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스승과 선배와 동료
아버지와 이채경의 작품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웃음) 아버지랑 작품 가지고도 많이 싸운다. 이건 좀 그렇고 저것도 좀 그렇고 하면서. 그러면서도 "너는 네 길이 있으니까"라는 식으로 놔둔다. 나는 한때 아버지에게 어떤 영향도 안 받을 거라고 생각 했었다. 근데 어떻게 영향을 안 받았겠나. 저 멀리서 대본 한 편 읽은 사람도 아버지 영향을 받았다고, 스승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아버지란 존재는 언제나 스승이 될 수 있으면서 없는 사이 아닌가.
이채경이 생각하는 스승은?
독일 철학자 레비나스가 그러더라. 스승은 하나의 텍스트로 존재하는 사람. 그래서 제자들이 그 사람을 향해 다가가려 하는데 다가갈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수많은 제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아가게 함으로서 또 다른 스승이 되게 만들어주는 사람. 완전 와 닿았다. 나에게는 수많은 스승이 있구나. 그 대단한 연희단 선배들인 이윤주, 김소희, 김미숙, 조인곤, 이승헌, 남미정, 정동숙, 배미향이 내 스승인 거고 그분들의 스승이 아버지인 거고. 그렇다면 아버지도 내 스승인 거지.
스승이 참 많구나
몰랐나. 연희단은 다신교를 믿는다.(웃음)
이채경이 영향 받은 사상과 예술의 스승들은?
랭보, 뒤렌마트, 브레히트, 그리고 경제학.
경제학?
내가 존경하던 선배가 있었다.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시인을 꿈꿔서 경제학 책 옆에 시집을 놓고 함께 읽었다. 누가 봐도 시인이 될 것 같았는데, 집안을 부양하기 위해 증권맨이 되었다. 그러면서 얼굴도 점점 증권맨처럼 변해가고 넉살도 좋아지고… 저 사람은 가정을 위해 저렇게 세상에 부딪히면서, 때로는 넉살로 조소하면서 살아가는구나. 누가 봐도 시인인 사람이 저렇게 하루하루 힘든 일상을 살아내는구나. 그들에 대한 죄책감이 항상 든다. 누가 봐도 작가이지만 작가를 할 수 없는 사람들. 작가라는 말을 떠올리면 그 선배가 떠오른다. 그래서 나도 연극을 버텨내는 거지.
연극은 집이다. 가시방석 집
앞으로 할 작업들을 소개해 달라.
4월 4일부터 27일까지 게릴라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 공연을 한다. 공연이 끝나면 조광화 선생님 멘토를 받아 개발했던 뮤지컬 <소행성 B-612> 대본 완성을 해야 한다. 여름에는 밀양 축제 준비에 들어가고 하반기에 뮤지컬 <챗 온 러브> 서울 공연을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본인에게 연극은 무엇인가
나한테는 당연히 연극이 집이다. 연극에서 살았으니까. 그러나 가시방석 집이다.
어느 날 어느 선배님한테 얘기했다. 난 빛나고 싶지 않다고. 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살고 싶다고. 선배님이 얘기하더라.
- "채경아, 네가 뭐가 되든지
여기가 너의 집이기 때문에
네가 가장 마지막까지 있는 사람일 거다.
그렇다면
내가 호호할머니가 되었을 때
어딜 가겠니.
널 찾아오겠지.
그때
네가 극장 문을 닫지 않고 기다려 준다면
나는 너를 찾아와서
매표를 하면서 극장에 머물며
여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니.
네가 그렇게,
우리가 올 수 있도록
극장을 지켜줘야 하지 않겠니."
나한테는 연극이 집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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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임진원 limjinwon@gmail.com]
[캐리커쳐 : 이동슈 glgri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