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 칼과 황홀
저-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출- 문학동네
독-2015.9 27
· 봄이다. 곧 청어가 식탁으로 올 것이다. 요즘은 청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공치가 대신 올지도 모른다. 고등어도 좋다. 등만 푸르면 된다.
·소리가 나지 않아서 음향을 높이려고 리모컨을 찾았다. 정작 TV는 침대 맞은편 벽에 배달려 검은 낯을 한 채 거져 있다. 가만히 보니 벽 한쪽의 화면 속에서 어선이 연기를 뿜으며 나아가고 섬 위에서 아침노을에 물든 구름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실물이었다. 바다를 향한 벽 하나를 통째 ㅇㅇㅇ유리로 만들어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노랫말이 주는 서정적 느낌이 몸을 적셔왔다.
·고향에 없는 아름다눈 해변을 거닐다 봄바람에 쫓겨 다시 차에 올랐다. 허기가 져서 남해군청 문화관광과에 전화를 걸었다. 남해서만 먹을 수 있는, 남해가 자랑하는 음식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느냐, 또 담당 공무원 이름을 대면 그곳에서 잘해주느냐고 . 단박에 멸치 쌈박을 추천했다. 죽방렴 어장이 빤히 내다보이는 곳에 멸치쌈밥을 하는 식당이 여러 군데 성업중이다.
· 멸치 진죽방은 비싸고 가죽방은 유사품이라 국물을 내려고 네댓 마리를 물이 끓고 있는 냄비에 넣었는데 나뭇잎 배처럼 빙빙 돌기만 할 뿐 좀처럼 삶기지 않았다. 노는 꼴을 보니 명치가 서당에 가지 않고 땡땡이치는 학동들처럼 보였다. 국물도 잘 우러나지 않아 멸치를 더 넣고 오래 끓여서야 원하는 농도의 국물 맛을 얻었다. 담백하고 고급스러웠다. 예쁜 모양이 흐트러지는 게 싫어서 내장을 빼지 않았는데도 쓴맛은 전혀 없다.
·내가 생애 최초로 등심고 차돌박이를 먹은 곳이 그곳이고 고기를 먹은 뒤 밥을 볶아주는 것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등심은 엄지손가락 한 마디쯤 되게 두툼하게 썬 것이었다. 달아오른 돌판에 한 번만 뒤집어 구움으로써 풍부한 육즙이 안에서 빠져나오지 않도록 익혔ㄷ. 한 점을 잘라서 입에 넣자 진짜 쇠고기의 맛이 입안에 풍성하게 느껴졌다. 왜 쇠고기가 고기 중에 가장 비싼지 알겠다. 그름이 잘잘 흐르는 차돌박이는 고기의 맛은 지방에 있다. 부드럽게 씹히고 넘어가는 게 애교스럽다고나 할지, 제 나름의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계산을 할 때 선생님으 지갑 속에서 내 한 달분 용돈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선생님을 평생의 선생님으로 모시고 뒤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술이 좀 모자라지? 고기를 먹었으니 어지간한 걸로는 맛을 모를 것이니 좀 센 걸 먹으로 가지.”
홍어 전문식당으로 갔다. 깨어보니 종착역도 아닌 차량 기지였다. 자갈이 밟히며 몸을 비비는 소리에 이제 나도 어른이 되는가 싶었다.
·발효식품의 대명사가 청국장이다. 콩을 수확하고 난 뒤 초겨울에 담그는 게 보통이다. 학교에서 돌아모면 뭔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게 안방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었다. 들여다보면 콩이 반쯤 뭉개진 채로 누르께하게 몽쳐져 있는데 그 끈적끈적한 것이 담북장이었다. 항암작용에 다이어트 효과에, 고혈압, 당뇨, 치매, 뇌졸중 예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지만 어린 내게는 해당되는 것도 없었다.
· 청국장에는 단백질,지방, 탄수화물이 고루 들어있다. 칼슘, 철, 마그네슘을 포함한 미네랄과 비타민이 듬뿍 들어 있다. 발효과정에서 원래의 대두에는 없던 고분자핵산 같은 유익한 물질이 만들어지고 항암물질, 항산화물질, 면역증강물질과 같은 생리활성물질도 생겨난다. 영향학적으로 만점인 콩을 가장 잘 활용한 음식이 청국장이다.
