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대한 세 종류의 평가(신34:10-12)
2023.12.31 송년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바둑에 복기(復棋)라는 것이 있다. 복기란 한 번 두고 난 바둑을 다시 처음부터 놓아 보면서 돌아보는 것을 말한다. 이와 유사하게 복습이라는 말도 있고, 오답노트라는 것도 있다. 바둑의 복기나 오답노트 정리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의 걸어온 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잘한 것과 못한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실수했던 것들이 발견되면 향후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 발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러한 복기나 오답노트 작성이 바닥이나 공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과 시간에도 자신에 대한 냉정한 복기와 평가가 필요하다. 하루 동안의 시간에도 복기가 필요하고, 특히 오늘 같은 연말 마지막 날에는 더욱 그렇다. 고장 난 자동차나 펑크 난 바퀴를 고치지 않고 시동을 걸고 운전을 시도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만약 우리들이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새로운 시간을 출발하려는 것은 마치 정비불량 상태로 운전하려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샌다”는 말처럼 아무리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학교나 직장을 만난다 해도 또는 멀리 이사나 이민을 가도 여전히 실패하는 삶을 반복하게 된다. 심지어 더 험악한 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
아마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볼 때, 행복하고 감사했던 일들이 참 많을 것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후회(後悔)되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후회란 이전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후회와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말이 “껄”이라는 표현이다(할껄, 참을 껄, 하지 말껄, 더 노력할껄 등). 그래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불구덩이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한결같이 “껄껄”거린다는 예화까지 있다.
그런데 성경은 이처럼 단순한 시간의 복기 차원을 넘어서 신앙의 복기까지를 말씀한다. 성경에서는 후회보다 더 강한 영적인 표현으로 회개(悔改)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신앙의 복기이지만, 회개도 신앙의 복기이다.
회개(悔改)란 한문으로 ‘뉘우칠 회(悔)’, ‘고칠 개(改)’자를 쓴다. 신약성경에는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라는 단어를 쓰는데, 그 의미는 한문과 뜻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우리들이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깨달았으면, 즉시 유턴(U-turn)해서 방향전환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회개의 개념도 이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나의 잘못이나 실수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후회), 실제로 하나님을 향해 돌이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회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어쩌면 우리들 자신까지도) 회(悔)만 있고 개(改)는 없는 경우가 많은가? 성도들이 동네나 직장에서 빛과 소금이 못되고 오히려 비난 받는 경우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예배 시간에는 회(悔,뉘우침)를 하면서도, 가정이나 동네 생활에서는 개(改)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는 찬송이 나오던 입이 교회 밖에서는 맹독을 뿜어내는 것 등이 다 이런 범주에 속한다. 성도들의 이러한 행함이 없는 믿음을 지적한 것이 바로 신약성경 야고보서(JAMES) 이다.
어쨌든 우리들은 새 출발을 앞두고, 지나온 시간들을 복기하면서, 평가하면서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평가에는 세 종류가 있다. 타인의 평가와 자기 자신의 평가 그리고 하나님의 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타인의 평가란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들이 어떤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나 단어가 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에 대한 대체적인 타인의 평가일 수 있다.
예를 들어 ‘000씨’라는 이름이 나오면, 그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이잉~ 그 성질 더러운 욕쟁이’라고 반응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의 이름은 듣는 순간에 가장 먼저 ’술‘이나 ’도박‘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도 있고, 이와 반대로 ’기도‘나 ’찬송‘과 같은 은혜로운 표현들이 생각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정확한 타인들의 평가일 수 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김상수 목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단어나 이미지를 떠올릴까를 생각해 보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어떤 이미지나 단어가 떠올려지기를 바라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처럼 살기를 더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분의 이름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떠올려 질 것 같은가? 또 앞으로 어떤 평가를 듣고 싶은가? 우리는 성도로서 은혜로운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하고, 또 내가 듣고 싶은 평가처럼 살기를 힘써야 한다. 또한 타인의 평가를 들었을 때, 좋은 평가 앞에서는 더 겸손해지고, 고쳐야할 평가에 대해서는 그것을 인정하고 고치는 용기가 필요하다. 주여,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용기와 믿음을 주소서…….
그런데 타인의 평가보다 더 중요한 평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평가이다. 자신의 평가는 글자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자신의 내면과 태도들을 정직하고 개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이다. 흔히 이것을 반성이라고도 한다. 반성이 후회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성도는 후회 수준을 넘어서 회개의 수준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앞에서 강조했다. 우리는 남에게 인정받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최소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언급한 이 두 가지 평가보다 더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평가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평가이다. 사실은 이것이 진짜 평가이다. 우리는 흔히 타인평가에는 신경 쓰면서 자신과 하나님의 평가는 간과하기 쉽다. 만약 타인의 평가에만 신경쓰다보면, 자신과 하나님 앞에 정직해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것을 예수님은 외식(外飾, 겉만 보기 좋게 꾸미어 드러냄)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에 힘쓴다면 자신과 타인평가는 자연적으로 좋아지게 된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가 죽은 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성경의 평가이다. 모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라는 평가를 받았고(신34:10), 심지어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면하던 자였다(출33:11).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34:10)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33:11)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처럼 최고의 평가를 해주신 이유는 그의 삶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다. 모세의 생애를 보면, 그는 여러 번 실수 했고, 심지어 그런 실수들 때문에 가나안땅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이처럼 높게 평가해 주신 것은 그의 삶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 때문이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다른 믿음의 선진들에게서도 동일하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이나 심지어 하나님이 우리(나)들을 보실 때의 가장 중요한 생각하시는 평가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마음과 태도이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평가할 때, 대체로 그 사람이 이룬 업적이나 성과를 먼저 본다. 아무리 인품이 훌륭해도 업적이나 그가 가진 소유물이나 성과가 미약하면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찍는 것이 세상의 가치관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그래오셨듯이 성과를 보기 이전에 그 사람의 중심과 태도를 먼저 보신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성과나 업적으로만 평가한다면, 오늘 우리는 그 누구도 감히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설령 지금까지의 삶이 후회스럽고 부족한 점이 많았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들이 숨을 쉬는 동안에는 얼마든지 그 모든 평가들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의 문과 회개의 문 그리고 은총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계신다. 우리는 완벽할 수는 없지만, 말씀 앞에서 얼마든지 모세처럼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 바로 이 점이 오늘 송년주일에 우리들이 지나온 삶을 복기하고, 돌이켜야할 이유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러므로 타인들의 평가를 들을 때, 고칠 점이 깨달아지면, 분노부터 하지 말고, 너무 자존심만 앞세우지도 말고, 나의 어떤 점이 그렇게 비쳐지게 했는지를 복기하면서 돌이키자. 이것이 진정한 용기이며, 믿음이고, 새로운 인생길을 앞두고 성공을 선택하는 것이다. 십자가 밑에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고칠 것은 고치고, 돌이킬 것은 돌이키는 믿음의 결단을 하자.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