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마노브스카 (Demanovska)동굴
데마노브스카 동굴은 하부 타트라(Low Tatra)의 데마노브스카 돌리나(demanovska dolina) 지역에
있는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긴 동굴로1921년 발견돼 1924년에 일반에 공개되어 탐방 가능한 동굴이다.
슬로바키아의 6200 개의 동굴 중에 관람 허용된 8개 중의 한 개이다.
- 동굴 안내판-
** 안내판에 보이는 삽입 그림에는 어름이 많이 보여서 기대를 했는데 길이 2,150 m 의
'롱 투어(Long tour)' 와 1,150 m 의 '일반투어(Traditional Tour)' 중
여행 팀은 후자를 택해서였는지 화려한 모습이나 경관은 보지 못했다.
-대마노브스카 돌리나 국립공원 요도-
** 검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동굴의 얼개이다.
-국립공원(NPR)내에 서식하는 동물들-
-데마노브스카 계곡(Demanovska valley)-
** 동굴 입구는 고도가 870 m 이고 주차장으로 부터는 400여 m 길이의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동굴 입구-
- 석순 -
-동굴 내부-
**동굴은 전체적으로 규모는 크지만 고지에 위치하고 있고 지하수의 침투가 거의 없어 지하수에 의한
종류석이나 석순의 생성이 거의 없는 마른 동굴이다.
-지하수가 있는 곳에 생성된 보기드문 석순-
** 지하수가 흐르는 수로는 일반투어에서는 볼 수 없었다.
- 이동로-
-지하수의 흐름으로 생성된 어름-
** 어름은 거의 녹아 버린 상태로 보인다. 동굴의 온도가 6.1~7 ˚ C 이다.
- 출 구-
** 자료에는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많이 찾는 동굴이라지만 필자가 본 동굴 중에
가장 덜 발달된 동굴이다.
블코리네츠(Vlkolinec)마을
블코리네츠 마을은 유럽 산악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부 유럽 특유의 통나무집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정착촌이다. 마을의 배치도 그대로 이고, 건축 양식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가옥 55채가 마을을 이루며 이중 6채에 20명의 주민이 현재 거주하고 있고
관광시에는 이들의 사생활을 보호해 달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나머지 가옥들은
슬로바키아 전역에서 오는 방문객들의 휴식과 여흥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1993년 UNESCO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블코리네츠 마을 항공사진(안내판 편집)-
** 1,마을입구, 2,농가, 3,우물, 4.종탑, 5,가톨릭 성모교회, 6,7, 갤러리, 8,야외 극장
9,양의 우리. 계단식 경작지, 산간지역 또는 버금 산간지역 주택건축, 시골풍의
작업들이 전형적인 중세시대 양식이다.
-마을 초입-
** 마을 초입에는 우리의 장승같은 몇개의 통나무 조각이 방문객을 영접하듯 서 있다.
가옥들은 통나무를 쌓아 벽을 만든 뒤 흙을 바르고 회 반죽을 칠하거나 노랑 혹은 푸른 색을 칠했다.
-농 가-
-농가의 생활 도구들-
-농가의 거실-
-농가의 창고-
-갤러리-
** 전에는 교회로 사용되었을 것 같은 갤러리 내부는 2층으로 되어 있고
그림, 자수, 공예품 기타 역사자료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들-
** 현지 주민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마을 풍경들이 많이 보인다.
- 빈 집(空 家)-
-마을길 3거리의 풍경-
** 마을 한 가운데 3거리에는 노쇠한 정자나무가 서 있고 그 오른편에는 십자가를 머리에 이고
치마를 두른듯한 종탑이 있다. 종탑에는 작은 종 한 개가 달려있다.
교회이었을 옆 건물은 현재 교회로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작업 중인 주민-
** 이 아저씨는 관광객이 지나가는 기척이 들리자 천천히 나무 기둥에 페인트 칠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진을 한장 찍고 마을 끝까지 갔다 오니 아저씨는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칠해진 것이 없었다.
연기를 해 준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거리에서 만난 최초의 주민이었고 갤러리의 직원,
식당 요리원이 만난 사람의 전부였다.
