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 장영학 관장
교회 자료 수집과 공유로 한국 교회역사 편찬에 기여
한국 교회의 역사 자료를 중점적으로 수집·보존·진열하는 박물관이 있다. 2009년 6월 27일 문을 연 <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이 그곳. 브리태니커 사전에 박물관(博物館, museum)은 ‘고고학 자료, 미술품, 인문·자연에 관한 학술적 자료를 수집·보존·진열하여 일반에 전시하는 곳’이라 정의하고 있다. 장영학 목사는 본인이 사역하는 책향기교회의 자리에 열린 공간으로 <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을 열었다. ‘단순히 한국 교회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교계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었다.’는 장 목사. 보여주는 박물관이 아니라 과거의 자료가 이 시대 사람들과 호흡하는 살아 있는 박물관 말이다.
한국 교회가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여 유산으로 남기는 일은 191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장로교는 1918년에 <장로교회사전휘집(곽안련 저)>을 출판하였고 1928년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차재명 편저)>를 출간하여 한국장로교회의 초기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감리교와 성결교회는 1929년에 초기 교회의 역사를 정리했구요.”
교계 자료를 모으고 보존해서 후세에 남기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인식 부족과 보관의 어려움으로 인해 나서서 수집하는 사람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장영학 목사는 주일학교 시절부터 교회 주보와 여름성경학교 교재 등을 모아왔다. 본격적으로 역사 자료를 수집하게 된 것은 총신대학교 학생 시절부터다.
“교육전도사 시절 담임목사이던 故박용규 목사님이 20년 전부터 사료를 모아온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습니다. 1979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을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개교회사 연구에서 시작된 자료 수집
◇ 평양신학교 교재
“교회의 역사는 ‘개교회’를 중심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말하는 장영학 목사는 1985년경 한국교회사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당시 개교회사 보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개교회사는 한국교회사의 뿌리이며 핵심입니다. 개교회사를 외면하고 쓴 한국교회사는 진정한 한국교회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개교회사는 복음의 접촉과 신앙 고백 그리고 교회 설립과 발전의 이야기를 실제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존 현황조차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서 개교회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신학대학원 1학년 때 개교회사가 얼마나 편찬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신학대학교 도서관의 서고를 세밀하게 살폈습니다. 하지만 개교회사는 도서관의 도서 항목으로 분류 받지 못하는 책이었습니다.”
당시 총신대학도서관에 30여 권, 장신대 도서관에 50여 권, 연세대도서관에 70여 권이 있었다.
장영학 목사는 국내의 수많은 교회가 편찬한 개교회사가 지방의 신학대학 도서관에도 있을 것으로 판단, 지방의 신학대학교 도서관을 찾아가 일일이 살폈다. 특히 고신대학교 도서관에서는 개교회사가 한 권도 없어 충격을 받기도 했다. “사서장을 면담하여 도서관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개교회사가 도서관 어느 부분에 보관돼 있는지를 물었더니 한 권도 없고 본인이 사서로 10년 근무했는데 교단 내 교회가 개교회사를 기증한 일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개교회사는 서점에 판매하는 것이 아니고 재판을 찍는 것도 아니고 도서관으로 보내지지 않는 자료들이었기 때문이다.
◇ 평양신학교 당시의 주보
당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감리교사학회 회원이자 한국 지적연수원에서 일하는 이진호 교수를 만났다. 그는 90여 권의 개교회사를 소장하고 있었고, 그 후 1987년 140권의 개교회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장 목사는 이진호 교수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수집을 계속해 1988년 <교회사연구> 6집에 194권의 목록을 발표할 수 있었다.
이후 ‘한국교회개교회사편찬에 관한 연구’ 논문 전체가 회지에 실린 것을 계기로 교회사 연구에 대한 관심을 공론화했고, 1991년 ‘한국장로교회사학회’ 창단으로 이어졌다.
관람이 아니라 활용을 위한 박물관
◇ 1930년대 주일학교 교재.
