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에서 '마지막 때 민족적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신 것'이라는 제목의 권연경 교수님의 아래 글 밑에 달린 댓글들에 대한 안환균 목사의 답변을 공유합니다. 이 주제를 균형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권연경 교수, ‘마지막 때 민족적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신 것...’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비밀'
이스라엘의 회복은 쉬운 가능성을 넘어 분명한 신적 계획의 일부다. 바울은 이를 ‘비밀’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신적 계획의 일부로서,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지만 계시를 통해 자신에게 드러난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가 이 비밀을 이방 성도들에게 알리는 이유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버림받은 자 취급하며 자신들이 은혜의 주 수혜자들인 양 우쭐해 하는 잘못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의 상태를 피상적으로 파악하며 스스로 지혜로운 척하면서 오히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무지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 비밀을 현재와 미래의 두 단계로 설명한다. 현재로서는 “이방인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완고해진 대로 있을 것”이다(롬 11:25). 현재 모두가 관찰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단서가 붙는다. 곧 “이방인의 수가 다 찰 때까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완고함은 의도한 목적이 이루어지면서 사라질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비밀의 미래적 차원은 당연히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된다(롬 11:26 상).
여기서의 ‘온 이스라엘’을 교회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하지만, 민족적 이스라엘의 운명을 말하는 문맥을 보면, 여기서 바울이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밀한 프로그램을 그려 주지는 않지만, 바울은 분명히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대규모로 혹은 전체적으로 회심하여 회복될 것을 예견한다.
어떤 의미에서 바울이 여기서 제시하는 기대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방인이 구원의 공동체에 참여할 것이라는 생각이나, 마지막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성경이나 당시 유대인들에게 생소한 기대는 아니었다(사 45:17, 25, 59:20).
하지만 이 둘을 결합하는 방식은 달리 선례를 찾기 어렵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이방인들이 예물을 들고 시온을 향해 순례할 것을 바라보았다. 바울은 이런 전통적 기대를 뒤집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먼저 들어올 것이며, 그동안 이스라엘의 다수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방인들의 구원이 완결된 후에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비밀은 이미 성경에 약속된 것이기도 하다. 이방인의 수가 다 채워진 다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하신 종말론적 도시요 하나님의 산인 시온으로부터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며, 그분은 야곱, 곧 이스라엘에게서 경건치 못함을 제거하실 것이다(롬 11:26).
그때 그들은 예수께서 그저 이방인들의 메시아일 뿐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때 이스라엘은 죄 사함의 은총과 더불어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게 될 것이다(롬 11:27).
바울의 언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는 바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라보았던 바로 그 새 언약과 다름없다(렘 13:31-34, 히 8:8-12).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달려가는 최종 목표 지점인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로 돌아서서, 성령을 통해 개화된 눈으로 성경을 읽으며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후 3:14-18).
-권연경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 <로마서 산책>(복있는 사람)에서
(댓글)
그 “비밀”은 이제 충분히 수 년 전부터 revealed 드러났다. 더 구체적으로 수많은 비밀스런 예언들이 함께 보여지는 중이다.
(여담으로) 흥미로운 것은
2016년 트럼프가 예루살렘에 대해 “eternal capital/ 영원한 수도”라 언급하며 선거 공약을 했고, 트루만(Harry Truman) 대통령 이후 최고로 친-이스라엘 정책을 써서 2017년에는 근대 이스라엘 70주년에 맞추어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교회에게 시대 분별을 도왔다.
-Jeeha Kim
전적으로 옳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이걸 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대주의자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바로 "이스라엘 회복"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사실상 이단 사상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새언약"에 동참해야
"이스라엘의 회복"인 것입니다.
저는 바울이 말한 대로 언젠가 그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물론 어쩌면 현재의 국가 이스라엘 재건이
새언약에 민족적으로 동참하게 되는
과정이나 발판이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국가 이스라엘 재건이
절대로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닌 것입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내 백성이 돌아오리라"고 하신 약속은
예수님의 새언약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새언약의 백성, 하나님의 예정된
진정한 새 이스라엘 백성이 새 이스라엘인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 회복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가 이스라엘의 재건을
"이스라엘 회복"이라 주장하며
알리야 운동을 벌이는 세대주의 단체들은
우리를 진정한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로
먼저 불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언약의 성취를
모독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김경열 교수
알리야 운동한답시고 이스라엘 기관 사람 데려다가 한국 개신교 성도 돈 모아다가 방공호, 비행기 값 등등 돈 뜯어내는 거 보고 저것들이 미쳤나? 거기다가 대체신학???? ㅋㅋ 아니 우리 교회의 머리 되시고 주인 되시고 인도자 되시고 모든 것의 근원 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이거를 이단적 사상으로 단죄하고 이스라엘로 대체해서 전통 기독교를 대체신학에 오염된 교회로 정죄하고 마치 자신들이 진짜 진리를 가진 자들처럼 활동하면서 돈 뜯어다가 정체불명의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한테 헌납을 한다... 조만간 터질 것입니다. 데이비드 차처럼.
