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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영화 줄거리는 보면, 주인공 셸비(Shelby)는 아내가 강간·살해된 충격으로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하지 못한다. 그가 기억하는 전부는 자신이 보험수사관 셸비이며, 담당한 사건에서 순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던 새미(Sammy)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존G가 자기 아내에게 인슐린을 과다 투여해 죽였다는 것뿐이다. 자신의 아내를 강간·살해한 범인을 존 G로 지목한 셸비는 체류한 호텔, 방문 장소, 만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사진과 메모로 남기고, 문신까지 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나 그는 기억마저 변조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영화의 반전은 자신이 ‘새미’이자 아내를 살인한 인물임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는데 있다. 결국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 기억을 왜곡하며 존 G라는 엉뚱한 사람을 살해하며 영화는 끝난다.
기록은 기억의 유한성을 박제화한 장치다. 그 대상은 신화와 역사다. 전자가 신의 이름으로 인간과 우주를 연결하는 통로라면, 후자는 인간의 의지로 삶과 정신문화를 집적한 자산이다. 월광에 물든 신화와 일광에 퇴색된 역사를 암벽과 동굴, 비문과 그림, 건축과 조각, 필사본과 인쇄물 등에 박제했다. 모두 기억을 지배하는 흔적이자 표상이다.
기록의 원조, 호모 사피엔스
태초의 기록자는 누구였을까? 1758년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가 명명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다. 슬기로운 자, 지혜로운 인간을 뜻한다. 현생인류는 ‘신의 피조물’인가, ‘진화의 산물’인가. 그 시조인 ‘최초의 한 쌍’은 누구인가.
무신론자는 창조론에, 문외한은 진화론에 회의적이다. 수천 년간의 철학적·과학적 난제다. 새로운 화석이 발견될 때마다 현생인류의 뿌리가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과학자, 고인류학자, 인종연구자 등이 고뇌해야 할 퍼즐 조각이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고대 인류화석에서 추출한 미토콘드리아 DNA(mtDNA) 연구를 통해 제시된 아프리카 기원설(Out of Africa)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원조는 에티오피아 서남부 오모 계곡의 마사이족(Maasai)과 케냐 서부의 루히야족(Luhya)이다. 그들은 약 10만 년 전 사막화와 8만 년 전 소빙하기때 낮아진 해수면을 따라 홍해를 건넜다. 그리고 지중해 서쪽 해역, 아라비아 반도, 유럽, 아시아로 이동·정착하면서 기억을 지배하는 기록 매체를 개발했다.
모든 기록 매체의 원형은 라틴어 ‘tabula(판)’에서 유래한 점토판(clay tablet)이다. 이를 21세기 현대인이 차용한 것이 바로 휴대용 태블릿PC다. 동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현생인류가 처음 정착한 곳은 약 1600㎞에 달하는 자그로스(Zagros) 산맥 서쪽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배후로 하는 메소포타미아다. 1916년 이집트학자 브레스테드(J.H.Breasted)가 조어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 중심부로 인류 문명의 요람이다.
고대 수메르인은 BC 6000년경부터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지배한 BC 332년까지 메소포타미아에 많은 도시국가(마리, 아카드, 키시, 니푸르, 라기시, 라르사, 우르, 에리두 등)를 만들어 신화를 창조하고 문명을 탄생시켰다. 함무라비 법전, 지구라트(ziggurat), 태음력, 설형(쐐기)문자, 점토판, 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 수메르인과 후예들은 강변의 충적토로 점토판을 만들어 설형문자로 기록했다. 신 아시리아 제국(BC 934~609년) 때 수도 니네베에 아슈르바니팔 왕립도서관(Royal Library of Ashurbanipal)은 무려 3만 점 내외에 달하는 점토판을 집적했다. 그러나 BC 612년 바빌로니아인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왕궁을 파괴할 때 점토판 서고도 사라져 버린다.
다음으로 등장한 주류 기록 매체는 이집트 파피루스(papyrus)다. 그 내피(고갱이)인 ‘biblos’를 지명에 붙인 파피루스 무역항이 ‘비블로스(Byblos, 현 레바논 베이루트 북쪽)’다. 여기서 그리스어로 책을 뜻하는 ‘Biblia’가 나왔다.
이집트산 파피루스 수출 끊기자 양피지로 대체
파피루스 제작의 주역은 고대 이집트인(또는 Kemetians1))이다. 그들은 나일강 삼각주에 자생하던 파피루스2)에 신화와 역사, 문예와 학문적 걸작을 상형문자로 필사했다. 그리고 BC 3세기 프톨레미 2세(Ptolemy Ⅱ)는 왕궁단지 무세이온(Mouseion)내에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병설하고 최대 70만 점을 보존했다. BC 3500년경 임신 테스트를 필사한 파피루스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BC 30년 최후의 여제 클레오파트라 7세(Cleopatra Ⅶ)가 자결한 후 로마 속주로 전락하자 도서관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파피루스가 후세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종이의 어원이자 시작이다. 성서도 파피루스 수출항 비블로스에서 유래했다.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639~646년 무슬림의 정복으로 사멸된다.
