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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이유(사단의 우두머리 루시퍼가 교만하여 하나님 외 독립적인 세상을 소유할려고하다가 마귀가 되어 지옥가는 멸망하는 자가 되었다. 대형교회가 세습과세속화로 자아실현하므로 마귀의종이 되었다. 즉 자기의 배가 신(욕심)이 되어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버렸다.(빌3:7-9.롬16:18)예수님께서 내 뜻(자기의뜻.견해.의지)마시고 아버지 뜻 대로 되길 원했다. 그러므로 자아를 버릴 때 구원의 기적이 일어난다)
(마태복음 6:22-24)
우리에게 있어서 돈의 위치가 얼마나 큰지 돈이 심지어 자신의 주인의 자리에까지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란 종을 마음대로 부리며 지배하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존재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이 섬겨야 할 주인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너의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섬겨야 할 주인이 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만물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이시고, 다른 한 주인은 인간의 탐심을 지배하는 재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어차피 이 두 주인 중 어느 한 주인을 택하여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느냐? 아니면 물질을 섬김으로 돈의 종이 되느냐? 자신이 섬길 주인을 명백히 선택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1. 눈은 몸의 등불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셨습니다. 눈이 우리 몸에 있어 마치 등불과도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감을 때 우리의 온 몸은 거저 답답하고 캄캄할 뿐입니다. 여기서 눈이 나쁘다고 하신 말씀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밝다는 말은 ‘포티조’(φωτἰζω)로 비췬다, 조명한다의 뜻이고 나쁘다는 말은 ‘포네로스’(πονηρὀς)로 악한, 타락한, 허약한 상태를 말해 줍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 눈은 우리의 마음을 비취는 눈, 즉 빛을 말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요1:4).
빛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이 생명이 우리의 마음을 비췰 때 우리의 몸은 밝아서 생명의 빛 가운데로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이 어두우면 우리의 인생을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빛이 어두워 악한 상태, 타락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육신의 눈이 어두워도 캄캄하여 답답한 생애를 보내거늘 하물며 그 마음에 생명의 빛을 잃으면 그의 영혼과 그의 삶이 그 어두움 속에서 타락하지 않겠느냐’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여기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의 눈, 생명의 빛을 어둡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시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재물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중히 여기는 사람의 마음은 어두움을 가져옵니다. 사람이 그 마음에 탐심을 품으면 그것이 자신의 영혼의 빛을 어둡게 하여 그의 인생을 캄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그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재물이 하늘에 싸였다면 그 곳으로부터 더욱 밝은 빛이 우리의 마음에 비취어 우리의 생애는 더욱 밝은 빛 가운데 다닐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탐심이 없고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사람은 그 마음이 빛으로 언제나 밝게 비취임으로 청결한 마음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과 감사와 기쁨이 넘치며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주인이란 하나님과 재물을 가리킵니다.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이버란 사람은 ‘돈은 군주의 군주’라고 했습니다. 전10:19절에서는 ‘돈은 범사에 응용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주인은 돈이어서는 안 됩니다. 돈은 이차적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돈을 아울러 섬길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마22:37).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한곳에 집약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는 미워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신앙 생활을 보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개의치 않는 사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여기서 사랑이라는 말씀을 하실 때 ‘아가파’오(ἀϒαπἀω)란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사랑이란 말은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절대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하나님이 아닌 재물에 바칠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에 있어서 어느 편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물질을 섬기던가 하나님을 섬기던가 하나님 앞에 거짓 없는 신앙적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재물이 있던지, 없던지, 잘살던지, 못살던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포도주의 풍성할 때 보다 더 하니이다’고 노래한 다윗의 이 같은 기쁨을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에게만 소망을 두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외침= 간증=한국이 곧 공산국가(주사파) 될 수 있다. 