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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에서 1~4항은 신에 대한 의무 조항, 5~10항은 인간 의 사회 규범을 다루고 있다. 1~4항은 유일신 신앙을 공고히 하기 위한 그들만의 법이기 때문에 논외로 두고, 5~10항의 내용을 살펴보면 앞서 소개했던 슈루파크의 가르침과 상당히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내용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가르침을 들으라”는 서두 후 “~하지 말라”는 경고를 연이어 나열하는 형식도 유사하다.
함무라비 법전도 십계명의 5~10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십계명 외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율법서와 평행을 이룬다고 표현될 정도로 유사한 항목이 많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경구로 널리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은 피해자가 당한 상해와 같은 형태로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196조) 사람이 사람의 눈을 멀게 했을 경우 그의 눈을 멀게 한다. (197조) 사람이 사람의 뼈를 부러뜨렸을 경우 그 사람의 뼈를 부러뜨린다.” 같은 식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스라엘의 율법, 성경으로는 구약에도 나타난다.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짐승을 죽인 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일지니”
– 레위기 24장 19~21절
또한 신약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예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어라.”
– 마태복음 5장 38~39절
예로 든 신체 부위가 눈으로 시작해 이빨, 이빨 다음 뺨이 나온다. 이는 함무라비 법전의 조항 순서와 일치한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상해에 관한 조항은 눈으로 시작한다. 196~199조까지 눈에 관한 조항, 200~201조까지 이빨에 관한 조항, 202~205조까지 뺨을 때린 경우에 관한 조항이 연이어 나온다.
이를 두고 한 고대 근동 학자는 ‘이스라엘인들은 서기전 587년 바빌론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들은 바빌로니아의 지적 문화유산을 습득하고 발전시켜 초기 이스라엘의 율법을 편찬했기 때문에, 신약성서에서 바빌로니아 문화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학자의 말처럼 율법서의 저자들이 바빌론에서 통용되던 법을 차용한 것인지, 성경에서처럼 실제로 신이 그러한 법을 준 것인지는, 사실 신만이 아는 문제이다. 그러나 어떤 경위로 법을 얻었든, 중요한 것은 신이 내린 율법도 고대의 통용됐던 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법은 당시 사회에 필요했던 법이라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법은 분명히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이다. 하지만 법의 실효는 실제로 시행되고 있을 때에 나타난다. 십계명을 주요 율법으로 삼는 종교에서, 신의 뜻으로 제정되었던 율법은 신의 뜻으로 예외가 되기도 하고, 신의 뜻이면 범법했더라도 용서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095년, 로마 가톨릭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십자군을 모집하는 연설<자료10>에서 ‘그리스도교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이단자를 죽이는 것은 십계명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선포했다. 그리고는 이것이 그들의 신 그리스도의 명임을 밝혔다.
“그들(이단자)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노예로 만들었으며 교회를 파괴하고 제국을 약탈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시라도 지체한다면, 하느님의 충성스런 신자들이 이 침략에 더 크게 희생될 것입니다. 기병이건 보병이건 부자건 빈민이건, 계급을 막론하고 그리스도교를 도와주러 가도록, 그래서 그 사악한 종족을 말살시킬 것을 간청합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가 명령하신 것입니다.”
– 로마 가톨릭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연설 中
이는 무슬림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포함한 비
그리스도교인들을 무참히 학살해도 종교적, 사회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덕분에 이듬해 출정한 십자군은 3년 뒤 예루살렘을 피의 강으로 만들며 사악한 종족 말살에 성공하였다.
죄악을 방관하면 더 큰 희생이 생기게 되니 전쟁을 일으키자는 우르바누스 2세의 주장은 로마 가톨릭 신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런데 1910년 한국에서, 일제의 죄악과 만행을 방관하지 않고 그 수장을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자, 로마 가톨릭은 환호가 아닌 비난을 쏟아부었고 그의 신자 자격을 박탈시켜 버린다.