·도토리는 동긍동긇서 옆으로 잘 구르게 생겼다. 최대한 멀리 가서 살 만한 곳을 찾아 잘 살라는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빗방울 하나가 태백의 삼수령 위에 떨어져서 어느 쪽으로 구르느냐에 따라 한강이 될 수도 있고 낙동강이나 오십천이 될 수도 있듯이. 도토리도 나므대로의 신비한 길을 따라 운명의 행로를 구르게 된다. 대개 그 길의 끝은 물가의 펑펑한 곳, 산 중턱의 우묵한 곳이다. 거기서 도토리들은 키 재기 놀이를 하면서 저희끼리 잘 지내개 된다.
·라면의 면발을 꼬불꼬불하게 만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좁은 며적에 많은 양을 담으려면 직선보다 곡선으로 만드는 게 좋고 면을 튀기는 과정에서 빠른 시간에 많은 기름을 흡수할 수 잇게 하는데 곡선형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면을 꼬불꼬불하게 만들면 직선일 때보다 훨씬 덜 부서진다. 제면기로 국수 모양이된 면발은 퀀베이어벨트를 타고 움직이게 되는데 라면이 출굴에서 나오는 속도에 비해 면발이 투입되어 이동하는 동안의 소도를 느리게 함으로써 직선형의 라면 가닥이 밀리면서 압축되어 꼬불꼬불해진다. 식품 공학 전공자가 라면 맛을 내는 수프를 개발하는 부서에 있ㄷ. 그는 하루 종일 파, 마늘, 양파 등의 식재료를 썰어서 공바처리 장치에 넣거나 수부능ㄹ 제거하고 분쇄하는 일을 한다. 특히 식재료를 빨리 건조하기 위해 영하 50도의 급속냉동기에 채소를 넣는데 식재료에 있던 수분이 거의 빠져나가고 라면 전체의 무게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가볍게 만들 수 있다. 계속 채소 껍질을 벗기고 썰고 냉동기 문 열고 닫고 하는 노동을 하고 있는데 다루는 것들을 입에 넣을 수 없어 허기 지는 경우도 많다 한다.
·삼겹살을 씹으며 불판의 빈자리를 새로운 고기로 채우고 나서 그는 소주를 한 잔 쭉 들이겼다.
·김을 최촐로 양식한 사람은 17세기 조선 현종 임금 때 전라도 광양에 살던 김여익이다. 소나무와 밤나무 가지를 이용해 양식한 김을 판판하게 펴서 말린 것을 임금에게 바쳐 그럴 바친 사람의 성을 따서 김이라 부르라 해서 정해진 이름이다.
·국수 고명은 채쳐서 데친 애호박, 지단, 김, 오이채 등속이다. 멸치 육수는 다시마 빛깔이 엷게 나는데 그게 넣지도 않은 다시마 때문은 아니고 간장으로 간을 맞춰서이다. 국물이 시원한 것은 무와 대파. 양파를 크게 썰어넣고 오래도록 끓였기 때문이다.
국수 사리를 바닥에 복자가 그려진 흰 사기그릇 속에 넣고 호박, 당근 같은 색색가지 고명M을 얹은 뒤에 사리가 3분의 2쯤 잠기도록 국물을 붓는다. 중요한 건 양념장이다. 장독대에서 바가지로 퍼온 간장에 다진 마늘과 얇게 썬 파, 고춧가루를 넉넉하게 넣은 뒤에 참기름을 듬뿍 친다. 양념장이 담긴 스테인레스 그릇 속에 참기름이 만든 크고 작은 거울이 생겨난다. 국수 그릇에 양념장을 알맞게 넣어서 간을 맞춘다. 채친 무와 배추에 소금 간을 해서 만든 겉절이는 고명으로도 반찬으로도 좋다. 국수는 술술 잘 넘어간다. 모두들 말없이 후루룩대며 국수를 빨아들인다. 맛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역시 간장이다. 거기에 부드러운 국수의 질감, 국물이여 고명과 양념의 고유한 맛이 섞여 총체적인 맛을 낸다. 맞은편에 앉은 누나의 이마 위 땀방울, 집으로 돌아가는 제비 형상, 코끝을 스치는 모깃불 연기 냄새도 한몫을 한다. 나중에 그 어떤 것이 그 여름 저녁 국수를 떠올리게 할지.
