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국회 해태석상 숨겨진 비밀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광화문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해태 석상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21일 광화문에서 만난 중학생 4명은 해태상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무섭게 생긴 것을 보니 경복궁을 지키는 수문장이 아닐까?”
“잘 모르겠다. 해태 하면 야구, 부라보콘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상상의 동물인 해태는 정의를 지키고 사악함을 물리치며 화기(火氣)를 눌러 화재를 막아주는 영물(靈物)로 여겨져 왔다. 두 곳의 해태상은 부릅뜬 두 눈에 당당한 풍채로 경복궁과 국회의사당을 지켜달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광화문 앞 해태상은 조선 초 경복궁을 지으면서 함께 세웠다는 얘기도 있지만 19세기 말 흥선대원군 시절에 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경복궁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자 화기를 누르기 위해 세웠다는 것이다. 경복궁을 드나드는 관리들의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일제는 1923년 10월 해태상을 철거해 경복궁 한쪽에 방치하다 1929년 조선총독부 건물(현재 광화문 뒤 흥례문 자리) 앞으로 옮겼다. 이후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그 앞으로 이전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회 해태상은 1975년 의사당을 지을 때 함께 세워졌다. 사료수집 전문가인 이순우씨에 따르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소설가였던 월탄 박종화 선생. 월탄 선생은 “의사당의 화재를 막으려면 해태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국회에 건의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해태제과는 홍보 차원에서 해태상을 만들어 국회에 기증했다.
광화문과 국회의 해태상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다.
광화문의 해태는 앉아 있고 국회의 해태는 서있다.
광화문의 해태는 암수 구분이 없는 한 쌍이지만 국회의 해태는 암수 한 쌍이다.
배 아랫부분을 눈여겨보면 알 수 있다.
그 차이에 대해 이씨는 “국회 해태상을 제작한 이석순 당시 서울대 교수(조각가)가 광화문 해태와 다르게 하려고 의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차이는 국회 해태상 밑에 포도주가 묻혀 있다는 사실.
해태상 건립이 마무리될 무렵, 해태제과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해태주조에서 양조한 포도주를 해태상 아래 땅 속 10m 깊이에 묻었다.
이에 관해 “포도주 100병을 왼쪽 해태상 아래에만 묻었다”, “한 쪽에 36병씩 72병을 묻었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가 전한다. 해태제과에 문의해 보니 “한쪽에 100병씩 커다란 항아리에 넣어 묻었다”고 공식 확인해 주었다.
포도주와 해태상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 흥미로운 대화 한 대목이 떠오른다.
“해태상이 술에 취해 국회를 잘못 감시하다 보니 의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받고 싸우는 것 같은데….”
“그래도 해태 두 마리가 있어서 여야간 치열한 몸싸움의 화기를 식혀줬기 때문에 그나마 의사당 건물이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서울 광화문 앞의 해태 석상(왼쪽)과 국회의사당 앞의 해태 석상. 광화문 해태상은 앉아 있고 국회 해태상은 서 있다. -김경제기자
***************************************************************
국회 해태상 밑 와인을 아십니까'
"국회의사당 지하에 30년째 묻혀있는 와인을 기 억하십니까?" 국회의사당 정면 해태상 밑에 30년째 묻혀있는 `와인 72병'이 행정수도 이전 논 란을 계기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몇 가지 자료를 조사해 보았으나 공식적인 기록을 잘 보이지 않고 여전히 이설(異說)만 있다.
어디에서는 "포도주 100병을, 그것도 좌우에 나눠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좌측에만 묻혀있다"고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해태주조(주)에서 국내 최초 100% 순수 국산와인을 생산하면서 후세에 알릴 기념비적인 아이디어로 핑크 '노블와인'을 땅속 10m깊이에다 석회로 봉한 후 특수제작된 항아리에 집어넣었는데, 좌우에 9병씩 모두 18병을 묻었다"고 적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또 달리 "해태상 밑을 10m쯤 파고 '노블와인' 백포도주를 한 병 한 병씩 석회로 감싸 항아리에 넣고 좌우 36병씩 모두 72병을 묻었는데, 해태가 화신을 쫓는 호신상이고 백포도주는 화기를 삼킨다는 고사에 따라 순수한 우리 기술로 지어진 의사당이 재난을 당하지 않고 영구히 보존되길 바란다는 기원의 뜻도 담고 있다"고 적어 놓은 설명도 있었다.
불과 28년 전에 벌어진 일인데 어찌 이리도 기록이 모호하고 사실관계가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인지....
이 모든 이설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사당 신축 100주년이 되는 2075년에는 "국회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축하하는 축하주로 그것을 개봉한다는 얘기는 공통되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 있어서도 왜 아무런 구체적인 기록이나 표시가 없는지는 참 의문이다.
포도주가 묻혀 있다는 사실과 그 위치, 그리고 개봉시기를 적은 표지석이나 표지판을 어딘가에 부착해 두어야지 나중에 세월이 흐르더라도 그렇게 실행할 일인데, 2075년에 개봉한다는 것은 그냥 그렇게 구전(口傳)되고 있는 얘기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도가 없다.
말하자면 2075년에 어디를 어찌하라는 지침서가 없지 않나 말이다. 국회 내부에 그러한 '비밀서류'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누가 알고 있다면 지금에라도 공개적으로 해태상에다 표지판을 만들어 부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2075년이 되었을 때 그까짓 포도주 몇 병 먹겠다고 멀쩡한 해태상을 들어내고, 지하 10m나 땅을 파내는 야단법석을 떤다는 것도 어찌 좀 꼴이 우습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제 아무리 그 뜻을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처음의 의도가 일개 주조회사가 기획한 제품홍보전략의 하나였다는 사실 정도는 꼭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랬거나 저랬거나 현재 지하철 9호선의 공사로 인해 해태상의 아래쪽으로 굴착공사가 막 벌어지는 모양인데, 공사가 벌어지는 동안 아무쪼록 해태상에 아무런 일이나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하 10m에 묻었다는 그 포도주 항아리도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