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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전보를 받을 재천이 부부 와 재근이 그리고 경동이 부부가 내려 왔다.
그리고 친척들도 오기 시작 했고, 물론 재운이도 왔다.
재운은 수동이를 꼭 끌어안고 애처로운 마음에 얼굴을 비볐다.
수동이는 큰아버지의 따끔따끔한 턱수염이 얼굴을 찔렀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수동아 가서 백양담배 한 곽만 사와라.”
하면서 100환을 주었다.
“네 큰아버지.”
수동이는 100환을 받아 들고 도림개말로 진승이내 가계로 가서 담배 한 갑을 사 가지고 왔다.
장지는 형묵이 살던 방꼴 집 뒤에 있는 밭머리였다.
모든 일은 재덕이 주선을 하다시피 했다.
재덕 그는 대소사에 일머리를 꽤는 능력이 있었다.
굴건과 제복이 몇 벌이며 두건과 행전이 몇 개가 필요하고 장례에 필요한 물건을 무엇 무엇을 구입해야 하는지 구입 해온 물건이나 음식을 적제 적소에 쓰고 동내 젊은이들을 불러서 이웃집 사랑방이나 방에 있는 손님의 숫자를 파악하여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담게 하는 일부터 장례식 전날 저녁 제사를 지내고 모여든 간난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인원을 파악하여 고기 한 점 떡 한 쪽 심지어 옥춘당 도 숫자가 모자라면 쪼개서 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반 또는 반에 반을 나누라고 해서 철저하게 일을 치러 내었다.
사흘째 되던 날 꽃상여가 꾸며지고 상여가 방골을 향하여 떠났다.
재천은 과시욕인지 몰라도 상여를 매는 상두꾼들에게는 고무신 한 켤레와 홑두루마기를 입히고 건을 하나씩 쓰게 하였다.
그리고 상여에는 설매로 광목 두필을 걸었다.
상여 앞에는 만장 공포가 서고 선소리는 선진이가 요령을 흔들며 선소리를 메겼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 어허 너울이 넘자 어허” “ 저승길이 멀다더니” “ 어허, 어허 너울이 넘자 어허” “대문 밖이 저승일세.” “ 어허, 어허 너울이 넘자 어허”
상여 뒤에는 상주 재천 재근 경동이를 비롯한 일가친척들이 줄줄이 따라 나섰다.
상여는 지름길로 해서 장지로 가지 않고, 이리 저리 돌아서 가는데, 남의 집
굴뚝 뒤로 는 가지 않는 법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을 쉬여 가는데 쉴 적마다 노재를 지냈다
그때 마다 상두꾼들에게는 막걸리가 한 순배씩 돌아갔다.
여섯 살의 수동이를 비롯한 아이들을 그게 무슨 구경거리라고 계속 따라 다녔다.
그날의 장관은 도림개말에서 방꼴로 건너가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었다.
개울 가운데에 다리발이 서 있는 섶 다리처럼 만들어 진 나무로만 된 다리를 건너는 것은 발을 맞추어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서 방꼴 장지에 도착하여 하관이 있었다.
지관이 뱀띠와 용띠는 하관을 보지 말라고 했다.
하관이 있고 홍대가 깔리고 흙이 덮이기 시작 했다.
그런 와중에도 금순의 존재는 미미 했다.
“자 군정꾼들 모여요.”
“에 허리 달공” “에 허리달공” “먼데 사람 듣기 좋게” “에허리 달공” “근방 사람 보기 좋게” “에허리 달공” “남의 발을 밟지 말고” “에어리 달공”
또 흙이 덮이고 회를 닫기를 몇 차래 후 봉분이 만들어 지고 떼를 입힌 다음 평토제가 끝났다.
그리고 완묵의 아들 재수가 혼백을 모시고 꽃재 집으로(반혼)돌아와 대청에 상청을 차리고 반혼제를 지나고 나니 친척들은 대부분 떠나고, 몇 몇은 사랑방에 남았다.
대청마루에는 미랑 재천 재근 경동이 금순이를 비롯한 양묵 재덕 재수 등 가족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모든 상속은 장손 경동의 차지하는데 이의를 제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동이는 마치 점령군 같았다.
참다못한 미랑이가 한마디 했다.
“아니 다 가져가면, 우리 모녀는 무얼 어떻게 먹고 살라고 하니”
“할머니, 할머니가 농사를 짓겠습니까, 금순 아줌마가 농사를 짓겠습니까.
