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5장 23-27절. 아그립바 왕이 바울 재판을 시작함. 요약설교
23절.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1.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로 이튿날 바울에 대한 2차 공판을 개정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은 여러 날을 함께 거주하면서 마음이 서로 잘 통하여,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 총독에게 바울의 말을 들어보고자 한다고 하니까, 곧바로 이튿날 바울의 2차 공판을 연 것입니다.
이렇게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이 가까워진 이유는 아그립바의 여동생인 버니게의 역할이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2차 공판이 열리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재판 자리에 앉았습니다.
여기서 크게 위엄을 갖추고 앉았다는 것은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화려한 왕의 옷과 왕비 옷을 입고, 온갖 금은보석으로 몸을 치장하고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죄수로 끌려왔으나, 속은 거룩한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2.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천부장들이란 베스도 총독 밑에서 천명의 군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들을 가리킵니다.
당시에 가이사랴에는 6천 명의 군사를 거느린 총독이 있었고, 총독 밑에는 1천 명의 군사들을 지휘하는 천부장들 6명이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총독은 사단장과 같고, 천부장은 연대장과 같습니다.
시중의 높은 사람들이란 가이사랴 시의 시의원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바울을 재판하는 재판정에는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왕과 천부장들과 시의원들과 당시 고관대작들이 다 모여서 바울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9장 15절에서 예수님이 바울에 대해서 말씀하신 대로 <이방인과 임금들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바울을 택하셨다는 말씀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24절.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1. 총독 베스도가 먼저 재판정에서 개정 연설을 했습니다.
즉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 배석한 모든 고관들에게 2차 공판을 열게 된 경위를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베스도는 모든 유대인들이 바울을 살려 두어서는 안 될 중죄인이라고 베스도에게 고소했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즉 이 재판의 원고는 유대인들이며,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해서 사형 선고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대인들의 고소는 예루살렘에서도 동일한 고소가 있었고, 총독이 주재하는 가이사랴에서도 동일한 고소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재판건은 심각한 사건이라는 말이었습니다.
25절.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1. 앞에서 말한 대로 유대인들은 바울을 반드시 죽여야 할 죄수로 두 번이나 고발했지만, 베스도가 1차 공판을 통해서 심리해본 결과는 바울에게 죽일 만한 범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베스도가 바울의 무죄를 말한 것은 바울의 재판에서 세 번째 심리한 결과였습니다.
즉 천부장이 예루살렘에서 1심 공판을 하고 결과를 벨릭스 총독에게 편지로 보고할 때, 사도행전 23장 29절에서 바울에게 사형이나 결박할 만한 범죄가 없다고 공판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두 번째로 벨릭스 총독이 2차 공판을 한 후에도 사도행전 24장 23절에서 바울에게 자유를 주고 친구들의 면회를 허락해주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 베스도 총독도 바울의 재판을 심리한 후에 사도행전 25장 25절에서 바울에게 죽일 만한 죄가 없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세 번에 걸쳐서 무죄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석방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세상 법정이 얼마나 공의롭지 못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총독 빌라도도 예수님에게 세 번이나 죄가 없다고 선언하면서도, 예수님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누가복음 23:14, 15, 22)
26절.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1. 베스도는 바울을 황제에게 죄수로 보내면서 죄명도 기록할 수 없고, 무슨 범죄 사실을 기록할 수도 없어서 고민이 된다고 아그립바 왕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그립바 왕이 바울을 심문해보고, 무슨 죄명을 파악할 수 있는지 조사해보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죄 없는 죄수로 실제로 아무런 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목을 찾기 위해서 가이사랴에서 세 번째 공판을 받습니다.
첫 번째는 벨릭스 총독의 공판이 있었고, 두 번째는 베스도 총독의 공판이 있었으며, 세 번째는 아그립바 왕의 공판이 있었습니다.
즉 베스도 총독의 공판만 두 번째입니다.
이 두 번째 공판은 죄가 없는 바울의 죄목을 억지로 찾기 위한 공판이었습니다.
여기서 <황제>란 말은 <주께>(κυρίῳ)란 말로서 네로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 때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의 도움을 얻어서 바울의 죄목을 억지로 찾아내기 위해서 두 번째 공판을 열었습니다.
참 괴상한 재판도 다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 재판은 엄청나게 불법적인 재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재판을 이용해서 높은 관리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했습니다.
즉 바울은 로마 총독, 천부장들, 백부장들과 호위 군사들, 가이사랴 시의원들,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유대교의 높은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확실하게 전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죄 없는 죄수가 되어 복음을 많은 고관들에게 전했습니다.
비록 감옥 생활이 고달팠지만, 고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바울이 감옥 생활을 하므로, 복음 전도라는 사명 감당을 하는데 허송 세월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감옥 생활을 가이사랴에서 2년 로마에서 3년간 하는 동안 고관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1장 12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투옥이 복음 전도에 진전이 되었다고 간증했습니다.
27절.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1. 죄목을 밝히지 않고 죄수를 상급기관에 보내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리한 일>(ἄλογον)이라는 단어는 유다서 1장 10절과 베드로후서 2장 12절에서는 <이성 없는> (짐승)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즉 세상 법관이 죄 없는 바울을 죄수로 재판하는 것이 <이성 없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유대교인들이 율법을 앞세워 죄 없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것은 몰지각한 반이성적인 짓입니다.
또한 세상 과학으로 기독교 진리인 부활과 영생 천국을 비방하는 것도 이성 없는 무리한 짓입니다.
그래서 <터툴리안>(Tertullianus, 160~220)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est)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절에는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2. 지금까지 바울은 자유의 몸으로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교회들을 통해서 일반인들은 얼마든지 복음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 지도자들이나 천부장이나 총독이나 왕과 황제 같은 고관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위대한 바울 사도를 그런 고관들에게 복음 전도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알기 어려운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섭리였습니다.
오늘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에게 지극히 부당한 환경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환경을 통해서 지극히 선한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당한 환경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배신하지 말고, 어떤 환경도 하나님이 주신 환경인 줄 알고, 원망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잘 섬기시기 바랍니다.
억울하고 지독하게 부당한 환경을 만났더라도, 하나님 원망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이 주신 환경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보여주신다고 했습니다.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생각에 불합리한 환경을 만나더라도, 그곳에서도 기도하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복음을 효과 있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여, 모든 일이 잘되시고, 가정과 자녀손들에게 큰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