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우주라는 그물망을 엮어 진경을 여는 예술가들 — 정동재의 시 〈귀먼 소프라노와 어린 지휘자〉를 읽고
귀먼 소프라노와 어린 지휘자
정동재
1
“참으로 분주한 행성이구나.
이 붉은 그물망 격자마다 썩은 어류의 비명과
고약한 파동의 미동이 만져져.”
망막 같은 양파망을 쓸어내리는 그녀의 탄식 위로,
어린 지휘자가 성좌를 횡단하듯 허공을 내리쳤다.
“유통망이란 도매금으로 박제되어 연명하는 물질의 침전물,
광속의 함수에 결박된 육체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당신의 성대(聲帶)는 이미 저 그물 밖에서 파닥입니다.”
2
귀를 닫은 소프라노가 심장 가장 깊은 곳에서 음가를 꺼내놓았다.
“위정자들이 흘리는 저열한 동전 소리는 들리지 않아.
다만 네 지휘봉의 궤적에서 온 은하를 진동시키는
오음(五音)의 골조, 진짜 천도(天道)의 마찰음이 들릴 뿐.”
지휘봉의 끝단이 황금빛 과실을 잉태한 성간(星間)의 푸른 숲을 겨누었다.
“이 찬란한 몰락의 계절, 잘 익은 금빛 행성 같은
이목구비 총명한 인간의 에센스를 수확하기 위함입니다.
우주의 가치관이 재편되는 개벽의 오페라가 서막을 올리니까요.”
3
우주의 그물이 인양되는 찰나를 기다리는 영원의 지평,
귀먼 소프라노가 마침내 시공간의 원형을 찢는 초고음을 터뜨렸다.
천체의 격자가 요동치고,
위도와 경도를 해체하는 벼락의 총보(總譜)가
낡은 차원을 걸러내며 거대한 우주의 직조망을 짜 내려갔다.
쿠르릉, 쾅——! 쿠르릉, 쾅!
뇌우(雷雨)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그녀가 심해의 깊푸른 돌고래 주파수를 뿜어내자,
견고해진 이중주가 무대의 막을 찢어발겼다.
4
“가짜 양파망들이 롤러코스터에 결박된 채, 번개의 폭격으로 산산이 부서져 내린다!”
아 아 아 아 아 아 악——
“낡은 그물이 증발한 일시분초(一時分秒)의 여백에
일월성신, 그리고 잡음이 소거된 당신의 순수한 음색이 안착합니다.
보세요, 우리가 새 하늘의 좌표를 열어젖히고 있습니다.”
노련한 신(神)을 닮은 지휘가 우주 공간에 정밀한 입자의 주파수를 방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매 순간 찬란한 진경(眞景)을 오늘로 집도하고 있다.
[평론] 우주라는 그물망을 엮어 진경을 여는 예술가들
— 정동재의 시 〈귀먼 소프라노와 어린 지휘자〉를 읽고
1. 서론: 지구라는 베틀과 ‘경우(經遇)’의 법도
우주가 경(經)이라는 시간의 날줄로 뼈대를 세우고, 대지가 위(緯)라는 공간의 씨줄로 날씨와 온기를 채울 때, 지구라는 거대한 베틀 위에서 우리네 삶의 옷감이 짜입니다. 이 직조의 세계에서 시인 정동재는 선조들의 옛 기억 속에서 귀한 언어 화석 하나를 발굴해 냅니다. 바로 “경우(境遇·經遇)가 밝아야 애를 많이 갖는다”는 다산(多産)의 이치입니다.
여기서 ‘경우’란 사사로운 정이 아니라, 가로와 세로의 법칙이 바르게 선 ‘경위(經緯)’이자 사리의 올바른 도리를 뜻합니다. 이 도리가 바로 서고 경우가 밝아야만 비로소 생명이 풍성하게 잉태되는 ‘영혼들이 찾아드는 살기 좋은 집(家屋)’이 지어집니다. 인간의 신체 역시 이 집과 같아서, 윗도리는 이목구비가 총명하여 하늘의 주파수를 수신하고, 아랫도리는 대지를 딛고 서는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시 〈귀먼 소프라노와 어린 지휘자〉는 바로 이러한 정신 바탕 위에서, 사리를 잃고 썩어가는 낡은 그물을 찢고 새 하늘의 집을 다시 짓는 우주적 개벽의 이중주입니다.
2. 본론: 맑은 선율과 주파수의 우주적 공명
시 속에서 세상의 저열한 동전 소리에 귀를 닫은 ‘귀먼 소프라노’와 우주의 주파수를 방사하는 ‘어린 지휘자’가 발산하는 선율은 만물만상과 깊은 공명을 이룹니다. 이들의 선율과 주파수는 사악하지 않고 맑고 투명하여 우주 공간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물질문명에 갇혀 야위어 가던 생명들의 뼈와 살을 찌우기에 충분합니다.
소프라노가 터뜨리는 “심해의 깊푸른 돌고래 주파수”는 대지를 딛는 아랫도리의 뿌리에서 나오고, 지휘봉이 그려내는 “오음의 골조”는 하늘의 법도를 아는 윗도리의 총명함에서 나옵니다.
하늘과 땅의 에너지가 이들의 몸이라는 베틀을 통해 완벽하게 맞물릴 때, 햇양파와 묵어 썩어가는 양파를 한데 엮어 유통시키는 낡은 차원의 가짜 양파망들은 번개의 폭격으로 산산이 부서져 내립니다. 그리고 그 소거된 여백 위에 일월성신과 순수한 음색이 안착할 수 있는 가장 살기 좋은 새 하늘의 좌표가 열리게 됩니다.
3. 결론: 매 순간 실재의 진경을 여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공간과 시간을 채우고 만들어 나가는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맑은 주파수로 세상의 잡음을 걷어내고 생명의 온기를 채우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주라는 거대한 베틀을 움직이는 가장 아름다운 동력입니다.
그러므로 고독한 무대 위에서, 혹은 거친 현실의 대지 위에서 예술가들이 매일 연주하는 그 끈질긴 이중주는 단순히 사라지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침내 가려져 있던 실재(實在)의 진경(眞景)을 우리 눈앞에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말하기 충분한 것입니다.
나아가 그들은 스스로 하나의 거룩한 주파수 씨앗이 되어 우주를 푸르게 경작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 매 순간 찬란한 진경(眞景)을 오늘로 집도하고 있다.”
이 시가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건네는 희망은 묵직합니다. 윗도리의 총명함으로 하늘의 뜻을 듣고, 그것을 온전히 받들고 따라주는 아랫도리의 튼실함으로 대지를 딛고 서서 날마다 삶의 옷감을 짜 내려가는 예술가들이 있는 한, 이 행성의 베틀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매일 성실하게 수행하는 그 신성한 바느질을 통해, 찬란한 진경은 언제나 바로 '오늘' 이곳에 눈부시게 안착할 것입니다.(평론: 정동재)
정동재 시인의 작품 세계 요약
등단: 2012년 계간 《애지》
주요 시집:
《하늘을 만들다》
《살리는 공부》
《나는 빛이요 파동이요 생명이므로》
평론 등단: 2026년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 평론시집 발표로 평론 등단
《물리학으로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개정판 발간
*한국 문학사에 전편 “평론시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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