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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스겔 48장 35절
제목: 여호와 삼마
여호와 삼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무소부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안계신 곳이 없고
어디에나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여호와 삼마라는 뜻은
항상 계신다. 어디에나 계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원래 제사장의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에 의해서
남쪽유다가 멸망을 당할 때에
여호야김 왕과 귀족들이 사로잡힐 때에
함께 포로로 잡혀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온 이후에
그발 강가 주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온지 5년쯤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선지자의 사명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서가 기록되어진 것입니다.
에스겔서는 크게 세 가지의 말씀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이스라엘 왕과
왕족, 그리고 귀족들,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 이유가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나라가 강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약해서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침략을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갈 때에
영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육신적인 부분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것입니다.
한시에 같이 활동을 했던
다니엘이라는 선지자도
다니엘서 1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손에 붙였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바벨론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주변의 국가들도
결국에는 멸망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어요.
바벨론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이 낫지 않느냐?
하나님이 죄 때문에 우리를 징계한 것이라면
바벨론은 더 징계를 받아야 하는 나라인데
어떻게 우리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할 수 있는지
이러한 의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걱정하지 마라, 지금은 바벨론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잡아왔지만
머지않아서 그 나라들이 멸망당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멸망은 잠깐의 징계이지만
바벨론의 멸망은 영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금요 철야 때도 말씀을 드렸지만
의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징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말한다고요.
징계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심판은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을 심판했다고 하면
그걸로 끝인 것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은 징계하신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
바벨론의 죄는 우리보다 더 가중한 것인데
왜 우리가 이러한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주고 있는 것이 에스겔서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마지막 에스겔 선지자가 설교하기를
징계 중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슬라엘 백성들이 본토에 있을 때에도
그리고 전쟁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도
포로로 끌려가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이 징계하셨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셨구나?
이러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보내서
너희들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
너희들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성경의 말씀을 잘 들여다보면
항상 결론은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반드시 소망을 줍니다.
집을 나간 탕자의 비유를 잘 알잖아요?
상고가 먼데 아버지가 지붕위에서
기다렸다는 표현이 누가복음 15장에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잖아요.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이냐?
아들은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먼 나라로 떠났다는 것은
아버지는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아니한데도, 아들을 기다렸다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떠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이 담긴 것이
바로 여호와 삼마라는 말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는
예루살렘성전 만 팔천척이라는 것은
다시 회복되어질 예루살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만 팔천척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간의 시야로 볼 수 있는 최대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부터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등을 보면
끊임없는 범죄와 타락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광야 때를 말씀 드렸잖아요.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까?
그로인해 40년간 광야생활을 하잖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떠나지 않으셔요.
그리고 그 증거로 세가지를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만나입니다.
만나를 매일 그들에게 내려 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심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죠.
불평한 날도 만나가 내립니다.
그리고 불평한 날도 만나가 내립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날로 만나가 내려요.
이 말은 하나님이 떠나지 않으셨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증거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입니다.
출애굽기 말씀을 보면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지 않아요.
원망 하였을 때나, 범죄 하였을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사라지게 하면
너무나 쉽게 되는 일인데도
계속해서 떠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여호와 삼마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증거는 마실 물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목마르지 아니하였고,
물이 부족함으로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광야의 설교를 할 때가 있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이동하는 생활을 하였는데
구름기둥이 멈추면 그들도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머무는 곳마다 땅만 파면 물이 나와요.
이스라엘을 항상 뛰쫒아오던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 민족이 어떤 민족이냐?
아말렉이라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이 가만히 숨어서 보니까
이스라엘 장막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이 오래 머물지 않고
어느정도 시간이 떠나면 이동한다는 걸요.
그래서 몰래 숨어있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가 나니까
아말렉 민족이 그 자리에 가서
땅을 파니까 물이 나오지를 않아요.
그래서 물이 이스라엘을
따라다녔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물을 통하여
그들을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여호와 삼마예요.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에스겔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함에도
징계를 받았고, 심판을 받았잖아요.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우리도 경험해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은혜를 경험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을 떠나시면서
“너희와 함께 하겠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러한 은혜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바벨론의 포로로
그들이 끌려갔지만 자신이 있는
그발 강가에도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고
또한 그 은혜를 경험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호와 삼마의 축복을 경험하거나
받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여서 이러한 일들이
생겨났다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책을 읽으니까
이러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금술 좋은 노부부가 있었는데
아내가 어떠한 병으로 인해서
실명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아내는 낙심하지 않고
자기가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계속해서 삶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남편이 2년 동안
아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데려다 주는 것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아내에게
혼자서 일터로 나가라고 이야기 합니다.
