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질의와 응답 1963번. 므나 비유 달란트 비유 / 민중신학자들의 성경해석에 미혹 받으면 안 됩니다. 2009-11-07. 눅19:11-27, 마25:14-30, 눅19:26, 마5:29, 마25:41
목사님 안녕하세요
참 수고가 많으십니다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요
다름이 아니라 마 25장 눅19장 달란트와 므나비유에대해 궁금힌게 있어서 질의드립니다
어떤교수가 므나 비유(눅 19:11-27)는 달란트 비유(마 25:14-30)에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들어왔던 해석들과는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어요
이 논문의 연구 주제인 므나 비유(눅 19:11-27)는 달란트 비유(마 25:14-30)와 함께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변호자들에 의해서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성서적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지배적인 서구 신학자들의 해석은 이러한 비유들에 담겨 있는 탐욕, 착취, 오만, 그리고 폭력의 세계를 비판하지 않고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교훈만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예수가 죽음을 불사하면서 우상숭배적인 경제 체제를 비판하고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수가 이 비유들에 나타나는 실제적인 삶의 요소들인 로마제국과 토착 귀족들에 의한 억압과 착취의 경제구조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직 많은 이윤을 얻은 종들을 칭찬한 것처럼 해석하였다. 서구 신학자들은 므나 비유의 핵심 구절인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눅 19:26; 참고. 마 5:29)고 하는 자본주의적 원리를 무조건 예수의 경제 원리 또는 하나님의 경제 법칙으로 해석함으로써 이 비유를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을 정당화하는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를 신학적으로 재가하고 지지하는 결정적인 성서적 근거로 사용하였다. 만일 이러한 지배적 해석이 옳다면 가난한 자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넣는 경제적 불의 역시 하느님과 예수가 원하는 경제의 원리나 경제의 기본법에 의한 것이라고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하느님나라의 경제 원리가 이런 것이라고 한다면, 이 비유의 본문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폭압에 저항하는 가난한 농민들과 노동자들과 해고된 실직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희망을 빼앗고 그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테러의 본문이 될 것이다. -본문에서발췌
내용을간단히 살펴보면
이 비유들에서 주인은 당시 부자나 권력가를 뜻한다 장사하여 이윤을 남긴 두종은 산하나 가신에 해당하는 계급의 사람으로 주인을 도와 서민이나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의 재산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정 사정없이 착취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하여 주인에게 잘보여 돈과 권력으차지하려는 자들이다 그 주인도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돈을 땅을 파고 숨겨 두었다가 그애로 가져온 세 번째 종은 전에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쁜 사람 이였으나 이제는 돌이키고 지금까자와는 달리 그런 나쁜일에 동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당히 그 주인의 잘못을 지적하며 항거하였다
대략 이런 내용 인것같아요
이렿게 해석될 수도 있는지요
<응 답>
민중신학자들의 성경해석에 미혹 받으면 안 됩니다.
형제께서 읽고 나의 소견란에 기재하신 어느 신학자의 글은 성경을 피압박자와 압박자의 계급적 투쟁 관계로 풀고 예수를 피압박자의 해방자로 등장시켜 교회를 계급투쟁에 있어서 자본주와 대항하여 싸우는 노동자의 복음운동으로 승화시키려는 소위 민중신학자들의 성경 해석 방법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신 것이란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거기에는 있는 자와 없는 자들의 계급투쟁적인 말씀이 없으며 그런 계급투쟁을 부추긴 말씀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없는 자들을 위한 사회개혁운동의 지침으로 주신 게 아닙니다. 성경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복음을 그런 운동으로 승화시키려는 자들은 분명히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며 이런 자들은 비록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으라고 한 바울의 경종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눅19:11-27절에 나와 있는 말씀이나 마25:14-30절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은 비유이십니다.
마25장에는 주님의 재림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말씀하신 목적이 마지막 심판날에 각기 자기의 한 일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임을 경종하시기 위해 주신 비유입니다. 누가복음의 말씀도 역시 마태복음과 같은 시기와 환경적인 배경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눅19:12절에 나오는 "어떤 귀인"은 그 주체가 이 비유를 들려주고 계시는 본인, 즉 예수님을 가리키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헤롯 왕이나 아켈라우수가 등장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이 비유 속에 함유된 내용을 현대적인 경제이론으로 계급투쟁적인 언질로 발전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요소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에서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고 하신 그 백성이란 그 당시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던 불신앙적인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귀인으로부터 은을 받은 종들은 제각기 달란트의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들을 가리킵니다. 그 세 종들 중에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긴 종들은 충성된 종으로서의 사명을 다한 성도들의 경우를 말합니다.
그리고 한 므나를 수건에 쌓아 땅에 묻었던 종의 경우는 악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은즉 그는 받은 달란트를 교회에 유익하게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세속적인 신앙으로 침륜에 빠진 자들입니다. 이 자는 오히려 주의 재림의 날에 짐승 편에 서서 교회를 핍박했던 음녀의 무리들일 수 있습니다.
그가 귀인 앞에서 한 말은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두려운 심판주에게 변명할 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실은 통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왼편에 서게 될 것이며 이런 선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이 자가 소유하고 있었던 한 므나는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원래가 주인의 것입니다. 그는 그 한 므나를 당연히 반환해야 합니다. 빼앗긴다는 말은 그에게 맡겼던 모든 직분이 무효가 될뿐 아니라 이 사람은 자신이 심은대로 거둬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거둔 한 므나에 대한 상급은 열 므나를 남긴 충성된 종에게 차례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하신 말씀은 원래가 한 므나를 그대로 남겼던 그 악한 종들은 주의 재림을 원치 아니했던 자들임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법측은 있는 자는 더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있는 자란 물질적 소유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소유로써 하나님께 부요한 자를 가리킵니다. 열매가 없는 자들은 그에게 주셨던 달란트까지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실제 그대로의 표현이 아니십니다.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실제상황과 연결시켜서는 안 됩니다. 표현하기 난감한 사건을 비슷한 예화로 밝힌 것이 비유임을 알고 전후문맥을 통해서 그 비유에 담겨진 참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09년11월7일 민병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