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전과 동태전1)>
지난 회와 마찬가지로, 암 치료를 위한, X선 등의 전자기파와 양성자 등의 입자를 이용하는 두 종류 방사선치료법의 차이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양성자치료를 위해서는 양성자 빔을 방출하는 사이클로트론이라는 가속기를 비롯한 대규모 부대시설이 필요하다(일반인은 보통 환자가 눕는 치료기가 있는 작은 방안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실제 암환자의 몸 안에 양성자를 쪼이기 전까지 수차례의 모의치료와 컴퓨터를 이용한 치료계획을 수립하는 몇 단계에 걸친 사전작업 과정이 필요하다2). 물론 X선 방사선 치료법도 암 덩어리에 최대량의 방사선을 주기 위해 복잡한 계산 과정을 거쳐 치료계획을 수립한다3)고는 하지만 양성자 치료와 단순비교를 해 볼 때 소규모 시설에, 간단한 사전작업을 거친다.
이번 추석명절에도 어김없이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반가운 인사는 잠시. 어머니께서는 곧바로 전을 부치라 신다(몇 년 전부터 명절전날 전 부치는 일은 우리 부부의 일이 되어 버렸다). 올해는 새로운 재료로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새우가 등장했다. 벌초 다녀오시다가 유명한 곳 들러 사오셨단다. 작년엔 웬 굴을 그렇게 많이 준비하시더니... 어느 해엔가는 인삼도 부쳐봤다^^;;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고구마, 호박, 동태에, 지루함을 덜도록(?) 해마다 특별 재료를 추가로 준비하신다. 여하튼... 누군가 그랬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고-,.-
(X선 치료법처럼) 싱싱한 새우는 껍질만 까서 날로 먹거나, 푹 쪄서 먹으면 간편하고 좋다. 그러나 (양성자 치료법처럼) 새우전을 만들어 먹기 위해서는 상당한 설비(?)와 몇 단계에 걸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설비라 함은 휴대용 가스버너에 부탄가스(반드시 여분의 부탄가스가 필요하다. 전 부치는 일은 금방 끝나지 않는다), 식용유, 뒤집개 등을 말한다. 몇 단계에 걸친 준비과정도 필수다. 어머니는 이미 1단계 작업인 새우 손질(일일이 껍질은 물론이요, 머리를 따고 내장 제거를 위해 등도 따야 한다!)과 2단계 작업인 치자물을 준비해 놓으셨다(어머니는 전을 부칠 때 항상 몸에 좋고 예쁜 노란색을 낸다는 치자물을 이용하신다. 전을 부치다 보면 그 노란색에 질려 별로 안 예쁘다^^;;). 마지막 3단계로 새우를 부침가루에 묻혀 치자물에 담궈 기름 듬뿍 있는 프라이팬에 올리면 된다. 앞뒤로 차분히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익혀야 한다(꾀를 부리느라 금방 꺼내면 어디선가 다시 더 익히라는 엄한 명령이 떨어진다^^;;).
올해도 꼬박 반나절 아내와 함께 2인 1조가 되어, 아내가 힘들어하는지 두루 눈치를 살피며, 전 부치는 과업을 무사히(?) 마쳤다. 작년에 고향 다녀오는 자식들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부모님이 싸준 음식들을 다 버리고 간다는 뉴스를 어머니께 말씀드려서 그런지, 올해는 어머니가 전이랑 음식들 싸가란 말씀을 안 하신다. 그래서 송편만 조금 싸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돌아와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하다.
전은 기본적으로 혼자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니다. 그 어떤 음식보다도 누군가에게 주고자 하는 목적을 뚜렷이 담고 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을 부칠 때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훈훈하다. 전을 부쳐서 훈훈한 것인지, 훈훈한 마음에 전이 부쳐지는 것인지 헷갈리긴 하다^^
긴 연휴 덕에 여유 있게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영화관에 가서 ‘아이 캔 스피크’를 보았다. 주인공 옥분 할머니(나문희)가 명절을 맞아 생선전(분명 내가 며칠 전 부친 동태전과 생김새가 똑 같았다!)을 부쳐 아들 손자뻘 되는 박민재(이제훈)와 동생(성유빈)에게 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옥분 할머니의 따뜻한 모습은 나의 어머니와 똑같다(전 부치는 일을 아들내외에게 시키는 것만 빼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런 영화를 보면 별 장면 아닌데도 자꾸 주책없이 눈물이 나온다. 큼큼...
최첨단 과학을 이용한 양성자 치료법을 전 부치기에 빗대어서 죄송스럽긴 하지만, 긴 연휴 중에도 양성자치료를 받아야 하는 소아암환자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치료를 준비하고 시행한 의료진들이 있다면, 마음으로나마 내가 정성스럽게 부친 새우전을 드리고 싶다.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의료진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전 보다 더 영양가 있는, 양성자를 받았으니 금방 쾌유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 땅의 모든 소아암환자들의 빠른 쾌유를 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