먹고 사시는 것은 다 대 드리고 그리고 이집에서 사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럼 금순이 커서 시집갈 때 그냥 보내나”
미랑이 볼멘소리를 했지만
“그리고 금순 아줌마 커서 시집갈 때 제가 다 해서 보냅니다. 할머니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다만 논밭 떼기라도 떼어 주면 에 오라비가 농사지어 같이 먹고 살게 할 수 있지 않니”
옆에 있던 재덕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니 큰어머니 김가네 땅을 왜 황가가 먹어야 합니까? 이게 어디 안동김씨 땅이지 황가네 땅입니까”
재덕이 그 말을 하게 된 것은 계모 순례로 부터의 서운함이 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이 말 한 마디가 뒷날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경동이 그는 해방 전 서울서 경찰을 하다 그만 두어 누구보다 세상 물정에 밝았고, 법도 장자가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경동 이는 대청에 놓여 있던 두 개의 뒤주 중 큰 뒤주를 손가락을 구부려 두드려 보았다.
‘뚝 뚝.’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 속엔 무엇이 들어 있나요.”
순간 미랑의 낯빛이 붉어졌다.
“그래 수동 아범은 내가 금순이 눈 위에 흉터 수술해 주려고 잣 넣어 둔 것까지 고자질을 해, 해도 해도 너무들 하네.”
“큰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그런 일 없습니다.”
“됐네, 이 사람아.”
불똥은 엉뚱하게도 재덕에게로 튀고 말았다.
그날은 그렇게 가고 삼우제를 지내고 모든 사람이 떠난 꽃재 미랑의 집에는 모녀만 남았다.
봄이 되자 보리밭 이랑에는 달래가 나자 명자는 종다래끼를 허리에 차고 호미를 들고 달래를 캐러 다녔다.
양묵이 보리 파묻는다고 야단을 쳤지만 보리밭으로 아니면 찔레 덤불이 우거진 속에서 가시를 제치고 달래를 캐서 꽃재 집이 아닌 양묵이 사는 집 장독대 옆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그리고 몇 칠 후 양묵이 마석장에 내다 팔아서 명자에게 주었다.
그러나 수동이가 캐 온 것은 찌개를 끓여 먹거나 양념간장 재료로 들어갔다.
그것도 잠깐 명자는 학교에 다니고 놀 친구도 없고 심심해지고 또한 정순이 정자에게 매달려 있고 양묵이나 순례도 재순이도 수동이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고 수동이는 늘 외톨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심을 어디서 먹는지도 모르고 저녁에 어두워져서 온 식구 들이 찾아다니게 되었다.
몇 번 야단을 치고 타일렀지만, 사흘이 멀게 저녁이면 온 집안 식구들이 찾아 나서야 했다.
수동이가 놀다가도 재덕이가 일을 나간 곳을 알아서 그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길거리를 싸돌아다니며 놀다가 어두워지면 야단맞을 생각이 드니 재덕이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는 곳으로 찾아가서 저녁을 먹고 재덕의 등에 업혀서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저녁을 얻어 먹이는 것도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은근히 불상한 생각도 들었다.
오직 정 붙일 때가 없으면 하루 종일 밖으로 싸돌아다니다. 애비라고 찾아올까?
“아니 애를 건사를 하는 거야 안 하는 거야.”
오늘도 잠이 든 수동이를 내려놓으며 재덕이 정순에게 핀잔을 주었다.
정순은 속이 상했다.
아니 송아지처럼 묶어 놓을 수도 없고 애 보고 때 맞춰 시아버지 시어머니 밥 차려 드리고 나면 어느 틈엔가 빠져 나간걸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맨날 기름종개처럼 빠져나가는 걸 어떡해요.”
“에이그 .”
그리고 몇 칠 후 재덕은 정순의 오라비 만석이 제대를 했다고 하면서 다니러 왔다.
수동이는 만석을 외삼촌이라 부르며 졸졸 따라다녔다.
그리고 만석과 정순 오누이는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무래도 황골 보다는 여기가 살기 좋아 보인다.”
“태희내도 이사 왔는데 공회당에 살 때 보다는 대궐 같은 집에서 살아요.”
“응 그렇지 않아도 가 봤는데 굉장히 넓더라.”
“그러지 말고 이사와요. 황골서 대우도 못 받고 사느니 여기가 훨씬 났잖아요.”
“그러 잤구나.”
오빠 여기에 누워서 자요. 하면서 수동이 옆에 요를 깔아 주었다.
그리고 베개에는 포마드 기름이 묻을까 봐 수건을 덮어서 베게 했다.
그렇게 이틀을 묵는 동안 만석은 양묵이 밭에 있는 바위 하나를 정을 박고 메로 처서 깨트려 내는 일을 도왔다.
