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 장마에 교외로 나가
장마가 끝물인 칠월 중순 월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전날 고향 걸음에서 따 온 고구마 잎줄기를 껍질을 깠다. “장맛비 우산 받쳐 피붙이 형님 문안 / 고향 집 텃밭에서 손수 딴 고구마잎 / 어릴 적 흙내 맡으려 잊지 않고 챙겼다 // 새벽녘 일을 삼아 껍질을 벗기다가 / 지난날 아슴푸레 어머님 떠올라서 / 칠남매 살붙이 남긴 당신 얼굴 그립다” ‘고구마 줄기를 까면서’ 전문이다.
한밤중 잠 깨기가 버릇인 내게 새벽에 할 일이 있음은 다행이었다. 고구마 잎줄기는 양이 제법 되어 껍질을 까는데 인내심이 요구되었다. 고향에서 오는 마늘이나 밤톨도 껍질을 까는 일은 언제나 내 몫이다. 이어서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웃비가 내리지 않아 접이식 우산은 배낭에 챙겨 넣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창원역으로 가는 102번 버스를 탔다.
소답동으로 나가 창원역을 출발해 대산 강가로 나가는 1번 마을버스로 바꾸어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나면서 몇 승객이 내리고 탔다. 주남저수지에서 들녘을 지나 대산 일반산업단지에 이르자 승객은 거의 내려 한 아주머니만 남았다. 그분도 가술에 내리니 이후 종점까지 혼자였다. 제1 수산교를 비켜 종점에 닿아 아무런 인적이 없는 신전마을 안길을 걸었다.
마을 안길에서 담벼락에 붙어 자란 석류는 엊그제 꽃이 피는가 싶더니 열매가 토실하게 여물어 갔다. 풋석류를 바라보다 농가 주택 처마 밑이 소란스러운듯해 고개를 드는 순간 신기한 장면을 봤다. 둥지에서 자란 새끼 제비들이 각자 첫 비행을 시도하면서 홀로서기를 하는 중이었다. 예닐곱 마리 가운데 먼저 부화했을 형들은 전선 줄에 붙었고 막내 둘은 아직 둥지 안에 머물렀다.
들녘에서 농약의 남용과 진흙으로 짓는 둥지를 지을 곳이 마땅하지 않아 해마다 개체수가 줄어드는 제비들이다.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는 한 해 두 차례 새끼를 까는데, 이번이 봄에 이어 두 번째에 해당할 듯했다. 뱀이나 들고양이로부터 안전을 담보 받는 주택 처마 밑에 둥지를 트는 특성이 있다. 요즘은 농촌과 인접한 도시 근교 슬라브 주택에도 둥지를 트는 경우도 드물게 봤다.
신전 골목길에서 들녘으로 나가 옥정을 지났다. 하옥정과 상옥정으로 나뉜 들녘 마을은 동읍이고 아까 제비가 둥지에서 떠나던 신전까지가 대산면이었다. 연을 가꾸는 논에는 연꽃이 봉오리를 맺어 꽃잎을 펼치려는 즈음이었다. 북면에서 대산 강가를 따라 김해 한림으로 뚫는 국가 지원 60번 지방도 굴다리에서 강둑으로 나갔다. 탁 트인 자전거길을 따라 수산 방향을 향해 걸었다.
대산 정수장 둑 너머 둔치는 밀림이 연상 되리만치 녹색 평원이었다. 물억새와 갈대가 무성한 가운데 뽕나무를 비롯한 수목들도 우거졌다. 낮게 낀 구름으로 더위를 느낄 날씨가 아니라 산책에서 땀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부부인 듯한 중년은 자전거에 짐을 꾸려 매달고 페달을 밟아 미끄러져 나아갔다. 제1 수산교를 앞둔 당리마을 근처를 지날 때는 현지 부녀 둘이 산책을 나왔다.
신성마을에서 강둑으로 내려 들녘으로 드니 밤에 더 화사하게 피는 달맞이꽃이 아침을 맞아도 여전했다. 정원이 잘 꾸며진 요양원 앞 언덕은 왕고들빼기와 가시상추가 군락을 이루어 자랐다. 가시상추는 꽃대가 나와 쇠어도 왕고들빼기는 장맛비를 맞아 부드러워 보였다. 농로를 따라 들녘으로 드니 비닐하우스단지가 펼쳐졌다. 주력 작목인 풋고추와 함께 오이와 토마토를 가꾸었다.
들녘에 벼를 심어둔 논은 추수 이후 겨울에는 비닐하우스에서 당근을 가꾸었다. 들녘 복판으로 드니 멀리 사방을 에워싼 낮은 산들이 머리를 숙여 조아리는 듯했다. 유난히 규모가 큰 비닐하우스단지에는 수경재배로 키운 다다기오이를 한창 따냈다. 선별에서 제외된 하품도 가득했는데 멀쩡해 먹어도 될 듯했다. 농장주는 관심 밖이니 얼마든 가져가십사고 해 봉지에 채워 담아 걸었다. 24.07.15
첫댓글 오이하우스 .여름이 깊어갑니다
ㅎ 농부님에겐 땀 흘려 가꾸는 시설 채소 농장이었습니다.
지나는 객에겐 녹색 정원이나 설치 미술을 보는 듯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