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싱 여행14 - 수향 안창고진에서 운하에 걸린 다리와 오봉선을 구경하고 안강사 절에 가다!
10월 19일 소흥북역에서 좀 떨어진 绍兴鲁越大酒店(越剑大厦) 호텔을 나와 솽차오 双桥
(쌍교)소에서 118로 버스 를 타고 종점 安昌公交站 (안창공교참)에 내려 삼륜차 로
안창구전 安昌古镇(안창고진)에 도착해 천년 역사를 지닌 오래된 수향 마을을 구경합니다.
수로에 다리 가 많은데 모양이 다른게 특색으로 수로의 동편 좁은 골목에는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시장이 있고 반대쪽 수로 서편에는 간장공장등 특산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데 특히 동편에는 우리나라의 순대 같은게 아주 지천입니다.
여기 안창에서는 순대를 샹창 (香腸 향장)’이라고 하는데 ‘향기 나는 창자’란 뜻을
가지고 있으니 돼지 작은창자 에 돼지고기 70% 와 비계 30% 에 소금, 간장, 설탕,
황주, 오향분, 생강 등의 조미료를 넣어서 말린 중국식 소시지 로
향장은 수작업으로 이뤄지며 ‘어간향장 (魚幹香腸)’이란 간판을 내걸고 판매합니다.
안창구전 安昌古镇(안창고진) 은 896년 전류라는 소흥의 토호가 당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平董昌(평동창)의 반란을 진압해 안창 이름이 생긴후 북송시대에 안창고진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전쟁으로 파괴 되었다가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에 재건된 강남의 수향 입니다.
1.8km 운하 를 두고 북쪽은 상점이고 남쪽은 주택가인데 북쪽에 자리한 또 다른 수향(水乡)
마을인 커쵸우 柯橋(가교) 와 더불어 쌍벽을 이룬다고 金柯橋銀安昌 (금가교은안창)
이라고 불리웠으니 예전에 수로운행이 활발할때는 절강성 동부노선에 중요한 부두 였습니다.
항주와 상해 사이에 자싱 嘉兴(가흥) 서부의 수향마을인 우전 乌镇(오진) 이 아름답고
세련되지만 인공적이며, 항주 서쪽의 수향 마을 시탕 西塘(서당) 이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니 번잡한데 비해 여기 안창은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실제 소박한 생활모습 을
볼수 있는게 좋은데 순대며 소세지, 벗긴 오리 말리기 등 좀 엽기적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라창' 이라 불리는 소시지 는 돼지 뒷다리살과 비계를 순대처럼 만든다음 이처럼 천장에
주렁주렁 널어 놓았으니 지나갈 때 주의하지 않으면 부딪히기도 하는데 건조하는 중에
상할까 그런지 군데 군데에 얼린 생수병 과 함께 걸어놓은게 지혜로운 아이디어인가 합니다.
그러니 우전 乌镇(오진) 같이 규모가 큰 수향에 비한다면 크기가 훨씬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창고진에는 오래되어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다리가 무려 17개 나 남아 있다는
것은 분명히 범상치 않은 일이니... 옛날 중국 영화 를 찍기에 부족함이 없는 마을 입니다.
여기 골목의 반찬가게엔 여지없이 기름에 튀긴 취두부 가 맨 앞으로 나와 있으니 지나갈
때 역한 냄새 가 나서 코를 막아야 하는데 예쁜 아가씨 들이 둘러서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는 디카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데 차마 사진을
찍을수가 없네요? 어떤 한국인은 취두부도 자주 먹으면 고소하고 구수하며 향긋 하다네요?
여러 나무 제품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보이는지라 울 마눌 노인이 직접 제작하는 광경을
한참 쳐더보더니 저기 손바닥만한 작은 떡판 하나를 10위안을 주고 사는데 중국
여자분들이 엄청 큰 목제폼을 고르니..... 그럼 중국 어디든 택배로 배달도 되나 봅니다?
