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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찬 시인의 '12월의 끝에서'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랑한 날이 미워하는 날보다 많았는지
슬프고 힘들었던 날보다 행복했던 날이 많았는지
12월의 끝에서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고 있어
보석 같은 날들을 가슴으로 살았니 머리로 살았니
얼마나 웃고 살았어 아니면 찡그렸어
맑은 하늘아래 투명한 날들을 뿌연 눈으로 보낸건 아닐까
별이 찬란하던 밤 내가 깨어 있었는지 잠들어 있었는지
난 거울을 봐 거울속의 나를 봐
아름다워 진거야 추해진 거야 무엇이 변한 것일까
밤이 깊어만 가네 한해가 또 저무네
한 해 한 해가 얼마나 빨리도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이번 해와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악몽처럼 여겨져서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올 한 해를 정검해 본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스스로 매겨주고 싶습니까? 올 한해 동안에 내가 목표로 했던 일을 얼마를 이루었으니 나는 성공적인 한 해였다고 자부하고 싶습니까?
돈을 버는 일에, 비자문제, 친구관계, 직장의 일 등에서 많은 성과를 내었습니까? 정말로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서 성취한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평가는 어떠하실까요?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실까요? 아니면 ‘그것이 나와는 무슨 상관이냐?’고 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내 인생의 중간 평가, 혹은 정검을 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첫째는 얼마나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다.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소원을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기다릴 뿐만 아니라 소원을 두고 행동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원을 두고 액션을 취하십니다. 구체적인 행동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냥 두고 보고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나로 하여금 겸손할 수 있도록 시련을 주시고 눈물로 참회할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게을리할 때에는 부지런히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시기도 합니다.
믿음의 대표자인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저절로 겸손해졌습니까? 그가 예수님을 닮아가기까지 그에는 사단의 사자,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평생 따라다니는 가시, 빠지지 않는 고통의 가시가 항상 그를 찌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대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소원은 그저 낭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행동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소원을 두고 붙드시면 절대로 놓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자신이 원하시는 사람을 만들어 내고야 마십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루터는 “하나님의 사랑은 대상을 찾아 헤매시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창조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원을 두시고 우리를 다듬고 만들어서 창조적인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눈치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적인 말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놓아 주시지 않을 것 같으면 고집을 버리고 빨리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멀리서 미적거리다가는 얻어맞게 됩니다.
맞아도 한번만 맞아야지 두고두고 연거푸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미련스럽고 바보짓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어느 방향으로 인도하시는지, 내게 대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이것을 잘 아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일인 것입니다.
올 한 해를 살아오면서 나는 하나님의 소원에 얼마나 부합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십시다. 내가 이룬 일들이 과연 하나님의 소원에 부합한 일인지를 질문해 보십시다.
2. 둘째로, 얼마나 원망과 시비를 없이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원망과 시비, 원망이 내적인 것이라면 시비는 외형적인 것입니다. 안에서 원망이 생기면 그것이 겉으로 폭발되어 나오는 것이 바로 시비입니다. 그러니 원망과 시비는 같은 말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마태복음 20장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포도원의 일꾼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느 포도원의 주인이 포도밭에 일꾼이 필요해서 일꾼을 구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하루 품삯 1데나리온으로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또 다른 일꾼들도 그렇게 계약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점심 정오시간에, 늦은 오후에도 한 무리의 일꾼을 불렀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루가 다 끝날 무렵에 일꾼을 불러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온 일꾼부터 1 데나리온의 임금을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꾼에게도 마찬가지로 1 데나리온을 지불했습니다. 그러자, 하루 종일 일하였던 일꾼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삯을 받은 것에 대하여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은 원망을 하였습니다. 이 원망은 집주인의 관대함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요 시비였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과 시비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원망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는 애굽에 있다고 원망하였고,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는 또 애굽에서 나왔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먹을 것, 즉 만나를 초자연적으로 공급해 주셨을 때에는 고기가 없다고 또 불평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십 년 동안이나 원망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약속의 땅에 이르렀을 때에도 여전히 불평불만을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니런지요.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헤아리지 못하고 나의 욕심과 뜻에 따라서 나의 시간에 주어지지 않는다고 이래서 저래서 원망하고 시비한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영국 크랜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보면 원망과 시비로 가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원망과 시비가 충만했던 자들의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자는 자기 중심이 아니기에 원망과 시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풍부에 처해 있어도, 반대로 빈곤에 처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함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족합니다. 이때에 원망과 시비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올 한 해를 보내면서 나의 처지는 어떠했습니까? 상황을 탓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하며 시비를 걸었던 적은 없습니까? 지금 나의 감사 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 대신 감사하는 마무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얼마나 순전하게 살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다.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좀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세대 가운데서 여러분이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두고서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라고 정의했습니다. ‘어그르지다’는 말은 ‘비뚤어지고 구부러졌다’는 뜻입니다. ‘갈퀴와 같다’는 뜻입니다. 고기를 잡을 사용하는 낚시 바늘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날카롭게 구부러져 있어서 아무데나 잘 걸립니다. 이 세상이 갈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걸고 넘어지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 이 세상을 ‘거스리는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유혹하고 곡해한다’는 뜻입니다. 순수하게 받아 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보다는 곡해하고 오염시키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액면 그대로 받기보다는 비뚤어진 시각으로 봅니다. 순수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낚시 바늘처럼 갈퀴와 같고 순수하지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까?