양묵은 부지런해서 먹고 놀면 뭐하느냐는 근면 정신이 강해서 겨울이면 돌담불이나 바위 하나씩 없애고 있었는데 젊은 만석이 메질을 하고 지렛대를 가지고 바위를 굴려 주니 고마웠다.
만석이 돌아가고 몇 칠이 지나서 이사 준비가 되어 간다는 만석의 편지를 받은 재덕은 하루 별러서 방꼴 재천의 집에서 당분간 살게 하려고 재천을 만나러 서울로 가서 재운의 집에서 묶게 된 날 저녁 이었다.
그날도 수동이는 방꼴로 도림개말로 돌아다니며 놀다가 해질녘에는 꽃재에서 올무를 놓아 노루를 잡았다고 신이 난 도연이라는 사람이 수양엄마 창기 내서 노루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잘라 내는 것을 구경하다가 땅거미가 지고 나서야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미쳤다.
서둘러 아랫말로 내려오는데, 수동이를 찾아 나선 양묵과 만났다.
“수동이 이 녀석 여태 뭐 하러 싸돌아다니니, 너 집에 가면 혼날 줄 알아라.”
오늘은 재덕이 서울을 가서 밥을 얻어먹을 만한 곳도 없는데 어두워지도록 수동이는 들어오지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는 정순 앞에 양묵이 수동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리와 이 녀석아.”
정순이 수동이를 낚아채 방으로 들어가 마구 두들겨 팼다.
“아이고 다신 안 그럴게요. 엄마 다신 안 그럴게요.”
구석에 몰려서 맞으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지만 화가 치민 정순의 손은 무자비하게 얼굴이며 등이며 가리지 않고 두들겼다.
코피가 터지고 나서야 우는 수동이를
“고개 들어.”
하는 표독스러운 소리에 겁에 질려 고개를 든 수동이의 얼굴을 걸레로 닦아내고 솜으로 콧구멍을 틀어막았다.
밖에서는
“그 녀석 단단히 혼내라 다신 그러지 못하게.”
하는 양묵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그날 밤 수동이는 훌쩍이며 잠이 들려는데.
“안 그쳐.”
하는 정순의 고함에 다시
“음. 음. 음.
하며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숨을 죽이다 잠자리에 들었다.
문밖에서는 상모를 쓰고 장구를 맨 그림자가 ‘뚱 따다 뚱 따 뚱 따다 뚱 따.’ 하며 밤새도록 장구를 치고 있었다.
다음날 조반에 양묵이 밥을 먹고 있는 수동이를 보면서 한마디 했다.
“밥만 먹고 말썽만 피우는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 식충이라고 부른다.”
식충이가 무엇인지 모르는 수동이는 어제 낮에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올챙이배가 되도록 먹었다.
“저 식충이 봐라 어깨로 숨을 쉬는 거. 쯧 쯧 쯧 .”
하면서 혀를 찾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현용이내 집에 가서 아무도 없는 안방 벽에는 유리가 없는 회중시계가 걸려 있었다.
초침이 돌아가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가 있어서 들여다보다가 초침이 돌아가는 쪽에 손가락을 갔다 댔다.
얼른 뗐으면 괜찮았을 텐데 이내 초침이 떨어져 나가고 두리번거리고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겁이 난 수동이는 급히 밖으로 나와 버렸다.
몇 칠 후 궁금해진 수동이가 가보니 초침 없는 시계는 그 자리에 걸려 있었다.
그 시계는 동내에서 유일하게 있는 시계로 차를 타러 갈 때나 흐린 날에 동내 사람들이 시간을 물어 보는데 사용되던 시계로 그 후에도 초침 없이 늘 그 자리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현상엄마가 가끔씩 정순에게 놀러 왔다.
현상엄마는 그전에 영란이 와도 친하게 지내서 가끔씩 놀러 오고했는데. 마루에 앉아 있다가 수동이가 귀여워 장난을 치고 싶어져서
“수동아 네 동생 데리고 갈 까.”
“네 동생 아줌마가 데리고 간다.”
하니 수동이가
“싫어요. 안 돼요.”
웃으며
“내가 정말 데리고 간다.”
며 정자를 안고 밖으로 가는 척 했다.
수동이가 마루 끝에 있던 병을 댓돌에 던져서 깨트리고 말았다.
정순이
“이 녀석 혼 좀 나야 돼.”
하면서 이번에는 회초리를 들고 들어와 종아리가 피가 나도록 때렸다.
