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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하천은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에서 발원해 진주시 사봉면 마성리에서 남강으로 합류하는 반성천 21km이다.
반성천은 남강으로 흘러드는 짧은 하천이나 최장 발원지는 오봉산(524m)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장안천이 오늘 올라가는
낙남정맥길 발산리에서 흘러온 반성천보다 약 1km가량이 더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산재를 찾은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분의 신도비(神道碑)가 낙남정맥길 준봉산(隼峰山)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제1차 김시민 목사의 진주성 싸움이 있었고, 1년 뒤 진주성 2차 때 황진 장군을 비롯한 많은 장군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의 한분이 제가 좋아하는 고종후 장군이다
고종후 장군은 전라도 금산전투의 고경명 의병장의 장남이며, 고경명은 금산전투에서 둘째 아들 고인후와 함께 순절하였으나
고종후는 아버지와 동생의 시신을 거두고 훗날을 기약하였고, 그로부터 1년 뒤 진주성 2차 싸움에 400명의 의병들과 합류한다. 1593년 음력 6월 29일 일이다
양력으로 따진다면 칠월 장마기간이라고 해야 할 듯, 11만 병력의 왜군 앞에 진주성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잠시 진주성 싸움 이전으로 돌아가보면 경상남도 진주성 안에는 7만의 인근 백성들이 모여 있었지만
명나라군과 그리고 경상도의 의병과 관군은 모두 왜군 숫자가 너무 많아서, 생사를 보전하지 못한다는 것과
싸워도 이길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진주성을 철저히 외면하였고, 의병장이었던 곽재우, 육전에서 연전연승하던 상주의 정기룡장군 모두 진주성 인근에 있었지만 진주성을 외면하고 돌아간다
경상도 땅이지만 경상도에서 버림받은 진주성을 호남의 황진, 최경회, 김천일, 고종후 그 외... 산 넘고 물을 건너와 진주성에서
고립무원의 전투를 벌이다가 7만의 백성들과 운명을 같이했다
참고로 고경명 의병장의 묘소는 전라도 장성군 제봉산 북쪽에 있으며, 고경명은 불천위(不遷位)로 모셔져 있는데
불천위란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4대 봉사(부모, 조부모, 증조, 고조)가 지나도 영구히 제사를 지내도록 국가에서 허락을 한다는 뜻이다.
(불천위와 국불천위(國不遷位)가 있는데 국불천위는 설총, 최치원, 안유, 김굉필, 이황, 정몽주, 이언적, 조헌, 송시열... 등이 계시고)
고종후 장군은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하셨으며 시신을 찾지 못하여 묘가 없다
그리고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서원 1천 개 중 47개만 살아남아 았는데 그중의 하나인 광주땅 제봉산 기슭에 고경명의 표충사(고경명과 고종후, 고인후 3 부자의 위패를 모신 곳)도 훼철되지 않았다.
제봉산(霽峰山)의 제봉(霽峰)이란 이름은 고경명 장군의 호(號)이며 , 장성땅 황룡강 남쪽과 광주 남쪽에 각각의 제봉산이 있다
효열공준봉고종후 신도비
고종후를 살려라
진주성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군은 전라도로 넘어가는 길목이기에 진주성만 공격하고 물러난다는
일본군의 말을 믿을 수없다며 명군과 일본군의 권고를 거부하고 결국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진주성안에 있던 민관군(民官軍)을 막론하고 모두 전멸한다.
1593년에 의병장 고경명과 장남인 고종후가 전사함으로써 고경명 장군과 두 아들이 모두 임진왜란에서 전사하였는데
진주 성안의 모든 장수들이 고종후를 살리려고 애들 썼지만 결국 전사하셨고
준봉산( 隼峰山 )의 유래 역시 준봉( 隼峰)고종후 장군의 호(號)를 따서 부르게 된 것이다.
이 길을 지나는 정맥꾼들은 꼭 알고 가셨으면 좋겠다
준봉산 아래 발산재
고종후 장군의 신도비를 지키는 노랑은행나무가 늦가을을 알리며 서있고
이곳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자리를 발산리 외곡고개 아래의 문수사로 옮긴다.