이 동네는 장사하는 사람들은 빼면 바깥에서 마작을 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지만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주민들인 남자들이 찻집에 모여앉아 카드놀이 하는게 더러 보이는데
여자들은 운하에서 빨래 를 하거나 아님 짐안에 서로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창구전 安昌古镇(안창고진) 의 운하에 우펑선 (乌蓬船 오봉선) 이 떠다니는 모습을
보는데 표해록 (漂海錄) 에 보면 최부 일행은 여기 사오싱(绍兴 소흥) 을 떠나
항주를 거쳐 소흥과 비슷한 운하도시 양주(楊州 양저우) 를 지나는데
옛날 수나라 강도(江都)의 땅으로 큰 진이니 번화가가 10리에 걸쳐있다고 적었습니다.
주렴과 24교, 36피 경치는 으뜸이었고 봄바람이 성곽을 어루만지고 생황 노래가락이 귀에
가득한 곳인데 우린 배를 타고 지나갔기 때문에 시내는 보지못하고 보이는 것은
진회루 (鎭淮樓) 뿐으로 누는 곧 양주성의 남문으로 3층인데 지나온 곳에 갑이 2개 있다.
소백역 에 이르니 북쪽에는 소백태호가 있는데 노를 저어 호수 주변 3리 정도를 가니
소백체운소에 이르렀으나 물이 넘치고 바람이 불어서 밤에 호수를 건널수
없는데 양자강 에서 황하에 이르는 동안, 소백호, 고우호, 계수호,
백마호 등과 같은 큰 호수가 많아 나중에는 물결만 봐도 울렁일 지경이었다.
새로 온 호송관이 몇년전에 양주 땅에 표류했던 조선인 이섬(李暹) 의 얘기를 꺼내는데
최부는 제주 정의현감 이섬 이 표류하였다가 귀국한 전말을 묻고 호송관은 답하니...
양주 사람들이 한마다씩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이섬은 고향이 아득히 멀다고 근심했었소. ”
“이섬은 단지 길이 멀다고 근심했지만 내가 슬퍼하는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직
염(殮) 을 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일흔에 가까운 노인으로 집에 계시는데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며 나그네 길은 멀어 비통한 마음에 하늘이 노랗고 앞이 깜깜하오.”
한달여를 뱃길로 왔는데 또 북경까지 두달 이상 여정을 생각하니 막막함이 갈수록 더해진다.
밤인데도 뱃길을 재촉해 백양하 언덕에 정박했다가 새벽에 길을 나서 도원역을 지나는데
부영이 와서 역 서쪽이 유비, 관우, 장비 삼결의묘 라고 일러 준다.
배는 여량산의 암석 골짜기를 흐르는 여량홍의 급류 를 향해 나아가는데
보통의 운항 기술로는 넘어가지 못하니 따로 홍부(洪夫) 를 설치하여 뱃길을 도왔다.
급류가 흐르는 언덕에 돌로 둔덕을 쌓고 배를 몰수 있는 길을 만드니 대나무로 만든 닻줄 을
사용하여 끌어당기는데 한척 을 끌어 올리려면 100명의 인부와 10마리의 소 가 필요하다.
여량홍 의 양옆 수면으로는 돌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가파르고 험한 바위가 높이 서 있다.
꼬불꼬불하던 강 흐름이 갑자기 탁 트여 세차게 밀어닥쳤다. 세찬 기세는 바람을 내뿜으며
벼락같은 소리를 내니 숙련된 홍부 들이 작업을 하지만 작은 배는 거센 물결에 언제
뒤집힐지 몰라 일행의 낯빛이 하얗게 질리지만 최부는 조선 선비로서 의연함을 유지합니다.
일행이 표류 끝에 도착한 소흥과 영파가 속한 절동 지역은 천태산과 보타산 을 비롯하여
불교 가 번성했는데 처음 상륙하여 왕을원을 만났을 때 "조선에도 불교가 있느냐"
는 질문을 받고 최부는 "우리나라에는 불법을 숭상하지 않고 오로지
유술(유학) 만을 숭상 하여 집집마다 효제충신 으로서 업을 삼는다" 고 잘라 말합니다.
