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사-카나다 밴쿠우버, 미주사찰
글/김형근
밴쿠버라는 이름은 미국의 워싱턴주와 시애틀 북쪽의 카나다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이중에서 카나다 밴쿠우버가 널리 알려져 있다. 카나다 밴쿠우버는 시애틀이나 타코마에서 차로 2-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카나다는 비자없이 6개월 머무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여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 유학생들에게는 비자받기가 어려운 미국이 힘들 경우 미국대신 유학 오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시 다운타운에는 젊은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볼 수 있다.전체 인구수는 2백만명이고 한인수는 대략 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한국인 교회는 100개가 넘고 성당은 1개, 사찰은 2개가 있다.밴쿠우버는 아름다운 도시, 살기좋은 도시로 소문이 나 있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 어디에 내놓아도 쳐지지 않는 북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국 사찰 서광사(西光寺)가 있다.이 사찰을 방문하면그 아름다운 모습의 문살과 탱화, 벽화와 탁자의 아름다움 모습에 넋을 잃고 만다.
타코마 서미사 일면스님이 시작.
서광사 창립은 타코마 서미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서미사는 1983년부터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일면스님이 통도사 지원을 받아 목조로 된 한국전통사찰 건립을 하여 1996년 6월에 낙성식을 가졌다. 1996년도에 낙성식을 가졌지만 1991년도에 이미 건축이 끝난 상태였다. 탱화, 단청 작업등의 작업에 시간이 걸리고 작년에 입적하신 오래동안 있던 월하 큰스님도 이곳에 와 머무르며 보살계 수계식도 가졌기 때문에 서미사의 대웅전 불사와 활동이 시애틀, 오레곤주 포틀랜드, 카나다 밴쿠우버등에 널리 알려졌다.
서미사가 널리 알려지면서 이 지역의 불교신자들 뿐만 아니라 카나다 밴쿠우버 지역에서도 부처님 오신 날, 백중, 동지, 설, 추석행사에 서미사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서미사 주지 일면스님에게 밴쿠우버에도 한인들도 많이 있고 불교인들도 있는데 사찰이 없다고 설명하면서 이 지역 사찰 건립에 일면스님이 나서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조그만 불상을 놓고 기도할 수 있고 모일 수 있는 조그만 법당을 마련하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서미사 공사에 매달린 일면스님은 관심은 있었지만 여기에 나서 사찰 건립을 위한 재정 조달을 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러한 사정을 당시 통도사 주지였던 태응스님에게 전하게 되었다. 통도사에서는 작년에 입적하신 월하큰스님 이하 여러 스님들이 관심을 가지고 통도사 신도들을 중심으로 화주를 하여 서미사 낙성전에 현 서광사 터를 매입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면스님, 태응스님 등이 큰 역할을 하였다. 이 터는 6만평으로 본사가 하나 들어설 수 있는 정도의 면적이다.
1996년 6월 서미사 낙성식때 본국에서 통도사 주지 태응스님과 부산 대각사 경우스님과 진철, 자원, 우담스님과 몇 보살들도 참석하였다. 서미사 낙성식이 끝난 다음 본국에서 온 스님들과 신도들이 그대로 서광사로 이동하였다. 그리하여 현재의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에 있는 건물에서 바로 개원식을 하였다. 밴쿠우버 서광사의 출발인 것이다. 이때까지 모든 서류관계와 여러 가지 일들을 일면스님이 하였고 초대 주지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일면스님이 매월 한번씩 밴쿠우버로 와서 법회를 하였다. 일면스님은 이러한 기초작업을 하고 주지로 있다가 1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점에 다음 주지를 도반인 태응스님에게 권하여 서광사 모든 직책과 권한을 넘겼다.
회주 태응스님과 카나다와의 인연
현 회주 태응스님은 일면스님과는 아주 젊은 시절부터 수행 도반이었다. 일면스님이 먼저 미국에 왔고 태응스님도 비교적 일찍 카나다에 포교차 왔다. 태응스님과 카나다 인연을 다음과 같다.
