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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병선
교육평론가·교육학박사 |
교실 속의 풍경과 사바나 초원은 공통점이 있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학교폭력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이 그렇다. 그것은 사바나 초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모습이 교실 속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교실 안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바나 초원과 전혀 다르지 않다. 흔히 교실의 모습을 정글에 빗대 ‘블랙보드 정글(blackboard jungle)’로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사바나는 흔히 말하는 동물의 왕국이다. 먹이사슬이란 체계 속에서 상위 포식자는 차하위 포식자를 지배한다. 차하위 포식자는 다시 차차하위 포식자를 지배한다.
#교실은 ‘블랙보드 정글’
교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사바나 초원에서 그렇듯 약육강식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성과 합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학교는 더 이상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존싸움은 어떤 특징을 나타낼까. 서열싸움으로 나타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위서열로 올라가기 위한 갈등에서 폭력이 발생한다. 특히 새로운 친구관계가 형성되는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신학기 초가 가장 심하다. 서열이 쉽게 결정되지 않으면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런 싸움이 거듭되면서 서서히 친구관계에서도 서열이 정리된다. 물론 물리적인 힘겨루기를 통하지 않더라도 외모나 행동거지, 주변 아이들의 반응 등을 통해 서열이 암묵적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이런 서열싸움은 주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나타난다.
반면 여학생들은 다른 양상을 띤다. 집단적인 무리의 형태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몇 명의 주도권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각각의 집단을 만든다. 적게는 2개에서 많게는 4~5개의 집단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집단들은 다른 집단들과 힘겨루기를 하거나 지속적으로 적대적 관계를 유지한다. 집단과 집단이 서로 대립하는 경우도 있고, 집단 내의 특정한 학생이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집단적으로 특정 학생을 괴롭힌다. 남학생들이 수직적인 서열싸움을 한다면 여학생들은 수평적인 세력싸움을 하는 셈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학년 초에 학교폭력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도 사바나 상황과 흡사하다. 사바나 지역에서는 우기에서 건기로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서 약육강식의 싸움이 더욱 활발해진다. 이때 풀을 찾아 이동하는 초식동물들은 곳곳에 숨어있는 육식동물들의 먹이가 된다. 예컨대 영양이나 얼룩말과 같은 동물들은 사자의 공격을 받는다. 물속에 숨어 있는 악어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힘이 약한 동물들에게는 바로 이 시기가 가장 위험한 때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약한 아이들에게는 학기 초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 서로를 잘 파악하지 못한 시기이기 때문에 대인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크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약육강식을 반영한 ‘권력 피라미드’
학교폭력을 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의 시각으로 보면 사바나는 사파리 관광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초원일 뿐이다. 하지만 이곳에 삶의 뿌리를 박고 있는 주민들과 동물들의 상황은 다르다.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삶의 터전이다. 교실 내부를 보는 관점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교실을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공간으로 착각한다. 교사는 학생들을 대부분 일대일의 관계로 본다. 하지만 아이들은 폭력계급의 시각으로 인식한다. 교사의 접근은 단선적이고 산발적인 반면 아이들의 시각은 집단적이며 복합적이다. 이렇듯 교실 상황을 보는 시각도 다르다. 물론 교실을 사바나 초원에 비유하는 것은 무리다. 아무리 삭막한 교실이라고 해도 왜 친구 간의 사랑과 우정이 없겠는가. 그럼에도 학교폭력의 관점, 특히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의 역학관계로 본다면 사바나 초원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