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HWNisSCJEo
🌳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 신 경림 -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하게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니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는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한 사랑 노래 >
실천문학사. 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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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의 신 경림 시인의 어느 가난한 젊은이를 생각하며 노래한 시를 포스팅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를 쓰게 된 사연들을 고 두현 시인의 시평과 함께 올립니다.
결혼조차 두려워 바라보지 못하는 오늘날의 우리 아들 딸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며 희망이 새순 처럼 돋아나는 내일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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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두현 시인 시평
언제 읽어도 콧등이 찡해지는 시 입니다
언젠가 신 경림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 산동네에 살 때였다고 합니다 . 집 근처에 자주 가는 술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그 집 딸과 연인 사이인 한 청년을 만났다는군요 .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열정을 지녔지만, 한편으로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처지를 못내 부끄러워하는 순박한 젊은이였죠.
청년이 고민을 털어 놨습니다 . 그 집 딸울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너무 가난해서 결혼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 하긴 딸 갖은 부모로서는 그런 사위를 맞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요 .
그래서 청년의 그 집 딸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여러 번이나 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시인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둘이 결혼하면 주례도 서 주고 결혼 축시도 써 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말에 힘을 얻어서 둘은 머잖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지요
결혼식장에서 시인은 그들을 위해 ' 너희 사랑 ' 이라는 축시를 읽어주었습니다
🌹 너희 사랑
- 누이를 위하여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찬 골목과 불기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반 병의 소주와 한 마리의 노가리를 놓고
망설이고 헤어지기 여러 번이었지만
뉘우치고 다짐하기 또 여러 밤이었지만
망설임과 해매임 속에서 너희 사랑은
굳어졌다 . 새 삶 찾아 나서는
다짐 속에서 너희 사랑은 깊어졌다
돌팔매와 최루탄에 찬 마룻바닥과
푸른 옷에 비틀대기도 했으나
소주집과 생맥주집을 오가며
다시 너희 사랑은 다져졌다
그리하여 이제 너희 사랑은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낙서처럼 눈에 익은 너희 사랑은
단비가 되어 산동네를 적시는구나
훈풍이 되어 산동네를 누비는구나
골목길 오가며 싹튼 너희 사랑은
새 삶 찾아나서는 다짐 속에서
깊어지고 다져진 너희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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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어느 건물의 비좁고 허름한 지하실울 빌려서 했습니다
청년이 노동운동으로 수배를 받아 쫒기는 신세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요
숨어서 치른 결혼식은 자못 감동스러웠습니다
축하객은 다 합쳐봐야 열 명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얼마나 가슴 저린 사랑의 결실인지 알고 있었기에 저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보냈습니다
그날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온 시인은 두 사람이 겪은 마음 고생과 인생의 쓰라림을 달래는 마음으로 시 한 편을 더 썼습니다
그때 탄생한 시가 바로 ' 가난한 사랑 노래' 입니다
'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너와 해어져 돌아오는 /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첫 구절만 읽어도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방범대원의 호각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밤마다 잠도 이루지 못하면서 낮에는 또 육중한 현실의 기계음에 시달리는 청년의 마음에 어찌 두려움과 그리움이 없었겠습니까 .
'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둥 뒤로 터지던 네 울음 '
절절하다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랑의 아픔 속에서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그가 가난하다고 왜 모르겠는가 ' 말입니다
결핍이 오히려 이들의 사랑을 완성시킨 힘일지도 모릅니다
시인의 얘기처럼 가난이란 인생의 커다란 멍에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외면하거나 꿈을 접을 수는 없지 않은가요
' 가난하기에 더 치열하게 살아야만 한다 ' 고 시인은 이 詩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쉽게 좌절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젊음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신 경림 시인은 스물한 살 때 ' 갈대 ' 라는 시로 등단한 이후, 자청으로 남을 위한 헌사를 붙인 시를 쓴 적이 없습니다
이 두 편의 시는 그가 '이웃의 한 젊은이' 와 '누이'에게 주는 각별한 애정의 증표이지요
그렇습니다
때로는 결핍이 충족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꿈을 꾸고 뜨겁게 사랑하고 ,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게 곧 우리 인생이니까요 .
# 출처 / 한국경제신문
2021. 7 . 21
# 네이버 카페 블로그 " 나는 나무" 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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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이 땅에 힘들어 하는 청춘들에게 작은 희망의 메세지로 전달되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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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
나는 청춘 아니냐 ? ㅠㅠ
첫댓글 애절한 사랑
사랑이 부족하면 결실이 없겠지만
그 아픈 사랑일지라도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길을 택한 노동자 시인을 생각합니다.
고두현 논설위원, 문화부 기자로 만났던 기억이 떠 오릅니다.
따로님 우리는 언제나 청춘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날
그날이 오면 우리는 또 다른 청춘을 불사르겠지요. 늘 감사드립니다.
창녀의 보람을 아느냐,고,
어느 건축가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그는 눈 내린 포도밭을 가리키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새벽, 여관비가 없는 나와 영숙이는
벽치기를 했다 영숙이의 빤스로 정액을 닦고
두 손 꼭 잡고 먹던 자비의 새벽 짜장면
유년의 폭설이 가제리 산 70번지로 영숙이 검은 머리 위로 쌓이고
숙아 숙아,너 꼭 망부석 같으다 신월동 새벽 짜장면집을 나오며
영숙이와 나는 성당에 가서 무릎 꿇고 빌었다
마리아님,임신 안 되게 도와주소서 수도원엔 나무 한 그루 서 있었다
하얀 석회 가루로 세례를 받은 떳떳한 모형 나무가
영숙이 앞치마처럼 휘날리던 가제리
검은 추억의 면발에 붉은 고춧가루 듬뿍 뿌린
짜장면뿐만 아니라 우동과 짜장밥까지 있던 신월동 근처
영숙이의 입술에서도 맛볼 수 있던 매운 양파 냄새
빛과 어둠이 개벽하던 모형의 세계에서
다시 나는 새로운 우주를 건축중이다
여관비 없어 어두운 골목 조립식 담 밑에서 영숙이와
짜장면 먹고 한 탕 더 뛰던
눈 덮인 裸木(나목),자비의 새벽 짜장면집
새벽 짜장면집 - 함성호
오랜만에 이 시가 생각 납니다
청춘을 슬기롭게
세상을 아래로 보면 살아 가는 모습에 마음도 젊어짐을 느꼈습니다
사랑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미성년 같았는데 , 어제 그 공간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
@박영란(근정) 세상 사람들은 공학도가 시를 쓰거나 음악을 . 그림을 그리면 놀란듯 바라봅니다
건축학도인 시인의 가슴엔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모르고 지나치는 편견이었겠지요 .
어제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
시ㅡㅡ 함축된 언어
시ㅡㅡ 글 쓴 이와 같은 감성 느낌 그리고 공감
하여 어려움...
고운 서시님을 위해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찾아서
재미있는 글과 버무려 한 상 씩 올리렵니다 .
첫 댓글에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