먼저, 흠이 없어야 합니다. ‘비판을 받거나 지탄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이나 자신 나아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됨, 노블레스 오블리주, 받은 바 은혜를 세상에 흘러 보내는 책임감 있는 삶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순전해야 합니다. ‘순전하다’는 말은 ‘섞이지 않았다’ 혹은 ‘간음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금에 불순물이 하나도 없이 순수한 금을 두고서 ‘순전하다’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우리 성도의 삶도 사람들 앞에서 아무 것이 섞인 것이 없어야 합니다. 솔직해야 합니다. 거짓된 것이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방의 빌미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살았던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 시대는 상상할 수 없는 불경스러운 현장 속에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왕궁 한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수많은 원수가 일어나서 그를 걸고 넘어뜨리려 했습니다. 그를 책 잡아서 넘어뜨리려고 눈에 불을 켜고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 원수들은 다니엘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그를 책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을 다리오 왕에게 건의했습니다. ‘일정기간 동안에 아무도 다리오왕을 제외한 어느 신이나 인간에게 기도할 수 없다’는 법령을 내리게 했습니다. 그 의도는 다니엘이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알고서 그를 제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왕의 법령을 어기게 되어서 결국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다니엘을 불 구덩이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의 원수들은 다니엘에게서 책 잡을 수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으로 시비를 걸어서 넘어뜨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람으로 흠이 없고 순전하였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악한 바벨론의 역사를 완전히 돌려놓지는 못했지만 그 가운데서 흠 없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펼쳐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4에서 우리를 택하고 부르신 이유를 설명합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안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했습니다. 이세상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언젠가 거룩하고 흠이 없이 되어 완전히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진정한 성화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점차 잘 깨달아가는 데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태양처럼 빛나는 영광의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나아갈 때에 우리는 더욱더 우리의 흠과 더러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추하고 못난 사람이며 죄로 오염된 자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될 때에 누구를 원망하고 시비를 걸겠습니까? 사람 앞에서 원망과 시비를 걸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황송하고 부끄러워서 겸손하게 죄를 고합니다. 죄로부터 결단을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크게 깨달은 사람, 하나님 앞에 자신의 큰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이 사실은 그 사람은 더욱 흠 없고 순수한 사람으로 다듬어져 가는 사람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것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상을 비추는 빛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제 아내는 매일 저녁마다 빠짐없이 행하는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하루도 그르지 않고 꼬박꼬박 합니다. 두 달 전에 혈압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직 약을 먹지는 않지만 위기감을 느끼고 매일 매일 혈압을 체크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내의 혈압을 참 희한합니다. 매일매일 혈압이 들쑥날쑥 합니다. 정상인 날은 기분이 좋아 편안해 보이고, 정상 범위를 벗어나면 걱정하면서 오늘 하루 동안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운동을 했는지, 스트레스 받은 일은 없는지를 체크합니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삶도 매일 매일 체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더욱더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일년 동안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체크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1)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소원에 부응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까?
(2) 나는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에 빠지므로 얼마나 범사에 감사를 했습니까?
(3) 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얼마나 흠 없고 순전하게 살았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며 감사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의 삶에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그렇다면 지난 한 해는 잘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욱 분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