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12월 4일 월요일 맑음
“예, 제가 깜빡 잊고 있었어요. 회장님 죄송합니다” 인옥 형제님의 온화한 목소리가 내 맘을 아주 편안하게 해 주신다. 모처럼 연결된 전화였다.
“이런 전화 드린 제가 미안하죠. 올 해 미납회비 12만원은 보내 주시고, 18년부터는 계좌이체 부탁드릴 게요” “예. 회장님”
형제님들에게 아무런 혜택을 줄 수 없는 회장으로서 희생과 봉사만 부탁하자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한 두 해도 아니고 벌써 10년, 귀찮고, 경제적으로도 손실이 따르는 운사모 활동을 좋은 일이라고 묵묵히 따라주시는 우리 형제님들께 고마울 뿐이고....
운사모 회장은 강산이 한 번 변할 동안, 언제고 눈 한 번 크게 뜨질 못하고, 소리도 항상 낮추면서 지내왔다. 그러면서도 운사모 일이라면 언제나 최우선으로 생각해왔고, 내가 바칠 수 있는 정성이라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었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마음으로 몸으로 견뎌내야 했을 어려움이 어디 한 두 번이었겠는가 ? 그러나, 어떤 힘듦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내가 봐도 신기하다.
모든 어려움을 한 번에 날려버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그 맛 때문에 묵묵히 나아가는 거지. 오늘 들려온 소식 ‘운사모 장학생 출신 오상욱 선수 펜싱 월드컵 대회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는 낭보에 입이 찢어진다. 대학교 1학년 상욱이가 벌써 세계를 제패했다니, 앞으로 다가 올 동경 올림픽에서 가슴조이며 응원할 생각에 가슴 두근거림이 벌써부터 시작 된다. 드디어 세계를 주름잡은 운사모 장학생이 나타난 것이다.
이 게 쉽게 믿을 수 있는 얘긴가 ? 허어 우리 운사모 정말 큰 일을 해냈구나 ! 운사모 형제 여러분 감사합니다. 우리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우리 운사모 정말 복 받을 모임입니다. 이 복이 우리 장학생 뿐만 아니라 모든 형제 여러분께도 고루 스며들어 만사형통하시길 기원합니다.
이어서 현재 장학생, 동산고등학교 안재현 선수가 세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3위, 개인복식 2위, 혼합복식 2위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또 하나의 세계를 놀라게 할 거목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전에서 길러 낸 세계를 놀라게 한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 ? 지금처럼 육상의 우상혁, 펜싱의 오상욱, 탁구의 안재현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거목의 탄생은 예가 없었던 일이고, 이런 기적의 창조에 운사모의 정성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전시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의 소년체전담당장학사로 3년 간 근무하면서 장래가 유망한 운동선수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제일 가슴 아팠었다. 운동선수가 되면 학비가 면제되고, 급식비가 무료이니 가정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운동선수에게 나눠주는 간식을 먹고 싶어 운동부에 가입했지만, 막상 본인이 준비해야 하는 운동화와 운동복 구입에 들어가는 돈이 더 많은 현실을 견뎌내지 못하고 운동을 포기한 선수들의 사정은 가슴을 메이게 했었다. 이 딱한 선수들을 도와서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자는 생각으로 운동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첫 번째 장학생을 선발된 이민 선수는 가정형편 때문에 이미 운동을 그만 두었었지만 운사모 장학생으로 선정 되자 다시 운동부에 가입하여, 지금 국가대표까지 되었지 않았는가 ? 이민 선수 어머니께서 총회 식장에 오셔서 내 손을 붙잡고 우시면서 “고맙습니다” 하실 때 내가 가야할 길이 확실해졌지.
부모님들 다 돌아가시고, 의할머니 아래에서 남매가 자라면서도 꿋꿋하게 카누 선수로 성장한 우리 장학생, 생각만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온다.
전국체전 시합장에 갔을 때, 제일 먼저 달려와 그 고마움을 잊지못해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동안 운사모가 배출한 40여명의 장학생들, 지금은 국가대표로, 실업팀 선수로, 대학선수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그들의 가슴 속에 운사모의 고마움이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언제 어디서 이보다 더 큰 기쁜 소식을 전해 올지 모른다. 이만하면 운사모 활동에 동참한 보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좋은 일이라고 선뜻 가입해 주신 형제님들 중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만두시겠는 의사를 밝히실 때가 제일 안타깝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전화로 한 바퀴 돌린 다음 대전여상 농구부를 찾았다. 우리 장학생 박은정선수를 찾아서다. 여고 농구는 지난 전국체전 한 달 전에 사전경기를 미리 치뤘기 때문에 격려를 하지 못해서 오늘 찾아간 것이다. 나도 바빴지만 은정이도 연습, 시합 일정이 복잡해서 이제야 가게 되었다.
은정이는 그새 2cm를 더 컸다나. 훌쩍 큰 모습이었다. 모처럼 보는 은정이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감독 선생님도 반갑게 맞아주신다,
“은정아. 네 앞길은 네가 개척해 나가는 거야. 이제 고 3이 되지. 네 앞길에 중요한 갈림길이 다가오는 거야. 농구에 미쳐보자” “예, 열심히 할 게요”
“너 박지성, 김연아 발가락 사진 본 적이 있지 ? 그런 노력 끝에 서야 찬란한 앞날을 맞이 할 수 있는 거 알지 ? 운사모 형제님들 모두가 네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 “예, 정말 감사합니다” 둘이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 은정이 잘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