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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소감문(윤현준)
안녕하세요. 저는 해뜨는마을에서 변화중인 윤 현준입니다.
저는 어릴 때 부터 엄마가 다혈질이라 많은 욕설을 듣고 맞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 수가 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일을 하시고 한 주에 한번씩 집에 오셨기 때문에 저는 늘 엄마에게 학대를 당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4학년까지는 공부를 잘 하여 상장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억지로 시키고 안하면 욕 하고 때렸기 때문에 집에 있을때는 방에 틀여 박혀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한번은 친구집에서 자고 다음날 집에 가니 엄마는 욕 하며 많이 때렸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사나? 너무나 화가 나고 외로웠습니다.
5학년 때 하루는 친구가 훔쳐 온 돈을 보이며 놀자고 하여 게임을 하고 사우나에서 자고 학교를 안 갔습니다. 돈이 떨어져서 친구와 남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쳐 나올 때 가슴이 조마조마 했지만 들키지 않고 성공하니 스릴이 있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느날 경찰에 걸려 이제 안해야지! 했지만 매일같이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으니 자꾸 밖으로 나가고만 싶었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훔쳐도 나이가 어려 처벌받지 않으니 계속해서 남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쳐서 사 먹고 피시방에서 놀고 찜질방에서 자고 옷과 신을 사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오락실에서 돈을 훔치다가 경찰에 끌려 집으로 갔습니다. 마침 아버지가 집에 오신 날이라 몹시 화를 내시며 때렸습니다. 아버지는 애를 어떻게 길렀느냐며 엄마와 싸우셨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 집을 나서는 아버지에게 일요일인데 어디 가시냐고 물으니 금방 오겠다며 나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화를 내는 엄마가 더 무서워져 가출을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친구 따라 담배를 피워보니 어지러웠지만 자꾸 하다보니 하루에 한갑씩 피우게 되었습니다. 담배가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하여 마트에서 훔쳐서 피웠습니다. 또 친구따라 술도 계속 마시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겁도 없어졌습니다. 저는 어린나이에 담배와 술을 매일 마시고 가출과 비행을 계속 반복하며 살다가 중학교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잘 가지 않아 대안학교로 전학을 했는데 기숙사를 뛰쳐나와 나쁜 친구들을 만나서 남의 차 안에 돈을 훔치는 일을 계속 하다가 해뜨는마을로 왔습니다.
처음 해뜨는마을에 올 때는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과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집에서는 야단만 맞으면서 살았는데 이곳에서는 하루 하루 많은 칭찬을 받으니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6개월동안 교육을 받고 이제부터는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퇴소를 하였습니다. 1주일이 지나니 엄마는 예전과 다름없이 저에게 또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조금은 달라졌을 줄 알았던 엄마에게 실망을 하고 또 집을 나갔습니다. 아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중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엄마에게 학비를 달라고 하니 짜증을 내면서 나가서 살아라! 고 하였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더 큰 실망을 하고 이제 더 막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데서나 차를 턴 돈으로 음식을 사먹고 노래방과 피시방에서 놀면서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해뜨는마을로 오게 되었습니다.
첫 날 목사님과 원장님을 보니 많이 죄송했습니다. 그래도 야단치지 않고 반갑게 맞아 주셔서 감동이 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엄마의 도장을 받아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사무국장님과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참이나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바깥을 서성이다가 경찰서로 갔습니다. 경찰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가서 두드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에게 밤이 되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으니 밤에 집으로 찾아가 보고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밤에 경찰 아저씨가 집에 가니 불이 켜 있어서 문을 두드려서 겨우 엄마를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엄마는 아파서 문을 안 열었다고 하면서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근심 걱정 불안에 가득 차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어느새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동안 엄마를 생각만 해도 화가 머리끝까지 솟고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고 많은 칭찬을 들으니 화가 조금씩 사라져갔습니다.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이 안정이 되니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또 용서 강의를 듣고 그동안 나에게 수많은 학대와 상처를 준 엄마를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가을에는 안동여행을 가서 350년이나 된 고택 한옥에서 잠을 자보니 너무 즐거웠습니다.
안동 찜닭은 다른 닭보다 더 맛 있었습니다. 문경세제에서 사과밭에 들어가 사과를 직접 따보니 재미있고 더 맛이 있었습니다. 또 레일 바이크를 타고 옛날 조상들이 공부하던 도산서원도 가보고 부용대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하회마을 주변으로 멋있는 낙동강도 보았습니다. 탈 공연도 보고 600년된 동제나무에 소원을 써서 나뭇가지에 꽂아 놓았습니다. 또 안동댐에 가서 프로펠라가 1분에 180회전을 하고 전기를 생산하여 공급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습니다. 그동안 여행을 한번도 가 본적이 없었는데 여행을 하고 좋은 것을 보고 배우니 너무 좋았습니다.
