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실수하고 넘어졌다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된다. 실수를 성공으로 만들기 위하여 더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부모가 저주받았다고 해도 아들이 똑바로 살면 그 아들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성경의 축복과 저주는 언제나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하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레위는 그 아버지 야곱의 입을 통하여 시므온과 함께 저주에 가까운 선언을 들었었다. 하지만 그 선언은 다시 비느하스의 의로운 행동으로 저주는 변하여 축복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민 25:10~13)
영원한 축복과 저주로 꼴 지워진 운명은 없다. 오늘의 축복이 내일의 저주가 되기도 하고 내일의 저주가 모래의 축복이 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가나안 족속 가운데 하나였던 기브온 사람들은 멸족을 모면하기 위해 꾀를 내어 거짓으로 꾸며서 이스라엘 진영에 찾아와 화친을 맺고자 했다.
(수 9: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수 9:4)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수 9:5)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수 9:6)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여호수아와 족장들은 그들이 그 지역의 부족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기브온과 조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서 그들이 가나안 부족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불러서 거짓말을 한 이유를 추궁했다. 그러자 살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음을 고백했다.
(수 9:24)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미 체결된 조약은 파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그들이 이스라엘 무리 가운데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의 종으로 살도록 허락하였다. 그들이 할 임무는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이었다. (수 9:23)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그런데 과연 이 저주는 저주였을까? 기브온 족속들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이 아니라 성전의 일을 맡은 종들이었다. 성소에서 나무를 패고 물을 길어서 물두멍을 채우는 그런 허드렛일을 하는 종들이 된 것이다. 레위에게 한 저주가 후일에 축복이 된 것처럼 고라 자손이 소원했던 바로 그 성전의 문지기 같은 성전 일을 기브온 족속이 맡아서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저주를 저주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성전에서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이 죽임을 당하고 멸망 당하는 일에 비하면 얼마나 복되고 다행스러운 일이겠는가?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의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주여! 오늘의 실수와 잘못을 지고 영원한 운명인 것처럼 주저앉아 있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도록 우리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주신 일은 아무리 사소하고 비천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기쁨으로 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믿음으로 주셔서 세상의 왕궁보다는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를 더 사모하게 하소서. 어제의 저주가 오늘의 복이 될 수 있음을 믿고 우리의 처지에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