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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의 마지막시 2008년 4월 현대문학발표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말년에 지은 육필 시 39편, 유고시집으로 사십구재 맞춰 발간
조선일보 김태훈 기자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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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문화관을 찾는 후배 작가들과 나눈 이야기들도 시로 적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을 오른 체험으로 산악 소설을 쓴 작가 박범신은 토지문화관에 들어가 집필할 때면 그녀를 "하숙집 아줌마"라고 친근하게 불렀고, 히말라야에서 본 풍경을 전해줬다. 박경리는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시로 썼다.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히말라야의 노새〉)
'영원한 모성의 상징'으로 불리는 박경리의 생명에 대한 끝없는 애정은 환경운동에 대한 관심으로 왕성하게 표출됐다. '보리 심고 밀 심어서/ 새들과 나누며 살고 싶어/ 수많은 준령 넘어넘어/ 어미와 새끼가 날아앉은 강가/'에서 그녀는 밀렵꾼을 발견하고 분노한다. '밀렵꾼 손목 부러뜨리고/ 새들 지켜주며 살고 싶어/'(〈연민〉)
생명과 환경에 대한 관심은 단호한 반핵(反核)의 시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까닭으로/ 파리 운동장이 된 굶주린 아이들 얼굴/ 주마등같이 지나가는/ 저 아프리카 대륙보다/ 핵무기는 귀하고 귀한 것이 되었고/(…)/ 오대양 육대주/ 생명이란 생명 모두 전율하게 되었으니/(…)'(〈핵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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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눔과 무소유의 가치를 삶 속에 실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풍요를 누리라고 권한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하여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이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인색한 사람은 자기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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