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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스크랩 효도를 거부한 구상 선생의 강직
조정은 추천 0 조회 88 14.09.14 18: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구상 선생에 대한 추억 9

효도 거부한 구상선생의 강직

 

 

시인 구상 선생에게는 옥중에 있던 사형수 양아들 외에 2남 1녀가 있었다. 외동딸인 구자명씨는 지금 소설가이며 교육자로 활약하고 있다.

 

 

아들 둘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두 아들 중에도 망내인 구 성은 나한테 자주 찾아와 많은 일을 상의했다. 구 성은 성격이 호탈하고 담대해서 기상천외한 일을 잘 저질렀다.

                 1976년 발행된 '영원속의 오늘'저서에 실린 구상 사진

 

아버지를 닮아 젊은 시절에 폐결핵을 앓았는데 치료를 소홀히 하여 중증에 이르렀다.

 

옆에서 보다 못한 중광 스님이 자기 그림 50여점을 내놓고 전시회를 열어 모은 그림 값으로 구 성을 인천 요양소에 입원을 시켰다. 그러나 구 성은 한달도 있지 않고 병원을 탈출하여 기이한 활동을 되풀이했다.

 

구 성이 군 복무르 할 때의 일이었다. 내가 구 선생의 사무실(한때 예비역 장성이 하는 관광회사에 고문으로 있었다)에 갔더니, 선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성이란 놈이 육군 본부 정문에 보초를 서고 있다가 철모와 소총을 벗어 던지고 도망을 쳐버렸대요. 허허허...”

선생은 전혀 걱정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예?”

“그래서 헌병대가 법석이 났나 봐요. 잡으러 다니느라고 고생들 하고 있대요.”

선생은 남의 이야기 하듯 말을 계속했다.

“손자 병법에는 군률을 어긴 놈은 즉결처분이라고 했어. 그 놈이 그렇게 비겁한 놈인 줄 몰랐어.”

그 뒤 구성은 만취 상태로 제발로 걸어 들어와 영창살이를 했다고 들었다.

 

1956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 기념 사진. 부인과 두 아들(앞에 고개숙인 아이가 망내 성).

 

 

내가 모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 몇 달 안보이던 구 성이 갑자기 나타났다. 신사복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으나 얼굴은 결핵을 앓아 병색이 역력했다.

“자네, 꼭 사장님처럼 하고 다니는구먼...”

“예. 제가 사장이 되었습니다.”

“뭐라고? 무슨 사장?”

뜻밖에도 그는 꽤 이름 있는 H기업의 대표이사가 되어 있었다. 운전사와 수행비서까지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평소에도 대담한 도깨비장난을 일삼던 그였지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은 일을 저지른 것이다.

 

“오늘은 형님께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말투도 진짜 사장님처럼 점잖게 바뀌었다.

“무슨...?”

“제가 돈을 좀 벌었거든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조그만 효도를 한번 하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영 받아들이지를 않아요.”

“어떤 효도?”

“운전사가 달린 자가용을 한 대 사서 드렸는데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버스를 몇 번씩 가라타고 다니시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의 말인즉 자가용차를 마련, 아버지가 거처하는 여의도 관수재 아파트 앞에 매일 아침 출근해서 기다리는데, 구 선생은 외출하면서 차와 운전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탄다는 것이었다.

“형님이 아버지께 제발 자가용 타시라고 좀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구 상 선생다운 행동이었다. 나는 듣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면서 관수재로 찾아가 차를 이용하시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권유를 했다.

“아니, 그 놈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단번에 벌 수 있단 말이오. 필경 협잡질을 해서 남의 돈을 뺏은 것일 텐데 내가 어찌 그 차를 탄단 말이오.”

선생은 이렇게 말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1967년 도꾜에서 열린 국제 펜대회 참석차 하네다 공항에 내리는 구상 선생. 들고있는 흰 보자기는

친구인 이중섭 화백의 유골이다. 동경에 살고 있는 이중섭씨의 일본인 부인 남덕 여사에게 유골을 전했다.

 

한번은 구 성이 전화를 걸어 내일 오후 5시에 H화랑에서 친구의 그림 전시회가 있는데 꼭 좀 나와서 테이프 커팅을 해달라고 했다. 구성이 한번 말을 꺼내면 안하고는 못 배긴다는 것을 아는 나는 그 시간에 ?춰 화랑으로 갔다.

 

내가 전시장에 들어서며 놀란 것은 그림 때문이 아니라 구 성의 기이한 모습 때문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등에 산소 호흡기를 멘 채 가슴에는 꽃 한송이를 달고 테이프 커팅을 하겠노라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은 창백하고 종잇장처럼 얇았다.

“이 사람아, 이렇게 위중한 몸으로...”

“형님 아버지께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 화가를 워낙 좋아해서 병실에서 몰래 도망쳐 나왔어요.”

구 성은 숨이 차서 몇 번이나 쉬어가며 말했다.

 

(홈즈네 집에서-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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