문수사 대웅전
아무도 안 계시는지 낯선이의 방문이 껄끄러운지 누렁이만 요란하게 짖을 뿐이고
스님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들어가 부처님께 안전산행 부탁을 드리고
산비탈로 무작정 기어올라 잠시 정맥길을 걷다가
진주시 이반성면 외곡리 사람들이 마산합포구 진전면으로 가기 위해 넘던 외곡고개 인근의 310m 봉에서
창원 산꾼 산꾸니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아무런 조망없는 곳이 오늘 내려갈 반성천 발원지가 이곳 310봉이다.
이곳 정맥길을 다시 한번 더 온다면 창원종주 123km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보며
한때 장거리 산행 실습용으로 많이 가던 지리태극종주 90,5km
초창기에는 힘들었지만 세월이 지난 만큼 가장 쉬운 종주길이 되었는데
장거리는 누가 가장 강한지 겨루는 게 아니라 누가 포기하지 않느냐! 에 대한 물음이다.
하천길 198개 누적거리 1만 652km
인근으로 국군 유해 발굴한 곳으로 보이는데
이곳 능선 비탈을 곧바로 내려서면 마산 합포구 진전면 고사리 마을로
인성산과 서북산이 자리하는 고사리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 장소가 나온다.
지도 참고
고사리 마을은 북한군이 서북산과 인성산 여항산을 오르기 위해서 꼭 빼앗아야 할 산임에 틀림없고
현지의 고사리(거락리) 마을은 인성산으로 오르기 위해서 빼앗아야 할 산이다.
피아간 5천 명 사망한 전투지역
내려온 곳에서
계곡으로는 아직 조용하기만 하고
계곡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물줄기를 발견하고
이곳이 반성천 발원지이며 진주시 이반성면과 일반성면, 사봉면을 지나 남강에 합류하기까지 21km를 지난다.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보이고
계곡으로 물 반,낙엽 반이 보이고
자연은 인간의 흔적을 대부분 지웠지만 돌담은 어찌하지 못하고
돌담은 천년만년 남을듯
계곡에도 나름의 표정이 살아있는데 삶과 죽음이 무한반복이다
스스로 숲의 청소부를 자처하는 버섯인데
식용?
약용?
독버섯?
먹으면 곧바로 골로 가는건 아닌지
살면서 사람 처음 보는지 노랗게 질린듯한 버섯도 두개 보인다.
계곡으로 나무에 기생하는 버섯이 많아 사진만 담아두고
아침에 봤던 문수사로 다시 내려오는 길에
대웅전 주변으로 야생화와 그 외 식물을 키우는 곳으로 내려와
기어오르고 내려오느라 기진맥진 잠시 앉아서 운기조식하는 동안
장독이 모두 다 물구나무서듯 거꾸로 박혀있다... 담을 때는 하늘을 보며 있다가
무엇인가 올려 놓을때 싫든 좋든 땅바닥을 향한다
스님께서 야생화와 식물을 키우시는 듯
뭘 그렇게 많이 드셨길래
배가 볼록한 단지가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대웅전과 낙남정맥 마루금이 저짜 보이고
절 입구에 자리하는 느티나무
딱!~ 요만큼이 내 자리라고 낙엽을 떨구어 두었고
첫 번째 만나는 발산저수지
물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아주 깨끗하다.
백수(百壽) 천수 그리고 만수까지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만수산인가?
멀리 정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만수산이 보인다.
저수지 둑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영 맥아리가 없어 보이고
발산마을을 지나며
예전에는 어느 시골마을에서나 흔히 보이던 돌 담장이였지만
요즘은 시멘트로 담을 쌓기에 돌 담장을 만나기 힘들다
어쨌든 돌담장은 늘 마음 편하게 해 주고
앞으로 발산저수지가 보이고
그 너머 만수산에서 보령산으로 이어가는 산줄기가 용마루인양 서있다.
몇 가구 안 되는 마을에서 오, 폐수가 흘러들 것 같은 곳이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태나 이끼가 없고 물은 깨끗하다
도로 양쪽으로 대나무 숲이 이어지고
발산 저수지 너머로 정맥길의 준봉산이 보이고
내려가야 할 길에 초겨울 들판은 텅 비어 있고
네모진 논이 텅 비기까지 밭 갈고 잡초 뽑고 , 농약 뿌리고...
멀리 좌, 장군대산과 우, 월아산이 보이는데 오늘 저 두 곳 인근까지 가야 하천길이 끝날 것 같다.