- Yohan Kim
(답댓글)
존 칼빈이나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개혁주의자들도 이스라엘 회복의 문제에서 이 정도로 긍정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네요.^^
마지막때 이스라엘 회복의 사건으로 인해 교회와 이스라엘을 구분짓게 되고, 다니엘서가 마지막때에 고토를 회복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다고 예언한 한 이레 7년을 이방인의 수가 다 차는 교회 시대 이후 7년 환난의 때로 상정하게 되면서 교회의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등의 세대주의 종말론의 핵심 뼈대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한국의 개혁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은 차치하고라도 교회가 이스라엘을 완전히 대체한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주의 재림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마침내 영적으로 회복되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게 된다는 입장을 공식화한다면, 지금처럼 개혁주의와 세대주의의 지나친 대치 국면은 완화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네요. 종말론에서는 그 하나의 문제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입장 차이가 생겼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은 이스라엘의 고토 회복도 영적 회복의 전제로서 중요한 비중을 두고 다룬다는 사실을 환기해드리고 싶기는 합니다. 전 세계 유대인들의 고토 귀환을 돕는 알리야도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영적 회복의 중간 과정으로 여겨 진행하는 것이지 고토 귀환 자체에 궁극적인 의미를 두고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유대교의 제3성전을 신학적으로는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장차 거짓 메시아인 적그리스도를 유대교의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전제적인 배경이 되고(마 24:15, 살후 2:4), 그래서 그 성전의 재건 조짐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중대한 시대적 징조가 된다고 보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뿐인 경우와 비슷할 듯합니다.
이스라엘이 고토 귀환을 중심으로 국가적, 물리적으로 회복되는 데 이어 영적으로도 회복될 조짐을 앞서 보여주고 있는 건 메시아닉 쥬의 출현이라고 봅니다. 유대인이면서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여전히 유대교적인 관습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는 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보지만, 현재 그들의 존재 자체가 사도 바울이 예언한 대로(롬 11:1-26) 장차 고토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임으로써 마침내 구원을 받게 될 일의 예표가 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창조론에 유신진화론이 스며든 것이 성경의 첫 책 창세기의 내용을 상징화시켜 기독교를 단지 윤리도덕적인 종교에 그치는 가르침인 듯 폄하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변종이라고 본다면, 무천년설 또한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기독교와 성경만의 독특한 특징인 역사적, 사실적인 증거들을 상징화시켜 기독교를 영적, 윤리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듯한 종교로 치부하게 만드는 자유주의 신학의 또 다른 변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수적인 교회들이 왜 창세기를 상징으로 취급하려는 유신진화론에는 반기를 들고 일어나면서 요한계시록을 상징으로 취급하려는 무천년설에는 별 반대 없이 침묵하는지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물론 무천년설은 사실 영향력 있는 유명한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대외적으로 드러나게 주장해온 탓으로 대세인 듯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중요한 종말 사건들을 무천년설처럼 상징으로 보는 게 아니라 사실적 역사로 보는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따르는 목회자들이 훨씬 더 많다고 믿습니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인정치 않아 교회와 이스라엘을 구분짓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환난 후 휴거를 주장하는 것 외에는 종말론에서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그리 큰 입장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스라엘의 국가적, 영적 회복은 여느 종교와는 다른 성경 기독교의 역사적 사실성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맥락에서만 강조한다 해도 그 의의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세대주의 신학이 발굴한 영역이라서인지 세대주의 신학에 기본적으로 동조하지 않고도 이 역사적 증거만큼은 아주 귀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면 그들도 '세대주의자'라는 경직된 프레임을 씌워 도매금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며, 이미 선점한 특정 교리만을 교조주의적으로 강제하고 그 외의 종말론은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종의 신학적 도그마티즘의 횡포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이래가지고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논의로 좀더 균형 잡힌 성경적 종말론을 함께 찾아가는 데 오히려 불필요한 걸림돌을 용인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실제로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진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교조적 분위기로 인해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에게 종말론의 영역을 균형 있게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교회 바깥에서 답을 찾으려는 성도들이 불필요한 혼란을 겪고 신천지 같은 종말론 이단들이 오히려 활개치게 만드는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결국 성도들을 실족시키게 해온 측면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통속적이고도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들이 현재의 여러 시사적인 사건들을 놓고 너무 지나치게 성경의 종말적 예언들에 꿰어맞추려는 태도는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저도 반대합니다. 그렇게 요란하고 선정적인 선동 없이도 마지막때 이스라엘의 회복 과정에 때를 맞추어 전 세계가 이미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장차 유대인들의 거짓 메시아로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전체주의 체제로 서서히 짜여지고 준비되어가고 있다는 큰 흐름 하나만 강조해도 이 부분에서 드러낼 수 있고 또 드러내야 할 성경의 신빙성은 충분히 입증된다고 믿습니다.
