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 만드는 닌텐도만 게임 룰 바뀐 것 몰랐다
시장은 모바일로 옮겨갔는데 게임기 만드는 것만 고집하다 3년 연속 적자 '날개 없는 추락'
닌텐도, 혼자 다 하려다 다 잃었다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 - 완벽주의 탓에 개발도 유통도
스스로 다 하려다 한계 만나 라이벌들은 외부개발社와 협업
색깔마저 잃어 - '슈퍼마리오' '젤다의 전설' 같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에서
화려한 그래픽의 '위유' 로 전환… "X박스의 아류" 라는 평가 받아
#1. 지난 19일 오후 7시 도쿄(東京) 아키하바라(秋葉原)의 전자제품 양판점 요도바시 아키바의 6층 비디오게임 매장.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런데 코너마다 사람들 반응이 극과 극이었다. 매장 왼편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코너에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10대부터 정장을 차려입은 50대 직장인까지 모여 게임 기기를 구경하거나 매장 내에 설치된 레이싱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반면 반대편 닌텐도 코너는 사람 하나 없이 한산했다. 닌텐도가 2012년 말 출시한 '위유(Wii U)'의 패밀리 프리미엄 세트는 정가 4만8900엔을 3만2800엔(약 34만원)으로 할인해 주며 '호평 발매 중'이라는 안내판까지 붙여 놓았지만, 보는 이가 없었다. 게임 소프트웨어를 사러 왔다는 다카하시(29)씨는 "재작년부터 닌텐도 인기가 급속도로 시들해지는 것 같다"면서 "새로 나온 게임기 위유는 아예 친구들 사이에서 언급 자체가 안 된다"고 말했다.
#2. 지난달 17일 게임업체 닌텐도(任天堂)의 오사카 시내의 실적 발표회장. 3월 결산 실적 예상치를 발표하는 이와타 사토루(岩田聰·55) 사장의 얼굴이 크게 굳어졌다.
이미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이와타 사장은 부활을 자신했다. 그간의 부진은 2004년 'DS'와 2006년 '위(Wii)' 이후 새로운 주력 게임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 작년 초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간 차세대 게임기 '위유(Wii U)'가 잘 팔리면 실적은 단번에 좋아질 것이라며 '2013년 1000억엔 흑자 반전'을 약속해 왔다.
그러나 이날 그는 "350억엔 영업 적자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3년 연속 적자라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닌텐도가 6년 만에 내놓은 회심의 역작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위유는 작년 한 해 280만대 팔리는 데 그쳐 회사가 예상한 900만대에 크게 못 미쳤다. 지금까지 휴대용 게임기 'DS'가 1억5000만대, 가정용 게임기 '위'가 1억대 팔린 것을 감안하면 대실패라고 할 수 있다.
매출은 어떨까? 2008년 1조8300억엔(약 19조원)을 달성했지만, 올 3월까지의 1년 매출은 그 3분의 1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왜 한국은 이런 게임기를 못 만드냐"며 혁신의 상징으로 칭송했던 일본 게임기업체 닌텐도가 불과 몇 년 만에 벼랑 끝에 선 것이다. 과연 닌텐도의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 실패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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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정인성 기자
①'게임기'라는 틀에 갇혀 '모바일'을 놓치다
닌텐도는 스스로를 '게임기를 만드는 회사'라고 정의했다. 전 세계에 게임기를 2억대 이상 팔았던 회사이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닌텐도의 게임기 개발 역량은 2006년 말 시판된 '위(Wii)'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닌텐도는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너무 좁게 가뒀다. 닌텐도가 스스로를 '게임기를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게임을 잘 만드는 회사'라고 생각했다면, 급격히 확장하는 모바일 시장에 진출하는 등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닌텐도는 지금까지 모바일 게임을 단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지난달 기자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한 경영 방침 설명회에서 "앞으로 모바일 게임을 내놓을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했다. 이와타 사장은 그런 계획이 없다고 다시 한 번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외부 환경은 급변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PwC에 따르면 전 세계 모바일 게임 시장 규모는 지난 5년간 2배가 늘어 작년에 10조원에 달했고, 2017년에는 14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본의 경우엔 2008년 전체 게임시장의 10%에 불과했던 모바일 비중이 작년에는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닌텐도가 모바일 역량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닌텐도가 모바일 시장에 진출한다면, 게임기 시장의 경쟁자인 X박스의 MS(마이크로소프트)나 플레이스테이션의 소니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다. X박스나 플레이스테이션은 고성능을 원하는 하드코어 유저 시장을 표적으로 하는 반면, 닌텐도는 잠시 가볍게 즐기는 대중 유저에 집중하는 회사였고, 이는 모바일 게임이 지향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닌텐도의 단순명쾌한 게임들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나 MS X박스 진영의 중후장대한 게임보다 훨씬 모바일 환경에 어울린다. 닌텐도가 '앵그리버드'나 '클래시오브클랜' '퍼즐앤드래곤' 같은 게임을 만들지 못할 법은 없다.