최부가 표착한 강남(江南) 지방에는 신라와 고려의 사신과 상인, 승려 들의 족적이
있으니 항주 팔반령에 의천 대각국사 와 관련이 있는 고려사(高麗寺) 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는 "그것은 고려인 이 세운 것으로 지금 우리 조선과는
무관한 것" 이라 하여 애써 외면하니 "불교를 미신" 으로 보고 배척한 것이네요?
그러면서 고구려가 수당 을 물리친데 대해서는 "지모 있는 신하와 용맹 있는 장수가
군사를 부리는 방법 이 있었으며 병졸은 모두가 윗사람을 친애하여 죽은 까닭으로
백만 군사를 두 번이나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오." 라고 자부심 을
보이는데 그럼 "고려는 남의 나라" 이고 "고구려는 선조의 나라" 라는 뜻일까요?
안창고진에서 다리를 건너서 安康寺(안강사) 절 을 보러 가는데 골목입구에 절 표시가 있고
몇십미터를 가지 않아 왼쪽에 노랑색 담 이 나타나는데 입구가 보이지 않아 따라갔더니
거의 150미터나 골목길을 걸어서 드디어 큰 도로변에 나서니 왼쪽편에 절 입구가 보입니다.
5위안 입장료 를 내고는 마치 적국과 인접한 국경의 성문을 연상시키는 엄중한 철문을 지나
절에 들어가면서 보니 문을 장식한 조각 들이 범상치 않는데 마당에는 날렵한 기와집
천왕전 이 보이고 좌우에는 벽돌로 지은 전탑 이며 향을 바치는 곳과 고루 같은게 보입니다.
한 모퉁이를 돌아가니 이번에는 멋지게 생긴 날렵한 자태의 종루 가 나타나는데....
천왕문 에서 사천상 을 구경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옆으로 방들이
늘어서고 뜰에 대형 향로 도 보이며 정면에는 관음전 이라는 건물이 보입니다.
한 모퉁이를 더 들어가서는 비로소 장엄하게(?) 생긴 대웅보전 이 나타나는지라 안을
들여다 보니 우리나라 절에서도 흔히 보는 부처님 이 앉아계시고 돌아 나오니....
부속 건물들이 많이 늘어서 있는게 규모가 엄청 큰 절인데 산사 분위기는 간데
없으니 번드레한게 너무 세속적이고 물욕적 이라는 느낌이 드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내게 있어서 절이란 가파른 산길을 한시간여 걸어 깊은 산속에 호젓이 자리한 소박한 집
몇채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 그윽하며 자동차나 전기 텔레비전이나 전화기가
없는 그런 청량하며 시간의 흐름이 멈춘 산사 입니다만 우리나라에도 그런 절을 없겠지요?
절을 나오는데 이제 사오싱 绍兴(소흥) 으로 돌아가 소흥 동북쪽 안창과는 정 반대 방향인
서남쪽 숲속에 자리한 왕희지 가 노닌 란팅 蘭亭(난정) 으로 가야하니 시간이 없는지라...
절에서 다시 안창고진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여기 安昌综合市场 (안창종합시장) 정류소를
찾아가 806路 버스 노선도를 살펴보니 世貿中心(세무중심) 이 보이니 거기서 166路
버스를 바꾸어 타고 7의원 앞에서 다시 3路 버스 로 환승하면 란팅 蘭亭(난정) 에 갑니다.
이 버스 경덕진역에 가느냐?
쩌거 궁궁치처 취 징더전짠마?
汶个 公共汽車去 景德鎭站 嗎
여기서 몇정거장 가느냐?
따오 징더전짠 하이유지 짠?
到 景德鎭站 還 有 幾站
어디서 타나? 짜이날 쭈 치쳐? 在哪儿 坐 汽車
요금은? 뚜어샤오치엔? 多少錢
중국인과 주고받을 몇마디 어설픈 중국어 회화를 입속에 되뇌이며 버스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