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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의 불을 끄지 말라
성경본문: 레위기 6: 8-13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10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11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
12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13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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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시대에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는 불을 사용할 줄 알았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벼락이나 산불과 같이 자연적으로 생긴 불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다 나무 마찰을 통해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조금 더 발전해서 부싯돌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을 일으키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집집마다 필요할 때 불을 일으켜 사용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 생활에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불씨를 보존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동굴 속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꺼지지 않도록 정성을 다했고, 나중에는 화로를 만들어 그 안에 불씨를 보존하려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비교적 최근 19세기에 와서 성냥이 발명되고, 20세기에 라이터가 발명될 때까지 인류는 이 불씨를 지키려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불을 신성하게 여겨서 이 불씨를 보존하는 일을 하나의 종교의식처럼 여겨왔습니다. 이 불씨를 보존하는 일이 그 집안의 흥망과 연관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한 집안의 불씨는 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이사갈 때 그 불씨를 화로에 담아가기까지 했습니다.
며느리는 시집오면 시어머니로부터 그 불씨를 전수받았습니다. 이제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하는 일과 함께 이 불씨를 보존해야 하는 일은 시집온 며느리의 준엄한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늘 “불씨를 꺼뜨리지 말라”는 강력한 명을 받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사장들에게 준엄한 명령이 주어집니다. “제단의 불을 끄지 말라!” 그것도 반복해서 세 번이나 주어집니다.(9, 12, 13)
그렇습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의 가장 주된 사명 가운데 하나가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단에서 제물이 드려지고 있을 때는 물론이고, 제단에서 제물이 드려지지 않는 시간에도 불은 끄지 말고 계속 타오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아침에 아침 상번제를 드리고 난 후 종일 여러 가지 제사가 드려집니다. 저녁에 다시 저녁 상번제를 드리고 나면 그날의 모든 제사는 끝이 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제사가 드려지지 않는 밤중에도 계속 그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도록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제사장들이 꼭 지켜가야 할 임무였습니다.
제단의 불은 무엇입니까?
우선 이 불은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불입니다.
레위기 9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첫 번째 제사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론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고 말씀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론이 제사를 마치고 모세와 함께 회막에 들어갔다 나온 뒤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9:24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하늘에서 불이 임해서 제단 위에 붙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미 그 제단 위에는 아론이 붙여 놓은 자연적인 불이 있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불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 불은 다른 자연적인 불과는 다른 거룩한 불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단의 불은 아주 특별한 불입니다. 이 땅의 모든 불과 구별되는 불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불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불은 오직 이 불로만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불입니다.
레 10:1-2를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제사장이 성막에서 분향을 하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불에 타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입니까? 제단의 그 거룩한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분향을 했기 때문입니다. 레 16:12를 보면 제단의 그 불로 분향하라 했는데 저들이 그 제단 불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만든 불로 분향을 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9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리고 1:13, 1:17, 2: 2, 2:9, 3:5 등등 계속해서 같은 말이 반복됩니다.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바로 이 제단의 불로 제물을 태워 하나님께 드릴 때 그 제사가 여호와께 향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 불로 제물을 태워드린 제사만 기뻐 받으셨습니다. 다른 불로 드린 제사는 받지 않으셨고 오히려 진노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불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는 불입니다. 이 불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고, 이 불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제단의 불은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를 줄까요?
행 2:1-4를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신 사건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은 불로 임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제단의 불은 오늘 우리에게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롬 4:14를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불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의 불이 임하시면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요 4:24를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성령의 불이 임하셔서 우리의 예배 현장에서 역사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이 성령이 불로 임하셔야 합니다. 이 성령의 불이 오늘도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왜 제단의 불을 끄지 말아야 합니까?
우선 이 불은 다시 붙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불은 꺼지면 다시 붙일 수 있습니다. 성냥이나 라이터로 간단히 다시 붙일 수 있습니다. 요즘 가스레인지에는 자동 점화장치가 있어서 성냥이나 라이터도 필요가 없습니다. 스위치만 켜면 저절로 다시 붙습니다. 그러나 이 불은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붙일 수 있는 불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다시 붙일 수가 없습니다.