성경적인 종말의 문제는 세상사람들이나 신자가 인정하든 안 하든 예수님의 재림을 향해 쉼없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인류역사 가운데 실제로 매일 매순간 성경에 예언된 대로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며, 그런 만큼 모두에게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다만 그 흐름을 미리 알고 올바로 대비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성경을 아는 주의 백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큰 혜택을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의 갈림길을 맞게 된다고 봅니다.
선정적으로 종말의 징조들 자체에만 주로 관심 갖고 신앙의 다양한 제반 영역들을 쉽게 무시하는 극단적인 '종말주의'의 경향을 경계하면서 성경의 진실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로 인해 세상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설득력 있게 복음을 전하며, 신자는 주의 재림을 고대함으로 이 땅에서 충성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매일 각자의 삶의 영토에서 주의 통치를 확장하며 살아가게 하는 데 목적을 둔 건실한 '종말의식'은 이 시대의 모든 교회가 힘쓰고 애써 일궈나갈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믿습니다.
개인적으로 절대진리를 거부하는 상대주의, 다원주의 포스트모던 시대에 기독교 변증을 활용한 전도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성경에 예언된 대로 성취된 마지막때 이스라엘의 회복이야말로 기독교의 절대진리 됨과 성경의 진실한 역사성을 변증하는 데 정말 결정적으로 귀한 증거 자료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 형태의 세속주의로 인해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주 세상을 기웃거리며 기독교의 절대진리 됨을 의심하는 이 시대의 많은 기독교인들에게도 올바른 종말의식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갖고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게 해주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지막때 이스라엘의 회복과 연관해서 주의 재림의 시대적 징조들을 강조하는 것은 지금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의도적으로 특히 더 힘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일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지금은 종말의식의 일상성을 바탕으로 매일의 현실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주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함으로 마지막때에 지속적으로 깨어 있고자 할 때 비로소 점점 더 극심해질 세속주의 가치관을 넉넉히 이겨내고 진정한 영적 성숙을 이뤄갈 수 있는 때라고 믿습니다.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답변이 될 만한 글을 아래에 첨부하는 것으로 귀하게 관심 가져주신 데 대한 답례로 삼고자 합니다. 소중한 의견 나눔에 감사드립니다~
인류 최후의 아마겟돈 전쟁, 상징인가 실제인가?
-<마지막 때에 관한 설교>(월터 C. 카이저/기독교문서선교회)
성경에 마지막때에 이뤄진다고 예언된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은 절대진리를 무시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중대한 역사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고토 귀환’(겔 37:21)을 약속하시는데,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믿는 이들은 현대 이스라엘이 무의미하다고 강변한다. 신학이 사실보다 앞서 이데올로기화된 결과다.
“분명히 유브라데와 아마겟돈은 모두 실제 장소가 아니라 상징적인 장소다.” 한국의 무천년주의 신학자 다수가 추천한 책에서 본 종말론의 한 대목이다. 무천년설 종말론의 골자는 구약성경과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천년왕국을 교회 시대로 보고, 구약의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영원히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옛 이스라엘 땅에 한 국가로 회복되어 있는 이스라엘은 성경과 무관하며, 그 나라의 유대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언약 백성도 아니다.