오대산에 기도할 때 만난 평등성이라는 신도가 토론토에 절을 만들어 대각사라고 하였다. 이 절에 1975년도에 '신라불교계율사상연구'로 일본 동경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인환스님이 1978년 2월 15일 토론토에 도착하여 영어공부를 하면서 절에서 포교도 하다가 1982년 2월에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평등성보살이 이 세상과 인연을 다 하면서 가족에게 유언으로 대각사를 태응스님에 맡겨서 유지해 나가도록 하라는 유지 때문에 가족들이 연락을 하여 1982년도 말에 오게 되면서 태응스님은 미주땅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였다. 밴쿠우버 공항에서 카나다 영주권을 받고 카나다에 들어온 스님은 대각사를 통도사 카나다 지사로 등록하여 주지를 하다가 본국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대각사는 양일스님에게 맡겼다.
그리고 본국으로 가서 조계사 주지, 통도사 주지 6년, 불교테레비젼방송국 이사장 3년을 한 스님이다. 카나다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스님들중 태응스님처럼 조계종의 비중있는 자리에서 일한 스님은 없다.
태응스님은 불교TV방송국 사장으로 3년간 재임하고 사표를 낸 직후 어딘론가 가서 수행도 하고 차분하게 일에서 떠나 있고 싶었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통도사 주지 6년과 방송국 사장 3년 재임한 스님을 그냥 조용하게 있게 하지 않았다. 당시 조계종단 사정은 총무원장 선거도 있었다.그래서 스님은 그러한 주위 사정을 떠나 밴쿠우버로 멀리 떠나 와 버렸다. 그리고 일면스님 뒤를 이어 2대 주지로 서광사 불사 일을 하였다. 스스로를 “잠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표현하는 태응스님을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월하큰스님 다비식이 끝난 직후였다. 방장스님 입적하였을 때 꼭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해 큰 불효라고 자신을 자책하는 태응스님은 법당에 분향소 만들어 놓고 예불때나 기도때 분향소에 헌향하고 있었다.
자연이 살아 쉼쉬는 서광사 그리고 대웅전 공사
서광사는 절대농지 지역이다. 원형보존을 하는 것이 이 시의 원칙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건축허가를 받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이 곳은 농장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어야 한다. 현재도 한국 채소를 비롯하여 비닐하우스로 여러 가지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때문에 6만평의 넓은 땅인데도 1년에 미화 4천달러 정도의 세금을 내고 있다. 또 서광사를 한 가운데로 가로 질러 수로를 따라 물이 흐르고 있다. 이 수로의 물을 따라 연어가 올라와 알을 낳는다. 연어는 알을 낳고 나면 죽게 되는데 늑대, 수달피 등 여러 가지 동물이 이를 먹고 살아간다. 서광사 경계지역을 따라 돌아가면 포도주는 담는 부르벨리라는 산딸기 나무가 있는데 이곳에서 8-9월이면 노란, 빨깔 등 3가지 색의 산딸기가 많이 열린다. 서광사는 이렇게 자연이 살아 쉼쉬는 곳이다.
본국에서 큰 불사를 많이 한 경험이 있는 태응스님은 서광사 대웅전 불사 작업은 하기 시작하였다. 밴쿠우버의 한국사람들의 정신적 고향이 될 건물을 지을 생각을 하였다. 서미사나 뉴욕 백림사와 같이 나무로 된 대웅전을 건립하였는데 이에 필요한 작업을 주로 본국에서 많이 하였다. 재정적인 것은 본국에서 화주을 해 가지고 한국에서 건축 일을 하여 실어다 조립만하면 완성되도록 한 것이다. 본국의 제일목재소로 나무 대금을 송금하여 이 목재소에서 절측에서 요구하는 나무를 목수가 일하는 현장에까지 실어다 주도록 하였다. 당시 서광사측에서는 미화로 약 20만 달러가 모금되어 있었다. 다만 나무가 크고 수공이 덜 드는 대들보 4개와 14개의 기둥만은 현지 밴쿠우버에서 구하였다.