이어 등장한 주류 기록 매체는 튀르크족(Türkler)이 성채도시 페르가몬에서 사용한 양피지(parchment)다. BC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급사한 후 장군 리시마코스(Lysimachos)에 이어 헬레니즘 왕조를 계승한 필레타이로스(Philetaerus)가 에게해 아나톨리아의 페르가몬에 아탈로스 왕조(Attalus Dynasty)를 건국하고 BC 129년까지 지속됐다. 주요 유적은 제우스 제단(Zeus Altar), 신전(트라얀, 세라피스, 아테나), 최초 정신병원인 아스클레피온(Asklepion), 왕립도서관 등이다.
페르가몬이 양피지를 개발한 가설 중 하나는 이집트 프톨레미 5세가 페르가몬도서관이 알렉산드리아도서관보다 더 융성해지는 것을 우려해 BC 150년 나일강의 전략적 자원이던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하자 BC 2세기 페르가몬 왕국이 양피지를 대용 매체로 개발했다는 것이다. 양피지 20만 점 내외를 보존한 페르가몬도서관은 로마 제국의 실세 안토니우스(M. Antonius)가 클레오파트라에게 결혼 선물로 넘긴 후 멸실됐다는 주장이 많다. 그리고 BC 133년 로마에 귀속됨으로써 종식됐다.
고대에서 중세까지 대륙 도처에서 주로 식물성·광물성·동물성 재료 등을 이용해 신화, 종교 경전, 역사, 문화, 일상을 기록했다. 중국의 기록 매체는 주대(周代, BC 1046~256년) 때부터 대나무와 나무를 다듬은 죽간목독(竹簡木牘)이다. 당시 대나무는 책서(冊書)로, 나무는 입체적 형태로 또는 폭넓은 서찰로 많이 이용됐다. 그리고 한대에는 견포와 백서도 혼용됐다. 국내에서도 1975년 경주 안압지에서 처음 발굴된 이래 600여 점이 출토됐다. 주로 신라권(경주, 함안, 창녕, 김해)과 백제권(부여, 익산 등)에서 많이 발견됐다. 그러나 한·일 양국에서 죽간이 출토된 사례는 없다.
인도와 동남아에서는 BC 1500년경부터 야자수 잎에 기록했다. 네팔, 티베트, 중앙아시아 등 춥고 건조한 지역에서 고대 필사본이 발견되고 있다. 1869년 인도 최초 측량 장관을 지낸 매켄지(C. Mackenzie)의 장서를 보존한 안나센터네리도서관(Anna Centenary Library)에 약 7만2000점이 소장돼 있다. 인도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에서는 자작나무(birch bark) 껍질에 기록했다. 용도는 학교 교재, 개인용 서신, 회계장부, 경전이 많았다. 1세기경 파키스탄 북서부 및 동부에서 기록된 간다라 불경(Gandhāran Buddhist)이 가장 오래된 자작나무 필사본이다. 현재도 인도와 네팔에서는 신성한 주문을 기록할 때 자작나무를 매체로 사용한다.
고대 지중해역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까지는 밀랍서판(Wax tablet)이 기록 매체로 사용됐다. 노란색 천연 왁스인 밀랍을 목판, 석판, 동판, 상아 등에 입힌 후 첨필 스틸루스(stilus)로 기록한 매체를 총칭한다. 주로 어린이를 위한 기초적 글쓰기와 초고 작성, 일상적이고 일시적인 기록(서신, 장부 기록, 행정문서)을 위한 노트나 수첩에 가깝다. 가장 오래된 흔적은 아카드 제국을 창시한 사르곤 대왕의 님루드 궁전(Nimrud Palace)에서 발견된, 상아에 기록된 서판이다. BC 7세기 신 아시리아 통치자 센나케립(Sennacherib)의 니네베 궁전 남서쪽에서도 BC 640~615년 석판에 두 인물을 조각한 밀랍서판이 발굴됐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교사가 읽기와 쓰기 연습, 구구단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밀랍서판이 발견됐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로마, 남미 등에서는 토기, 항아리, 돌 등의 도편(ostracon)을 기록 매체로 사용했다.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기 조각은 메시지, 처방전, 영수증, 메모, 학생 연습장 등 일시적 용도로 자주 사용됐다. 특히 고대 이집트는 BC 19세기 신왕조 때부터 파피루스보다 보존력이 우수한 도편을 중요한 기록 매체로 활용했다.
도편 기록 최초 히브리어 텍스트는 구약성서 다윗 시대 대표적으로 수도 테베에서 발굴된 도편이 있다. 신왕국 때 잉크로 장례식 장면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단에 여러 명의 여성 애도자가 무덤 주변에 서 있고, 한 남자가 무덤으로 내려가며, 하단 무덤 안에서는 매장자들이 관을 옮기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자칼 가면을 쓰고 있다. 이집트 신화에서 자칼 머리는 망자를 미라로 만들어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 아누비스(Anubis)를 상징한다.
이외에도 2008년 10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고고학자 가핀켈(Y. Garfinkel)은 이스라엘에 인접한 키르베트 케이야파(Khirbet Qeiyafa) 요새에서 도편에 기록된 최초 히브리어 텍스트를 발견했다.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사해문서보다 약 1000년이나 앞선 구약성서의 다윗 시대로 추정됐다. 파편에는 왕, 노예, 재판관 등의 단어가 기록돼 있다.
기억을 지배하는 고대 기록 매체는 인류 문화의 원형적 유전자를 표시하는 기호다. 기억을 축적한 장치일 뿐만 아니라 선사와 역사를 구분하는 결정적 잣대다. 기억을 봉인한 문자가 문명의 초석과 기둥이라면, 기록 매체는 문명의 완성이다.(옮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