발산재도 보이고
그 너머 창원땅 적석산 여불때기 오봉산 줄기도 보이고
조선 중기의 무신(武臣)이셨던 형조판서 김준민 신도비
임진왜란 때 거제 현령으로써 합천 의병장이 되어 진주성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우셨고
이듬에 진주성 2차 싸움에서 전사하셨다.
충의각(忠義閣)
충의각에 자리 잡은 은행나무
1918년에 세운 비각으로 주위의 장군의 갑옷을 닮은 돌담에 이끼가 가득 붙어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대나팔 초식을 보여주는 나팔꽃도 보이고
발산마을의 어느 집 돌담
돌이 식물에게 곁을 내주었고
서로가 옹기종기 모여
기나긴 겨울을 준비하는 맞이하는 모습
지나온 발산재 방향으로
꽃 중의 꽃이란?
배고픈 사람을 살리는 꽃이 아닐까?
조선의 명의 (名醫) 허준선생의 동의보감에 늙은 호박은 부기를 빼준다 했는데
그 당시 호박이 조선에 들어오기 전이라 허준선생은 못생긴 호박과 호박전을 드시지 못하셨다
어쨋던 호박은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며 똥 한 바가지 땅에 묻고 그 위에 호박씨를 심으면
호박이 덩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호박의 영원한 죽마고우 호박벌이 열심히 꿀을찾는 모습도 보이고
물은 깨끗하고
물속에 있어야 할 피라미 가족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갈성리 마을의 하천가에 길게 늘어선 느티나무
동네 아주머니께서 빨래터에서 토란 뿌리를 씻으시는데
말 그대로 알토란이다.
예전에 한여름이면 이곳에서 밤마다 목욕을 하셨을 정도로 물이 맑았다고...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이용하신다고 하신다.
바스락 길을 걸으며
바람 불고 추운데
아직 봄인듯 착각하고 꽃 피우고 있는 금계국
가산리 마을 앞의 느티나무
이곳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오봉산에서 흘러온 최장 발원지 장안천과 만나는데
수량은 원발원지인 정맥길에서 내려온 반성천 물이 더 많다.
경상남도 수목원이 보이고
하천가 수양버들은 폐비닐을 목도리 삼아 기나긴 겨울을 맞이한다
반성교에서 본 내려갈 하천길
반성면으로 가는 길에
날씨는 춥고 잠시 반성면으로 가서
따뜻한 차를 마시던 짬뽕을 먹던 찾아가 본다.
진주에서 마산으로 가던 경전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인근 2km 지점 옮겨져 조용한 폐역이 되었다
예전에 기차가 다닐 때라면 역세권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폐역으로 커피숍이 들어섰다
참고로 우리나라 자영업자 75%가 월 100만 원 못 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내 몸이 아픈건 얼마던 참을수 있지만 은행 빚은 어쩌지 못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조용한 시골 면(面)에 들어와 시원한 커피라도 한잔 팔아 주고 가야 하나
배는 고프고 갈 길은 멀고 결국 차보다 인근 중국집에 가서 점심 해결하고
세월을 낚는데 이만한 것도 없을듯
낚싯대가 무려 열대다
좌에서 우측으로 도리도리 하다 보면 눈알 빠질 듯...
대숲을 지나고
반성천과 괘방산에서 흘러온 대천이 만나는 곳에서
물속 풍경은 상류와 다르게 청태가 많이 보인다.
마을 앞을 지나다가 밭 일하시는 농부님을 만나서
양봉을 하시는데 규모가 전국 열 손가락 안에 드신다고 하신다.
그리고 요즘 농사일은 외국인들 없으면 농사가 안되고
힘들게 농사를 지어 외국인들 좋은일 시킨다는 씁쓸한 말씀이다.
멀리 장군대산과 월아산이 지척이고
메타 나무가 심어진 곳으로 들어와
한 여름이라면 한 성질 하는 잡풀이 키보다 크게 자라겠지만
계절이 계절인 만큼 한풀 죽은 잡풀을 지난다.
이 사이로 지나서
제방뚝으로 임도가 이어지지만 잡풀이 너무 많다.
