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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가 파산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회사의 적자 규모는 약 17억 달러였고, 현금 자산은 단돈 100달러 정도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위태로움 속에서, 회사는 위기 극복을 위해 새로운 회장을 뽑았습니다. 새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연봉을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와 함께 대대적 구조 개혁안을 만들어 노조와의 직접 협상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러한 자구 노력을 호소하며 정부에 지원을 요청해, 1980년으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인 약 12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았습니다. 파산이 예고된 폐업 직전의 회사에 뛰어든 CEO는 바로 “리 아이아코카”였습니다. 그는 훗날, “솔선수범해서 먼저 희생하는 리더십을 보여 주어야만 했습니다. 1달러 연봉을 받기로 한 것은 망해도 함께 망하고, 성공해도 함께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위아래 구별 없이 모두가 함께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태산이라도 능히 옮길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내가 경영의 비결을 하나 배웠다면, ‘함께 더불어’ 일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리더의 책임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네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짓밟고 올라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나라입니다. 본문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 군대는 많은 전리품을 얻게 되자, 분배로 인한 갈등을 겪습니다. 그 속에서 다윗은, 모든 소유를 모든 이에게 똑같이 분배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승리한 전쟁이기에, 차등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캘리포이나에서 “처치 온 더 웨이”를 설립하여 목회했으며, 500곡 이상의 찬송과 “프뉴마 성경”과 “시편처럼 사는 예배자” 외 50여권의 베스트셀러를 저술했고,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의 이사였던 “잭 헤이포드” 목사는, “만물을 다스릴 특권도, 의와 공평으로 통치를 수행할 능력도 주님과의 친밀함과 순종에서 나온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아말렉 군사를 치기 위하여 군사 600명을 데리고 가다가 200명은 피곤하여 싸움에 참여할 수 없어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했고 400명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전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어디에나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전쟁에 나가서 목숨 걸고 싸운 400명과 브솔 시내에 있었던 200명과의 갈등이 표출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무엇이든지 해결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해결이 안 되고 더 깊은 갈등을 넘어 싸움판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익과 감정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사회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는 브솔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9 - 20절을 보시면,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고 합니다. 성도인 우리는, 삶 속에서 실패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어디로 갈지도 모른 채 추격에 나섰던 다윗이 아말렉을 추격하러 가던 중, 아말렉 사람이 버린 애굽 소년을 만나, 그 소년의 인도로 아말렉 사람들의 진중에 도착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승리에 도취해 있을 때 급습하여 대승을 거두고, 끌려갔던 처자식과 빼앗겼던 모든 것과 포로로 끌려갔던 모든 사람을 되찾았으며, 약탈 전보다 더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시글락의 함락이 다윗에게 복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위기에서도 전화위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추격을 시작해서 빼앗겼던 것을 되찾기까지, 다윗에게 망설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처자식이 다 사로잡혀 갔기에 지체 없이 추격을 해야 함에도 먼저, 하나님께 물은 것은 그들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아서 자신들의 처자식이 모두다 이방 민족에게 사로잡혀 갔다고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끝없는 터널 속과 같은 상황에 있었음에도, 아니 그 터널 속에 있었기에 오히려 하나님을 더 찾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했음에도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인생을 자기 각본대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각본 때문에 자기가 망하게 되었을 때, 다윗은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자기를 부인하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의존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굴곡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합니다. 성도의 삶 속에서도, 비록 그 삶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순탄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였을 때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했을 때, 모든 것을 회복하고 형통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후 비록 죄를 범하기는 하였지만 그 와중에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로 인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왕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의 경험을 우리의 경험으로 삼아 언제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심으로, 다윗의 형통한 삶이 곧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2 - 23절을 보시면,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고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본문 앞의 21절에서, 다윗과 일행 600명은 블레셋의 싸움에서 나와 최소한 사흘 길을 걸었기에, 매우 피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낙오한 200명도 자신들의 가족들이 잡혀간 이상 아말렉과의 전쟁을 기피할 마음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의만 있을 뿐 힘은 없었습니다. 