그러나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따르는 저자는 이 책에서 무천년설 종말론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모두 6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구약성경의 종말론을 다루는데, 개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살핀 1부 이후부터는 줄곧 마지막 때의 종말 사건들과 관련된 이스라엘의 중심적인 역할에 대해 다룬다. 그런 만큼 저자의 종말론 입장은 구약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교회를 통해 다 이뤄졌다고 믿는 무천년설이나 역사적 전천년설과는 다른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가깝다.
“마지막 때에 관한 구약의 교리 중에서 논란이 가장 뜨거운 주제 하나는, 이스라엘에 주어졌던 땅에 대한 약속이 지금도 유효한가, 아니면 이스라엘이 언약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므로 그 땅을 박탈당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의 순종 여부에 따른 쌍방적, 조건적 약속이었다면, 이스라엘은 언약을 이행하는 데 명백히 실패했으며, 그 땅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교회에 주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관점을 ‘대체 신학’(replacement theology)이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과 맺은 언약이 쌍방적, 조건적인 언약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그분의 은혜 안에서 주신 일방적, 무조건적인 언약이라면, 예레미야 32장, 에스겔 37장, 스가랴 10장의 본문들은 그 주장을 더 확대하여 보여준다”(p.67).
이스라엘 회복, 마지막 때의 종말 사건들을 푸는 열쇠
저자가 이 책에서 풀어내는 구약의 종말론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장 큰 축으로 삼는다. 이 회복에 대한 예언의 성취로부터 그 이후 굵직한 종말 사건들이 연이어 전개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종말 사건들이 구약성경에 모두 예언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 핵심 내용들을 3가지로 간추려본다.
첫째, 이스라엘의 회복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에 대한 구약 예언의 성취다.
저자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 셈, 아브라함, 다윗과 맺으신 언약은 일방적인 언약, 즉 하나님만 언약 유지의 의무를 지시는 언약이었다(예, 창 15:1-6)”(p.76)고 말한다. 이스라엘 땅에 대한 이 일방적인 언약이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1948년)과 예루살렘 회복(1967년)으로 이뤄졌다고 본다.
이 성취는 무천년설자들이 주장하듯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던 때의 양상과 비슷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 귀환으로 “바벨론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흩어져 있던 데서 유대인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렘 32:37)이며”(p.76), “과거와 달리 이 귀환 후에는 이스라엘이 평화와 쉼 가운데 안전히 거할 것(신 33:28)이기” 때문이다(p.77).
거시적으로 이 문제는 예수님이 신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땅의 회복에 대해 남기신 예언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 이 구절에서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는 오늘날처럼 복음이 온 세상에 다 전해져가는 때이자(마 24:14)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롬 11:25)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의 회복은 실제로 마지막 때가 아주 가깝다는 결정적인 징조가 된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살리셨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몸이 죽은 것 같을 때 독자 이삭을 주셨다.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생활로 거의 죽어갈 때 모세를 주셨다. 그리고 1900년 동안 마른 뼈처럼 피폐할 때 기적적으로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 나라를 회복시키셨다. 저자는 이 사실을 에스겔 37장에 나오는 마른 뼈들의 회복 장면을 들어 설명한다.
“선지자 에스겔이 대언하자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다(10절). 여기서 유일한 차이점은 에스겔의 경우 창조 때와 달리 그 생기가 여호와로부터 직접 오지 않고 ‘사방’에서 왔다는 점인데(9절), 여기서 ‘사방’은 일반적으로 전 세계 방방곡곡을 가리킨다(사 43:5-6, 렘 31:8 참조). 혹자는 뼈들이 두 단계로 회복된 것이,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그 땅으로 돌아올 때 회개가 없는, 영적 생명력과 활기가 없는 상태일 것을 잘 나타낸다고 본다”(p.93).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끝에서 저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신 28:64)라는 예언대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유례없는 유대인들의 전 세계 이산은 역사적으로 분명했다. 그렇게 흩어지고 나서 이스라엘 땅은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 23:38)는 예언대로 황무지처럼 버려졌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유대인들이 고토로 귀환한 후에는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리니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라”(겔 36:8)는 예언대로 옥토로 변했다.
저자는 이 땅의 회복 이후 러시아와 이란을 포함한 아랍 동맹국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오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폐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여러 나라에서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 나와 다 평안히 거주하는 중이라”(겔 38:8)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말년에 일어날 이 전쟁에 어느 나라가 참여하는지 그 명단을 공개한다(겔 38:1-6).