그렇다면 왜 하지 않을까? 기득권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위와 DS를 합쳐 게임기를 2억대 이상 판매한 닌텐도가 게임기라는 플랫폼을 무시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컴퓨터 이용자가 MS 오피스 프로그램을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듯이 이미 닌텐도 게임기를 산 고객들은 새 버전의 게임기가 나오는 대로 사곤 했다. 이처럼 누구의 간섭도 없는 독점적인 판매 플랫폼이 있는데, 왜 남들이 구축한 스마트폰 세계에 수많은 공급자 중 하나로 끼어들어야 하나?
게임기 신화를 이끌었던 닌텐도 주역들은 그럴 의지가 없었다. 게임기로 계속 신화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닌텐도는 2012년 말 내놓은 위유를 통해 위와 DS의 명성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대해 딜로이트컨설팅 김경준 대표는 "닌텐도가 디바이스(Device·기기) 경쟁을 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하드웨어를 버려야 산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반드시 모바일로 가야 한다는 충고다. 그는 "닌텐도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 2억대의 게임기를 보급했다고 해도, 삼성이나 애플이 1년에 파는 스마트폰 숫자만 5억대에 달해 이미 상대가 안 된다"고 말했다.
닌텐도가 모바일에 뛰어들 수 없는 이유는 다른 사정이 있긴 하다. 만약 닌텐도 게임기에서만 즐길 수 있는 '슈퍼마리오'를 스마트폰용으로 제공하는 순간, 기존에 깔아놓은 2억대의 게임기는 무용지물이 되고, 앞으로의 게임기 판매도 끝나버릴 수 있다. 결국 게임기라는 자산이 오히려 덫이 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런던비즈니스스쿨의 도널드 설(Sull) 교수가 말하는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의 상황과 비슷하다. 자동차가 수렁에 빠졌을 때 가속 페달을 계속 밟으면 더욱 수렁에 빠져드는 것처럼 시장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는데도 기업이 과거의 성공 공식에 머물다가 결국 몰락하고 만다.
기업의 역사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과거 미국에서 번성한 철도회사였던 엠트랙은 업(業)의 개념을 '철도사업'으로 좁게 정의했다. 이에 경쟁사인 항공회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가능한 한 비행장을 멀리 피해 철도를 깔았다. 그 결과 엠트랙은 항공산업의 발전으로 고전하고 있다. 만약 엠트랙이 자신의 시장을 철도사업이 아닌 '운송사업'으로 넓게 정의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이명우의 '적의 칼로 싸워라' 중).
반대로 코카콜라의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전 회장은 "코카콜라의 경쟁 상대는 다른 탄산음료들이 아니라 모든 음료수"라며 시장을 넓게 재정의함으로써 오늘날 세계 최고의 종합 음료기업이 됐다.
물론 반론도 있다. 게임 전문지인 게임라이프 창업자 크리스 콜러는 와이어드지 기고를 통해 "모바일로 가는 것은 닌텐도가 남들과 다른 게임으로 더 넓은 계층에 즐거움을 제공해 성공해 온 방식과 맞지 않는다"며 "경쟁자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재미를 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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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닌텐도의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지난달 30일 열린 경영 설명회에서, 앞서 발표한 2014년 3월 결산의 실적 부진에 대해 설명하다가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 블룸버그
②닌텐도만의 컬러를 잃다
물론 모바일이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게임기 시장에서 닌텐도와 경쟁하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는 여전히 건재하다. 매출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닌텐도의 또 무엇이 문제였을까? 위유라는 게임기 자체의 매력이 반감됐다는 것이다. 기존 제품인 위와 확실히 차별화되는 제품이 아니었기에 위 고객들이 굳이 신형인 위유를 새로 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플레이스테이션과 X박스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데 집착하다가 본연의 컬러를 잃어버린 것이다.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전설'로 대변되는 닌텐도 게임의 특징은 누구가 즐길 수 있는 가벼운 게임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담는 그릇이 휴대용 게임기 DS와 가정용 게임기 위였다. 그런데 차세대 게임기인 위유에서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다. 자신들만의 강점인 단순성을 버리고, 화려한 그래픽과 복잡한 스토리를 자랑하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박스의 아류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방향 전환을 한 것치고는 제품의 수준이 미치지 못했다. 성능이 향상됐다고는 하지만, 라이벌인 플레이스테이션4나 X박스원에 비해 수준이 떨어졌다.