더 이상 자신도 힘들어서
함께 다닐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아내가 너무 섭섭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부터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혼자 일터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버스 운전기사 뒤에 앉았는데
그 기사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할머니 참 행복하겠습니다.
남편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버스를 같이 타주십니까?”라고요.
남편은 아내에게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자신이 떠나고 나면 혼자 살아갈 아내가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아내에게
이러한 행동을 하였다는 것이죠.
말로는 아내에게 혼자하라고 했지만
남편은 실제로 늘 아내와
함께 하였다는 것이죠.
여러분 함께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못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것을 느끼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러한 은혜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예를들면 이런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해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할 때,
노아와 함께 하시니까 그 가족이
생명을 부지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 잘알잖아요.
나를 먼저 먹게 하라는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였을 때,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사르밧 여인이 경험하게 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과의 전쟁 때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한 은혜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야김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늘
반대로 행동하였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도
그 은혜를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유다 백성들이
이 은혜를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너희가 받으려고 한다면
기도할 때,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내 이름으로 기도할 때,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고
주님은 말씀을 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그곳이 어디냐?
첫 번째로는 교회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사람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예배를 통하여 임재하시고
기도를 통하여서 우리 가운데
임재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가 기도에 힘쓸 때,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가 경험하느냐?
기도하는 사람이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했을 때는
분향단에 문제가 있습니다.
분향단의 향이 흩으러지고
곧장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가는 향이 없으니까
타락을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지지 않을 때,
우리의 기도가 올라가지 않을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경험할 수 없으니까
마음이 너무나 불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이 경험되어지고
영적으로 느껴지니까 염려와 근심이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전혀 염려와 근심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죠.
왜요? 머리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지만
함께 하시는 느낌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성벽이 완전히 무너지니까
근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바벨론의 군사가 막강하여서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죄로 인하여 멸망한 것이라고요.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전혀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요? 기도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해보면 특징이 있어요.
상황이 바뀐게 아니고 환경이 바뀐게 아니고
개선된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속은 너무나 편합니다.
이상하게 기도하면 너무나 편해요.
기도하고 사람을 보면요.
우리 성도들이 장동건 고소영처럼 보여요.
그런데 기도하고 보면요.
정말 이렇게 생길 수 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달라진게 아니예요.
상황이 달라진게 아니예요.
기도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낌으로
내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어떤 분이 그러는 거예요.
기도하고 문제를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만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우리가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의 맥을 짚어보면요.
성령의 역사 이면에는
늘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가 없는 성령의 역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전부 다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가 기도를 강조하느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경험할 수 있고,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
기뻐하는 일에 동참을 해야 합니다.
이것의 가장 으뜸은 제사, 예배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귀찮아했습니다.
남유다 왕들 가운데 타락한 왕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냐?
예배를 무척이나 귀찮아했습니다.
자신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잖아요.
그런데 예배 드릴 때는 왕이 아니예요.
예배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야 할 죄인에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왕들의 타락은
예배를 귀찮아하고
예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일이
예배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때 하나님은 임재하시는 거예요.
여호와 삼마를 누릴 수 있는 것예요.
여호야김 왕때는요.
자기를 위한 음식은 있어도
하나님께 드릴 제물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삶은 계획해도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삶이 계획은
전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2020년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경험하고 싶다면, 주님을 위한
계획도 세우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이 좋아시는 일
하나님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나갈 때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어야지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가장 먼저는 하나님을 위한
기쁨을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에스겔 말씀을 통하여
계속해서 말하는 것은 무엇이냐?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느냐?
바로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야기를 가끔식 합니다.
하나님이 듣고 싶어하시는 말을
우리가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하고 싶은 것 해야죠.
하지만 가끔 한번만이라도 부모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 있다는 것이죠.
주님은 이러한 것을 우리에게 원하신다는 거예요.
2020년에는 저와 여러분이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많이 누리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세요.
우리가 이것을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
이러한 것은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느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느냐?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가느냐?
바로 이러한 것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2020년에는 하나님이
여려분 삶에 함께 하시는
여호와 삼마의 은혜를
반드시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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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로운 한해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하시는 일을 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여호와 삼마의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