-통나무 수로-
** 마을길 옆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도랑이 있어 아직 마을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꼬마 물레바퀴-
**소리를 내어 마을의 정적을 깨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도랑에 만들어 놓은 이 작은 물레바퀴가
한적한 마을의 고요를 깨준다. 방아를 찧는것이 아니라서 차마 물레방아로는 부르지 못하고
'물레바퀴'로 불러보고 지나간다.
-폐교-
** 이 마을은 10세기~12세기에 방벽을 둘러싼 정착촌인 요새 소도시 시절부터 슬라브 민족의
정착촌이었다. 최초의 기록은 1376년에 등장하지만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19세기
이후에 지어진것 들이다.
-특색있는 지붕의 가옥-
-경사진 도로 위에서 본 마을 풍경-
- 마을의 유일한 식당-
-식당 내부-
-갤러리(식당 옆 건물)의 전시물 # 1-
-갤러리의 전시물 # 2 -
-마을 입구-
** 주민인지 방문객인지 알 수 없는 분들이 KIA 로고가 달린 소형차로 패어나간 갓길로 가다가
밑면이 아스팔트에 얹혀 있다가 승객이 내린 후 후진으로 겨우 탈출하였다.
-돌아 가는 길-
**대형 차량은 마을 입구까지 진입이 금지되어 있으나 여행팀은 무지해서 버스를 마을 입구까지
몰고 왔었다. 돌아가는 길은 버스 주차장까지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
브라티슬라바(Bratislava)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블콜리네츠 마을로부터 남서쪽으로 264 km (3시간 10분소요)
떨어져 있는 오스트리아 국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가 있는 작은 도시지만 슬로바키아에서는
제일 큰 도시이고 인구 45만의 유럽에서는 신흥 도시이다.
-부라티슬라바 가는 버스의 앞 창유리-
** 마치 눈송이가 버스 앞 유리창에 달라 붙은것 같은 이 모양은 날아다니던
날벌레의 충돌 사고 장면이다.
- 삼위일체교회(Trinitarian Church)-
**슬로바키아의 수도에 늦게 도착한 버스가 정차한 곳에서 처음 만난 교회이고
무작정 들어가 본 교회이다.
-교회 내부-
**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1717~1725) 교회로
성요한 마사(St. John Matha)교회로도 알려져 있다.
-정교한 장식의 설교대(왼편)와 제대-
-구 시가지 골목-
-구시가지 돌포장 도로에 설치된 이정표-
** 중심에 네개의 화살촉 표시 중에 4시 방향이 동쪽, 7시 방향이 북쪽이다.
-서울 8,138 km (SEOUL 8138 km )-
** 동쪽으로 토쿄, 모스크바, 베이징, 서울이 표시되어 있다. 중요 국가의 수도이다.
-구시가지 입구에 서 있는 아취가 있는 첨탑 미카엘 게이트(Michael's Gate)-
**14 세기에 건설된 도시방어 시설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문이다. 아취 위로 세워진 첨탑의
상부 난간까지 높이는 51 m 이다. 아취 위에 붙어 있는 프라크에는 마리아테레지아 황제
(Mariatheresia Augusta), MDCCLVIII(=1758)이라는 글귀로 보아 18세기 신성로마제국
여제 마리아테레지아의 방문 기념패인 것으로 보인다.
-밤의 여제의 탑-
**밤이 되자 아취 위의 창문에서 녹색 레이저 광선이 발사되어 골목 끝에 붙어있는 반사경에서
굴절하여 다른 골목을 지나 마지막에는 막다른 골목 건물(오른편 사진)에서 레이저의 여행은 끝난다.
-대학교, 도서관, 다목적 문화센타 건물-
**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건물들이다.
-프랑스 대사관-
- 메인 광장(흘라브네 나메스티에 = Hlavne namestie)의 동상들-
** 구 시가지 가운데에 있는 자그마한 정방형의 광장 코너에 서 있는 동상들이다.
방문객을 즐겁게 환영하는 왼편 동상의 이름은 "착한 나치(Schone Naci)"이다,
나이 든 이 사람의 동상은 동상이 아니라 유일한 은상(銀像)이다. 또한 유일한 실존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이그나츠 라마르(Ignac Lamar)로 19~20세기 어간에 프레스버그
(Pressburg:브라티슬라바의 옛이름)에 살고 있었다. 전설이 없으면 이야기는 싱거워지는데
다행히 그에 관하여 한가지 스토리가 있다.그는 어느 여인을 심각하게 짝사랑 하였다.실의에
빠진 그는 결국 정신 이상자가 되어 거리에서 만나는 아무 여자에게나 꽃다발을 주곤 했다.
