschichte des judischen Volkes>(10권, 1925~30)는 유대 역사의 사회적․경제적 흐름을 파악한 학문적 가치가 뛰어난 저서이다.
두브노프는 유대 역사를 자치가 계승된 역사로 보았으며, 이러한 자치론, 즉 디아스포라 민족주의를 <민족주의와 역사 : 신․구 유대주의>(러시아판, 1907)에서 피력했다.
1922년 볼셰비즘을 혐오해 베를린에 정착했지만 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 때문에 1933년 다시 라트비아의 리가로 피신했다.
그는 이곳에서 나치에 의해 살해당했다.
⑥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 1897.9.10 ~ 1962.7.8) : 프랑스의 작가.
그의 수필과 소설 및 시는 에로티시즘과 신비주의 및 불합리에 대한 그의 정신적 탐구를 표현하고 있다.
그는 무절제를 개인의 '주권'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보았다.
그는 파리의 에콜 데 샤르트라는 고문서 학교에서 문서 보관자로 훈련을 받은 뒤, 1942년까지 파리의 국립도서관에서 사서 겸 중세전문가로 일했으며, 1951년에는 오를레앙 도서관 관장이 되었다.
그는 또한 학술잡지를 편집했고, 1946년에는 영향력있는 문학 평론지인 〈크리티크 Critique〉를 창간해 죽을 때까지 편집을 맡았다.
그는 성적 무절제를 다룬 첫번째 장편소설을 로드 오크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는데, 이 책은 1928년에 〈눈 이야기 Histoire de I'oeil〉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또다른 가명인 피에르 앙젤리크라는 이름으로 〈에르와르다 부인 Madame Edwarda〉(1937)을 발표했다
⇨7월 8일.
⑦ 아더 콤프턴(Arthur Compton ; 1892.9.10 - 1962.3.15) : 미국의 실험 물리학자.
보스턴 대학과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공부하고 시카고 대학 물리학 교수․워싱턴 대학교수․총장 등을 지냈다.
물리학의 우수한 연구와 발견 〈콤프턴 효과〉로 1927년 노벨 물리상을 받음.
원자력 연구 개발에 힘썼다
⑧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 1759 - 1797.9.10) : 영국의 페미니스트.
1759년 런던에서 출생한 메리 월스톤크래프트가 1797년 9월 10일 3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영국과 미국에서 역사상 최초의 페미니즘 선언서로 공인 받고 있는 『여성 권리의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1792년) 등 여성 종속 철폐를 위한 여러 저작을 남겼다.
그녀는 여성을 향락의 대상으로 길들이는 당시의 성 이데올로기를 고발하며,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육체와 정신 계발의 권리와 의무가 있는 동등한 인격체임을 역설했다.
또한 그녀는 결혼 생활과 경제 활동의 남녀 평등을 주장함으로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선구자적 면모를 보였다.
⑨ 기타 오늘의 인물
1645 누치 출생. 이탈리아 추기경.1686년 이노켄티우스 11세는 그 를 교황 궐위시 대리인과 성 베드로대성당 참사원으로 임명 함.
1713 영국 과학자-목사 존 니드햄 출생
1795 로이테르달 출생. 스웨덴의 대주교.1827년 를 창설함.
1814 랑케 출생.독일의 루터교도.그는 비상한 재능을 가진 고문 서 학자였다.
1822 미첼 출생. 스코틀랜드국교회 교도.그는 세인트앤드루즈대학교 에서 문학,철학 및 신학을 전공하였고 던니션 교구의 목사가 되었다.
1822 영 출생. 평신도 신학자요 동양어학자.그는 온건한 칼빈주의 자요 평범한 장로교 회원이며,엄격한 본문비평가 신학자임.
1829 캄프하우젠 출생. 독일의 프로테스탄트교도.그리스도를 요셉 과 마리아의 혈육적인 아들로 생각.예수 부활을 어떤 객관적 인 환상과 이상으로 봄.
1839 풍크 출생. 루터교 목사.그는 다수의 신학저서들을 출판하는 데 기여함.출판회사 설립.
1887 이탈리아의 기독교민주당 대통령(1955-62) 그론키 출생
1903 미국 비평가 시릴 코널리 출생
1906 레만 출생. 현대신학자.1974년 이후 리치몬드에 있는 유니온신학교에서 신학과 윤리학을 강의했다.
1914 영화감독 로버트 와이즈 출생
1919 화가 안중식 사망
1929 골프선수 아놀드 파머 출생
1945 맹인가수 호세 펠리치아노 출생
1953 여배우 에미 어빙 출생
오늘의 샘터
① <상록수> : 사시사철 항상 잎이 푸른 나무.
상록수(常綠樹)에는 잎이 넓은 상록활엽수와 잎이 좁은 상록침엽수가 있다.
상록활엽수는 남쪽에, 침엽수는 북쪽에서 자란다.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잣나무 등이 이계통의 나무들이다. 푸르고 맑게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는 ‘상록수’라 일컫는다.
심훈(沈薰)의「상록수」란 장편소설의 주인공들이 여기에 빚대어 진다.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소설 현상에 당선된 작품으로 1935. 9.
10부터 동지에 연재 되었다.
② 매천야록(梅泉野錄) : 한말의 시인 ·학자 ·우국지사인 황현(黃玹)이 기술한 한말비사(韓末秘史).
구분 역사서, 필사본
저자 황현
시대 한말
6권 7책.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집정으로부터 1910년(순종 4) 국권피탈에 이르기까지의 47년간의 한국 최근세 사실(史實)을 기술한 편년체의 역사책으로, 모두 황현 자신의 견문을 기록한 것이나, 끝 부분인 10년 8월 29일부터 9월 10일 순절(殉節)할 때까지는 문인 고용주(高墉柱)가 추기(追記)한 것이다.
원본은 권1이 상 ·하 2책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내용은 흥선대원군의 집정과 김씨세도(金氏勢道)의 몰락, 흥선대원군 집정 10년간의 여러 사건 등 혼란한 정국과 변천하는 사회상 및 내정 ·외교의 중요한 사실을 거의 시대순으로 빠짐 없이 기록하고 있다.
1955년에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료총서(韓國史料叢書) 제1로 간행하면서 황현의 자손들이 작성한 부본(副本)도 실었다.
(두산백과사전)
③ 두브노프의 말(1921) : "항상 기록하고 녹음하라. "
- 시몬 M. 두브노프, 유언 중에서 -
④ 소피아 톨스토이의 일기(1863) : 내 젊음이 가 버린 것이 조금 슬프다.
약간 질투심이 생기고 지쳤다.
내 고통과 고민은 이 네 벽에 둘러싸여 있다.
밖에 있을 때만이 축복받은 듯이 행복하고 마음이 개운해지고 내 가정 생활에 만족하곤 한다.
다시 달빛이 빛나고 밤은 따스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속해 있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어디를 가든 료바의 시선이 나를 따라다닌다.
더구나 어제 피아노 앞에서 본 그의 눈, 그 눈은 나를 전율케 했다.
그때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는 여태껏 그와 같은 이상한 빛을 그의 눈에서 본 적이 없다.
그는 과거의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혹은 무슨 질투감에서 였을까?
하여간 그는 나를 사랑한다.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