주의 성령께서 문재양이가 정책 실패로 푸른집 2층에서 울고 있는 것을 그림 한장으로 보여주셨다. 푸른집에서 울고 있고 그 앞에 유리 진열장 속에 홧도그(정치와 정책)가 진열되어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사단의 정책인 공산주의 사회주의 주사파로 뼈속까지 잠재 의식화된 사단의 정책(정치와정책)이 실패로 가져온 결과에 대한 후회하는 것을 보여주셨다. 즉 영적으로 사단에 잡혀있어 영혼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그도 구원 받어야할 존재임을 가르쳐준다. 좌파 문빠들이 불법으로 공수처와 연동제 비례 선거법을 팩스트랙으로 통과한 것이 증거이다. 좌파 국회의원 200석을 확보 헌법을 고쳐 사회주의 (공산주의 주사파)국가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앉은뱅이 같은 대형교회여! 급하고 급하다. 빨리 일어나라. 주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진리(말씀)앞에 선자에게 자유 (승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와 같이 진리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루터는 종교개혁 진리를 위해서 교황청과 싸워 진리(예수)로 승리했다. (찬양을 부르면 싸우자 “내 주는 강한성이요” 찬송384장)(2019년 6월 중순경)
(간증: 주님의 성령께서는 2019.8.15.일 광화문광장에서 대한민국 건국 71기념행사에 대한 주님의 은혜의 표시로 그림(환상)한장을 보여 주셨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님의 믿음의 용사들의 부르짖는 강력한 기도로 하늘에서 아름다운 집 한체가 내려와 안착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 즉 대한민국 제2의 건축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고, 주님의 강한 능력과 믿음의 용사들의 강한 믿음으로 시온산 정상 개선문에 입성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 멀지 않아 푸른집(청화대)을 점령 하고 있는 공산주의자 주사파 사단의 세력을 몰아내고 주님의 은혜와 믿음의 용사들(개혁자) 용기로 개선문으로 입성하여 제2의 복음과진리의 나라(대한민국)를 건국하여 땅 끝까지 복음에 증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성전(성령기도원)에서 꿈에 그림 한장으로 보여주셨다.(2019.8.17.새벽 김에스겔 목사)
(간증:한국의 최대의 세습교회 담임목사에 대한 정체성을 보여주셨다. 김정일같이 흰말을 탄 자 루시엘같이 자기 우상화된자로 교만의 마귀로 보여주셨다, 성령께서 회개하지 아니 하면 사랑의 징계로 그 아들을 친다는 것입니다, 그 아비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욕심)를 불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 것을 가르쳐줍니다.(고전1;18)(2019.8,6)
(간증)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님의 믿음의 용사들의 부르짖는 강력한 기도로 하늘에서 아름다운 집 한체가 내려와 안착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 즉 대한민국 제2의 건축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고, 주님의 강한 능력과 믿음의 용사들의 강한 믿음으로 시온산 정상 개선문에 입성하는 것을 보여 주셨다
(간증)2019.10.3.일 광화문광장(이승만 광장)에서 애국집회에 충격(빰을 맞음)을 받아 사단 마귀를 뒤발(발 꿈치)을 무는(사단이 겁을 주기위해서 전광훈목사에게 난란 선동죄로..고소) 것을 그림 한장으로 보여주셨다.주께서 한국을 통해서 믿음으로 무장시켜 마지막때 성령의 늦은비 역사의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계시록10장과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 사역를 시작하기 위해 금강석과 정금을 만들기 위해서 주시는 강한 훈련인 것 가르쳐주셨다(2019.10.3.)
(간증)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주체로 청와대옆 광야교회에서 여리고성 함락 집회로 많은 목사님 (여호수아)들과 성도들이 함성과 부르짖는 능력의 기도를 하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진것같이 성안에 들어있는 주사파마귀들이 겁을 먹고 떨고 있는 그림을 주님의 성령께서 그림한장을 보여주셨다.즉 흰옷을 입은 마귀 할멈이 겁을 먹고 서서 오줌을 싸는 것을 보여주셨다.성령의 능력 기름부음(감람유 짜는기도) 많은 능력의 주의 종들의 함성과 기도능력으로 큰 산이 무너지는 그림을 한 장 보여주셨다.(슥 4:6-7.14) 2019.11.17. 성령기도원 김에스겔 목사.
(간증) 2019,12.1자 주일날 사랑제일 교회의 전광훈목사 주체로 광화문(이승만광장)집회에 대하여 주님의 성령께서 마가 다락방 성령강림같이 성령의 복음 핵 미사일로 보여 주셨다. 즉 주님께서 전광훈목사와 광야교회로 통해서 제2의 종교개혁 마지막 늦은비 성령의역사를 시작할것이다는 것을 그림 한장을 보여주셨다.(2019.12.2.대구 성령수도원 김에스겔 목사.)
(간증): 몇년(2006년)전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성전에서 주님께 원망으로 애절하게 기도하였다. 꿈에 주님께서 찾아왔어“고난이 유익이다”(약할 때 강하다)말씀을 들려주시며 복음 성가중“주님 예수 나의동산”복음성가와 찬송가202장을 들려주셨고, 환난으로 통해 주님을 만나게 됨을 감사해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꿈에 에스겔 책을 보여주셨는데 나의 영이 에스겔서를 알게 하셨고. 에스겔 선지자 사명 파숫군 사명(영의 파숫꾼으로 복음을 지켜라고 말씀 해 주셨다,롬16:17-26.빌3:17-20.계시록3:20.)을 주셨다. 그리고 15년 사역에 대하여 칭찬으로 그림 한장을 보여주셨다. 즉 11톤 화물차량에 포도송이 열매가 반차가(마지막에 완차) 실어져 쌓혀 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좁은 문 좁은 길로 끝까지 주신 사명 (에스겔 사명. 빚진자의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힘을 주셨다. (눅22;42-43.고전 9:18-27.요한1서 2:15-17) 성령교회 김 종표 목사.아멘)
(간증:2018.7.중순경 주님께서 세상의 영웅과 호걸들과 바벨탑신앙(대형교회의 인본주의 신앙)의사람들을비유적으로 "흰 쟁반위에 담긴 똥 (배설물)등거리로 보여주셨다'.(요일2:15-17.계3:20-22)즉 천성가는 천로역전의 주인공과같이 좁은문, 좁은길 들어 가는것이 천국 가는 길 임을 가르쳐주셨다. 주께서 고린도후서 4장10-11절 말씀이 진리(교리)라고 문자로 꿈에 보여주셨다. (고후4:1-18)성령교회 김목사.2018.11.8.)