동상 처럼 그는 언제나 실크 모자를 썼으며 지금도 동상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오른편은 도시를 지키는 경비병의 동상이다. 경비 초소는 원래 도시 외곽에 있던 목제 초소가
17~18세기에 불타버린 후 벽돌로 지었으며 바로크 양식의 이 초소는 1860년 대에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 메인 광장(Hlavne namestie)의 막시밀리안 분수(Maximilian fontana)-
**1572 년 방화수 용으로 세워진 이 분수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분수 혹은 롤란드(Roland)분수로
불린다. 분수대 위에 올려져 있는 막스밀리안 2세의 동상은 그동안 수차례 수정과 개축으로
원형과는 거리가 멀것이라고 한다. 막스밀리안 2세는 헝가리 왕국의 국왕이었으며
현재는 이 도시의 수호자 이다.
-롤란드(Roland) 분수의 야경-
** 분수 뒤에 보이는 건물은 현재 비엔나(Vienna) 보험 그룹이 들어 있고
1층에는 카페 식당 등 상가이다.
-롤란드(Roland)카페, 레스또랑-
** 분수의 이름을 붙인 카페와 식당 앞에는 기사 롤란드의 모형이 서 있다.
-광장에서 만나는 네번 째의 동상 '나폴레옹 군대의 병사(Napoleon soldier)'-
**벤치 등받이에 팔을 괴고 있는 모습에서 "흠쳐 듣는 동상"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어있다.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는 1805년 브라티슬라바에 진주한 적이 있다. 이 병사는 브라티슬라바에
머무는 동안 이곳 처녀와 사랑에 빠져 이곳에 눌러앉아 탄산 포도주 생산자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후버트(Hubert)였는데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탄산 포도주의 브랜드이다
- 구 시청사-
**1781년 고전주의(Classic)양식의 이 건물은 1868년 부터 이 도시의 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박물관의 탑의 높이는 45 m 이다.
특히 이 건물의 '거울의 방'에서 1805년 12월 26일 나폴레옹이 프레스버그 조약(Treaty of
Pressburg)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프레스버그 조약은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의
전쟁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 필자 주)
-예수회 성당의 내부-
** 도리아식의 장중한 기둥을 가진 이 성당은 위 사진의 구 시청 첨탑 왼쪽에 붙어있는
건물인데 얼른 보아 교회 같이 보이지 않으나 지붕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프란치스칸(Frantiskanske) 교회-
** 이 교회는 구 시청 왼쪽에서 광장 밖으로 이어지는 도로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교회 앞 도로를 프란치스칸 광장(차량통행이 없기 때문)으로 부른다.
-교회 내부-
- 쿠밀(Cumil)-
** 맨홀에서 작업하다가 잠시 밖을 보며 쉬고 있는 듯한 모습의 이 동상은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인기있는 동상이라고 한다. Cumil의 의미는 "엿보는 사람(The watcher)" 인데 두가지 낭설이 있다.
첫째는 공산권시절의 전형적인 노동자이지만 그의 일에 만족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낭설은
여인의 치마자락 밑을 훔쳐 본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사람의 머리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맨홀에 빠진 남자" 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국립 오페라 극장-
-Radisson Blu Carlton Hotel-
** 국립 오페라 극장 옆에 있다.
-연인들(?)-
** 왼편은 야간에 숙소에서 내려다본 숙소 앞 광장의 분수 야경이고
오른편은 다음날 아침에 본 분수 가운데 연인들의 동상이다.
-브라티슬라바를 떠나며-
** 다뉴브 강변 언덕 위의 브라티슬라바 성채를 뒤로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왕가의 거처였던 이 성채는 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브라티슬라바의 상징이기도 하다. 주탑의 높이는 47m 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