닌텐도가 비장의 무기로 선보인 태블릿PC 형태의 조작 장치인 '게임 패드'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고성능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익숙한 신세대들에겐 이 물건이 구식처럼 느껴졌다.
KAIST 경영대학원 김영걸 교수는 "닌텐도의 강점인 '일반인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스마트폰에서 대부분 구현되면서 충성 고객이 이탈하자 경쟁사의 게임기 시장으로 침투하겠다는 전략"이라고 해석하면서 "지금까지 수성을 잘하던 쪽이 갑자기 블루오션을 찾겠다고 뛰쳐나갔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격"이라고 말했다.
닌텐도 게임기에 들어가는 게임들의 매력도 과거에 크게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통 게임기 하나가 새로 개발되면 그 게임기에 장착해 쓸 수 있는 게임이 수백 종 출시되며, 그중 몇 개는 히트해 줘야 한다. 그런데 위유의 경우엔 히트작이라 할 만한 게 거의 없다는 게 소비자 반응이다.
닌텐도가 모바일로 진출하든 게임기를 계속하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닌텐도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 실패한 것은 닌텐도에 더 쓰라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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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내가 다 만든다'의 한계
"왜 게임기가 안 돌아가지?"
2012년 여름 닌텐도 본사 연구소. 그해 연말 출시를 목표로 막바지 개발 중이던 차세대 게임기 위유에서 게임이 잘 돌아가지 않는 문제가 터져, 사내 개발자들이 총동원돼 해결에 나섰다. 결국 해결은 됐지만, 문제 해결에 게임 개발 인력까지 전부 동원되는 바람에 게임기 시판과 동시에 나와야 할 주력 게임 소프트웨어 발매가 줄줄이 늦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때문에 2012년 말 위유 발표 이후 닌텐도가 위유에 장착해 쓸 수 있는 대표 게임(플래그십 게임)으로 내놓은 것은 3개에 불과했다. 과거 위를 출시한 뒤 8개를 낸 것보다 훨씬 적었다. 초기 판매가 게임기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열쇠임을 감안할 때, 위유가 발매 직후의 중요한 시기에 신작 게임 부족으로 사용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근본 이유는 닌텐도가 새 게임기를 내놓으면서도 주력 게임을 전부 내부에서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으로 설명된다.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즉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나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 전무 같은 전설적인 전문가들이 포진한 집단에서 흔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전문가 집단인 닌텐도라 해도, 차세대 게임기도 개발하고, 거기에 맞는 게임도 개발하고, 판매도 하려니 능력에 한계를 겪게 되고, 개발도 점점 늦어지게 된다. 결국 '타임 투 마켓(시장화 속도)'이 늦어지게 되는데, 닌텐도의 신형 게임기 위유가 초기 판매 부진에 봉착한 것이 바로 이의 전형에 해당한다.
외부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외면한 닌텐도의 문제는 게임이 날개 돋친 듯 팔릴 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열매에 안주함으로써 외부 게임업체의 참여를 통해 동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지 못했다.
반면 라이벌들은 외부 개발사와의 관계 구축을 중시해 왔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을 대표하는 언차티드(Uncharted)나 MS의 X박스를 대표하는 헤일로(Halo) 같은 게임이 모두 외부 개발사와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작년 말에 등장한 플레이스테이션과 X박스의 차세대 게임기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이런 외부 개발사들을 끌어모아 매력적인 게임을 한꺼번에 출시했기 때문이다.
창업투자사 CL인베스트의 백승재 IT투자기획팀장은 "닌텐도가 수익 모델 자체를 하드웨어에 고착시키고, 소프트웨어로 먹고사는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