“‘로스’는 ‘러시아’(Russia)라는 이름과 종종 동일시되었다. ‘바사’(Persia)는 북쪽의 위협적인 존재인 곡의 미래 동맹국으로 확인된 첫 국가로서, 오늘날의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해당한다. ‘구스’(Cush)는 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로서, ‘에티오피아’로 추정할 수 있다. 요세푸스는 ‘붓’(Put)의 경우, 리비아 혹은 알제리와 튀니지까지로 확장하여 본다. 헬라인들은 ‘도갈마 족속’(Beth-togarmah)을 서쪽의 소아시아, 후에 터키로 알려진 지역에 거주한 프리지아인(Phrygian)과 관련 있다고 보았다”(p.180-182).
둘째, 마지막 때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는 재건된 로마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무천년설은 적그리스도가 천년왕국이 진행되는 교회 시대에 이미 복수로 많이 출현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러한 적그리스도의 모형들을 토대로 마지막 때에 최후의 적그리스도가 재건된 로마를 정치적 배경으로 삼아 실존인물로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전 5세기, 다니엘 선지자 시대에는 하나님이 네 개의 제국, 즉 바벨론 제국, 메대 바사 제국, 헬라 제국, 로마 제국이 세계사에 등장할 것만 보여주셨다(단 2:31-44, 7:17-27). 놀랍게도, 전 역사 가운데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 같은 수많은 야심가들이 로마 제국을 대신할 다섯 번째 제국을 세우려 시도하였으나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다니엘에 언급된 네 번째 제국인 로마 제국은 하나님이 세계 역사의 마지막 때에 부흥을 경험하게 하실 것이다. 지중해 연안과 이전의 로마 제국이 차지한 옛 영토에 속하는 10개국들의 연합 세력이 일어날 것이다(단 7:7-8)”(p.230).
마지막 때에 옛 로마 제국 영토에 재건될 신흥 로마제국에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시기는 바벨론 포로기인 다니엘 시대에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날 때부터 유대인들의 역사에 정해진 70이레(490년) 중 마지막 한 이레의 7년이 시작될 무렵이다. 69이레 후에 예루살렘 성이 중건되고, 메시아 예수님이 죽으시고,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이 파괴된 후부터 유대인들의 전 세계 이산이 시작된다(p.207).
그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와 다시 이스라엘 땅에 살게 될 마지막 때에 그들 앞에 적그리스도가 거짓 메시아로 등장할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요 5:43).
이 적그리스도의 시대에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헤롯 성전에 이어 세 번째 성전이 건축되고, 예수님으로 인해 이미 구약의 모든 제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의 모든 제사의식이 복원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성전에서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이라 내세우는 사건이 벌어지면서(살후 2:4) 그와 유대인들 간에 적대적인 국면이 형성될 것이고, 결국 이 불화가 아마겟돈 전쟁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셋째, 이스라엘 땅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천 년 동안 통치하신다.
마지막 때에 예루살렘이 유대인들의 땅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이 문자 그대로 그 예루살렘의 감람산에 재림하셔야 하기 때문이다(행 1:11-12). 예수님은 므깃도에서 시작된 아마겟돈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예루살렘의 감람산에 발을 내디디신다. 이때에 감람산이 동서로 갈라지는 대지진이 일어나는데(슥 14:4), 이 지진은 큰 환난기의 마지막 일곱 번째 대접 재앙으로 “큰 성(예루살렘)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는”(계 16:19) 대지진과 일치한다(p.249).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하시기 직전에 일어날 이 마지막 대재앙은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6)는 말씀에 곧이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구체적인 장소인 예루살렘의 감람산이 상징이 아닌 것처럼 그 때에 므깃도, 곧 아마겟돈에서 벌어질 아마겟돈 전쟁 역시 상징일 수 없다. 또한 그렇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비로소 유대인들이 그를 메시아로 알아보고 전 민족적으로 회개할 것이며(슥 12:10, 롬 11:25-26),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모든 시대의 성도들과 함께 천년왕국 통치에 들어가실 것이다(사 24:1-23, 계 20:1-6).
저자는 에스겔 40장 이후에 등장하는 성전을 천년왕국 성전과 동일시한다. 이 성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 성전 안에는 언약궤가 없다는 것인데(렘 3:16), 저자는 그 이유로 성전 자체가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로 여호와의 보좌(겔 43:7)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P.226).