태응스님에 의하면 서광사 불사 사전 작업준비에 3년이 걸려서 기공식을 1998년 10월에 갖고 공사를 위한 첫 삽질을 하였다. 그리고 대들보를 올리는 상냥식은 2000년 6월 25일 했다. 벽화, 문살, 닷집 작업을 마치고 봉불 및 점안식을 2001년 7월 백중날 하였고 탱화 봉안은 2002년 10월에 하였다. 태응스님은 이왕 세우는 건물을 제대로된 건물을 짓기 위하여 각 분야의 일급 전문가들을 교섭하였다. 작업은 수원 봉녕사 법당 공사한 도목수와 간청 및 벽화 공사한 사람들이 했다. 목수의 이름은 김범식인데 서울 봉녕사 108평 짜리 공사를 한 직후 바로 이리로 와 서광사 작업을 한 것이다. 후불탱화(4미터 X6미터 크기)는 통도사 사명암 동원스님이 3년동안 작업을 하였고 불상조각과 탁자 닷집은 부산 금강불교조각원의 청운스님이 하였다. 벽화는 20여개로 화엄경 문수동자가 선지식 친견하러 가는 변상도 그림이다. 기와는 깨지지 않는 동기와로 하였다. 그리고 대웅전 기단부를 쌓는 석축작업은 2002년에 작업을 마쳤다.
석축과 석탑에 필요한 돌은 서울에서 콘테이너로 12개 실어왔다. 석탑은 월정사 탑을 모델로 국전에 입선한 탑이다. 태응스님에 의하면 “여기에는 마땅한 돌도 없고 작업을 할 수도 없어 한국에서 작업을 하여 실어왔다.”고 한다. “이 돌을 서광사에 내려 놓으니 마치 큰 돌 공장같아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대웅전은 지하 100평, 지상 50평, 석축둘레가 100평이며 내9포, 외7포 건물이다. 수년동안의 작업에는 태웅스님도 손수 많이 참여하였다. 때로는 기중기를 운전하기도 하고 나무와 돌을 나르는 작업이 스님이 승복을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 것이다. 태응스님에 의하면 작업 준비에 3년 작업기간은 2년이 들었고 대웅전 공사비용만 20억이 넘게 들어갔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태응스님의 혼이 들어간 문화재급 대웅전이 완성되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오기 시작였다. . 밴쿠우버 방문한 사람들중에도 이곳에 아름다운 절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많이 방문 한다고 한다. 태응스님은 서광사 홍보가 필요하지만 아직까지는 안 알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 하고 있다고 말한다. 농장 지역이고 요사채를 비롯한 많은 공사를 남겨놓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면 안좋은 일이 생길 수 가 있기 때문이다.
태응스님 지휘하에 한국의 일급 여러 장인들이 만들어 놓은 서광사 대웅전은 밴쿠우버에 사는 불교인들과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에게 큰 마음의 의지처이다. 현재 서광사는 매주 일요일에 정기법회를 하고 있는데 평균적으로 법회에 참석하는 숫자는 장년신도가 80명에서 100명, 어린이 30명, 청년회 20명이다. 세대수는 700세대. 이 정도면 미주에서는 큰 규모의 사찰이다.
태응스님은 “와서 법회에 참석하고 불전 놓고 가면 좋고, 안놓아도 되고. 사람들이 법문듣고, 점심먹고, 가도록 베프는 것에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고 말하며 서광사가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의지처가 되고 돕는 공간이 되는 것에 대해 흐뭇하게 생각하였다.
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국사찰 서광사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름침과 인연을 맺고 또 서광사가 오래 오래 보존되어 미주에서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기를 기원한다.....
2004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