(간증: 20년전 사명을 받을 때 주께서 그림 한장으로 환상을 보여주셨다. 즉 넓은 평야같은 곳에 넓은들에 아침에 햇살에 무력 무력자라 나는 벼들을 보여주시면서 저들에게 열매를 맺게 사역해라는 사명을 주셨다. 그 20년 올해 가을에 그 벼들이 노란색을 황금색으로 물들어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즉 열매 맺게 하는 것을 주님이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 장소 그 자리에 순종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2018.12.2. 성령교회 기도원 김목사.)
(간증) 25년전에 처음 목사 사명을 받는후에 주님께서 사도 바울과같이 고후12장1절에 나오는 삼층천을 한번보여주셨다. 철야 기도하는데 나의 영이 육에서 빠져 하늘나라 보좌를 잠깐 보여주셨다. 즉 생명수강옆에 열매맺은 과일과 하나님은 보이지않고 하나님의보좌 뒤에 무지개를 보여주셨고 그리고 에스겔서 책을 보여주시면 에스겔 사명을 주셨다.목사안수 받은날 소직이 무릎끊고 있는데 주께서 "약콘같은 고구마"(성경)같은것을 주는데 소직이 "이것은 여러 수십억짜리"라면서받는것을그림한장으로보여주셨다. (계4;2-3.겔1:27-28)김에스겔목사.(2019.11.23.)
(간증) 2019,12.1자 주일날 사랑제일 교회 전광훈목사 주체로 광화문(이승만광장)집회에 대하여 주님의 성령께서 마가 다락방 성령강림같이 복음의 핵 미사일로 보여 주셨다. 즉 주님께서 전광훈목사와 광야교회로 통해서 제2의 종교개혁 마지막 늦은비 성령의역사를 시작할것이다는 것을 그림 한장을 보여주셨다.(2019.12.2.대구 성령수도원 김에스겔 목사.)
(66) 그리스도인의 염려
(마태복음 6:25-32)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떨쳐 버리기 어려운 지난날의 습성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들어 가는 무서운 암적 존재가 바로 염려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염려에 대하여 많은 경고와 함께 권면을 주십니다. 염려에 대한 경종은 염려는 백해무익하다는 것이고 권면은 염려는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염려하는 것입니까? 근원적인 것을 따져 보면 의식주에 관한 것입니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입는 이 세 가지 문제는 인간 생활에 기본 요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바른 해답을 듣고 우리 육신적인 생활에 관한 근본 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 염려는 왜 무익한 것인가?
성경은 인간의 염려는 무익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간은 자기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염려란 말은 ‘메리므나오’(μεριμναω)로 근심한다, 걱정한다, 관심을 가진다고 하는 뜻입니다. 염려는 근심이 따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서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기쁨을 가져가고 대신에 두려움을 안겨 주는 것입니다.
(2) 사람은 자신의 머리카락 한 개도 희게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마5:36). 인간은 이처럼 자신의 몸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일에 염려한다는 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3) 인간은 자신의 생사 화복에 대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건강, 가정, 사업 등에 대한 염려는 결국은 자신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급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그 시발이 세상에 대한 염려로부터 나옵니다.
2. 염려는 왜 오는가?
주님은 염려하는 일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염려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적기 때문에 생긴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적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사람이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할 때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어 그 마음속에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담대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시며 언제나 자기의 영광을 위해 반드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 때문에 말씀을 믿는 사람은 아무 일에나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자기를 돌보고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믿음은 적은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염려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형의 낯을 피하여 하란으로 가는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나의 뜻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이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은 나를 돌보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위험한 길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생활의 두려움에서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산성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신앙은 적은 믿음입니다. 인간의 염려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데서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우리의 모든 염려에 대하여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염려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은 그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이 너희를 돌보고 계시다고 하신 것입니다(벧전5:7).
결론 : 음식의 염려에 대하여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의복의 염려에 대하여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지만 이 꽃의 영광이 솔로몬의 영광을 능가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문제의 염려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며 그의 말씀을 믿음으로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다만 그 분의 뜻대로 순종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