크리스마스날에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놀았는데 서울 기쁜우리교회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성탄예배를 드리고 공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처음으로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비전강의를 들으면서 사람들에게 신용을 얻는 것과 또 신뢰를 받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아버지같은 따뜻한 사랑을 주시는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회에서는 인사도 안하고 말도 잘 하지 않았는데 따뜻한 사랑을 주시는 원장님께 예절교육과 스피치 교육을 받으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일어났습니다. 또 밖에서는 공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는데 영어와 진로를 위해 재미있게 교육을 해 주셔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생각도 못해봤던 피아노도 배워 지금은 간단한 동요 같은 것도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제가 지금은 작은 일에도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1등 상점을 받아 3박 4일 휴가도 가게 되었습니다. 또 피시방 쿠폰과 외출상과 도우미 상 등 여러 가지 상을 받으면서 “나도 하면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저는 해뜨는마을을 퇴소하고 이곳에서 소개해 준 꿈나무비전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사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여 1등도 하였지만 시골이라 답답하고 또 외로웠습니다. 방학이 되어 1주일만 놀다 들어 갈 생각으로 학교를 나와 친구들과 놀다보니 금방 한달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보호관찰 위반이 되어 무서워서 학교에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 집에서 지내다가 돈이 필요해 새벽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있는 세워져 있는 차 창문을 드라이버로 깨고 물건을 훔쳤습니다.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남의 차를 털어 모텔에서 자며 생각없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새벽 불심검문에 걸려 그동안 차안에 있던 돈과 물건을 절도한 죄로 유치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유치장에 면회를 오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혼이 많이 날 줄 알았는데 사랑한다고 해주셔서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부모님도 나를 포기하고 관계를 끊어버렸는데 목사님께서 나를 찾아와 주셔서 다시 한번 제 잘못을 깊이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심사분류원에 있을때도 목사님께서 면회를 와 주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저는 10호로 가게 되어 있었지만 재판날 아침까지도 목사님께서는 판사님께 간곡하게 부탁을 하셔서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다시 희망을 가지고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내년에 대학교에 보내 주신다고 하셔서 8월에 대입검정고시에 100점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의 꿈은 판사가 되는 것입니다. 꼭 꿈을 이루어 저같이 범죄한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여러 가지 교육과 좋은 경험들, 목사님과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주시는 많은 사랑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얻고 또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제 환경이 안 좋아서 이런 길로 올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가 소년원으로 갔다면 제 인생을 자포 자기하고 더 망나니처럼 살았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 3번씩이나 왔지만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목사님과 원장님과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절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6월 6일
박수일 목사님에게!
목사님! 저 현준이에요. 목사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일전 제 생일 때는 옷도 사 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사주셨는데 저는 드릴것이 없어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무엇을 드릴만한 것이 없어 편지라도 써서 생신을 축하 드립니다. 저는 목사님을 볼 때 마다 정말 대단하시다는 것을 느껴요. 다방면에 능통하시기는 하지만 자기관리에서는 정말 최고입니다.
제가 본 사람 중에는 60대만 되어도 고혈압, 당뇨병, 관절염에 걸려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목사님은 저희보다도 건강하신 것 같아요. 아마 채식하시는 것과 규칙적인 생활습관, 그리고 꾸준한 운동덕분인 것 같아요. 처음에 목사님과 농구할 때 제가 가뿐히 이길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20대 5로 제가 졌죠? 제가...ㅎㅎ 그래도 못하는 건 아닌데 정말 대단하세요.
목사님! 그동안 제가 많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목사님과 원장님, 이곳 해뜨는마을이 저에게 정말 특별한 관계인 것 같아요. 2번 오는 사람도 드문데 3번씩이나..ㅎㅎ 2번째 올 때는 대안학교까지 보내 주셨는데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정말 죄송합니다. 3번째 이곳에 오기 전 경찰에게 잡혔을 때 저는 모든 것을 포기했었습니다. 그냥 소년원 한번 갔다 오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즐기며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학식도 없고 돈도 없고 그렇다고 뒤에서 보호해줄 부모님도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런데 우연히 경찰에게 조사를 받던 중 해뜨는마을에 있었다는 사실이 나와 목사님께 연락이 간 것입니다. 제가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 목사님이 저에게 면회 오셔서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셨죠? 저는 목사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사는 하루살이였습니다. 제 인생은 이미 끝났다고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고 제 스스로 단정 짓고 있었습니다.
제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에게 ‘사랑한다’ 라는 말을 듣고 이 세상에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죄가 너무 컸기에 소년교도소나 10호 처분이 마땅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저는 사회의 악이었지만 목사님만은 저를 믿고 이곳에 다시 데려와 주셨습니다. 또 저에게 공부까지 시켜 주시고 사랑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목사님은 저의 구원자이십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표현이 서툴지만 목사님께 항상 감사하고 또 사랑하는 것 아시죠?
앞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여 대입검정고시 100점으로 합격하고 또 수능공부도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에 가서 은혜 꼭 보답해 드릴게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해뜨는마을에 기부도 많이 하고 목사님 좋은 거 많이 해드릴게요 ㅎㅎ
아~ 그리고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저희가 잘못을 하여 가끔 화를 내실 때 너무 카리스마가 넘치셔서 무섭습니다. 지금도 많이 웃으시지만 목사님이 웃으시면 주위까지 다 밝아지니 항상 웃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다시 한번 진심으로 생신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아버지! 사랑합니다~!
2013년 7월 26일
윤 현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