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신체장애, 생활고와 사투 중인 장정훈 씨 부부- "늦더라도 괜찮아, 아내와 같이 살고파"
타지서 어렵사리 재혼, “남은 거라곤 당신 하나뿐”
팔다리 마비·언어장애 아내 ‘병원 입원’ 생이별
장 씨 근로 불능·장애등급 탈락 탓에 월세도 밀려
“부부 치료비 부담에 극단적 생각도…” 앞날 막막
남편 장정훈(54·가명)씨는 아무리 날씨가 춥고 비가 내려도 매일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물론 걸어서 15분 남짓 거리에 있는 곳이지만 간 경화, 췌장염까지 더해진 아픈 몸을 이끈 채다. 만성 질환인 정신장애까지 가진 그가 거친 숨을 몰아내쉬며 매번 병원을 찾는 이유는 다름 아닌 뇌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장 씨의 아내가 입원해있기 때문이다. 투박스런 손과 무뚝뚝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언어장애와 신체 한 편이 마비된 아내를 때때로 찾아 “밥은 잘 먹었냐, 아픈덴 없었냐…” 말 걸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살뜰히도 챙긴다. 하지만 버거운 상황에 장 씨는 목소리처럼 가늘게 떨리는 손을 눈가로 가져갔다. “어디 기댈 곳도 하나 없는 저희 부부에게 닥친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가려니 너무 막막해요. 인생에 짐을 지워주기 싫어 혼자 헤쳐 나가려고 했는데 너무 버거워서…”
/20년째 먹어온 수십알약, 마음의 짐 못덜어
뿔뿔이 흩어진 가족, 전처와 이혼 후 딸 못봐/
연말, 어렵사리 취재 일정을 잡고, 둘러앉기도 빠듯한 장정훈 씨의 보금자리엔 이렇다 할 살림살이 대신 길게는 20년 넘게, 또 최근에 새로이 먹기 시작해왔다는 흰 약 봉지들만이 널려있었다. 병원 갈 때 빼놓고선 하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는 장 씨는 밥은 어떻게 해드시냐는 기자의 물음에 “봉사자들이 주고 간 전기밥솥에 대충 끼니만 때운다”고 겸연쩍게 답했다.
앞서 정신장애 3급을 판정받았던 장 씨는 장애 재판정 시 등급완화규제로 인해 최근 장애등급에 탈락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우울증과 불면증, 정신과약 등을 하루에도 수십알을 복용하면서 번번이 마음의 짐을 덜고자 애를 써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장 씨의 과거를 떠올리자면 평탄치 못했던 전처와의 결혼생활이 전부다. 호텔 및 건물의 시설 점검일을 하며 가장 역할을 해오던 장 씨는 어려운 시기, IMF를 거치면서 가쁜 삶을 살게 됐다. 그러다 현실을 도피해보고자 그만 대출을 받아 주식에 손을 댄 것이 더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하루 수십통씩 밀려드는 독촉 전화에 눈칫밥을 먹던 장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가난에 시달리다 삶을 비관해 자연스레 술에 의존하게 되면서 간 경화, 췌장염까지 입었다.
근근이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려 했지만,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우울증과 불면증, 대인기피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실직과 함께 그의 가족은 허망하게도 뿔뿔이 흩어졌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15살짜리 딸 하나가 있는데, 전처와 이혼 후 3살 때 보곤 그동안 얼굴 한 번 못 봤지… 내가 잘한 게 없기 때문에 양보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딸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내 보였다.
/장애연금 70만원, 장기 입원으로 부채만 늘어
온전치 못한 몸·정신장애, 마음엔 장애없어/
그렇게 꼬박 수년을 혼자 지내던 장 씨는 고향인 충북 제천에서 아내 임광희(53·가명)씨와 여느 만남처럼 주선을 받아 만났다. 다른 인연들과 차이가 있다면 정신장애를 지녔다는 사실이었다. 서로 아픔을 지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비록 온전치 못한 몸과 정신장애가 있지만 마음에는 장애가 없었다. 타지인 울산에 내려와서도 아내와 마음을 나눈 덕에 혼인신고만 하고서 살림을 차렸다. 무슨 힘이 나서 살아가나 하던 찰나에 서로가 의지가 될 동반자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만성질환이던 허리디스크로 인해 지체장애 5급을 판정받아 생활을 하던 아내가 급격히 악화되더니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 큰 수술을 앞두고 너무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장 씨는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었다.
애써 강한 척하지만 막상 아내를 만나면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건만, 불행히도 아내의 입원 기간은 회복 상태에 따라 끝을 알 수 없는 터널 속을 걷듯 더 길어질 수도 있음을 전해 듣게 됐다.
이내 곧 아내 임 씨에게 팔·다리 운동마비, 감각마비, 의식저하, 언어장애와 대·소변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요양병원에서 장기 요양치료를 받고 있다. 담담하게 현실을 설명하는 정훈 씨가 “당장 돈 몇 천원도 없는 처지에 좋은 것 사주고 입히고 싶지만, 그렇게 해보지도 못하고 병실에서 외롭게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눈물이 계속 납니다. 되도록 울지 말라고 했는데…”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다 핸드폰의 아내 사진을 꺼내 보고서야 떨리던 입술을 앙다물었다.
/“따뜻한 밥 한술 떠먹이며 같이 살 날 기다려”
고통 이겨내고 환한 웃음 지을 그날을 꿈꾼다/
거기다 야속하게도 행복은 가난 앞에서 휘청거렸다. 변변한 일자리를 갖지 못하니 항상 생활고에 시달렸고,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소득은 장애연금 70만원이 전부였고, 아내의 장기병원 입원으로 인해 수급비는 일부 삭감돼 60여 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이마저도 정부 지원만으로 살림이 유지되기는 너무도 빠듯했다. 60만원의 생활비 중 입원치료 외 건강보험 미적용 항목으로 지출되는 기저귀와 식비, 간식 등으로 약 35만원이 지출되고, 남은 25만원으로 각종 공과금과 생활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월세 15만원을 납부하기에도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월세를 납부하지도 못한 채 점차적으로 늘어만가는 부채와 함께 장 씨 부부의 근심 또한 늘어가고 있다.
“정말 무책임하게 나 혼자 죽어버릴 수도 있지만 배우자는 저렇게 누워만 있는 지금도 저만 믿고 저 하나만 기다리고 있어요. 그 책임감 때문에 힘을 내어 잘 하고 싶지만, 이 몸을 가지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의 말처럼 어떻게 해서든 다시 직장을 구해서 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했지만 마음처럼 상황이 전개되지 않았다. 통증이 너무 심해 밤새도록 겨우 잠이 들고 고통 속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예사였다. 당장 생활비도 절박하지만 그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20년 넘게 약 먹고, 불쌍해서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에요. 얼른 둘다 건강해져서 따뜻한 밥 한술 떠먹여 아침밥 먹이고, 배웅해서 일 보내고 싶어요. 빨리 건강해져서 함께 살고 싶은데 언제쯤 그렇게 될련지…”
아내의 바람처럼 항상 정성을 다해 간절히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 정훈 씨 부부가 할 수 있는 기도의 전부. 내년 봄에는 ‘그땐 그랬었지’ 하며 서로를 다독일 수 있는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래본다.
글=신유리 기자
사진=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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