한 청년이 성경공부 도중에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 편 강도가 참 부러워요? 제멋대로 인생을 즐기고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주님 만나서 구원 받아 천국 갔으니 말이예요. 저도 세상 재미 좀 보다가 나이 들어 세상 떠나기 전에 주님 앞으로 돌아올까봐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도 혹시 이 청년처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이 청년이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믿고 싶으면 언제든지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회는 다니다가 쉬고 또 쉬다가 마음 내키면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려면 성령이 역사해야 하고, 우리가 교회 다니는 것도 다 성령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불을 꺼뜨리면 안됩니다. 우리 마음대로 다시 붙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이 불이 있어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불이 꺼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출 29:4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제단의 불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그 때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단에 불이 꺼지면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제사를 드리지 못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도 들을 수 없습니다.
이 제단의 불을 끄지 말라는 명령에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저들 중에 거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다시 말하면 이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를 때 우리는 하나님과 아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분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다시 말하면 이 성령의 불이 약해지거나 꺼지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현격하게 약화됩니다. 결국은 단절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살전 5:19에서 이렇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여기서 소멸이라는 말은 꺼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불이 우리 심령 속에서 결단코 꺼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성령의 불이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올림픽의 상징은 “성화”(sacred olympic fire)입니다. 이 성화는 올림픽이 시작되기 직전 고대 올림픽 개최지인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태양으로 점화합니다. 그리고 올림픽 개최지까지 릴레이로 봉송합니다.
개회식 때 성화대에 점화하여 올림픽 기간 내내 밤낮으로 활활 타오릅니다. 그러다 올림픽이 다 끝나고 폐회식 마지막 순간에 꺼집니다.
이것은 올림픽이 개최되는 동안 올림픽 정신이 온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상징입니다. 신성한 경쟁, 우호 그리고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올림픽 정신이 온 지구촌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기원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성화가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심령 속에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올라야 하겠습니다. 성화가 꺼지면 올림픽이 끝이 난 것처럼 우리의 심령 속에 성령의 불이 꺼지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풍성한 삶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성령의 불을 꺼뜨리면 안됩니다.
어떻게 제단의 불을 끄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선 재를 치워야 합니다.
본문 10-1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 한 마디로 계속되는 제사로 인해 제단에 점점 쌓여있는 재를 치우라는 말씀입니다.
모닥불을 오래 피우다 보면 나무가 타고 남은 재들이 수북하게 쌓입니다. 계속해서 모닥불을 피우려면 이 재들이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산소 공급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새로 넣은 나무가 불꽃 한 복판으로 연결되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이 재는 불이 활활 타는 것을 가로막는 방해꾼입니다.
제단 위에는 더 했습니다. 쉴 새 없이 제사가 계속됩니다. 타고 남은 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갑니다. 나무를 올려놓을 자리가 없습니다. 제물을 놓을 공간도 없습니다. 산소 공급은 말할 것도없이 방해를 받습니다. 이 재를 치워야 합니다. 그래야 불을 꺼뜨리지 않고 활활 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 보면 마음에 갖가지 영적인 재가 쌓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로 우리의 죄와 허물입니다.
때로는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저지릅니다. 또 때로는 나도 모르게 죄를 짓습니다. 죄인 줄 모르고 저지릅니다.
둘째로 원망과 불평입니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원망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불평이 찾아듭니다.
셋째로 자기 자랑과 교만입니다.
주의 일을 열심히 하는 중에 남보다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은연중에 찾아듭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자기가 제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재를 치워야 합니다. 이런 재들이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습니다. 그대로 두면 점점 불이 약해져 갑니다. 그러다가 불이 꺼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땔감을 계속 공급해야 합니다.
본문 12-13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한 마디로 계속 나무를 공급해서 불이 계속 붙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나무는 무엇일까요?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상징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우리가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우리 심령 속에 성령의 불이 다시 불 일듯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일에 몰두하게 될 때 우리 마음속의 성령의 불은 약화됩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사람을 깊이 담아두고 있고, 상황과 사건을 깊이 생각하게 될 때 우리 마음 속의 성령의 불은 약화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말씀의 영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묵상할 때 성령은 우리 속에서 불 일듯 일어나 뜨겁게 역사하십니다. 오늘도 우리 심령의 제단 위에 말씀을 놓아야 합니다. 계속 말씀을 공급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단의 불을 끄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고전 3:16을 보면 우리가 성령의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안에 성령의 불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하겠습니다. 더욱 그 불이 일어나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