성경의 절반이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인 이유
저자는 미국에서 풀러 신학교, 트리니티 신학교와 더불어 3대 복음주의 신학교로 불리는 고든 콘웰 신학교의 총장을 지낸 대표적인 복음주의 구약학자다. 이 책에서 그는 구약에서 종말론을 테마로 한 본문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주해하는 작업을 통해 설교자들이 알아야 할 성경적인 종말론의 핵심 내용들을 잘 분석해놓았다.
특히 저자는 이 시대의 설교자들이 종말에 대한 연구와 가르침에 특별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경 가르침의 절반 가까이가 ‘마지막 때’를 밝히고 예언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이 영역의 성경 연구를 계속 회피하거나 폄하하게 되면 ‘하나님의 경륜’의 많은 부분을 놓치고 만다”(p.14).
실제로 구약성경에 예언된 마지막 때의 이스라엘 회복을 무시하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 짓지 못하면 성경적인 종말론을 제대로 정립하기 어렵다. 특히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요엘, 스가랴 같은 구약의 선지서들과 예수님의 종말 강화, 요한계시록의 전반적인 내용을 올바로 풀어내는 데 난제가 많다. 이런 책들이 닫혀버리면 상징이 아닌 실제 역사와 연관된 살아 있는 종말론 또한 닫혀버린다. 그 와중에 신천지 같은 종말론 이단들이 사각지대의 음지에 방치된 신자들을 온갖 그릇된 상징이나 비유 이야기들로 현혹시킨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구원론, 교회론, 은사론 등의 여러 면에서 세대주의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신학이 성경에서 건져낸 이스라엘 회복의 이슈는 성경적인 종말론을 정립해가는 과정에서 복음주의 신학에 끼친 중대한 공로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회복은 절대진리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기독교의 사실성과 역사성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변증적 자원이다.
무천년설과 전천년설 간에는 앞으로도 각자의 신학적 토양이 더 성경적이라는 주장 가운데 팽팽한 신학적 논쟁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그러나 그 논쟁이 이 시대에 특히 유용한 기독교 변증을 위한 주된 역사적 증거들마저 무심하게 사장시켜 하나님 나라의 ‘국가적’ 손실로까지 이어지진 않길 바란다.
-더 깊은 탐구를 위한 연관 질문
1. 구약의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영원히 대체되었다는 종말론적 입장이 가진 약점은 무엇인가? 대체신학이 1948년에 성취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목도하기 전에 완성된 신학체계라면 이제라도 수정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가?
2.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감람산으로 오신다는 기록(행 1:11-12, 슥 14:4)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할 사실이라고 보는가? 그렇다면 그때 아마겟돈이란 이름을 가진 지역에서 벌어질 인류 최후의 전쟁을 상징으로 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더 깊은 탐구를 위한 관련 도서
<무화과꽃이 피었습니다>(이경용, 이스트윈드)
구약에 사용된 이스라엘을 ‘나’와 ‘교회’로 대체해서 읽고 이해해온 오류를 발견하고, 지금의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해석하거나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편견을 깨트리기 위해 쓰인 책. 20세기 중반에 이뤄진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과 그 후에 이어질 영적 회복은 구약과 신약성경에 예언된 마지막때의 가장 중요한 시대적 징조라고 역설한다.
“‘여러 민족 가운데서 모아 데리고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겔 36:24-25).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인도하여 그들의 고향 땅으로 데리고 들어감으로 육적으로 회복시키고, 그때에 그들을 정결하게 하고 새로운 영을 부어주셔서 영적으로도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온전한 회복은 만물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다”(p.300).
<이스라엘과 대체신학>(존 김, 예영커뮤니케이션)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구약의 이스라엘이 교회로 대체되지 않고 마지막때에 물리적, 영적으로 회복된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 책.
“존 칼빈은 <로마서 주석>에서 ‘이방인들이 영입될 때 유대인들이 돌아올 것이며,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온 이스라엘이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요한계시록에 관한 글들>에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았다. 그는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중심으로서 가나안 땅의 위치를 언급했다. 약속의 땅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고토로의 귀환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회사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존 밀턴, 조셉 버틀러, 찰스 스펄전, 리즈 하월즈, 헤르만 리더보스, 존 머레이, 조지 래드, 밀라드 에릭슨, 웨인 그루뎀, 제임스 던, 월터 카이저 등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확신했다”(p.87).
- 안환균, <기독교 팩트체크>(두란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