1992년 5월에는 장로교 합동 총회 설립 80주년을 맞아 ‘총회역사자료 전시회’를 충현교회 전시실에서 가졌다. 장 목사가 수집한 합동측 개교회사 88권과 총회 역사 도서와 노회역사 도서 그리고 장로 교단의 역사적인 출판물들을 사진 자료들과 함께 전시했다. 이 때 숨겨진 자료들을 많이 발굴했다. 전국 각지에서 행사에 참석한 수천 명의 목사와 장로들이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본인이 알고 있는 자료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를 알았다고 해서 수집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자료를 소장한 개인이나 교회를 설득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자료가 있는 곳에 달려가기 위해서도 시간과 물질이 사용되어야 했다. 장 목사는 과거 ‘대구지방교회사’연구소를 운영하던 박정규 목사와 호남지역교회사를 연구하며 평양신학교 자료와 졸업장 앨범 등을 소장하고 있던 김수진 당시 황등교회 목사와의 만남을 통해 많은 도전을 받았다고 했다.
◇ 평양신학교 재학생의 필기노트
현재 박물관에는 <상동교회일백년사>, <동대문교회백년사>, <새문안교회백년사> 등 개교회 백년사 130여 종을 비롯해 <호남기독교백년사>, <원주기독교백년사> 등 지역교회사 20여 종, <연세대학교백년사>, <숭실대학교백년사> 등 기독교 학교사 20여 종 등 한국 교회 역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20여 년간 1만 5천 건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는데, 앞서 말한 개교회사는 물론이고 노회사, 지방교회사, 기독교기관사, 개인전기, 회고록, 역사화보, 기념문집, 회의록뿐만 아니라 교회가 서 있는 자리인 향토사와 가톨릭교회사까지 다양한 역사 자료들을 모았다.
특히 장영학 목사는 1만 5천여 권의 도서 자료들과 5천여 점의 문서 자료, 사진들도 한국 교회에 공개하고, 연구자들과 교회 및 기관에 역사 편찬을 위한 자료를 제공해 학술적인 가치를 가진 역사서를 만들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다.
“개교회사 편찬은 역사적인 전문 지식과 열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와 역사 신학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교회와 목회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역사적인 지식을 가지고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였다고 하지만 교회사 편찬으로 가져오는 목회의 갈등과 성도들의 불만이 있을 때 교회가 시험에 들거나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일과 목회자의 미담을 기록하는 데만 치우치지 말고 편찬을 통해 신앙 선배들의 헌신과 수고의 흔적도 찾아내어 기록하되 평신도들의 숨은 헌신의 이야기를 찾아내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는 내용을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장영학 목사는 개교회도 박물관의 자료를 충분히 제공받아 책을 펴내고, 어느 정도 완성된 뒤 미리 전문가에게 감수 받기를 권한다.
“지금도 제게 배달되는 책들 가운데 자료가 없어서 못 넣었는지 공란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갖고 있고 제공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있는데, 인쇄되기 전에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잘못된 사진도 바꾸라고 조언해 줄 수 있지요. 또 해방 이후 자료가 없어 간략하게 기술되는 부분들도 전남노회록 등 최근 발굴한 자료가 있으니 풍성한 자료로 완성도 높은 개교회사를 쓸 수 있게 됐습니다.”
개관1주년 기념 인물전 기획
<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이 개관 일 주년을 맞았다. 앞으로도 모든 자료는 각 교단의 한국교회사 연구자들과 한국교회사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 교회사 편찬위원회 실무자와 관심 있는 이들에게 공개할 것이다. 박물관 자료의 목록을 정리하고 있으니 곧 자료목록도 공개된다.
“1주년 기념으로는 다가올 총회를 전후해서 인물에 관한 자서전이나 회고록 등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이미 구비한 자료도 많이 있지만 <사랑의 원자탄>이나 주기철, 길선주 목사님의 전기 등 초판이나 원자료를 구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다른 박물관이 관심을 갖지 않는 역사적인 문헌들을 소장하고 관리하며 열람하는 박물관을 열게 된 것, 문화선교사역의 열린 공간으로 책향기교회를 들어 쓰시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여러 큰 교회들로부터 담임목사 청빙 제의가 들어와 면접까지 마쳤지만 마지막에 결정이 번복되는 아픔도 겪었다. 사실 장년 100명이 넘는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박물관 운영에 헌신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영학 목사의 사역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책향기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박물관 자료 수집과 연구에 할애할 시간적 여유를 얻는다.
장영학 목사 개인의 힘으로 이 많은 자료를 발굴하고 보관해 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앞으로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자료를 수집 정리해 올리고 새로운 자료들을 공개할 것이다. 한 신학생이 신앙 안에 결단한 내용들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모습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한다. 그가 발굴한 자료들이 한국 교회의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라 믿는다. (2010.7.2.주간기독교/이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