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결초보은
중국 전국 시대에 '위무자'라는 사람은 젊고 예쁜 소실을 두었습니다. 그가 정신이 말짱했을 때에는 아들 '위과'에게 유언하기를 자신이 죽으면 소실을 다른 데로 시집보내라고 하였는데 막상 죽음을 앞에 두고는 소실을 순장시켜 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순장(殉葬)은 무덤 속에 살아있는 소실을 같이 묻어 죽은 자를 위로하는 무서운 관습장례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위무자가 죽자 아들 위과는 아버지가 정신이 있을 때의 유언을 지킨다고 선포하고 그 불쌍한 아버지의 소실에게 돈을 주어 개가시켜 주었습니다.
그 후, 위과는 진나라의 두회라는 장수와 싸우다가 쫓겨서 피하게 되는 위기에 직면했는데 갑자기 어떤 노인이 바람처럼 나타나서 위과의 말을 이끌고 벌판을 가로질러 가는 것입니다. 위과는 노인이 이끄는 대로 따르면서 적들이 전부 벌판에서 그만 나뒹굴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적들을 전부 생포하게 되었고 그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는데 그 노인은 바로 '위무자'의 소실의 아비였습니다.
딸을 순장시키지 않고 살려주고 돈까지 주어 개가시킨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였고, 그날 그 벌판의 풀(지장풀이라는 아주 질기고 긴 풀)을 서로 묶어서 말들이 달리다가 풀에 걸려 넘어지게 해놓고 풀을 서로 묶지 않은 곳으로 위과를 이끌고 그 위기를 모면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다.>는 뜻의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유명한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서울의 아주 큰 백화점에서 바겐세일을 하는 것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반짝 세일이 있는 시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는데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난한 자, 장애인, 다리 저는 사람, 소경은 그 틈에 그들과 함께 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누가 그들을 위해서 사람들을 밀치고 자리를 잡아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그들을 잔치에 초대하고 멀쩡한 사람들을 밀치고 제일 앞에 자리를 잡아 주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은 정말 사랑과 나눔의 극치입니다. 그들이 은혜를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일일이 헤아리고 계신 주님께서 대신해서 은혜를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 것은 주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처세에 불필요공하라. 무원이 편시공이요 여인에 불구감덕하라. 무원하면 편시덕이니라. (處世에 不必邀功하라. 無怨이 便是功이요 與人에 不求感德하라. 無怨하면 便是德이니라.)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반드시 공(功)을 바라지 말라. 허물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공이로다. 남에게 베풀되, 그 덕에 감격하기를 바라지 말라. 원망이 없는 것이 바로 덕이로다.>라는 말이지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되 그것을 마음에 두지 말라(시인신불념 : 施人愼不念)는 말입니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사랑의 정신적 발로이므로 미덕이 되지만 그것을 상대방에게 자랑하거나 보답을 바란다면 그것은 미덕을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도리어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려 원망을 사기 쉽다는 것입니다. 도가 높은 군자는 세상을 이롭게 하되 자기의 존재를 알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크리스천이 되는 근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