풀 중에 절반은 도둑 가시풀이고
장군대산이 보이고
빼곡한 잡목 속에 하천이 있건만 들어가지 못하고
예전 같으면 들어가 일일이 확인이라도 했을텐데
나이가 드니 모든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멀리 남덕유산 서쪽에서 발원해 경남땅만 오롯이 적시며 흘러온 남강이 코앞에 있다.
강 건너 마을은 진주시 대곡면 땅이고
잠시 남강 구경하다가 이반성면의 택시를 불러 놓고 기다린다.
다시 한번 더 걸어 보고 싶은 강이 있다면 역사가 흐르는 남강인데
아름다운 남강길은 훗날 다시 한번 더 걸어 보기로 하고
다음 199번째 하천은 동해 바다로 흘러드는 곡강천의 지류인 초곡천이다.
첫댓글 방장님 요즘은 저~~어그 남쪽 땅으로 걸음 자주 하시네요.
그쪽 물이 좋은가 봅니다.^^
노랗게 질린 버섯은 방장님 보고 경끼한듯 합니다.
ㅎㅎㅎ
은행나무며 느티나무, 돌담길이 멋졌던
역사의 강 진주...진주성...
남강으로 합류하는 반성천 강행기
잘 봅니다. 먼걸음 고생하셨습니다.
창원 123코스를 만들고자 했던때부터 산줄기 인근으로 흐르는 물줄기 모두 찾아봐야할것 같이
지금까지 돌아다녔네요
글 감사합니다
그곳은 아직도 한참 가을이군요
서리 내리면 힘없이 사라지는 호박넝쿨과 꽃이
보이고요
정겨운 돌담길 담쟁이 ~~~~~
무언가을 찾아 대문밖을 나선다는것
의미가 있고요
수고하셨습니다
ㅎㅎㅎ
겨울이 쉽게 오지않을것 같은 동네입니다
돌담과 호박꽃 정겨운 시골동네 풍경이었습니다
어제 산길에서 본 장군대산과 월아산 보니 반갑네요 ㅎ ㅎ
도드라지더군요.
오봉산과 백이,숙제도 눈길이 갔고,
발산재의 신도비는 봤구요.
준봉산의 유래는 처음 알았네요.
참조하겠습니다^^
창원땅 진전천을 감싼 산줄기 여정 후기 잘봤구요 늘 대단함과 열정이 부러울뿐입니다
이번주 대간 졸업때 오신다니 그때 뵙겠습니다
장거리는 누가 가장 강한지 겨루는 게 아니라 누가 포기하지 않느냐! 에 대한 물음이다.
참 좋은 명언입니다... 역쉬 방장님^^
늦가을의 고즈녁한 분위기가 참으로 얼반쥑입니다요.
수고많으셨꾸요 동내방내의 또랑까지 다 섭렵하시는 그날을 기다려봅니다 ㅎ
아!! 저도 그게 젤로 맘에 들었는데!! ㅋㅋㅋ
근데 사실.. 저는 둘다 자신없긴 합니다..ㅋㅋㅋ전국구님도 여기저기 다녀오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막걸리에 빨대꽂아 드시던 모습은 아주~ 강력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200개를 2개 남긴 198번째 하천길이군요. 대단하십니다.
그 많은 하천길을 걸은 것도 대단하시지만,
갔다 온 하천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후기로 남기는 작업도 어마어마할텐데...
게다가 각 하천에 얽힌 지리, 역사, 문화적 자료까지 후기에 담으셨으니 다음에 책으로 엮으셔도 훌륭할 것 같습니다.
"수양버들은 폐비닐을 목도리 삼아~" 방장님 특유의 위트섞인 시선에 잠시 웃음이 지어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계곡에 아담하게 피어있는 버섯은
느타리버섯이네요. 당근 식용버섯이구요.
그 옆에 살짜기 보이는 놈도 식용버섯입니다.
가까이 있으면 채취하러 가고싶네요....ㅎ
이반성면은 처갓집이 있던 곳이라 더 눈길이 갑니다.
물론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
강행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계절에 빨간 단풍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니 신기합니다.
전국의 산들은 통달하시고 하천의 발원지를 찾아 전국을 다니시는 방장님 발걸음을 따라할 사람이 있을까~생각해 봤지만 현세에도 후세에도 아마 없을 듯 합니다~
저 낚시꾼도 꾼으로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