현상 엄마는 미안해서 황망히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진달래가 필 무렵 명자는 수동아 우리 나물 하러 가자하고 불러서 둘이는 종다래끼를 옆에 차고 작을 칼을 챙겨서 원추리를 산에서 도리면서 즘대까지 가서 나물을 했고 신주바위 위에서 진달래와 내려오면서 노랗게 핀 동백꽃(생강나무)을 꺾어 가지고 와서 병에 물을 붓고 꽂아서 뒤주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가래질에 논갈이를 하는 오월 어느 날 그날은 재덕이 꽃재 삿갓배미를 갈고 있었다.
수동이는 논두렁에 앉아서 논갈이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졸다가 1.5m높이의 논바닥으로 거꾸로 쳐 박히고 말았다.
재덕이 논을 갈다 말고 달려와 울고 있는 수동이를 씻기고 옷을 벗기고 해서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에이그 저 말썽쟁이’ 빨래가 산처럼 쌓이는데 옷가지 벼려 와 에그그 내 팔자야‘ 정순은 가슴을 쳤다.
그러다 보니 수동이는 눈치꾸러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꽃재에는 수동이와 동갑 나기 복자라는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수동이를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서 코피가 터졌다.
엉엉 울면서 집으로 왔는데 재순이
“수동아 누가 그랬어.”
“훌쩍 훌쩍 보 복자가.”
“이 녀석아 사내 녀석이 계집애에게 터지고 들어와, 에그 삭은콘 가보다.”
그리고 얼마 후 선복은 방꼴로 이사를 해서 건넌방에 선복 내외 그리고 행랑의 작은 방에는 만석이 작은 책상을 놓고 그 위에는 얼마 전에 찍은 하이칼라 머리를 곱게 단장한 모습이 담긴 사각 사기 판에 박힌 사진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용단은 손녀딸 정자가 귀엽고 외할머니가 포대기를 사다 주는 전례에 따라 장날 마석 장을 보러 갔다.
오후 늦게 만석이를 따라서 태우가 와서 수동이도 용단이의 마중을 갔는데 광대울 고개 아래 까지 가서 짐을 받아 가지고 왔다.
용단은 정순에게 처네 포대기를 건네주었고, 정자를 업고 방안을 왔다 갔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순은 정자를 업고 있다가 수동이를 보자 어디 정자를 업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수동아 애기 좀 업어 볼래?”
“네.”
그렇게 수동이 등에 처음으로 정자를 업혔다.
처네 포대기를 두르고 대문간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니까 곧 잠이 들었다
“오빠가 업어 주니까 좋아서 금방 잠이 드네, 이제 내려놔라 재우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수동아, 동생 기저귀 좀 개울에 가서 빨아 올래.”
“네”
기저귀를 가지고 개울에 가서 그 작은 손으로 주물락, 주물락. 해서 물에 흔들면서 보니 길게 늘어진 기저귀가 물살에 흐느적거리며 헤엄을 치는 모양이 재미있는지 흔들었다.
그런데 빨고 또 빨아도 노란 똥물은 지워지지를 않았다.
한참을 빨면서 장난을 하다가 기저귀를 사려서 비틀어 짜 가지고 양손에 하나씩 들고 현숙이내 집 앞을 지나오는데, 작은집에 왔던 영순 엄마를 만나서 얼른 뒤에다 감췄다.
쯧 쯧 하며 영순 엄마는 혀를 찾다.
수동이가 빨아 온 기저귀를 받아 든 정순은 다시 한 번 짜서 ‘탁 탁’ 털어서 빨랫줄에 널었다.
“잘 안 지워져요.”
“응, 이건 마르면 날아가”
정말 마르니까 노랗던 똥 자욱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그 무렵 제철은 딸의 처지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옛날 큰집 머슴이던 선복과 종살이를 하던 용단의 딸에게 내 딸 희상이가 밀려서 소박을 맞은 걸 생각하면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육이오전쟁 직후 수복 때 정순네 식구를 살려준 재운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어찌하려는 심산인지 한 번 재덕을 만나 보기나 해야겠다고 생각한 제철은 하루 시간을 내어 물골안으로 갔다.
도착하니 막 점심때가 되어 있었고 부엌에서 점심 준비를 하던 정순이 황망히 제철을 맞았다.
“오셨어요.”
가볍게 고개를 끄떡여 인사를 받았다.
첫댓글 어린 아이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 가네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예요
오늘도 또 글을 올려 주셨군요.
매번 감사 함니다
변함없는 사랑에 제가 힘이 납니다.
참 글 잘 쓰시네요 나도 소설가가 꿈인데 정말 나는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뜿박에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계속 사랑해 주십시요.