·우체국에서 돈을 찾아서 헌책이라도 한 권 사보려고 절에서 읍까지 나온 길이었다. 돈을 찾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절에서 보름쯤 반은 출가한 사람처럼 살았으나 내 심장은 아직 거기에 길들지 못했다. 2220대였다. 젊었다. 대낮부터 어둑한 시장통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셔대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용솟음치는 기운을 토해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취기, 어제 찾은 돈, 얼마 되지 않으나마 책을 한 권 사고 버스를 차고 절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서점 문은 열리지 않았고 절 밑 마을로 가는 완행버스 또한 다니지 않을 것이다. 단층건물이 처마를 대고 줄지어 선 오래된 거리를 비틀거리며 걷던 내개 김이 오르는 연통이 보인다. 간판을 보니 식당이다 내 고향 같은 농종에서 이렇게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이 있는 건 축복이다. 씩당 앞에 자전거와 택시가 즐비하게 서 있다. 문을 열자 RLS 탁자가 눈에 들어온더, 동그란 간이의자가 탁자 앞에 스무개쯤 놓여 있다.
·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길길이 뛰었다. 패싸움이 벌어지자 양팀 응원단들도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응원단 사이의 거리가 멀어서 직접 싸움을 벌이는 게 불가능했으므로 나는 안심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 일일 있을 줄 알고 응원단을 멀찌감치 ㄸ떼어서 배치한 게 아닐까
·인류 역사상 술 깨는데 확실한 효과가 입증된 건 딱 하나 시간이다.
·산에 땀 흘리며 올라가고 힘든 만큼 정상에서 시원한 기분을 누리고 비어버린 물퉁에 뿌듯함을 꽉 채워 담아서 집에로 가지고 오면 한 주일을 잘 보낼 수 있는 게 평균적인 한국인 남자들이다. 물론 산 아래릐 막걸리 한잔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산기를 흠뻑 빨아들여서 가야한다. 숲의 냉기는 곧 산의 기운이다.
일요일이었다. 성당이 있어서 무심코 문을 열었다. 아침 먹은 걸 몽땅 팔힘으로 바꿔 써야 할 만큼 문이 무거웠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어서 성가대가 <성체 안에 계신 예수>를 노래했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듣던 노래였다. 무릎 꿇고 앉아 가슴 떨며 옆 아이의 구멍 난 양말과 얼어 터진 손가락을 모여 때에 전 옷깃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따라 부르던 노래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폭탄 같은 뭔가가 터질 전조였다.
·며칠 동안 항아리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엉성한 자세가 아니라 안방을 차지한 임금처럼 아랫목에 떡하니 서 있다.
· 4 킬로그램이 넘는 막걸리 주전자를 공깃돌처럼 가볍게 들고 갈 수는 없었다. 내가 삼손인가 임꺽정인가.
막걸리번철 뒤에는 여닫이 유리문이 있었는데 유리의 절반 정도는 한지가 발ㄹㄹ라져 있고 위쪽 절반으로 안이 들여다보였다. 식당 내부는 반으로 나뉘어 식탁과 의자가 차지하는 공간에 10여 명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고 나머지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는 온돌이어서 좀더 많은 인원이 앉을 우 있었다. 식당 주인은 마흔을 훨씬 넘긴 아주머니로 온돌에 엉덩이를 걸친 채 다리를 건들거리고 있다가 치마를 걷어올리고 허벅지를 득득 긁곤 했다. 그 순간 우리가 들이닥쳐도 놀라는 기색도 없이 긁을 건 다 긁고나서 느긋하게 말했다.
· 조기는 사람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물고기라는 듯에서 한자로 助氣(조기)라 쓴다. 고급생선으로 쳐서 제사상에 꼭 올리는 생선이다. 제사상에 올라갈 때는 대체로 찜 형태지만 일상에서는 조기를 말려서 구워먹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말린 조기는 굴비라 한다. 고려 권신 이자겸이 영광 법성초로 귀양 갔을 때 칠산 앞바다에서 잡아온 조기를 소금에 절여 임금에게 진상하면서 어떤 압력이나 불의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포장꾸러미에 굴비라고 써붙여 불리는 이름이다. 그 외에도 조기는 매운탕과 조림으로 많이 먹는다. 굴비장아지, 고추장굴비도 별미다.
·옥수수가 맛있어 뭐가 들어갔나하자 아무 것도 안 들어갔다 하자 아니지 물이 들어갔지. 그럼 그 물은 산삼 썩은 물이지. 강원도 옥수수에는 천연조미료 성분이 있다는 둥 참나무 장작과 별과 저녁의 기운이 옥수수알에 포함되어서 그렇다는 둥 그냥 우리가 운이 좋아서 그렇다는 둥 온갖 설이 난무했다.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따서 먹으면 당연히 맛이 있을 수밖에 없지. 거기가 바로 열매의 고향이니까. 과일이 나무에서 덜어지면 맛이 추락하기 시작하는 것이고 과일이 저 있던 곳에서 멀어질수록 본래의 맛에섣도 먹어져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