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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원하실까 (막3-9)
2024년 5월23일(목요일)
찬양 : 좋으신 하나님
본문 : 막1장40-45절
☞ https://youtu.be/MJxd1mCVx5A?si=LDYQaicGC0lfv974
어제는 일산에 있는 한 교회를 심방했다. 이분과 교제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분의 삶을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이다. 놀랍게도 무려 7번의 개척을 하셨다. 목사님의 지나온 길이 참으로 주님을 따르는 목사님들의 부르신 하나님을 향하신 심정임을 느끼며 울컥했다. 첫 개척지에서 부흥이 되지 않아 월세가 밀려 쫓겨날 처지가 되었을 때 자신의 눈 한쪽을 팔아서 월세를 갚아 목회를 계속하고 싶어 안구 기증 병원을 두 군데나 찾아갔다고 한다.
건축 설계를 하며 사업도 하셨던 분인지라 나가서 일하면 얼마든지 그런 비참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데 부르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 그런 일까지 감당하신 것이다. 그런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걸으시며 골육종 암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출 수 없으셨던 목사님 ~ 휠체어를 타고 복음을 전하며 구원하는 일을 하시니 주님이 힘을 주사 회복케 하시고 지금 67세의 나이에도 복음 전하는 일을 하시고 계신다. 할렐루야 ~
오늘은 목회사관학교 12주차 수업의 날이다. 3개월 수업의 마지막 날, 수고하신 강사님들과 사관생도들 모두에게 주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한 나병환자를 치료하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40-41절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한 나병환자>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당시 나병환자에 대한 인식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의 나병은 가장 부정한 자로서 최우선의 격리 대상자요 사람에게 접근하거나 부지중에라도 근접하게 되면 멀리서부터 자기가 스스로 부정함을 알려서 격리 거리를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간주되었다.
그러기에 <한 나병환자>의 이런 행동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만약 일반적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당장 돌에 맞아 죽어야 된다.
그러기에 나병환자의 이 행동에는 그의 삶 전체를 녹여낸 믿음과 간절함이 담겨진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 앞에 서는 것이기에 일어나서 말할 수 없고 꿇어 엎드려 간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죽기를 각오했지만, 그가 외치는 말은 내 마음조차 안타깝게 한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 장면에 주님은 세상의 사람들처럼 돌을 들지 않으셨다. 두려워 도망가지 않으셨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손을 내밀어 나병환자의 몸에 대셨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주님이시다. 세상 모두가 욕하는 사람, 세상 모두가 두려워 떠는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만져주시며 이런 사람도 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세상은 다양한 이유로 제한하고 제외시킨다. 능력의 한계와 시간의 한계, 재정의 한계, 지혜의 한계 등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세상의 그런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분이시다.
오늘 마가는 네로황제의 핍박에 믿음의 한계라 여겨지는 현실에 당황하고 절망한 성도들에게 외친다. 주님이 이런 나병환자가 치료되기를 원하신다고 말이다. 주님에게 불가능한 영혼은 없다. 믿음만 있다면 그 어떤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마지막 절은 더욱 이 사실을 증명한다. 45절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주님은 치료받은 나병환자에게 아무에게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엄히 경계하셨지만 이 사람은 자신의 치료된 이 놀라운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다. 그래서 주님은 그 일은 분명 드러나게 동네를 다니실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 사역이 막혀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시는 분은 그 어떤 한계에서도 놀라운 길이 되시는 분이시다. 바깥 한적한 곳에 계시지만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와 사역은 더욱 더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할렐루야 ~
삶이란 자리를 걸으며, 우리는 <나>라는 존재의 한계아래 갇혀 버린다. 내가 못하면 주님도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아니시다. 그리고 내가 연약하기에 주님이 나같은 자를 원하실까? 하는 열등감이 세상에서처럼 주님앞에조차 있는 우리다. 그러나 주님은 그 누구에게도 오직 믿음으로 나온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불쌍히 여기시며 원하신다.
참으로 좋으신 나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 갇혀서 수많은 나병환자가 구하지 못하고 포기하였을 것이다. 초대교회 핍박의 현장에서도 그러한 많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나병환자>를 주님은 받아주셨고 원하셨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겸손히 주님을 향해 나아간다. 주님, 세상 모두가 돌을 던지는 인생조차도 불쌍히 여기시며 손을 대시며 원하시는 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앞에 나오지 못할 자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음을 알려주시려고 마가는 맨 앞장에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아멘.
목회의 현장을 살아가는 사관생도들이 맞이하는 하루하루의 삶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벌써 23일 또 한 달이 지나간다. 월세를 지불해야 하고, 또 주일을 준비해야 한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정말 주님이 나를 원하시는 것 맞나? 주님이 부르신 것이 맞을까?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이 정도면 그만두는 것이 주님을 위한 것 아닐까?
나병환자가 주님 앞에 서기까지 겪었을 수많은 생각처럼 오늘도 작은교회를 섬기는 종들이 겪고 있는 이런 생각들 ~ 주님, 또 한 학기를 마감하는 날 주님이 저들을 품어주소서. 좋으신 하나님의 품에 안겨 다시 힘을 얻고 일어나 거룩한 빛을 비추게 하소서.
<중보기도 제목>
1. <웨이브리즈> 플랫폼에 적합한 사람을 보내주사 주님 뜻 이루게 하소서.
2. 목회사관학교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3. 100명의 새로운 후원자와 3억의 출자금이 공급되게 하소서.
4. 박정제 목사와 팀원들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소서.
5. 스페이스 알 사역을 통해 젊은 세대 사역자를 일으키게 하소서.
6. 땡스기브가 세운 틴케이스 공간이 소중히 쓰임받게 하소서.
7. 2024년 작은교회 부흥을 이루는 해가 되게 하소서.
8. 충주 라마나욧이 세워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