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은 ‘매실이 어느 정도 익었는가’를 기준으로 비의 이름을 지었다. 음력 3월 비를 ‘매실이 맺는 것을 맞이한다’는 뜻에서 영매우(迎梅雨)라고 불렀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유하장군산림(遊何將軍山林)’ 시에서 “푸르게 드리운 바람에 꺾인 죽순/붉게 찢긴 비에 살찐 매실(綠垂風折笋/紅綻雨肥梅)”이라고 읊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매실이 한창 익어가는 음력 4월에 내리는 비가 황매우(黃梅雨). 음력 5월에 내리는 비가 송매우(送梅雨)다. 이제 매실철이 끝났다는 뜻인데, 이것이 장맛비다. 장마를 여름비란 뜻에서, 서우(暑雨), 줄기차게 내린다는 뜻에서 적우(積雨), 또는 장우(長雨)라고도 한다. ‘유월 장마에는 돌도 큰다’는 속담처럼 장마는 만물을 자라게 하지만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속담처럼 오래 계속되면 가뭄보다 해가 컸다.
중국에서는 지금의 사천(四川)성 서쪽을 뜻하는 서촉(西蜀) 지방이 비가 많이 오므로 촉우(蜀雨)라는 말도 있다. 두보는 ‘중간왕명부(重簡王明府)’라는 시에서 ‘강구름은 어느 밤에야 다하며/촉천의 비는 언제나 개려나(江雲何夜盡/蜀雨幾時乾)’라고 읊었다. 재해(災害) 수준의 장마를 괴로운 비란 뜻에서 고우(苦雨)라고도 한다.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徐居正)의 ‘고우를 탄식함〔苦雨嘆〕’이란 시는 “고우를 탄식하고, 고우를 탄식하노라/내 고우를 탄식하노니 언제나 그치려나(苦雨嘆苦雨嘆/我嘆苦雨何時乾)”라고 시작한다. 그의 시는 “헛되이 가슴을 쳐댄들 얻는 것이 무엇이리오/새벽닭은 울지 않고 다시 비만 내리는데(空搥胸何可得/晨鷄無聲雨復作)”라고 끝난다. 다산 정약용도 ‘고우행(苦雨行)’이란 시에서 “괴로운 비, 괴로운 비, 쉬지 않고 내리는 비/아궁이 불 꺼져 동네 사람 시름 많네/아궁문에 물이 한 자 깊게 고였는데/어린아이 돌아와선 풀잎 배를 띄우네(苦雨苦雨雨不休/煙火欲絶巷人愁/竈門水生深一尺/穉子還來汎芥舟)”라고 노래했다.
음(霪)자와 림(霖)자는 모두 장마라는 뜻이어서 장마를 음림(霪霖), 음우(霪雨)라고도 한다. 고려 말의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장맛비(霪雨)’란 시에서 “삼복이 가까움을 미리 걱정하지만/새로 올 가을도 마땅히 기다려야지(預憂三伏近/應待九秋新)”라고 노래했다. 장마가 끝나면 삼복이 온다는 사실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삼복 뒤의 가을까지 내다보는 혜안이 놀랍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것이 선조들의 자연관이자 인간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