다윗은 200명을 후방 브솔 시내에 남겨 두고 아말렉을 쫒아 전진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수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던 다윗은 브솔 시내에 남겨두었던 200명의 군사를 만납니다. 몇몇 사람들은 수고한 자신들과 편히 쉬고 있던 그들과 전리품을 똑같이 나누는 것을 반대합니다. 악한 자와 불량배들은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른 이들만 전리품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브솔시내에 남아 전쟁을 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돌아갈 전리품은 없으며, 그들은 처자를 돌려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참여한 군사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쟁을 주관하셔서 승리하게 하신 것이므로, 그 누구도 자신의 공을 내세워 더 많은 전리품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싸운 사람이나 뒤에 남은 사람이나 전리품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결정하였고, 이것을 이스라엘의 규정으로 삼았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의 승리는 그들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400명의 군사들이 목숨 걸고 싸운 수고는 대단합니다. 그들의 공로는 큽니다. 그러나 그 공로 때문에 자신들만 나누어 갖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고 욕심입니다. 전체를 생각하지 못하는 소유욕과 이기심이 가득한 일입니다. 전쟁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은혜와 특권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전리품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에, 전쟁에 불참했던 용사들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연대 의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결정을 하였고 보통 사람들과 군사들이 보지 못한 먼 미래를 바라보는 영적 분별력과 깊은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서는 과연 누가 참된 왕권을 행사하고 있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참된 왕이 되셔야 한다고 인정하신다면, 본문의 다윗과 같이 먼저 모든 행동의 결정권을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겨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하며, 하나님을 왕이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실로 그 분을 왕으로 인정한다면 겸손히 그분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언제나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현대는 브솔의 은혜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브솔의 은혜가 있어야 삽니다. 우리 모두에게 쉼과 일함과 나눔의 브솔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31절을 보시면, “헤브론에 있는 자에게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왕래하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나누는 삶을 삽니다.
시글락에 돌아온 다윗은 전리품을 자기들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유다의 장로들에게도 보냅니다. 사울은 아말렉의 전리품으로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고 높였기에, 600명 군사와 가족들로 한정되어 있던 그의 영향력은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됩니다. 어려움 속에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 다윗은 위기에서 오히려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본문을 끝으로 다윗은 그간의 도망자로서의 삶을 마치고, 유다에 귀환하여 왕이 됩니다. 그러나 그의 험난한 여정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수난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행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도 끝없이 간섭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목자 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윗처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건져내어 주십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은, 전적인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라 고백합니다. 본문에서, 다윗과 사울의 차이가 나타나는데, 사울은 아말렉에게서 탈취한 소와 양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겠다고 했지만, 결국 그 제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었지만, 다윗은 이스라엘과 함께 나누고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신앙의 본질을 붙들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런 노력이나 수고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다윗도 아말렉과 생명을 걸고 싸웠기에 탈취물들을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을 얻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다는 겁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인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윗과 사울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대처하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대조를 이룹니다. 여러분, 본문에서,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로부터 얻은 전리품을 모든 백성들에게 차별 없이 골고루 나누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장로들에게도 나누어주었습니다. 경건을 가장하여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사람을 의지하며 진실한 신앙이 아니라 눈에 띄는 종교행위를 추구했던 사울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다윗과 같이, 우리도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려야 합니다. 다윗은 전투에 참가한 사람들끼리만 전리품을 나누자는 주장에 반대하며 모든 백성에게 동일하게 분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본문 앞의 23절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고 합니다. 즉, 자신들이 아말렉을 쳐부수고 승리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전리품을 싸움에 참가한자나 참가하지 않은 자가 동일하게 나누어 갖는 것이 옳다는 겁니다. 다윗이 전리품을 모든 사람들과 공평하게 나누고 또 그것의 일부를 고통당하는 동족에게 나눈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본문의 다윗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