안중근 의사에게 세례를 해주었던 빌렘 신부는 그의 범죄를 한탄했다. 1910년 중국의 신문『순천시보』3월 15~16일 자 2면에는 “빌렘 신부, 감옥에 가서 안중근을 지도하다”라는 기사가 3회에 걸쳐 실렸는데,<자료11> 그가 안 의사에게 했던 말과 행적들이 자세히 나와 있다.
안중근을 만난 빌렘 신부는 “이토 공작을 암살한 죄악은 하늘에 사무치므로 너를 참회하고 잘못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라며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을 밝혔다. 또 그는 접견실에 성상을 가져와 배치하고 그 앞에 기도한 후, 빵 한 조각과 포도주 두 방울을 안중근에게 주며 “자네가 참회하면 신은 반드시 묻지 않고 비로소 죄를 씻을 수 있다. 그러나 이토 공작 같은 위인을 살해한 것은 죽어도 큰 죄를 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성찬의식을 거행하게 허락한 은혜가 하늘과 같다”며 일본에 감사를 돌렸다.
-『순천시보』3월 15~16일 자 2면 발췌 및 요약
목숨을 각오하고 의거를 단행했던 그에게 “너의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살인행위이며, 살인자인 너를 배려한 일본에 감사하도록 하라”며 이것을 그에게 주는 가르침이라 표현하던 빌렘 신부의 모습은 당시 로마 가톨릭 조선교구의 입장을 대변한다.
2000년 3월 1일 방영된 KBS1TV의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안중근과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에서는, 1985년 명동성당 지하 자료실에서 발견된 당시 로마 가톨릭 서울교구장 뮈텔 주교의 일기와 조선교구 통신문을 근거로 안 의사와 천주교의 갈등을 파헤쳤다. 방송에는 당시 로마 가톨릭 조선교구가 안 의사를 살인자로 규정하고 교인 지위를 박탈했으며, 안 의사의 사촌 동생 안명근이 고해성사했던 항일운동 계획을 일본에 밀고하여 그를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구속되게 했으며, 그 대가로 소송에 패했던 가톨릭 땅의 소유권을 요구해 명동성당 진입로 두 곳을 개통시켰고(『뮈텔 주교 일기』에 의하면, 1911년 1월 11일 뮈텔은 자신이 일본의 경무총감 아카시를 찾아가 안명근 건을 밀고했으며, ‘이 기회’를 이용해 ‘현재 명동성당 진입로가 막혀 있는데, 이를 되찾기 위한 소송에서 두 번이나 패소했고 상고심도 기각되어 복구될 희망이 없는 상황이지만 모든 방법을 동원해 권리를 되찾고자 함’을 알렸고, 이에 아카시가 즉석에서 두 통로를 개통할 것을 명령하고, 자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했다고 적었다.), 신사참배가 성서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방영 전 KBS가 발행한 이 프로의 보도자료를 보면, 제작진은 “당시 로마 가톨릭 조선교구가 교세 확장만을 위해 안중근을 매도하고, 일본 제국주의와 거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1945년, 그들과 거래했던 일본은 패망했고 우리나라는 광복을 되찾았으며, 안중근 의사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 의사가 순국한 후 83년 만인 1993년, 한국 천주교는 용서받지 못할 살인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며, 그의 신자 자격을 복권했다. 순국 후 100년 만인 2010년에는 처음으로 안 의사를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행사를 벌였고, 이듬해인 2011년부터는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시복(諡福)을 추진 중이다. 복자는 가톨릭교회에서 성인 전 단계로, 로마 가톨릭에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거나 생전에 뛰어난 덕행으로 공식적으로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교를 위해 예루살렘 탈환을 계획한 우르바누스 2세 같은 자들을 복자로 추대한다. 그들에게 있어 복자와 살인범의 차이는 무엇일까?
https://theweekly.co.kr/?p=72492
첫댓글 잘보고가요
잘보고가요
살인범이 천국에 갈수 있는 종교...!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